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은 어떻게 주어졌나?
6000년 전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창 2: 17)
많은 분들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이 계명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에게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신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 말씀에는 아담 해와에게 직접 그런 계명을 하시지 않았고 심지어 아담 해와는 선악과가 무엇인지 타락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타락의 길을 갔다고 하셨습니다.(말씀 참조)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은 어떻게 주어진 말씀일까요?
이에 본인은 아버님의 말씀을 근거로 나름 이해를 해보고자 합니다.
본래 선악과란 말 자체가 에덴 동산에서는 없었던 말이고 후일 타락의 과정을 비유와 상징으로 성경에 기록할 때 쓰여진 말입니다. 즉 선악과란 말과 타락이란 말은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가 쓴 말이 아니고 모세 때에 구약 말씀을 기록할 때, 즉 창세기를 기록할 때 비유와 상징으로 만들어 낸 용어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봤을 때 아담 해와에게 주어진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이 아니라 아담 해와의 본심에서 스스로 지키고 가야할 길을 느낌으로 알게 창조된 창조원리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또한 아직 미완성기의 간접주관권내의 아담해와에게 직접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것이 창조원리입니다.(원리강론 창조원리 55-61쪽 참조)
타락한 인간도 일정한 연령, 사춘기에 돌입하면 성(性)에 대해 알게 되고 또한 그 성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알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담해와도 스스로 하지 않아야 할 인간의 도리를 알도록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과 이상을 깨달아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이루어 나가야 함을 스스로 마음 속에서 느껴 알게 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마음의 명령(본심의 작용, 타락한 인간은 양심의 작용)에 의해 주어진 계명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창조하는데 가담하여 인간 스스로를 창조했다는 조건을 세워 하나님의 모든 창조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의 창조성과 만물주관위의 자격을 받는 조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아담 해와는 스스로 본심의 작용에 의한 마음 속에서의 명령에 따라 선악과를 잘 따먹는 길로 가서 스스로 인격을 완성하여 신인애 일체의 경지(직접주관권)에 이르러 창조본연의 가치를 완성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육적인 사랑의 유혹에 이끌린 해와가 뱀으로 비유된 천사장의 유혹에 끌려 선악과를 따먹는, 즉 자신의 창조본연 가치를 이루지 못하는 길을 간 것입니다. 이 때 본심의 명령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 즉 ‘자신의 가치를 지켜 창조본연의 가치를 완성하라’는 마음 속에서의 명령이 있었던 것입니다. 해와는 마음속에 스스로 가지 않아야 할 길인줄 알지만 사랑의 유혹의 힘에 이끌려 본심의 명령을 어기고 타락의 길을 갔다고 봅니다.
해와가 사춘기가 되어 사랑의 문이 열리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알게 되면 실체적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을 이루어야 하는데 누구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지를 깨달아 하나님과 실체적 사랑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해와가 하나님과 실체적 사랑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은 당연히 아담이었습니다. 해와는 스스로 그러한 것을 깨달아 아담에게로 가서 아담과 사랑의 일체를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즉 아담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깨달아 아담의 품에 안김으로써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해와는 아담이 아닌, 하나님의 대신체가 아닌 존재에게 유혹을 당하여 자신의 선악과를 내어주었던 것입니다. 해와의 심령속에는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느끼고 체험을 하지 못했는데 육적으로 천사의 유혹으로 사랑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육적인 사랑의 유혹에 이끌리어 해와는 자신의 선악과를 천사에게 내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것을 아버님은 천사의 혼이 들어간 어떤 육체를 가진 존재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말씀 참조)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대신체인 아담이 아닌 천사의 혼이 함께 하는 어떤 존재에게 선악과를 내어주고 만 것이 실제 일어난 타락행위였다고 봅니다. 이것을 원리강론에는 영적인 타락이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타락이란 바로 창조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저급한 사랑행위로 해와는 하나님의 신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대상이 되어야할 고귀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종으로 지음 받은 천사장 누시엘의 혼이 함께 하는 어떤 육체를 가진 자에게 자신의 선악과를 유린 당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말씀 참조)
아버님은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타락은 하나님의 심정, 즉 하나님의 뜻을 몰라 자신의 창조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라고...
