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자 축복하라 3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자를 축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탕감복귀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란 것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자를 축복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모두 사탄이 역사할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비록 말씀을 통하여 하늘 앞에 섰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의 죄, 타락성이 완전히 청산되지 않는 한 언제나 사탄의 침범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내가 완전히 복귀될 때까지 늘 참소합니다.(욥기 참조)
나 자신이 섭리적 사명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죄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이 지은 죄보다 훨씬 큰 탕감의 노정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쉽게 반발하고 불평불만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죄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데 상대방(원수 같은 자)이 느닷없이 나타나 나를 핍박, 조롱, 비난, 음해하여 괴롭히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자범죄만 아니라 조상의 유전죄까지 탕감하여 청산해야 할 조건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억울한 입장,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신앙자는 늘 깨어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황을 통해 나의 모든 죄(유전죄 포함)를 탕감하여 청산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틀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자가 범사에 감사하는 자세로 일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어떠한 조상의 유전죄를 탕감하기 위해 내 앞에 악인이 나타나 나를 욕하고 핍박하고 비난 조롱 음해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 중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어 그러한 상황을 부여하시고 나를 통해 복귀섭리를 이루시려는 뜻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자신의 위치를 떠나면 바로 사탄은 침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나를 별 이유 없이 비난하거나 욕을 하게 되면 나 역시 그것을 참지 못하고 맞받아서 비난하고 욕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러한 행위는 사탄의 행위이기 때문에 바로 나 자신에게 사탄이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상대의 비난이나 욕을 들었을 때 그것을 비난이나 욕으로 듣는 그 자체가 사탄과 상대기준을 조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까지 맞받아쳐서 같이 비난하고 욕을 하게 되면 나와 상대 둘 다 사탄이 역사하는 실체사탄이 되어 하나님은 멀리 떠나시게 됩니다. 그러면 사탄은 춤을 추면서 부채질을 하여 우리의 심령을 더욱 악화하여 사탄의 하수인,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탄이 역사하여 나를 비난하거나 욕을 할 때 그것을 섭리적인 각도에서 이해하고 탕감에 대한 감사함을 품고 대하게 될 때는 그 즉시 내 심령에 하나님이 역사하여 나의 심령은 부활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의 길은 생각 하나의 차이로 선과 악, 하나님 편과 사탄 편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편으로 가려면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적 각도에서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늘 불평불만하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하고 비방을 일삼게 되면 사탄 편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판단은 바로 사탄을 부르는 신호인 것입니다.
속된 말로 미친개가 짖는다고 발로 걷어차거나 몽둥이로 때려잡겠다고 나서면 나 자신은 미친개보다 못한 입장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사람이 미친개처럼 날뛰는 것을 보고 바판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고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상대로 하여금 어떻게 죄악을 분립하게 하여 복귀시켜 줄 것인가를 염려하고 고민해야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흔히 왜 당신이 그렇게 욕을 하고 비난하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이 상대가 먼저 나를 화나게 하고 욕을 했으니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욕을 하고 비난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사탄이 역사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탄이 역사하여 행동하는 자에게 내가 영향을 받아서 똑같이 욕을 하고 비난하게 되면 이는 내가 역주관 당한 것입니다. 주관성이 전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사탄이 역사하게 되어 맞받아지치면서 같이 욕을 하고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탄에게 역주관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이렇게 무지 가운데 빠져 늘 주변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섭리적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자기 존재 위치를 상실하여 역주관까지 당해 실체사탄이 되어 사탄의 하수인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범죄행위를 널리 퍼트리며 자신의 죄를 더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죄는 자신이 탕감을 다 못하면 당연히 후손에게 넘겨져 탕감을 치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후손에게 선의 공적을 넘겨줘야 할 내가 반대로 죄를 넘겨주어 유전죄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섭리는 죄에 죄를 더하는 죄로 점철된 역사였음을 우리는 익히 배워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를 청산 짓는 길은 바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무리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자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달고 옆구리에 창을 찌르는 자까지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 용서를 해 달라고 부탁했을까요? 당신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셨기에 하나님의 심정으로 끝까지 십자가에 유명을 달리하시면서도 당신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염려하고 걱정하시는 긍휼을 품고 가셨던 것입니다.
아버님은 왜 칠사부활의 길도 부족하여 당신의 자녀를 수없이 제물로 내어 놓으면서까지 원수를 품고 핍박자를 사랑하시는 길을 가셨을까요?
당신을 배신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믿고 사랑하고 복종하셨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종결하신 당신의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으셨을까요?
원수도 핍박자도 배신자도 끝까지 사랑으로만 대해야 하는 탕감복귀섭리에 의한 것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복귀섭리를 하실 것이고, 사탄은 사탄의 방법으로 복귀섭리를 훼방놓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종결지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복귀되려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복귀섭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원수도 사랑하고 핍박자도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자 축복하며 영생의 상을 위해 내 주만 따라가리...
성가 43장을 불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