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주관(二. 먹거리를 통한 자아주관)

무지... | 20180427142145

 자아주관(二. 먹거리를 통한 자아주관)

 

아버님은 천주주관 바라기 전에 먼저 자아주관하라고 누누히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셨습니다.(마 16: 26, 막 8: 36) 

우리가 자아주관이라고 하면 아주 고차원적인 심령과 영적 세계의 주관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신앙의 급이 높아 심령 세계와 영적 세계를 주관하는 것이 자아주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아주관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선 가장 기본적인 생활 속에서 자아주관의 길을 어떻게 밟아갈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본인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자아주관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二. 먹거리를 통한 자아주관

 

지난 번 기고를 통해 자아주관의 가장 기본은 마음이 몸을 주관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육신을 쓴 인간은 먹거리를 떠나서는 생존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매일 먹거리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몸을 주관하는 가장 가까운 곳에 먹거리가 있습니다.

이 먹거리를 통해 어떻게 마음이 몸을 주관할 수 있을까가 누구나 당면한 과제입니다.

 이에 먹거리를 통한 자아주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식욕을 주관할 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이 육신의 욕구에 따라 살다보면 자아주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바로 대상(몸)이 주체(마음)를 주관하는 역 주관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원하는대로 몸을 움직여 산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란 사실을 누구나 실감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위를 생각해서 그만 먹어야 하는데 입은 더 먹으라고 하고 그(육)에 주관을 받아 과식을 하다보면 위가 쉬이 망가지고 건강까지 나쁘게 되는 사례는 허다합니다.

그럼으로 자기 주관성으로 식욕을 주관하여 식사 시간을 지키고 적당한 양을 먹는 것은 자아주관의 중요한 훈련의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가 7일 금식을 통해 영적인 조건을 세우는 정성을 들이지만 그것이 영적인 조건을 세우는 정성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주관하는 자아주관의 길과 연결시킬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7일을 굶고도 견딜 수 있는 육의 욕망을 주관할 능력이 다 있는데 먹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면 금식 정성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여 자아주관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식욕은 육적 욕망입니다. 육적 욕망을 자신의 영적 의지로 주관하는 것이 바로 자아주관일 것입니다.

 

 

편식은 만물주관 권리를 축소 포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만물주관의 권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편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해주신 다양한 먹거리를 축소하거나 포기하는 행위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 맛에 습관이 되면 그 맛에만 길들여져서 계속적으로 그 음식만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다양한 먹거리를 창조하여 주시어 그를 통해 다양한 맛을 느끼고 그로 인해 다양한 기쁨을 누리도록 축복해 주신 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가 됩니다.

한가지 맛에 길들여져서 다양한 맛을 즐기면서 다양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다양한 창조를 해주신 것을 무의미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맛만 선호하지 말고 하나님이 창조해주신 모든 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만물주관의 권리를 지키고 자아주관을 이루는 길이 될 것입니다.

달고 맵고 쓰고 신 모든 맛을 즐길줄 아는 내가 되는 것이 바로 먹거리를 통해 자아주관을 이루어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몸에 좋다고 한 가지만 먹게 되면 결국 이렇게 창조원리에 위배되는 식생활이 되어 종국에는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창조원리를 위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편식을 하는 자가 그렇지 않은 자보다 훨씬 발병률이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음료수로 커피만 마시는 버릇을 가진 자들이 많습니다.

이는 다양한 음료수를 마실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행위이며 편식의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하는 것을 비난합니다.

채식만 하여도 편식이며 육식만 하여도 편식이 되어 창조원리에 위배된 식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편식으로 자기가 기호하는 것만 먹게 되면 이는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가 되어 진정한 자아주관의 길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무엇이 몸에 좋다고 하면 그것만 집중적으로 섭취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다양한 먹거리를 축복해주신 창조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절대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왕님께서 지렁이까지 먹는 훈련을 하게 하신 것은 실로 우리가 모든 것을 즐겨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내가 되어 먹거리 주관을 통해 주관성을 키워나가 자아주관에 이를 수 있음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맛의 모든 먹거리를 즐겨먹어야 이를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감사하는 내가 되어 자아주관을 개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조원리에 따라 먹어야 한다

 

