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골 식구님의 잣나무 이야기

무지... | 20180604174733

 어느 산골 식구님의 잣나무 이야기


제가 시골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게 어느 산골 식구님이 상담을 해 왔습니다.

그 분은 산골에서 잣 농사를 짓는 순박한 농사꾼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잣나무를 축복나무로 세운 것을 듣고 잣나무가 실질적인 축복나무란 믿음을 갖고 잣나무 농사를 결심한 분이었습니다.

즉 그 분은 경제적인 면에서도 잣나무가 물질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란 것을 믿고 소유 산에다 잣나무를 심었던 것입니다.

잣은 완전 자연식품이며 한번 심어서 잣이 달리기 시작하면 100년 이상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자산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아주 근심이 가득해서 시골 교회장을 하고 있는 저를 찾아와서 상담을 한 것입니다. 제가 농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 것을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교회장님, 큰일났습니다. 제가 20년 가까이 키워 온 잣나무가 벌겋게 말라죽어갑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같이 가 봅시다.'


가보니 아니나 다르게 과수원 절반 정도 잣나무가 벌겋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벌겋게 말라죽어가는 잣나무 모두는 아랫가지가 다 잘려져 있었습니다. 윗가지는 그대로 있는데 아랫가지는 말끔히 잘라내었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식구님! 잣나무가 말라죽은 이유는 식구님이 창조원리를 위배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식구님은 '저는 창조원리를 위배한 적도 없고 잣농사 짓는데 무슨 창조원리가 적용이 됩니까?'하며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식구님! 저 잣나무 아랫가지들은 왜 잘랐습니까? 아랫가지에는 잣이 안 달린다고 잘랐지요?'

식구님 말씀이 '어떻게 그걸 다 아셔요?'

'말씀하신 대로 잣이 달리지 않는 아랫가지는 필요없이 영양분만 축내니까 잣이 달리는 윗가지만 남기고 아랫가지는 모두 잘라버렸니다.'


제가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원리를 위배한 것입니다. 즉 식구님은 수수작용의 원리를 위배했습니다.'

물론 그 식구님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서 저를 쳐다만 봤습니다.


저는 자세히 설명을 해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구님, 잣나무나 소나무 같은 상록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내내 뿌리가 영양분을 가지로 보내주는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그 가지를 잘라버리면 뿌리에서 보내는 영양분을 받아 다 소화를 하지 못하고 과분한 영양분은 갈 데가 없어 나무의 도관이 막혀버리게 됩니다. 원리적인 용어로 수수작용이 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사람의 혈관이 막히면 죽게 되듯이 과도한 영양분을 소모해줄 가지가 적어진 저 잣나무는 도관과 사관의 수수작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죽어가는 것입니다.


뿌리에서는 영양분이 많이 올라오는데 가지에서 그것을 다 받아 소모를 시켜주지 못하니 과잉된 영양분이 도관에서 막혀 죽어가는 것입니다.

마치 인체의 동맥에서 오는 피를 정맥에서 다 받아 소화를 못하면 혈관이 터지거나 막혀서 죽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잣나무는 그 진행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1년 정도 지난 후에 저렇게 벌겋게 말라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나무는 뿌리도 이미 죽었습니다. 아마도 뿌리가 잎보다 먼저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회생불가능입니다.

아마 저 잣나무도 일년 전에 가지치기를 했을 것입니다.

식구님은 너무나 의외의 말을 들었는지 놀라기도 하고 감탄해 하기도 하면서 제 말이 맞다고 했습니다.


식구님! 비단 잣나무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격리하고 다 짤라내면 결국 심령은 다 메말라 죽습니다.

형제가 싸워서 서로 불화하고 원수가 되면 형제만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심정도 죽고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도 죽게 되시는 것입니다.


식구님은 아랫가지를 잘라내는 것이 창조원리를 위배하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셨지요?

마찬가지로 창조원리를 모르면 자신이 창조원리를 위배하는 생각과 행동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더구나 그 잘못된 생각이 옳은 줄 알고 행동으로 옮겨 저렇게 가지를 잘라내듯이 마음에 안드는 형제를 잘라냈을 때는 모두가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천륜, 즉 창조원리입니다.

아담 해와는 선악과가 뭔지, 타락이 뭔지도 모르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말씀 참조) 

마찬가지로 우리도 원리에 대한 무지로 뜻을 위한다고, 잘 분별을 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잘라내면 모두 다 죽어야 합니다.

나와 형제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잣나무의 뿌리도 죽듯이 부모도 하나님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가 말라 죽은 향나무를 보니 몇십년 전의 일이 생각나고 또 당면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워 두서없이 한마디 적어봤습니다.


