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참아벨의 길을 갔어야 했다
(지금껏 우리는 요셉은 섭리적 책임을 잘 한 대표적인 중심인물로 평가를 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외적인 면에서는 섭리적 책임을 훌륭히 수행해낸 자일지라도 내적인 심정적인 면에서는 섭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아버님 말씀을 심층 분석하여 요셉이 내적인 섭리적 책임을 다하지 못 한 점을 밝혀내어 내외 모두 섭리적 책임을 다하는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복귀 섭리역사 속에 요셉만큼 억울한 탕감복귀의 길을 간 섭리적 중심인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부모로부터 사랑받는다고 해서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죽은 자로 낙인 찍힌 채 애급으로 팔려가야 했습니다. (창 37장 참조)
애급에서도 보디발 가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경지에까지 가야 했습니다. (창 39장 참조)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했기 때문에 옥중에서 구원의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창 40장-41장 참조)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중심인물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심정을 갖고 살게 되면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요셉이 억울한 역경을 이겨내고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고 난 이후였습니다.
먼저 자신을 팔아넘기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형들이 기근이 들자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급을 찾았습니다. 이때 요셉은 외적으로는 형들을 용서했지만 내적으로 심정적으로 복수를 합니다. (창 42장-44장 참조)
하나님으로 세움 받은 중심인물, 아벨은 절대로 가인을 미워하거나 복수를 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요셉은 과거 자신을 팔아넘기고 동물에 찢겨 죽었다고 아버지 야곱에게 거짓 보고를 한 형들에게 외적으로는 용서를 내적으로는 복수를 합니다. (창 43장-44장 참조)
다만 요셉은 그 복수를 끝까지 이어가지 않고 아버지 야곱과 동생 베냐민을 생각하며 용서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형들에 대해서 심정적으로 완전한 용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형들이 애급에 와서 사는 것은 보장해줬지만 애급나라의 대신이 되는 길은 열어 주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요셉은 자기 당대만 총리대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뿐, 요셉의 사망 이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에서 더 이상 정치적 권력을 갖지 못하게 되어 왕권 복귀는 어렵게 됩니다.
또한 혈통적으로도 요셉은 이방 여인, 즉 애급 여인과 결혼함으로 인해서 섭리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유다의 후손을 통해 예수님이 오시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은 내적인 화해의 승리자가 되지 못했고, 하늘의 혈통, 즉 아브라함이 축복 받은 혈통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혈통의 계대를 이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필자 견해)
물론 이러한 것은 아브라함이 비둘기 쪼개지 못하여 400년간 고역을 치러야 하는 탕감 조건에 의해 그렇게 된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요셉이 가인적인 형님들을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 앙금이 심정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이상 발전된 섭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즉 요셉이 형들을 그냥 굶주림에서 해방하여 주었지 형들로 하여금 자기와 같이 정치권력을 갖도록까지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요셉이 큰아버지 에서의 족속들도 기근을 피해 애급으로 오게 하여 잘 모셔야 했는데, 그것을 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선집 435권 321쪽, 508권 285쪽 참조)
이는 자기 친형제들조차 심정적으로 내적으로 완전히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큰아버지의 족속까지는 생각조차 못 했겠지요.
에서와 야곱은 복귀섭리 역사상 처음으로 가인 아벨 화목을 이룬 형제였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이룩한 형제간의 화목, 승리한 섭리적 조건을 요셉은 더욱 발전시켜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에 큰 기근이 들어 아버지 야곱의 일족 72인을 애급으로 오게 했듯이 에서의 일족 72명?도 함께 애급으로 모셔와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애급 나라 안에서 요셉을 중심하고 종족적인 가인 아벨 복귀섭리가 완결되어 복귀된 이스라엘 민족이 되고, 그 이스라엘 민족이 왕권을 복귀해 애급 나라 전체를 하늘 왕국으로 만드는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선집 445권 220쪽 참조)
이렇게 요셉은 형들에 대한 완전한 용서의 길을 가지 못해서 형들이 권력을 갖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야곱의 직계인 야곱의 족속만 애급에 데리고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큰 섭리를 진행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요셉은 자신 당대에만 총리대신의 권력을 누리다 죽었고, 요셉이 죽은 후에는 야곱의 후손은 애급의 종으로 신분이 하락하여 애급에서의 왕권 복귀의 길이 멀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로 인해 모세를 통해 출애급을 통한 가나안 복귀로정이 생기게 되었고, 나아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섭리적 조건까지 남기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선집 435권 321쪽)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중심인물은 참아벨의 길을 가야 합니다.