인간의 육신은 이 땅의 만물로부터 왔습니다. 그럼으로 이 땅의 것을 영양소로 섭취하고 살아가도록 되어있는 것이 창조원리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신토불이(身土不二)에 입각해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신토불이란 모유를 먹는 것을 시작으로 태어난 지역의 토산물을 먹는 것으로 발전 확대되어 결국 지구상의 모든 것을 먹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식물과 동물의 비율은 대략 7대 3입니다. 그러므로 채식과 육식을 7대 3의 비율로 먹을 줄 알아야 하나님이 창조해주신 원리에 입각하여 먹을 것을 주관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지구의 비율은 바다가 70% 정도,육지가 30%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바다에서 생산되는 것과 육지에서 생산되는 것을 7대 3의 비율로 먹어야 원리적인 식생활이라 할 수 있으며 진정한 신토불이에 합당한 식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를 개척하여 인류의 양식을 확보하시려는 해양섭리는 어찌보면 인간이 신토불이 원칙에 따라 하나님이 정해주신 비율에 맞게 먹거리를 섭취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편식없는 식생활을 하면 인간의 육신은 자연히 건강하게 되고, 이는 또한 건강한 영인체가 성장하게 되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육신은 영인체에 있어서 땅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토불이는 건강한 육신을 통해 건강한 영인체를 길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원리적 용어로는 영인체는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를 먹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이 정해주신 창조원리에 따라 먹거리를 섭취함으로 건강한 육체를 가질 수 있고 그를 터전으로 건강한 영인체를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에 먹거리 주관은 자아주관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아버님의 건강법(六. 아버님의 식사법) 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wtW/58

 

 

사랑으로 먹어야 한다

 

타락한 인간은 무지 가운데 빠져 오직 먹거리를 섭취할 때에도 맛과 영양만으로 취합니다. 하지만 창조본연의 인간은 맛과 영양뿐 아니라 영적인 영양소도 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영인체가 잘 성장하여 완성한 생령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축복해 주신 이유는 단순히 육신의 건강만을 위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그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까지 섭취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느끼고 체휼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셔서였을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성장하고 자라는 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을 섭취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단순히 만물을 섭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만물을 우리 인간에게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섭취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즉 물질적 외적 영양소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취하면서도 그 뿌리인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먹을 줄 아는 내가 되어야 영적인 심령세계까지 성장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식사할 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먹는 것도 바로 맛과 영양만이 아닌 만물 속에 함께 하는 하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의 생소를 먹기 위한 자세를 결의하고 다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만물을 섭취할 때 맛과 영양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생소를 같이 섭취할 줄 아는 자는 바로 자아주관의 길을 가고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아버님의 건강법(四. 사랑으로 먹어라)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wtW/56

 

하나님 대신 먹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개성진리체로 현현하신 분체입니다.

그러므로 먹거리를 취할 때에도 하나님 대신 하나님 입장에서 섭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하는 마음은 하나님 당신이 내 입을 통해 드시고 싶으시기 때문이라는 심정으로 모든 만물을 섭취해야 진정한 신인애 일체의 경지에 들어가서 온전한 자아 주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대신 먹거리를 취해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취해서 먹는 모든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드시는 성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만물을 성별해서 먹게 하신 이유도 바로 하늘 것으로 성별했다는 조건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성찬으로 드시게 하려는 뜻에서일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취해서 먹는 모든 만물은 성물로써 하나님 대신 섭취함으로 먹는 행위가 성스러운 성만찬 의식이 되도록 해야 먹거리를 통한 자아주관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내 육신의 욕망에 의해 먹으면 식탐이 되고 하나님 대신 성찬을 먹을 수 있는 내가 되었을 때 모든 먹거리 섭취는 성만찬 의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근본 이유 참조> :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0A2/127

 

결론

 

일상 먹거리를 취하는 곳에 이렇게 엄중한 자아주관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욕을 잘 주관하여 마음이 몸을 다스리는 자아주관을 시작으로 편식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창조원리의 비율에 따라 먹거리를 섭취하는 훈련을 통해 자아주관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거리를 통해 단순히 맛과 영양소만 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생소까지 섭취할 수 있는 내가 될 때 우리가 궁극적으로 결실을 해야 할 생령체까지 완성시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 대신 성만찬을 즐기는 내가 됨으로 신인애 일체이상까지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먹거리를 통한 자아주관의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일상 먹거리를 하나님 뜻맞게 취하는 것도 자아주관의 크나큰 성과가 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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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된 글

 

자아주관(一. 마음이 몸을 주관하는 것이 자아주관의 기본이다):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0A2/160

아버님의 건강법 (四. 사랑으로 먹어라):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wtW/56

아버님의 건강법(六. 아버님의 식사법):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wtW/58