* 추신: 우리가 상록수라고 하는 일년내내 푸르름을 간직하는 잣나무, 소나무 등은 한 번에 가지의 3분의 1 이상을 자르면 죽게 됩니다. 그래서 상록수는 가지 치기를 하더라도 매년 조금씩 해주어야 합니다. 절대 한 번에 3분의 1 이상의 가지를 잘라내시면 안 됩니다. 만약 꼭 그렇게 해야 할 경우에는 뿌리도 같이 잘라주시면 됩니다.

분재의 경우는 가지와 뿌리를 동시에 잘라주어서 오래도록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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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해와는 타락을 몰랐다(말씀)


여러분이 총론을 알아야 돼요. 근본이 하늘이라는 것을 모르게 되면 이건 불가능한 거예요. 몽골반점민족 하게 되면 아담가정의 장자라구요. 가인이에요. 가인 족속들이에요. 노아시대에 있어서 셈과 함과 야벳이에요. 장자고 가인권이에요. 가인권이 아무리 많더라도 뿌리가 될 수 없어요. 인간이란 존재는 이것이 아무리 우리 조상이래도 제2차적인 존재예요. 결과적 존재지 원인적 존재가 아니에요. 그 원인이 뭐냐 할 때는 그건 지금까지 사상계의 근본이 되는 것이요, 종교계의 근본이 되는 것이요, 모든 우주 이념의 근본이 된다는 거예요. 그게 누구냐 하면 그것이 인격적 신이라야 된다구요, 인격적 신. 그 신이 무슨 뭐 두루뭉실하고 전지전능해 가지고 이 우주를 뒤치락되치락 해 가지고 일시에 장난거리로 파괴도 시키고 일시에 만들어 놓고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인격적 신, 지․정․의를 겸하고 가치관에 있어서 진․선․미를 갖 출 수 있는 인격적 신이어야 된다. 인격적 신인데 신이 무형으로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무형의 신이 인격신으로 화하기 위하려니 창조한, 하나님의 몸과 같이 자기가 몸과 같이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놓은 아담 해와다. 아담 해와 자체 앞에 담을 수 있는 마음적 존재, 근본이, 신의 근본이 심어지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놀라운 것이 뭐냐 하면, 아담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풀게 되면 다 되는 거예요. 살해해 가지고 어떻게 됐어요? 살해할 때 근본적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도 큰 문제고, 아담도 해와도 큰 문제고, 죽인 가인까지 큰 문제예요. 당치 않은 살해사건, 일대에 있어서 가정적인 살해사건, 피를 흘려서 살해사건이 됐으니, 이 근원이 어디서 나왔느냐? 그런 사고의 동기가 어디서 나왔느냐? 이게 문제예요.


선과 악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문제는 거기까지 들어가는 거예요. 아담 해와까지 들어가고, 아담 해와의 가정에 있어서 그 동기를 찾을 수 있는 아담 해와도 타락했다는 것도 모르는 거예요. 선악과도 모르는 거예요.

몰랐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 아담 해와의 아들 가운데 장자와 차자, 둘 가운데서 장자가 차자를 죽였다는 거예요.


그 미움의 원수의 근원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면 큰 문제예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다면 선한 이상세계라든가 평화세계는 영원히 없어지는 거예요. 그 근원 된 살해, 서로 시기하고 투쟁하고 분쟁해 가지고 사람에 대해서 피를 흘렸어요. 형님이 동생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거예요.


그리고 죽일 때 나이가 몇 살 됐겠나 이거예요. 아이들도 아니에요. 반드시 장성해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모든 사회제도라든가 상하관계, 이 우주의 근본에 부딪혀 가지고 자기 설 자리가 이래야 할 텐데, 그것을 망각하든가 혼돈이 벌어진 동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이 장자로부터 이어져 가지고 차자, 또 그다음에 동생, 열두 형제가 있더라도 장자만 딱 서게 되면 그 동생들은 부모님 앞에 형님이 따라가니, 따라가는 형님을 동생들은, 또 제1, 2, 3, 3수 까지 하게 되면 한 바퀴 도는 거예요. 부모를 중심삼고 셋 하면 한 바퀴 사위기대가 되는 거예요. 도니까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곤란하고 아담 해와도 곤란하고, 그다음에 아담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인도 곤란하고 제일 곤란한 게 누구냐 하면 아벨이다 이거예요. 제일 밑창에서 죽임 당한 사람이 어떻게 부활하느냐 이거예요.


타락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것을 우리가 사실로 인정할 때, 이것을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그거 누가 하겠느냐? 누가 해야 되겠느냐? 아담도 못 할 것이고, 해와도 못 할 것이고, 가인은 물론이고 가인 형님이 못 하니 동생이니 누구도 다 못 한다는 거예요. 아담 인류의 조상도 못 하고 인류의 형제지애의 지파가 편성된 데 있어서 형제들도 못 하니까 누가 해야 되겠느냐?


