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길

무지... | 20161222202541

   아벨의 길

 
아담 해와는 타락으로 죽었습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죽은 죽음은 비단 아담 해와의 죽음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 되신 하나님도 죽여버린 것입니다. 자식의 죽음은 부모에게는 더 큰 심정적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살리려고 하는 부모의 심정은 당연한 것이고, 당신 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되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살려내지 못 하면 당신의 심정은 구원을 받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섭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섭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해야 되는 섭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죽어버린 자식을 살려내는 것 뿐만 아니라 당신의 심정도 해방 석방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 타락에 대해 95%의 책임을 지시고 구원섭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원리는 절대적이어서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이 타락한 아담 해와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조건이란, 하나님은 부모의 입장이시기 때문에 만약  타락하지 않은 또 다른 형제가 있어서 아담 해와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면 그것을 조건으로 아담 해와를 용서하고 살려주실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심정으로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입장의 아담의 형제를 찾아세우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가정에서의 복귀섭리는 아벨을 세워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아벨은 비록 아담의 아들이지만 섭리적으로 보면 아담의 또 다른 형제 입장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이는 바로 타락한 아담 해와를 용서하고 살려주기 위한 섭리로, 아담의 또 다른 타락하지 않은 형제 입장에 아벨을 세우고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벨은 먼저 타락권을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을 이긴 입장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아벨이 먼저 타락권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즉 타락하지 않은 또 다른 아담의 형제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벨은 가인을 살려주기 위해 자신을 하늘 편에 세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늘 편에 세운 것은 자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인을 용서하고 살려주시기 위한 간절한 심정 때문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는 아버지, 아담을 구원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아담 해와를 용서하고 살려주고 싶으신 그 하나님의 심정을 품고,
타락하지 않은 또다른 아담의 형제 입장에서 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하나님 대신 가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심정을 지니고 끊임없이 가인을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랑하지 못하는 가인을 하나님 대신 끊임없이 사랑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가정의 아벨은 그런 길을 가지 못하고 형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이는 타락으로 죽어버린 아담과 하나님이 또다시 맞아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셨기에 당신을 쳐죽이는 자식을 또다시 사랑하는 길을 가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노아를 세워 아벨의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인류(타락한 아담, 가인)를 살려주기 위해 방주를 지었던 것입니다.
온갖 비난과 조소와 핍박 속에서도 묵묵히 아벨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인류를 구해주고자 하는 아벨의 심정을 품고 방주를 지었던 것입니다.
결코 인류를 대해서나 가족에 대해서 원망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꺼이 하늘 앞에 제물 되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억울한 길이 주어져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생각하고 참고 인내하며 묵묵히 하늘길을 갔던 것입니다. 21년 모은 모든 재산을 형 에서에게 바침으로 화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에서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바쳐 형 에서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야곱의 이러한 사랑으로 섭리 역사상 처음으로 아벨과 가인이 화목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로 외로운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생명을 걸고 애급 병사를 쳐죽였던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형제가 타락한 아담 해와를 용서해달라고 구해달라고 해야 하듯이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던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가신 것도 당신이 타락하지 않은 입장에서 타락한 아담(가인,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주기 위한 희생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즉 타락하지 않은 형제가 타락한 형제를 구해주고 용서하기 위해 당신의 육신까지 내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표적인 아벨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인을 구해주기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놓는 사랑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옆구리를 창에 찔리면서도 그 찌르는 자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희생과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타락한 인간(아담)을 구해주려고 자신이 희생하는 길을 가게 될 때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아버님도 똑같은 길을 걸으셨습니다.
수많은 죽음의 길을 가시면서도 오직 타락한 인간을 용서하고 구해주려는 심정으로 피눈물 어린 생애를 살아오셨습니다.
인류를 구해주기 위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1960년, 드디어 성혼식을 하시고 구원의 방주를 띄웠던 것입니다. 축복을 하시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타락으로 죽어버린 아담을 살려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당신만을 희생한 것이 아니고 가정을 희생하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몸부림치셨습니다.
나아가 통일교회를 희생시켜 세계를 구하는 길을 가셨습니다. 보다 더 큰 아벨을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구해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희생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 해와를 살리시고자 하는 그 안타까운 심정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을 구하는 것은 아담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구할 수 있다는 소망을 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벨의 심정을 품은 자는 원수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사랑하시고 싶은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해방 석방시켜드려야겠다는 심정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사랑의 감소감으로 해와를 타락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그 천사장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복귀를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을 분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습니다. 타락하여 원수가 된 아담 해와까지 용서하고 사랑하시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그 심정을 지녀야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하는 심정을 지니지 않고서는 절대 하나님 편, 아벨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벨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십자가에 달리면서도, 가인을 용서하고 사랑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미워하고 비판하고 저주하면 안 됩니다. 오직 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대신 벌을 받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용서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 대신 십자가를 지고 싶은 심정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지닌 아벨이 메시아요, 구세주가 되며 인류를 죄악에서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이제 이 땅에 영원한 아벨을 세웠습니다. 당신의 혈통을 통하여 삼대왕권을 세우시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방주를 띄워놓았습니다. 장대 끝에 구리뱀을 달아 그 구리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불뱀에 물려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삼대왕권을 모시고 가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구원될 수 있도록 구원의 푯대를 세워 놓았습니다.
아버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면서도 당신의 구원의 끈은 놓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천년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삼대왕권을 세워 주시고, 그 삼대왕권을 통해 영원한 아벨로서 우리를 구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죽어도 죽지 않으시고, 인류가 아무리 미워하고 핍박해도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영원한 아벨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이시기 때문입니다.


 < 말씀 >


타락한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요, 부모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이 인간 이 느낀 것보다 말할 수 없이 더 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녀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인간은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복하고 생기에 넘치는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때문에 정반대의 세계가 만들어졌고, 하나님께 큰 슬픔과 비탄을 안겨 드렸습니다. 인간은 출발에서부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 사탄을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거기에 타락하지 않은 또 다른 한 인간이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모습으로 있는 아담의 형제가 있어서, 그가 아버지에게로 나아가 타락한 그의 형제 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랬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예를 들어 타락하지 않은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가서 그의 형제가 타락한 것을 용서해 주길 빌면서, 타락한 형제를 위해서, 그가 대신하여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면, 즉 타락한 그를 위해서 처벌받는 것은 물론 어떠한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를 용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타락한 인간을 용서하고 구원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1971년 12월 12일(日), 로스앤젤레스. * 이 말씀은 미국에서 ‘ Master Speaks’ 팜플렛으로 발간된 것을 번역한 것임. 그 란 팜플렛에 붙여진 제목은 ‘ Things found most important in leading a Life of Faith’ 임.) 말씀 선집 52권 3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