참아벨은 자신이 받은 축복을 가인에게 나누고 축복하여 그로 인하여 부모의 한이 완전히 해원되고 하나님까지 해방시켜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기고한 아벨의 길 참조) 훈독왕국 | 요셉은 참아벨의 길을 갔어야 했다 - Daum 카페
하지만 요셉은 자기가 총리대신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이 이뤄진 후 그 축복을 가인권(형들과 큰아버지 족속)에게까지 확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늘 앞에 온전히 세우지 못하고 나아가 애급을 하늘 앞에 세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말씀에 의하면 요셉이 에서 족속까지 애급으로 오게 하고 형들도 권력을 갖게 하여 애급의 왕권까지 복귀하는 참아벨의 길을 갔더라면, 모세를 세워 출애급을 통한 가나안 복귀노정이 필요 없이 애급에서 복귀섭리를 완결할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선집 15권 81-82쪽, 선집 466권 295쪽))
만약 요셉이 그러한 책임을 다하였다면 모세는 애급의 왕이 되어 출애급을 하더라도 애급 군대를 데리고 하늘 왕국인 애급 나라를 더 확장하기 위한 섭리가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혈통적으로도 애급인들과 교차 결혼을 하여 애급 전체가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되게 했어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선집 475권 104-105쪽)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중심인물인 아벨은 아무리 핍박받고 억울한 길을 간다하더라도 절대 가인 편을 미워하거나 복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벨을 찾아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은, 그 아벨을 통하여 가인을 복귀하고 부모를 복귀하고 하나님까지 해방시켜드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요셉 역시 자신이 총리대신으로 축복받은 것을 통해 가인 편(형들과 에서의 족속)을 살려주고 부모(야곱)를 살려드리고 하나님의 뜻(왕권 복귀)까지 이루어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는 요셉은 섭리적 책임을 다한 용서의 대표자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외적인 용서와 화목의 길은 갔지만 내적인 심정적 용서와 화목의 길은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훈
나를 축복하신 것은 나를 통하여 가인 편을 구해주고, 부모를 구해주고, 하나님까지 해방해드릴 수 있는 길을 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참아벨이 되려면 절대 가인 편 사람을 미워하거나 복수해서는 안되며, 내가 받은 축복을 가인 편에게 나누고 아낌없이 나누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더라도 형식적(외적)으로나 조건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내적이고 심정적인 차원에서 용서를 하여 진정한 화목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섭리적 중심인물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터 위에서 자신이 더욱더 하나님이 발전적인 섭리를 하실 수 있도록 기대를 쌓아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총리대신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 에서의 가정도 모셔오고, 나아가 애급 민족까지 하나님의 섭리 앞에 세우는 그런 참된 아벨의 길을 갔어야 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영적인 애급의 영적인 기근까지 해결하는 영육 아우른 총리대신의 사명을 다해야 했던 것입니다.(선집 15권 81-82쪽)
이렇게 섭리를 받드는데 있어서 외적인 형식적 조건적인 용서와 화해로는 근본적 복귀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
원래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고역 400년 동안에 한 사람씩 하늘 편으로 넘겼어야 했습니다. 요셉이 30세에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요셉 편이 많았으면 고역살이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선집 12권 81쪽)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소원은 그가 총리대신이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 기간에 요셉에게 애급 백성을 영원히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는 국민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책임 관념을 갖도록 섭리하셨지만, 요셉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요셉은 기근으로 굶고 있던 가족은 구제할 수 있었지만, 섭리상 하나님 자체에 있어서 영적 기근을 해결할 내용을 생각하지 못했다.
