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 성약의 하나님
타락한 인간은 심령의 수준이 종의 종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섭리를 하셨습니다.
즉 크게 구약, 신약, 성약으로 대별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에게 말씀을 주시기 위한 복귀기대섭리시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담 가정으로부터 아브라함 가정까지입니다.
이는 타락으로 인하여 만물보다 더 낮은 입장으로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부득이 하나님은 제물을 중보로 섭리를 해 오셨습니다. 원래는 아담 가정부터 아브라함 가정까지였으나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진정한 구약시대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원리를 통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하나님 뜻맞게 드림으로 하늘 앞에 복귀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를 통한 홍수 심판, 아브라함의 3제물을 통한 섭리, 모두 말씀 없이 제물을 통해 섭리를 진행해 오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터전 위에 비로소 말씀이 주어진 섭리가 바로 모세를 중심한 구약섭리시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부터 구약 율법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타락으로 잃어버린 말씀을 찾아오는데, 이렇게 아담 가정으로부터 모세까지 2400여년간 걸렸던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
일반적으로 구약시대는 아담 가정으로부터 예수님 때까지이지만 진정한 구약시대는 바로 모세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지만 모세 역시 말씀을 받기까지 80년 이상 걸려서 비로소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 즉 십계명을 받게 됩니다.(출 20:3-7, 신 5:6-22)) 이로써 언약의 시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받게 되어 구약시대가 출발한 것입니다. 바로 십계명을 두 석판에 받은 것입니다. 구약 율법 시대는 이렇게 해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타락 인간에 주어져서 그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모세가 반석 2타로 섭리적 중심인물로서 자격이 상실되었을 때 말씀(석판)을 중심하고 하나가 된 여호수아를 통해 그 섭리를 이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구약시대의 최초 말씀인 십계명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란 말씀으로 시작이 됩니다. 지켜야 할 계명 중 첫째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라'였습니다. 이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사랑으로 맺어진 절대사랑의 관계임을 계명을 통하여 나타내신 것입니다.
나 여호와는 질투의 하나님인즉,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강조하셨습니다.(신 5:9)
왜 질투란 표현을 쓰셨을까요?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절대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신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신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역사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절대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진노하시고, 심판까지 서슴지 않으시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절대사랑의 하나님이 심판을 단행하실 수가 있을까?
저 역시 이 문제로 많은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재림주님 말씀을 훈독하면서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천사를 통해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종의 종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복귀기대섭리시대를 통하여 하늘 편 종으로 복귀된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종의 입장인 타락한 인간을 대해 하나님이 직접 섭리를 주도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 편 종(천사)을 세워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구약의 하나님은 율법의 하나님으로 진노하시고 심판도 하셨지만, 결코 하나님의 참모습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하늘 편 천사였던 것입니다.
신약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오신 인자이심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믿음도 중요하고 소망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최고라고 늘 강조하셨습니다.(고전 13:13)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제일 큰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둘째 계명인데, 첫째 계명이랑 똑같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마 22장:37-39절)
그것도 부족하여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죄지은 자를 일흔 번을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18:21-22) 오직 사랑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결론을 내리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사랑을 몸소 행하셨습니다. 평생 사랑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운명을 하실 때까지도 당신을 찌르며 조롱하는 자를 안타까워하며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속물이 되어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체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사랑을 보여준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빌립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하셨던 것입니다. (요 14: 8-12)
신약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당신이 절대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충분히 보여주셨습니다.
성약의 하나님
성약의 하나님은 재림주님을 통해 현현하셨습니다.