우주의 근본 된 분이, 신인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를 존속케 한 제일 원인 존재가 있다면 그 원인적 존재가 이 일을 풀 수 있고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만들지 않으면 고장난 것을 고칠 도리가 없다는 것이 결론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이 일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선집 470, 9-11)

* 말씀선집 470권 <하나님의 창조와 위하는 사랑>에서 발췌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래도 세상에서 좀 낫다는 사람들인데, 그 자체가 생각할 때 “내가 선한 편에 서 있다” 할 수 있는 생활을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해요? “악한 편에 서 있다” 하는 생활을 몇 시간을 해요? 이것을 비례적으로 볼 때, 선한 편에 섰다고 하는 시간은 몇 시간도 안 되고 악한 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라구요, 몇 시간인가. 이게 들어갔다 나갔다하는 피스톤 같은데 내가 나쁜 피스톤이에요, 좋은 피스톤이에요? 좋은 피스톤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웃을 게 아닙니다. 공산주의 문제, 세계문제보다 내 문제가 더 큽니다. 내 문제가 더 큰 문제입니다.
오늘 아침에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부 다 “나는 좋고, 세상이 나쁘다. 악한 것은 나하고 상관없고 세상과 관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나와 직결돼 있다는 게 심각한 것입니다. “모든 악의 근거지가 나다. 악의 근거지, 본향 땅이 나로구나”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선집131, 26)



이러한 하나님의 실체 이념을 갖고 하나의 개척자의 입장으로 나타났던 예수님을 몰라보았던 당시의 제사장들 과 서기관들은 타락 직후의 아담 해와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집 5, 223)


자기들이 가담해 가지고, 참부모의 탕감복귀역사에 가담해 가지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이 못 도와줘요. 도와줄 것 같으면,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에게 한마디만 했으면 왜 타락을 했겠어요? 절대 믿고 자기 아들딸을 키우던 하나님이 절대기준에서 말씀했는데,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은 천사장 때문에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안보조치, 보안조치를 못 했다는 거예요. (선집 559, 12)


놀라운 것이 뭐냐 하면, 아담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풀게 되면 다 되는 거예요. 살해해 가지고 어떻게 됐어요? 살해할 때 근본적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도 큰 문제고, 아담도 해와도 큰 문제고, 죽인 가인까지 큰 문제예요. 당치 않은 살해사건, 일대에 있어서 가정적인 살해사건, 피를 흘려서 살해사 건이 됐으니, 이 근원이 어디서 나왔느냐? 그런 사고의 동기가 어디서 나왔느냐? 이게 문제예요. 선과 악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문제는 거기까지 들어가는 거예요.


아담 해와까지 들어가고, 아담 해와의 가정에 있어서 그 동기를 찾을 수 있는 아담 해와도 타락했다는 것도 모르는 거예요. 선악과도 모르는 거예요. 몰랐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 아담 해와의 아들 가운데 장자와 차자, 둘 가운데서 장자가 차자를 죽였다는 거예요. 그 미움의 원수의 근원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면 큰 문제예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다면 선한 이상세계라든가 평화세계는 영원히 없어지는 거예요. 그 근원 된 살해, 서로 시기하고 투쟁하고 분쟁해 가지고 사람에 대해서 피를 흘렸어요. 형님이 동생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거예요. 그리고 죽일 때 나이가 몇 살 됐겠나 이거예요. 아이들도 아니에요. 반드시 장성해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모든 사회제도라든가 상하관계, 이 우주의 근본에 부딪혀 가지고 자기 설 자리가 이래야 할 텐데, 그것을 망각하든가 혼돈이 벌어진 동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구요. (선집 470, 10-11)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 짓던 자리, 그 자리밖에 없고, 아담 해와가 완성해 가지고 비로소 아들딸을 낳아야만 실체적 하나님의 모양이 돼요. 이 아들딸은 사탄의 아들딸이에요. 천사장의 아들딸이 됐지, 하나님의 아들딸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이거 완전히 부정해야 돼요. 핏줄을 더럽혔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시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자하고 내일 모레 결혼하려고 하는데 산적이 와서 훔쳐가 가지고 산에 들어가서 도적질한 물건을 가지고 먹고살고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한 민족이 된 거예요. 그래 가지고 ‘옛날에 신랑 될, 남편될 그 양반한테 가 보자.’ 할 때, 옛날에 결혼하기를 바라던 남자가 그걸 봤을 때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 해도 때려잡아 치울 수 없어요. 천사장도 못 죽이는 존재가 그 피 살이 섞인 아들딸 전체를 죽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어(囹圄)의 몸, 갇힌 것과 같아요. 감옥에 갇혀 있어요.


아담 해와를 죽여 버리고 다시 만들 수 없어요. 자기의 몸으로서 자기의 사랑의 터전에서 우주의 공약을 세운 하나님이 그것을 버리고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거예요. 다시 만들려면 쉽지요. 백 번이라도 더 할 수 있지요. (선집 492,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