요셉이 자기의 가족은 인도하였으나 그 민족이 400년의 역사를 통하여 고역의 길을 갔다고 하는 것은, 요셉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자기 씨족의 승리의 환경을 만들고, 그것을 터로 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민족을 가인 입장에 두고 아벨 입장에 있는 야곱에게 순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면, 거기서부터 이스라엘의 국가적 승리의 기준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런데 요셉이 그 내용을 모르고 그 기준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4 대(代)를 지나 모세를 부르시고 재차 하나님의 소원에 부응한 책임을 지게 하여 바로 왕 밑에 보냈던 것이다. (선집 15권 81-82쪽)
요셉이 누구냐 하면, 누구의 아들인가?「야곱의 아들입니다.」어머니가 누구인가?「라헬입니다.」라헬이던가?「예.」동생이 누구인가?「베냐민입니다.」베냐민, 이 두 형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요셉이 베냐민을 놓고 열 형제들하고 싸우는 거예요.
동생을 데려오라고 말이에요.
베냐민만 하지 않고 에서의 일파도 데려오라고 했으면 애급에서 통일천하를 이루는 거예요.
가나안 복귀가 없어지는 거라구요. 알겠나? 그것을 못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7족이 31왕, 왕이 서른하나예요. 31왕과 싸워 가지고 이겨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30세에 31왕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할 텐데, 잘못한 모든 것이 예수가 길을 가는 데 가시덤불이 되고 십자가의 길로 남아져서 죽지 않을 수 없는 길까지 간 거예요. 알겠어요? (선집 435권 321쪽)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귀해 가지고 아랍권을 소화 못 했어요. 그것이 에서의 족속이에요, 에서의 족속, 알겠어요?
에서의 족속인데, 이스라엘 민족의 열두 형제가 애급에 내려갈 때, 7년 흉년 노정에 먹을 것이 없어서 곡식을 사러 갈 때 나중에는 요셉이 베냐민까지 데려오라고 해 가지고 내려간 것이 72명인데, 그때에 동생 지파만 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야곱 지파만 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에서 지파도 데리고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랬으면 가나안 복귀가 필요 없어요!
애급에서 그냥 그대로 모세를 중심삼아 가지고 왕이 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 만에 출애급 할 수 있는 그 시대권에 있어서 에서 가정과 야곱 가정이 애급에 들어가 수난을 당했으면 이스라엘 나라를 그 나라에서 복권할 수 있어요.
민족 결합과 더불어, 이스라엘 나라의 모세와 요셉, 베냐민 지파까지 전부 데려왔으니 에서 지파까지 와 가지고 애급 나라의 모심을 받았으면 왕권 수립은 즉각 할 수 있는 거예요.
야곱의 일족이 에서 가정을 데리고 못 내려갔기 때문에 가나안 복귀, 가나안 7족이 남아 가지고 31개 왕권을 중심삼고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복권이 안 돼요. 원수와 또 싸웠다는 거예요.
그 싸움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세가 죽었어요.
느보산에서 이스라엘 땅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기도했어요? ‘ 하나님이여, 여기까지 40년 고역했으니 제발 복지에 들어가 가지고 이스라엘 선민권의 지도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래, 여호수와 갈렙을 세운 거예요. (선집 445권 220쪽)
어머니 될 수 있는 사람, 지금까지 여자를 찾아 세우기 위해 가인과 아벨, 라헬과 레아 둘이 싸워서 북조 10지파와 남조 2지파가 됐는데, 요셉을 중심삼고 애급에 가 가지고 야곱가정을 부를 때에 에서의 가정은 안 부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셉이 총리대신이 돼 가지고 7년 대환란을 겪으면서 야곱가정을 데려갈 때 에서가정을 같이 데려갔다면, 가나안 복귀는 필요 없이 애급 땅에서부터 왕권을 수립할 수 있는 제일 가까운 길이 됐을 텐데 그걸 놓쳐 버렸다는 거예요. (466권 295쪽)
그래서 요셉이 팔려 가고 그러잖아요? 요셉 때부터 들어와서 (모세가) 애급의 왕 될 것인데 사람 죽이고 이스라엘 선민을 특별히 생각한 거예요. 시온주의를 찾아갔다구요. 그러다가 망한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모세가 왕이 되었더라면 말이에요, 이스라엘 사람하고 애급 사람이 결혼하면 다 끝나는 거 아니에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몽골반점을 중심삼고 세계 절반 이상이 우리 편 됐어요.
