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은 되새김질하는 동물이다(최고의 제물이 암소인 이유)
성경의 기록을 보면 아브라함은 3제물, 즉 비둘기 양 암소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창 15: 9)
왜 수많은 동물 중에 비둘기와 양 암소가 선택되었을까요?
그 뜻을 재림주님의 말씀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비둘기는 순결을 상징하고 양은 순종의 표상이 되며 암소는 희생의 대표가 됩니다.
원리강론에서 비둘기는 소생을 상징하고 양은 장성을, 암소는 완성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원리강론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288-296쪽 참조)
인간이 제물을 통해 하나님께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타락으로 만물보다 못한 입장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되돌아가 가기 위해 인간 대신 제물을 통해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제물의 뜻을 잘 되새겨 심령의 중생 부활을 기해야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번 기고한 왜 제물로 섭리하셨나? 참조)
재림주님은 비둘기와 양과 암소가 제물로 선택된 것은 바로 되새김질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말씀 참조)
재림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물은 되새김질하는 동물이듯이 타락한 인간은 말씀을 잘 되새김질해서 심령에 소화 흡수를 잘 해야 그 말씀으로 중생 부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 말씀을 훈독하게 하셨습니다. (8대 교재 교본을 주시고 매일 훈독하라 하셨음)
재림주님이 주신 말씀을 늘 되새김질하여 그 말씀을 영적 영양소로 하여 말씀의 실체, 즉 성육신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주어도 그 말씀의 실체가 되지 못하면 곧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여 성령을 거스르게 된다고 했습니다.(행 7: 51)
또한 말씀을 주어도 그 마음이 완악하여 귀는 듣기에 둔하고 심령의 눈은 감고 주님의 말씀으로 고침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마 13: 13-17) 이는 바로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는 것과 같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예수님이 주의를 당부하셨습니다. (마 7: 6)
양이나 소가 되새김질하는 이유는 소화를 잘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먹은 풀을 자신의 영양소로 만들기 위한 작업인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인간도 말씀을 잘 되새김질하여 심령의 영양소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되새김질하는 제물 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말씀으로 중생 부활하여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중생 부활하려며 재림주님께서 깨우쳐 주신 말씀을 되새김질할 줄 아는 제물 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주님은 암소가 바로 완성을 상징하는 최고의 제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지막 완성 성약 시대는 암소, 즉 여인이 제물된 생활을 하여 완전 구원에 이르게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재림주님이 오실 때에는 모든 여성들이 재림주님의 신부의 입장에서 신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신부 단장을 하고 등불을 켜고 신랑을 맞이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마 25:1-13)
암소는 절대 충성과 절대 희생의 표상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암소는 주인을 위해 살아생전 온갖 충성을 다하고, 그리고 번식을 다하고, 뿐만 아니라 죽어서는 뼈, 가죽, 살 등 안 바치는 것이 없습니다. (뜻길 111)
이렇듯 암소는 절대 충성, 절대 헌신, 절대 희생의 표상입니다.
재림주님은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하시면서 마지막 재림기 성약 시대의 여성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어받아 절대사랑, 절대희생, 절대헌신의 삶을 살아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말씀을 되새김질해서 심령의 영양소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시험에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은 되새김질을 강조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재림주님은 밥을 굶는 한이 있더라도 매일 2시간 24분, 시간의 십일조를 투입하여 반드시 말씀을 훈독하라 하셨습니다.
재림주님은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여인도 되새김질을 한다고 했습니다.
신부가 임신을 하면 입덧을 하는 것을 두고 바로 되새김질과 닮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자의 경수가 흐르는 것도 제물이 피 흘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것은 외적인 것을 비유한 말씀일 것이고, 보다 근본적이고 영적인 것은 말씀을 되새김질하여 절대사랑, 절대희생, 절대헌신의 신앙길을 감으로 재림주님의 영적 신부가 되어 그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재림기에 재림주님을 영접하는 자들은 남자건 여자건 모두 영적으로 재림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모두 암소처럼 제물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신부의 사명은 바로 재림주님의 자녀를 낳아 하나님이 창세기 1장 28절에 축복(3대 축복) 하셨던 그 축복을 이루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의 자녀란 바로 복귀된 자녀,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생 부활된 자녀를 낳아 양육해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가 충만하게 해야 할 사명이 재림주님의 신부 된 자들의 책임입니다.
