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보다 무정이 더 문제다.

H.I.S | 20161221171112

무지보다 무정이 더 문제다.

 

무지에는 완성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원리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정과 지가 각각 주체와 대상으로 수수작용하여 합성일체화하여 선의 의지를 완성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선의 의지에 의해 선행을 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지는 타락으로 창조원리를 모르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원리말씀을 통하여 무지를 타파하고 창조원리를 잘 알아 창조본연의 정 즉, 심정을 복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심정이 복귀되면 하나님의 사랑 즉, 참사랑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심정이라 함은 하나님의 심정이며 심정복귀가 되면 하나님과 심정으로 일체가 됨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해 드릴 수 있는 창조본연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소유한 자는 절대사랑으로 살아감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무지 타파의 목적이 무정을 타파하는데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말씀을 공부하여 그 원리로 타인을 쳐서 심령의 타격을 가했다면 그 원리는 모르니만 못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원리를 공부하는 목적이 심정을 깨우치는데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가 공부한 원리로 결코  타인의 심령을 상하게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원리를 공부하는 것은 먼저 자신이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의 타락성을 깨닫고 나아가 하나님의 심정을 깨우치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잘 알지 못하면 섣부른 원리로 교만하여 쉬이 남을 판단하거나 심령에 상처를 주어 심정을 유린하는 크나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고 자기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상대의 눈에 티끌은 쉬이 찾아낸다고 주의를 당부하신 말씀의 의미도 이런 관점에서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을 강조하다 보면 맹목적 사랑에 빠져 섭리를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참사랑이란 정과 지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합성일체화한 중화체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이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한 선의 의지로 위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리 없는 사랑은 맹목적인 사랑으로 흘러 상대도 살리지 못하고 나 자신도 정의 낭비로 공멸하니 이또한 심사숙고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즉 정과 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며 사랑은 진리가 동반되지 않으면 심정에 이를 수 없고 내 심령을 파괴하는 가장 큰 해악이 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맹세 7절에서 왜 본연의 혈통과 연결된 위하여 사는 생활을 통하여 심정문화세계를 완성할 것을 맹세하라고 하셨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본연의 혈통과 연결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 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품으면 자연히 위하여 사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본연의 혈통과 연결된 위하여 사는 삶은 지와 정을 겸비하기 때문에 맹목적인 사랑이 아닌 참사랑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먼저 지를 깨우치고 정을 회복하여야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 되고 참사랑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정을 품고 진리를 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리는 심정으로 호소해야 상대를 자연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심정이 없이 진리를 주장하면 논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심정으로 진리를 호소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뿌리는 심정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심정의 뿌리를 지닌 참사랑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