그다음에 국경이 없어져요. 국경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이미 다 없어진 거예요. 선생님이 다 없애 버렸어요.
국경이 없어지면 하나의 통일된 대가족권 내에 국경이 소화되는 거예요. 일족 아니에요? (선집 475권 104-105쪽)
야곱의 열두 아들, 12년을 중심삼고, 삼 사 십이(3*4=12), 12년 동안, 살기 위한 21년을 중심삼고 40세가 돼서 환고향해 가지고 부모와 형제들이 갈라진 것을 다시 묶어 가지고 형제지 인연의 길을 가는 데, 2년 후에 흉년이 들어 가지고 자기 열두 형제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머니 아버지를 데려가고 다 했지만, 야곱 일족은 데려갔지만 에서의 일족을 못 데리고 갔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복귀 40년 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아무리 요단강을 건너가서 예루살렘에 들어가려고 해도 못 들어갔어요.
요셉 권을 중심삼고 싸움판이 끝나지 않고 하나 안 됐기 때문에, 세상의 불교 종교권들이 하나 못 되고, 기독교에서 천주교 신교가 하나 못 된 거예요. (선집 508권 285쪽)
아, 열두 지파가 칠십이 장로를 중심삼고 애급에 내려갔던 누구? 아벨(요셉 ?)이 칠십이 인을 데리고 이십 일을 넘는 항렬에 대해 곡식 꾸러 갔다가 들켜가지고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서 야단이 벌어지는 거야.
곡식 빌리러 온 자기 형들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의 창고지기 이상의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그 나라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무엇이든지 전부 다 맡기려고 해.
그런데 왜 아벨 족속 열두, 칠십이 문도를 데리고 갔나? 가인 족속 칠십이는 왜 안 데리고 갔나?
내가 있으면 가인 족속 앞세우고 가인 족속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하고 아벨 족속은 형님 보이고는 동생 만나고 나서는 형님이 왜 안 데리고 왔나? 못 데리고 왔으니까 아버지와 같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거 왜 몰랐나?
내 동생이 배고프면 형님이 있는 동생들까지 쌀을 같이 형님이 들어가면 그 아버지는 이스라엘 출애굽이라는 말이 필요 없고 거기서 왕 해 먹습니다.
그걸 안 문 총재가 아벨의 왕권 세울 수 있는 것을 당장에 알았지만 가인의 왕권을 세워가지고 타락이 없어지는 그 왕권을 책임져야 할 그 형님을 내 형제와 합해가지고 동생 따라 형님 따라 둘이….
그것이 하나 안 되므로 하나 안 되면 쫓아버리고 하나님의 가정과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할 텐데 따라 이리저리 나는 아벨의 형님의 자리를 중심삼고 형님의 가족과 하늘나라와 땅과 지옥과 갈라진 두 거리를 하나 만들어 가기 위해 나는 잃었던 하나님을 잃었던 부모를 가인 중심하구….
가인 중심하고 쫓겨난 것을 자기가 다 가로막고 내 뒤를…. 앞은 내가 앞섰으니 뒤는 바라보지 말고 전부 다 가인들은 어머니 아버지 뒤를 따라갑니다. (2010년 7월 11일(日),천정궁. * 이 말씀은 아침 훈독회에서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