 

 

<말씀선집>

 

음식에는 매운 것, 짠 것, 쓴 것, 이것이 다 양념이 되는데 제가 양념이 되지요.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맛좋은 것만 먹으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입맛에 맞는 것만 먹다가는 병이 나고 맙니다. 여러 가지 섞어서 먹어야지요. (23권 129쪽)

 

물질주관 - 타락인간이 극복해야 할 제일 첫 문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나를 절대적으로 완전 부정했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적인 욕망, 즉 물질적 욕망을 왜 갖고 있느냐?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물질을 잃어버렸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상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다음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주관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세 가지가 문제입니다. 크게는 이 세 가지입 니다. 물질과 사랑과 주관권, 요것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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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눈앞에 물질이 문제가 됩니까? 내가 억천만금을 뜻을 위해 쓰자 할 때, 이의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참소하지 못합니다. ‘그 돈은 내 돈인데….’할 거예요. 그게 자기 돈인가? 이렇게 물질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이 녀석아, 네 돈일 이유가 어디 있어?’  하고 말이에요. 하나님의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타락권 내에 떨어져 가지고 사탄권 내에 있다 해서 그 물건을 자기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건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질문제…. 그다음에는 심정문제입니다. 신앙 길에서 제일의 원수가 뭐냐 하면 돈입니다, 돈. 성경에도 재물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고 했어요. 돈이 문제라구요. 그러면 돈을 어떻게 때려잡느냐? 선생님도 돈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뜻을 위해서는 자기 돈을 몽땅 털어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아끼는 것을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써야 합니다. 아끼는 것보다도, 남겨 두는 것보다도 보다 가치 있는 것에 써야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물질에 인연된 것에 끌려가고 제약을 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있게 되면 자기가 먼저 먹겠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에요. 옛날에 군대에 가게 되면 먹을 것이 상당히 그리울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감옥에 가게 되면 참 눈물이 납니다.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모릅니다. 전체 앞에 있어서의 인격의 기준을 무엇으로 평가하느냐 하면 배고플 때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보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처지에 있을 때, ‘아이고, 배고파.’ 하며 배고픈 표시를 내며 경거망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그 나라의 주권자고 그 나라의 정신적인 지도자라도 그는 지도자로서 빵점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인격을 갖추고 있지 않은 무식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먹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제하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형무소면 형무소 감방 안에서도 감방장이 되는 거라구요. (46권 82-83쪽)

 

우리 통일교회는 세상 어디에 가더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먼저 잡수시오!’ 하면서 첫 번 것을 내놓은 다음에 식사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생활을 해 왔습니다. 어디에 가서 앉더라도 성별해서 앉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선생님이 없었으면 하나님은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236권 338쪽, 1992.11.09)

  

여기 옷이 있으면 자기 옷이라고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옷이요. 부모님의 옷이요. 우리 형제들의 옷인데 내가 대표적으로 입었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랑할 수 없습니다.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 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준 밥이요. 부모님이 준 밥이요. 형제들이 준밥이라는 것입니다. 밥을 잘 먹고는 ! 기분좋다.’ 하는 내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잘 먹고는 미안해서 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는 이 시간에 굶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얼마나 고생하겠나? 내가 대표적으로 먹었으니 대표적으로 일할 수 있는 책임을 더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생가가 하기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불평하지 않고 고맙게 생각하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10, 20, 일생을 따라오더라도 싫어하지 않는 건 선생님이 그런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는 일은 실패할 것 같지만 반드시 성공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40년간 역사에 없는 일을 많이 해 나온 것입니다.

(161권 231쪽,1987.02.15)

  

우리가 먹고 입고 하는 것들을 중심삼고 성별하기 위해 성염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수확한 것을 성염으로 성별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디 있고, 자유로운 판도는 어디에 있으며, 이 백성이 서로 서로가 딛고 사는 대지를 찾아갈 적마다 성별하지 않고 살수 있는 땅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이 성별의식을 할 때 성염을 쓸 적마다 이놈 사탄하며 이를 갈아야 됩니다.

(48권 252쪽, 1971.09.19)

 

199777777초에 천지부모천주안식권선포를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성인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주일만 성찬을 먹었지만 그 선포 이후에는 하루 세끼 삼식, 모두 성찬을 먹고사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모든 만물을 사랑으로써 대하면서 먹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이런 성찬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성찬을 먹고 삶으로 말미암아 병도 안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도 병도 안 난다는 것입니다.

(285권 300쪽,1997.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