완전 구원은 이렇게 암소처럼 절대사랑, 절대희생, 절대헌신의 신앙생활로 재림주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를 낳아 양육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의 말씀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참사랑의 가정을 완성시켜야 완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원리강론에서는 개성 완성, 가정 완성, 주관성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원리강론 창조목적, 44-49쪽)
구원의 말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재림주님을 통해 주시지만 그 말씀을 이루는 것은 말씀을 잘 되새김질해서 그 말씀의 뜻을 이루는 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되새김질을 잘 하지 못하는 자는 완전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암소처럼 말씀을 잘 되새김질하여 절대사랑, 절대희생, 절대헌신으로 완전 구원을 이루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암소를 완성급의 최고의 제물로 세우신 하나님의 참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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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된 글
왜 제물로 섭리하셨나? :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frt/2
(재림주님 말씀)
인간이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완성되는 것처럼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도 3단계를 거칩니다. 만물이 소생이고, 자녀가 장성이고, 그리고 부모가 완성입니다. 이것이 제물의 역사입니다. 구약시대의 제물, 신약시대의 제물, 그리고 성약시대의 제물의 역사를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선집 18권 205쪽)
소는 어디 갖다 놓으면 땅을 바라보지 않아요. 먼 산을 바라보는 거예요. 수놈 같은 것을 바라보게 된다면 말뚝을 박고 밧줄 달아 놓으면, 거기에서 먹을 걸 다 먹고 나서는 주인이 오기를 바라요. 아침에 풀밭에 매어 놓으면 점심때 1시, 2시까지는 아침에 이슬 맞은 풀을 있는 대로 잘라먹는 거예요. 위가 넷이에요. 이래 가지고 점심때까지는 그걸 다시 토해서 먹으면서 소화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주인 오기를 바라는데, 주인이 간 부락을 바라보면서 기다려요. 부락을 잘 알아요. 그러니까 바라보고 새김질하면서 눈감고 명상 하는 거예요. 주인을 얼마나 사모한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옆에 무슨 짐승이, 호랑이가 지나가더라도 상관 안 하는 거예요. 늑대 같은 것은 생각도 안 해요. 먼 산을 바라보며, 주인집을 바라보면서 그 누구인가…. 주인아저씨, 아줌마, 애들까지 오게 되면 좋아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소는 그 집에서 놓은 개까지도 외양간에 같이 사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까 제물 중에 제일 귀한 제물이 뭐냐? 황소는 받아요. 뿔이 있어요. 여자는 뿔이 없어요. 3대 제물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암소지요? 끝날은 암소시대 끝날은 암소시대예요. (선집 573권 114-115쪽)
옛날에 제물 중에 제일 귀한 제물이 뭐예요? 양이에요, 소예요?「양 입니다.」양이에요? 암소예요. 암소예요, 암소! 왜 암소예요? 하나님도 높은 데서 뭐냐 하면 암소를 좋아해요. 어머니를 찾아야지요. 상대를 찾으려니까…. (선집 572권 197쪽)