재림주님 역시 예수님처럼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에 심정을 더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처럼 당신을 핍박하고 이단으로 몰아세워 생의 십자가에 달았지만, 당신은 인류를 사랑하셔야 했기 때문에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극복하고 실체로 부활하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셨습니다. (칠사부활) 예수님은 부모의 사랑까지는 못 보여주셨지만 재림주님은 부모의 심정을 담아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시고 종의 몸을 쓰시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셨습니다. 사대사랑을 통한 사대심정권의 하나님이심을 깨우쳐주시며 축복을 통해 사위기대의 가정을 이루어 신인애 일체이상을 이루어 하나님을 모시고 사랑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당신이 평생 사생결단, 전력투구하시어 사랑을 쏟아부으셨지만 그래도 못다한 사랑은 대신자, 상속자를 세워 그 사랑을 이어가셨습니다. 삼대왕권을 통해 대를 이어 아버지로서, 부모의 심정으로 우리를 영원 세세토록 사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아무리 불신하고 당신을 십자가에 달아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으시며, 그 사랑을 영원히 이어가실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선포문 참조)
왜냐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본체실체이셨기 때문입니다. 밤의 하나님, 즉 하나님의 근본인 심정으로부터 오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본인이 기고한 밤의 하나님과 낮의 하나님 참조 요망)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유일 불변 무한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하시고, 그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을 본받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본인이 기고한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 참조)
그리고 재림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닮아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을 통해 신인애 일체 이상을 이루어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상속받아 그 혈통과 전통을 이어받은 아들딸로서 영생하는 생령체가 되기를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이렇게 성약의 하나님은 재림주님을 통해 당신이 심정이 근원인 아버지로서 절대 유일 불변 무한 영원한 사랑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결론
구약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 성약의 하나님이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섭리시대적 상황에 따라 구약시대에는 천사를 통해 역사하셨고, 신약시대에는 당신의 참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 하셨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구약의 하나님도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신 절대사랑의 하나님이요, 신약의 하나님도 오직 절대사랑의 하나님이요, 성약의 하나님도 역시 절대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근본이 심정이기 때문에 절대사랑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부모의 심정으로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참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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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경>
구약시대 하나님은 천사였다.(109쪽)
구약시대에는 원래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셔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써 인간을 대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섭리가 완성되지 못했으므로 슬픔을 품고 제2차로 천사들을 통해 인간들을 대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이 구약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시켜 역사하실 수 있는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천사 역시 신적 존재이므로 예수가 오기까지의 방편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처럼 나타나 중보의 사명을 한 것입니다.(111-112쪽)
하나님이 출애급 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주신 것인데, 그들이 말씀대로 행치 않을 때 무섭게 초달하고 형벌을 가하는 두려운 신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보면 질투가 강한 신으로 나 이외 다른 신을 섬기면 무서운 질투를 하시는 하나님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7족을 아낌없이 진멸하라 지시한 잔인한 하나님이었고, 율법과 법도를 어긴 이스라엘 백성을 목전에서 쓸어 버린 무자비한 하나님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사랑의 하나님에게 이렇게 질투와 복수와 공포심과 가나안 7족을 무자비하게 진멸시키는 성품이 있을 수 있어요? 구약시대는 천사가 중보가 되어 하나님 노릇을 대신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렇게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는 천사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이 아닌 종에게 아버지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중략)
여호와는 천사입니다. 구약은 종의 시대였으므로 하나님의 바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114-115쪽)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으므로 하나님의 바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사랑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므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복수하던 구약시대의 율법은 사라지고, 예수님에 의해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의 허물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시는 사랑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찌 자식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하나님은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난 존재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거하시니 나를 보았은즉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하나님을 보여 달라 하느냐?" 하고 하나님과 일체를 주장한 것입니다.(119쪽)
<말씀 선집>
하나님이 창조하게 될 때 어떤 자리에서 창조했느냐?
절대신앙 위에서 창조했다 그거예요.
하나님이 말씀을 하면 말씀한 대로 되는 것입니다.
절대신앙 위에서 창조한 물건은 절대사랑의 대상을 위해 지은 것입니다.
만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될 때 ‘ 너를 짓는 것은 내 사랑의 상대에 하나의 세포에 분자가 되지만 동형적인 가치, 동질적인 가치의 내용, 절대적인 그 기준을 중심삼고 너를 사랑한다.’는 기준에서 짓는다는 거예요.