창조본연의 인간은 사랑도 원리도 자연히 알게 되어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말씀 참조)
이러한 말씀으로 유추해볼 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은 아담 해와의 본심을 통하여 느낀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타락은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창조본연의 가치를 모른 채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 행위가 선악과를 따먹고 자손대대로 유전되는 혈통을 저끄러뜨리는 길로 간 것입니다.
영적 타락을 한 해와가 아담을 역주관하여 아담과의 육적 타락을 통해 혈통을 이어감으로 후손까지 창조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모습(타락한 인간)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영적 육적 타락 모두 선악과를 통해 이루졌으며, 영적 타락은 창조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채 이루어진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이고, 육적 타락은 창조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린 자체 그대로를 번식시키는 선악과를 따먹는 사랑행위였던 것입니다. 즉 육적 타락은 창조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린 타락한 심령 기준 그대로를 가지고 후손을 낳아 타락한 혈통을 번식시킴으로써 범죄행위를 번식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결과적 행위이고 타락의 근본은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창조본연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즉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체휼하고 느끼지 못한 채 육적인 사랑의 감정에 끌려가서 하나님과 창조원리를 떠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즉 해와는 본심의 명령을 어기고 육적인 사랑의 유혹에 이끌려 선악과를 유린당하는 길로 가서 자신의 창조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비원리적인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본심을 통하여 주관하시는 것이 창조원리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 역시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의 본심을 통해서 주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즉 아담과 해와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계명은 양심의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는 양심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양심이 하나님보다 먼저다고 강조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창조본연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창조원리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이나 행위는 타락행위인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것도 타락행위이며, 노아의 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워한 함의 행위도 타락행위이며 아브라함이 비둘기 쪼개지 않은 것도 타락행위로 규정했습니다.(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260-285 참조)
또한 모세가 반석을 2타한 것도 타락행위이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고도 모시지 못한 행위도 타락행위입니다. 나아가 마음에 간음한 생각을 품어도 타락임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말이나 마리아의 불륜은 섭리라고 하지 타락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위 4음녀라고 하는 섭리적인 여인들은 모두 불륜의 길을 간 것 같았으나 그들의 행위는 타락이 아니라 복귀섭리역사 과정에 있어서 위대한 섭리사적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타락은 외적인 선악과를 따먹은 것으로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창조원리에 부합하지 않은 모든 행위를 타락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에 반하여 3대왕권을 따르지 않는 것도 타락행위가 됨은 당연한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가치를 지닌 모습으로 살아라는 마음의 명령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은 비단 아담 해와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창조본연의 가치를 지닌 모습으로 살아라’고 하는 계명은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끊임없이 주어지고 있는 영원한 계명인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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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을 따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나서 먹게 하는 분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도적질을 가르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고 인간이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안 가르쳐 주어도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인간들은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 사고입니다. (23, 22)
아담 해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될 때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반면 사탄의 유혹에 끌리는 몸이 있었는데, 몸의 힘이 강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담 해와는 절대적인 선을 지향하는 양심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공포도 컸던 것입니다.