제물이라는 것은 반드시 새김질을 하는 종류가 되는 거예요. 위가 넷이 돼서 작용을 하니 둘 둘 나눠도 상충이 없다는 거예요. 그 가외는 제물이 못 돼요. 비둘기가 며칠 거르면 가슴이 참새같이 되지만 먹 이게 되면, 하루종일 먹게 되면 배가 뚱하니 예뻐져요. 이렇게 돼 가지고 말이에요. 그래, 세 종류가 제물 취급받는 거예요. 네 개니까 그림자가 있다는 거지요. 그림자에서 따와라 이거예요. 양도 새김질을 하고, 소도 새김질을 하고, 비둘기도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할 수 없이 사탄을 달고 나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갈라져요. 피를 봐야 돼요. 가르려면, 생명이 죽어져 가지고 새김질을 하지 않으면 안돼요. 죽었다 살아 나 가지고 새김질을 하면 본연의 자리에 가지만 이것을 탕감하지 않게 되면, 새김질할 수 있는 자리에 안 가면 살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 죽고자 하는 자는? 제물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제물을 안 드림으로 말미암아 망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전부 다 이치에 맞게 돼 있어요. (선집 553권 223쪽)
예수님이 훌륭한 것은 십자가에 달린 자기 자신을 창으로 가슴을 찔러 죽이려고 하는 그 로마 병정을 대해서 복을 빌어 주고 용서를 빌었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삶이 그렇습니다. 선한 사람이 아닌 죄인 까지도 끝까지 용서해 주는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이 하나님이 제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80-16,1996.10.13)
제물이라는 것은 뭐예요? 아무것이나 제물이 되지 않아요. 새김질할 수 있는 동물만이 제물이 돼요. 새김질을 알지요? 대사들, 새김질을 뭐이라고 그러노?「되새김질입니다.」새김질, 질이라는 건 뭐예요? 질이 나쁘다, 좋다. 그건 본성을 말해요. 새김질을 해야 돼요. 제물 가운데 비둘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비둘기를 보게 된다면 먹이지 않고 한 3일씩 굶겨 봐요. 목이 훌쭉 해 가지고 가늘지만, 이것이 먹는 걸 주게 되면 하루종일 먹어요. 이게 커 가지고 뚝뚝 가슴이 나오는 거예요. 가슴이 나오는 거예요. 새김질하면 그래요. 인간도 여자는 새김질하는 패와 마찬가지입니다. 복중에서 아기들이 새김질하면 웩웩 하지요? 남자는 그것을 못 해요. 자궁이 없어요. 그러면 남자가 귀하오, 여자가 귀하오? 대사들! 이놈의 대사들, 답! 「여자가 귀합니다.」왜? 새김질을 해요. 새김질하지요? 그러니까 여자를 고생시키면서…. 도적놈의 새끼예요. 천사장의 아들들이 여자들을 파먹었어요. 그 새끼를 파먹고 피를 흘리게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절대순종⋅절대복종이에요. 순종, 복종을 가지고도 안돼요. “제물이 되라. 제물이 되는 데는 네 살을 잡아서 죽을 사람들을 살려주는 데 있어서 불살라라!” 하는 거예요. 이것이 타락한 인간세계에 있어서 종교의 최후가 되었고, 섭리사의 이용물로서 조건으로 세워 나왔던 걸 그 누구도 몰라요. 이런 말을 처음 듣지요? 기성교회에서는 뭐 아벨은 피의 제사를 지내서 축복받고 가인은 식물을, 열매를 드려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왜 새김질해야 되느냐? 두 사람이 나눌 수 있어야 돼요. 이쪽 저쪽 갈라져 가지고 같이 클 수 있어야 돼요. 1대가 태어나서 부부가 돼 가지고 2대가 커야 되는데, 2대가 복중에 있을 때 웩웩 하지요? 새김질 해요? 여자들, 새김질하나? 그걸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씩 경수(經水)를 하는 거예요. 이게 음력에 맞지 않으면 안돼요. 음력에 양력을 맞춰야 돼요.