같이 사랑 받았으니, 사랑을 크게 받으나 작게 받으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는 인간도 머리카락이 있고, 오관이 있고, 별의별 세포가 많지만 나를 사랑한다면 전체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을 위해 가지고 절대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뭐냐 하면, 절대복종입니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우주는 창조가 나올 수 있는 힘이 있으니 힘 자체를 완전히 투입한 것입니다. (선집 279권 77-80쪽)
절대라고 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로 통하는 길입니다. 둘이 아니예요.
어떻게 그러한 외길을 연결할 수 있느냐?
위하는 개념을 가지고 연결하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하고….
하나님도 그런 개념을 가지고 창조한 것입니다.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다른 개념은 전혀 없습니다.
제로, 제로, 제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은 가정, 가정은 종족, 종족은 민족, 민족은 국가, 국가 는 세계,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까지도 참사랑을 위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참사랑의 상대 앞에서는 절대복종한다는 것입니다.
거기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세계예요.
그러한 개념이 없으면 횡적인 통일세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독교 세계에는 그런 개념이 없습니다. (선집 281권 220쪽)
하나님이 절대신앙 위에서 절대사랑, 절대복종 위에서 이 만물을 창조했으니 인간 아담해와도 절대신앙으로 하나 만들고 절대사랑, 절대복종하는 상대적 위치에 서지 않으면 일체가 될 수 있는 길이 영원히 없다는 것입니다.(선집 285권 74쪽)
절대신앙, 그 다음에 뭐라구요?「절대사랑입니다.」절대사랑, 뭐라구요?「절대복종입니다.」하나님이 그런 자리에서 천지를 창조했어요. 하나님 자신이 창조를 할 때 절대신앙이에요. 내가 말하면 말하는 대로 된다는 거예요. 그 절대신앙을 가지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절대 사랑의 상대를 찾는 거예요.(선집 292권 53쪽)
자르딘 제1선언은 ‘ 하나님이 인간과 만물을 창조할 때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으로 창조했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을 돌려 드려야 된다.’ 입니다.」상대 자리에 서야 돼요.
그래야 하나돼 가지고 상속받는 거예요. (316권 54쪽)
우리는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하는 거예요. 영원히 그래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에 대해서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하는 거예요.
절대복종이라는 것은 자기의 의식개념까지 없는 거예요.(선집 319권 13쪽)
그래서 절대 뭐라구요?「신앙!」그 다음에는?「사랑!」그 다음에는? 「복종!」그게 뭐예요? 그 기준에 서야 돼요.
하나님이 창조할 때에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한 거예요.
하나님 자신도 자기의 칸셉 (concept;관념)이 없어요. 다 투입한 거예요. (선집 345권 27쪽)
『……하나님이 창조할 때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 위에서 이 상적인 절대사랑의 통일세계를 바라고 창조했습니다. (선집 348권 89쪽)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할 때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한 거예요. 자기가 없어요.
이상적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이 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있는 것을 전부 다 투입하고 더 투입하고 투입해야 돼요. 하늘이 무한히 했다는 거예요. (선집 350권 14쪽)
하나님도 참사랑권을 위해서 지금까지 절대복종의 길을 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능한 하나님의 자리에서도 수치스러운 것을 망각하고, 절대 승리의 권한의 한 날, 그때의 영광을 위해서 다 소모 투입해 가지고 잊어버리고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선집 367권 130쪽)
<세계경전>
심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창조는 거기서 우러난 것입니다. 모든 이상도 거기서 우러난 것입니다. 모든 것의 완전한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완전과 완성은 거기서 우러나는 겁니다. 그것을 떠나서는 완전과 완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82.292, 1976.02.01)
하나님은 심정의 주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한히 기쁜 감정을 갖고 계시며 무한히 슬픈 감정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라고 해서 기쁘고 좋은 감정만 갖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슬프다면 인간들이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은 슬픔의 심정을 갖고 계시는 분입니다. (11.89, 1961.02.12)
하나님이 왜 생겨났느냐 할 때 사랑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필요한 사랑이 됐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까지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논리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나 사는 하나님은 사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태어난 만물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의 세계에서는 자기를 위해서 산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303.287, 1999.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