이 공포의 마음이 예고한 것은 그들의 타락행위가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영원히 죄악의 기원이 된다는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려고 할 당시 두려움을 느꼈을 때, 그들은 그 공포에 자극을 받아 절대적인 선을 붙들고 그 악의 마음을 억누를 의(義)의 불변의 중심을 세워야 할 것이었는데, 반대로 악의 본체와 결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서러운 사실은 비단 그들에게만 미쳐지는 것이 아니라 타락의 혈통을 받아 내려온 여러분에게까지도 미쳐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도 양심을 통하여 악의 본체와 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죄악이 이렇게 역사를 통하여 미래에까지 인간의 양심과 대결하여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여 우리는 타락권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비록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일지라도 절대적인 선의 주체를 따라 공포의 마음과 싸우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죄악과 싸우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선집 2, 322-323)
여러분은 이제 옛날 아담 해와가 옆으로 들려오는 말을 분별하지 못하여 타락했음을 깨닫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인격의 완성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아담 해와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에 의하여 천사장의 말을 분별할 수 있었던들 그들은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집 3, 162)
놀라운 것이 뭐냐 하면, 아담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풀게 되면 다 되는 거예요. 살해해 가지고 어떻게 됐어요? 살해할 때 근본적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도 큰 문제고, 아담도 해와도 큰 문제고, 죽인 가인까지 큰 문제예요. 당치 않은 살해사건, 일대에 있어서 가정적인 살해사건, 피를 흘려서 살해사 건이 됐으니, 이 근원이 어디서 나왔느냐? 그런 사고의 동기가 어디서 나왔느냐? 이게 문제예요. 선과 악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문제는 거기까지 들어가는 거예요.
아담 해와까지 들어가고, 아담 해와의 가정에 있어서 그 동기를 찾을 수 있는 아담 해와도 타락했다는 것도 모르는 거예요. 선악과도 모르는 거예요. 몰랐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 아담 해와의 아들 가운데 장자와 차자, 둘 가운데서 장자가 차자를 죽였다는 거예요. 그 미움의 원수의 근원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면 큰 문제예요. (선집 470, 10-11)
성경의 내용을 살펴볼 때, 타락은 도대체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에 대한 자각이 시작되었을 때, 주체인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지 못하고 자기를 주체로 생각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자기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어 자기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 타락의 원인입니다. 모시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입장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존재한다는 입장에 섬으로써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해와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아담을 타락시켰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타락시켰습니다. 누구를 중심으로 타락시켰느냐?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위하여 존재한다는 원칙을 포기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들었던 입장에서 타락했습니다. 그것이 죄악세계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런 악의 자리에서 우리 선조가 그와 같은 결과를 자아냈습니다. 그러한 선조의 후손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에 자기부터 생각합니다. 이것은 타락이 가져다준 결과의 선물입니다. (선집 72, 18)
그러면 타락했는데 왜 몸이 마음을 끌고 다니느냐 이거예요. 타락할 때에 거짓사랑이었지만 거짓사랑의 힘이 양심의 힘보다 강했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거 이론적으로 전부다 분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다 하나님의 사랑을 주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입해야 돼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주입되는 것입니다. (260, 161, 94.5.2)
아담 해와가 차이가 있지요? 사랑의 심정 기준은 아담보다도 해와가 눈이 높아요. 열 살을 넘어 가지고 열 한 살, 열두 살만 넘어서게 된다면 벌써 가슴이 커 온다구요. 그리고 궁둥이도 커 가고 말이에요. 멘스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런 작용은 자연적으로 남자보다 앞서요. 남자는 감을 못 느끼지만 여자는 느낀다 이거예요. 그런 기간에 있어서 누시엘이 사랑의 유혹을 한 거예요. 사랑이 아니고 욕망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긴 것같이 느껴 가지고. 그럴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기르던 아기가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게 되면 전부 다 치근덕거려요.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어머니를 대하는 것도 찡찡거리고 말이에요. 다 그래요. 본연의 세계도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사탄이 이 몸뚱이를 중심삼고 사랑의 씨를 뿌렸다구요. 마음은 사랑을 체험 못 했는데, 올라가는 중간에 있는데 이 몸뚱이가 사랑을 체험했어요. 아담이 갈 것보다 단계가 낮아요. 낮은 자리의 사랑을 했기 때문에 몸뚱이가 아담의 본연의 마음을 끌고 나와 가지고 끝날에는 육체적인 세계가 되는 거예요. 몸뚱이 전체화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그렇잖아요? 프리 섹스가 어디 있어요? 호모가 어디 있어요? 여자 여자끼리 결혼하고, 남자 남자끼리 결혼하는 것은 세상에 동물세계에도 없는 거예요. 이것을 깨끗이 집어치워 가지고 뒤집어 놓아야 돼요. (선집 431, 15)
