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

H.I.S | 20161221162333

제물

 

아담해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복귀하시기 위한 섭리로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오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이러한 복귀섭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제물입니다.

 

이에 본인은 왜 복귀섭리를 위해서 어김없이 제물이 있어야 하는지 나름 고민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타락, 즉 아담해와의 타락은 죽음을 불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천사장의 말에 꼬임을 당해 천사장의 주관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불효요, 배신이요, 거역이요, 심정의 유린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녀로 지으신 그 창조이상은 절대적이기에 인간을 버리실 수 없으셔서 복귀섭리는 아담해와 타락 직후부터 진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불효하고 배신하고 거역하지만, 하나님은 심정이요 사랑이셨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은 인간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잘못한 것이라는 심정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역사가 바로 인류 구원섭리역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버리고 새로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정과 사랑의 하나님이요, 절대 원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모든 책임을 지시고, 수많은 세월을 통해 아담을 위해 천지창조를 하셨듯이 눈물을 흘리시며 죽어버린 아담을 다시 찾아 세워 오신 피어린 6000년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리에서 배웠듯이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만큼은 인간 스스로의 책임분담이 더해지지 않으면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담을 다시 살려내시려는 부활섭리, 구원섭리는 인간이 함께 협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협조, 즉 인간의 책임은 바로 제물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타락의 길을 갔기 때문에 반대로 죽음을 불사하고 사탄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제물을 두고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물론 제물의 역사는 인간의 심령 수준에 따라 실제 제단 위에 올리는 제물로부터 시작해서 육신을 직접 드리는 십자가의 제물, 심정의 제물까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물은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요?

첫째, 제물은 죽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동물을 나 대신 바쳤습니다. 그런데 죽이지 않고 제단에 올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번제로 드렸습니다. 불태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이 되려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절대 순종, 절대 복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이나 생각, 의식을 가져서는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결코 사탄과 인연을 끊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약시대는 심정의 제물 시대이지만, 나를 죽이지 않고, 불태우지 않고는 결코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귀영화와 권력을 버리고 종의 길을 가야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하여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제물은 숫 제물, 순결한 것이어야 합니다. 즉 깨끗하고 순결한 것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순결해야 하고 처음 것, 숫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순결한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의 말씀으로 내가 새로 태어났으니 그 말씀을 배신, 거역하지 않고 나의 지조, 나의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처음 동기와 결심을 잊어버리면 그는 이미 제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처음 마음, 그 순결한 마음으로 살아야 나는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티끌만치라도 흠이 있다면 사탄이 참소한다고 하셨습니다.(뜻길 107)

 

셋째, 제물은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억지 제물은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제물이 될 수 있다는 내가 되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영광스러운 모습이 되어야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고민, 걱정을 알았습니다. 내가 제물 되어서 아버지의 근심, 걱정을 덜어드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쁨으로 제단에 올랐고, 아버지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자기를 죽이지 않고 헌제에 또다시 실패할까 염려하고 걱정했습니다.

아버님께서도 탕감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영광의 한 날을 위하여 제물 된 심정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죽었던 나를 무상으로 살리셨으니 이 목숨은 이제 내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인즉 어떻게 하면 하늘이 기뻐할 수 있을까? 하고 영광되게 죽을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뜻길 109)

 

왕님께서 당신은 이삭과 같은 제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대속물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처럼 광야에 버려진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제물 될 수 있는 자를 찾으시고 부르십니다.

아버님이 제물 되셨으니 당신이 아버님의 뜻을 이어 제물 되셨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연장되었던 섭리를 말씀하시면서...

3대왕권을 통해 뜻을 이루시기 위해...

신준님 시대에는 반드시 뜻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섭리가 연장되어서는 우리 후손이 수천만 년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영광의 십자가, 영광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진정한 성전 용사라면 기쁨으로 제물 될 수 있는 자일 것입니다.

이는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기쁨의 제물을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님, 왕님의 심정의 소리가 광야에서 메아리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