그래서 7년을 중심삼고 복귀섭리에 있어서 새로운 천주평화연합을 창건했는데 뭐예요? 천주의 ‘천(天)’ 자는 ‘두 이(二)’ 자하고 ‘사람 인 (人)’ 자하고…. 하나의 나라예요. 두 사람이 하나된 나라가 천일국(天 一國)입니다. 혼자는 나라를 못 이뤄요. 대통령이고, 무슨 뭐 장관 짜 박지고…. 도적놈새끼들이에요. 그런다고 “아이고,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공식석상에서 대사들에게 도적놈새끼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할 수 있는데, 도적놈새끼이니까 새끼지! 듣기 싫어하지 마요. 도적놈새끼를 도적놈으로 취급해야 되겠나, 왕의 아들딸로 취급해야 되겠나? 답, 평화대사들! 여기에 있던데…. 평화대사들! 어디 봐요, 여기 보지? 도적놈을 도적놈새끼라고 그래야 되겠나, 왕새끼라고 그래야 되겠나?「도적놈이라고 해야 됩니다.」 그래, 선악과는 뭐냐 하면 여자의 그걸 말해요. 도적놈하고 같이하면 도적놈의 새끼가 나오고, 왕하고 같이하면 왕의 새끼가 나와요. 선악과! 두 종류예요. (선집 552권 10-12쪽)
(원리강론)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1)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둘기와 양과 암소로써 제사(祭祀)를 드릴 것을 명하셨던 것 이니, 이것들은 바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條件物)들이었던 것이다(창 15 : 9). 따라서 마치 노아가 ‘상징헌제(象徵獻祭)’로서 방주(方舟)를 지어 바치려 하였을 때 그 헌 제를 위한 믿음을 세웠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도 이 ‘상징헌제’를 하기 위하여는 그것을 위한 믿음을 세워야만 했었다 . 성서에는 노아가 어떠한 방법으로 그 믿음을 세웠는가 하는 것은 명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가 당세의 의인(義人)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방주(方舟)를 지으라시는 명령을 받기 에 합당한 의인이 되기까지에는 필시 어떠한 믿음을 세웠음에 틀림없다. 기실 복귀섭리(復歸攝理)는 이와 같이 믿음에서 믿음을 세워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롬 1 : 17).
그러면 아브라함은 ‘상징헌제’를 하기 위하여 어떠한 믿음을 세웠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
아브라함은 제2 인간 조상 노아의 입장을 복귀해야 했었다. 따라서 그는 또 아담의 입장에도 서야 했기 때문에, 그는 ‘상징헌제’를 하기 전에 아담가정의 입장을 복귀하는 상징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먼저 세워야 했던 것이다.
창세기 12장 10절 이하의 성구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기근(饑饉)으로 인하여 애급(埃 及)으로 내려갔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애급 왕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고자 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그 와 부부관계(夫婦關係)라고 하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미리 짠 바 계책대로 자기의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그의 처(妻) 사라를 남매(男妹)의 입장에서 바로의 아내로 빼앗겼다가 하나님이 바로를 징계하시어 다시 그 아내를 찾아오는 동시에, 데리고 갔던 조카 롯과 함께 많은 재물을 취해 가지고 나왔었다. 아브라함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서, 아담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이러한 섭리노정(攝理路程)을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未完成期)에서 아직 남매와 같은 입장에 있었을 때에 천사장( 天使長)이 해와를 빼앗아 감으로 인하여, 그의 자녀들과 만물세계까지 사탄의 주관하에 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조건을 세우려면,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남매와 같은 입장에서 처 사라를 사탄의 실체인 바로에게 빼앗기었다가 그의 처의 입장에서 다시 그녀를 찾아옴과 동시에, 전인류(全人類)를 상징하는 롯과 만물세계를 상징하는 재물을 찾아오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창 14 : 16). 아브라함의 이러한 노정은 후일에 예수님이 오셔서 걸어야 할 전형노정(典型路程)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탕감조건을 세운 후에야 비로소 비둘기와 양과 암소로써 ‘상징 헌제’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상징헌제(象徵獻祭)’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하여는, 원래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려 하셨던 노아와 그 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아담과 그 가정의 입장에도 서야 했었기 때문에,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헌제를 중심하고 복귀하려 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조건물(條件物)을 바쳐야 했던 것이다. 나아가 그는 또 노아가정이 방주를 중심하고 복귀하려 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조건물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물로 바쳐야 했었다. 이러한 상징적인 조건물로 바친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상징제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상징제물(象徵祭物)로 바쳤던 비둘기와 양과 암소는 과연 무엇을 상징하였던가?