② 본래는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선한 부모를 통해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연히 안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젖먹는 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나오자마자 눈앞에 젖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자동적으로 알고, 자동적으로 해결하고, 자동적으로 가야 할 입장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는 결과의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참한 사실입니다. (20-306)
사람은 이 우주의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걸작품입니다. 얼마나 걸작품이냐 하면,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도 멋진 걸작품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하나님 자신이 말하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53-51)
하나님을 닮은 아담과 해와가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다면, 그 모습을 통해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인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볼 수 있고, 부르면 곧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준이 된다면 누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겠습니까?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하는 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원리를 통해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있어야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기 전에 있었던 분이요, 내 모든 감각, 나의 일체를 주관하는 분이다 하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알고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인식하고 아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가 추우면 춥다 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것을 느껴 가지고 알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계시다면 신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포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 경지가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58-291), 이상 천성경 46쪽
타락이 뭐냐? 책임분담 수행에 미달된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간 아담 해와는 청소년시대를 지나 사춘기를 맞이해서 자연히 하나되었을 거예요. 자연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히 하나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하나되는 데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아담도 아니요, 해와도 아닙니다. 사랑의 뿌리 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거예요. 꽃이 필 때에 그 꽃 자체에서 피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통해 가지고 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서 인간과 더불어 완전히 상대적 이상을 이루어 사랑을 완성했더라면 모든 것이 공인되었을 것입니다. 즉각 거기서부터 천 국생활이라구요. 하나님도 상대를 갖지 않고는 사랑을 할 수 없어 이렇게 볼 때, 타락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던 이상의 사랑 완성 기준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130, 21)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앞으로 이루어야 할 완성기준을 알지 못했어요. 알지 못하고 타락을 했으니 그 걸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143, 32)
그러므로 아담이 나오기 전에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부 다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건 흙덩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 같은 꼴은 했지만 사람은 안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공인된 창조이상 법도로 사람이라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 아담만, 아담만이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대신 탕감복귀하는 것이 재림 메시아입니다.(선집 65, 185)
천사장은 고모리(子守; 아이 보는 사람)였어요, 천사장은. 알겠어요? 누시엘은 고모리였다구요. 그래서 해와가 울 때 업어 주기도 하고 벌거벗고 무릎 위에 이렇게 안아 주기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해와의 그것과 말이에요, 천사장의 그것이 닿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는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아, 이렇게 하면 아들딸이 생기는구나!’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이런 것은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에요. (선집 353, 26)
사탄이가 누구야? 사탄이가 누구야? 천사장인데 천사장의 이름이 뭐야? 사탄이가 누구야? 「누시엘.」 누시엘이라는 게 누구야? 아담 해와의 형입니다. 먼저 지었어. 그러면 제일 주인이 누구야? 누시엘의 아버지와 아담의 아버지가 하나야. 이 전부를 발표하는 겁니다. (2010년 7월 22일(木), 이스트가든,말씀 딕테이션)
누시엘이 누구야? 아담과 누시엘이 몇 촌이야? 형제요, 삼촌, 사촌이야. 그런 논리는 처음 들었어.(2010년 8월 1일(日),이스트가든, 말씀 딕테이션)
영인체의 주인은 나야. 혼의 주인은 누구냐? 천사장, 누시엘입니다. 누시엘이라는 이름도 지은 것이 나야. (2010년 8월 5일(木), 청해가든,말씀 딕테이션)
아담이 책임을 못하기 때문에 부인이 자기의 시동생을 타고, 시아버지 동생을 타락시켰어. 그런 타락을 구제할 법은 없습니다.
(2012년 2월 27일 (月). 중앙 수련원, 말씀 딕테이션)
여자가 모든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 쫓겨났다. 무슨? 여자가 시동생, 아버지 동생 시동생이고, 형님 동생이 사촌동생인데 여자라는 것이 남자 배떼기를 타버렸다는 거야. 그것은 창조 이상에도 없고 창조의 내용에도 없고 끝에도 없고 주체에도 없고 대상에도 없고 시종이 여일한데도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거야.
그게 무슨 사건이냐? 전통이면 전통의 모델이 없어. 전통의 그 모델 가운데 핏줄이 연결되어야 돼, 피가. 사람이 생겨나려면 창조하기 전에 창조원리가 있어 가지고 원리 가운데 모델 가운데 핏줄이 하나 되어야 돼요. 핏줄이 어떻게, 상하 전후 좌우 거꾸로 되지 않았어. 상은 상이고 하는 하이고 전는 전이고 후는 후고 좌면 좌지 그것이 바꿔치지 않는 동서남북 오대양 육대주가 있었다.
그래, 타락이 뭐야? 이거 바꿔쳤다. 있을 수 없는 놀음이 벌어진 것이 뭐냐 하면 여자가 위에 올라갔어. 여자는 위에 올라갔는데 말이야, 그 여자가 무슨 여자냐 하면 나는 몰라. 뭐, 어떤 간나인지 여자인지 모르지만 그 여자라는 것이 해와라는 여자가, 아담하고 둘이 불었으면 어떻게 되나? 왜? 시아버지의 동생을 가서 타버렸어. 그래 놓고는 불안하니까 없어져야 될 것을 생각하니까 아담까지도 타버렸어. 그래 가지고 전통이 없어졌습니다, 전통. (2012년 3월 25일 (日). 천정궁, 말씀 딕테이션)
아담 부인이 누구 배때기를 올라갔나 하면 하나님의 동생의 시동생, 할머니의 동생의 배때기를 탔고, 그 사촌동생의 자리가 누시엘인데 누시엘이 그 사명당 아담의 부인 자리에 있는 이 부인이 배때기를 타고 올라가서 씨를 심었다는 거야.(2011년 11월 20일(日), 천정궁, 말씀 딕테이션)
참부모의 생애의 기록이 아담 기록될 수 있는 것이 본원죄가 타락함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원전을 수천년 수만년 역사를 통해 가지고 남자 아담이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여자가 누구하고 사랑관계를 만들었느냐 하면 아담하고 사랑관계를 만들어서 틀렸더라도 해와만 치워 버리면 해와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해와의 한 짓이 누구하고 사랑관계를 맺느냐 하면 하나님의 동생의 자리에 있는 누시엘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 동생이었습니다. 아담으로 말하면 아담 부모될 수 있는 사촌 동생의 자리에 세워 가지고 아담 가정을 만드는데 하나님과 천사장 누시엘이 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세상 인간의 지식세계도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2012년 3월 22일(木), 청심평화월드센터, 말씀 딕테이션)
아담 해와가 차이가 있지요? 사랑의 심정 기준은 아담보다도 해와가 눈이 높아요. 열 살을 넘어 가지고 열 한 살, 열두 살만 넘어서게 된다면 벌써 가슴이 커 온다구요. 그리고 궁둥이도 커 가고 말이에요. 멘스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런 작용은 자연적으로 남자보다 앞서요. 남자는 감을 못 느끼지만 여자는 느낀다 이거예요. 그런 기간에 있어서 누시엘이 사랑의 유혹을 한 거예요. 사랑이 아니고 욕망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긴 것같이 느껴 가지고. 그럴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기르던 아기가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게 되면 전부 다 치근덕거려요.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어머니를 대하는 것도 찡찡거리고 말이에요. 다 그래요. 본연의 세계도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도 그렇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