이 세 가지의 상징제물은 3단계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천주(天宙)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즉 그중의 비둘기는 소생(蘇生)을 상징하였던 것이다.예수님은 구약섭리(舊約攝理) 완성자, 곧 소생섭리(蘇生攝理) 완성자로 오셨었다. 즉 예수님은 비둘기로 표시된 소생섭리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에, 그에 대한 표징(表徵)으로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신(神)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 위에 임하셨던 것이다(마 3 : 16).(마3:16). 한편 또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를 복귀하려고 오신 분으로서 먼저 사탄이 침범했던 그 비둘기를 복귀 한 입장에 서야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둘기로써 그가 소생 구약섭리 완성자로 오셨음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양(羊)은 장성(長成)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제물(祭物) 실수를 복귀하려고 오신 분으로서, 비둘기로서 표시된 모든 것을 복귀한 구약섭리의 기대(基臺) 위에서 양으로서 표시된 모든 것을 복귀해야 할 장성 신약섭리(長成 新約攝理)의 출발자이기도 하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 의하여 비둘기로 표시된 소생섭리의 완성자라는 증거를 받으신 후, 어느 날 세례 요한은 또 예수님이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 : 29) 라고 함으로써 예수님이 장성 사명 출발자이심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암소는 완성(完成)을 상징하였다. 사사기 14장 18절을 보면, 삼손이 수수께끼의 문제를 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로 하여금 삼손을 꼬여 그 내용을 탐지해 내게 함으로써 그것을 푼 일이 있었는데, 그때 삼손은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삼손은 아내를 암소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전인류의 신랑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가 재림(再臨)하실 때까지의 성도(聖徒) 들은 오시는 신랑 앞에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부 된 성도들이 다시 오시는 신랑 된 예수님과 어린양잔치를 치른 후에는 신부가 아니고 아내가 되어 남편 된 예수님과 더불어 천국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재림 이후의 완성 성약시대(完成 成約時代)는 아내의 시대요, 따라서 암소의 시대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암소는 곧 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많은 영통인(靈通人)들이 이때가 소의 시대라고 계시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3제물은 또 무엇을 탕감복귀하는 것인가? 이 3제물은 또 무엇을 탕감복귀하는 것인가? 아브라함은 그의 ‘상징 헌제(象徵獻祭)’로써, 일찍이 아담과 노아의 각 가정을 중심한 섭리에서 그들이 ‘상징헌제’로써 탕감복귀하려다가 사탄에게 내주었던 모든 것을 재탕감복귀(再蕩減復歸)하는 동시에, 또 그들이 ‘실체헌제(實體獻祭)’로써 탕감복귀하려다가 실패하여 사탄에게 내주었던 모든 것을 재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는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이렇게 3대에 걸친 종적인 섭리의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그 3제물로써 일시에 횡적으로 복귀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소생(蘇生)·장성(長成)·완성(完成)의 3단계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양과 암소를 한 제단에 벌여 놓고 헌제한 것은, 마치 아담의 당대에서 3단계의 성장기간(成長期間)을 완성하려 했던 것과 같이 아담의 입장인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소생 아담, 장성 노아, 완성 아브라함의, 뜻으로 본 3대에 걸쳐서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려던 종적인 섭리를 일시에 횡적으로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헌제는 사탄이 침범하였던 3수로 표시된 모든 조건들을 일시에 탕감복귀함으로써, 전복귀섭리(全復 歸攝理)를 단번에 이루시려는 뜻을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 ‘상징헌제(象徵獻祭)’를 어떻게 드렸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겠다.
창세기 15장 10절 내지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다른 제물은 모두 둘로 쪼개서 제단의 좌우에 놓았으나 비둘기만은 쪼개지 않고 그대로 놓았기 때문에, 솔개가 그 고기 위에 내려왔으므로 아브라함이 이것을 쫓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 날 해질 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창 15 : 13)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쪼개야 할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에 솔개가 내렸었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들어가서 400년 간을 고역(苦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어찌하여 죄가 되었는가? 이 문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해결(未解決)의 문제로서 남아져 왔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원리(原理)를 통하여서만 명확히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제물을 쪼개야 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은 선과 악을 분립하여 악을 멸하고 선을 세움으로써 선주권(善主權)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아담 한 존재를 가인과 아벨로 분립한 후에 헌제( 獻祭)해야 했던 것이나, 또 노아 때에 홍수(洪水)로써 악을 치고 선을 분립했던 것 등의 목적은 모두 선주권을 복귀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제물을 쪼개 바치게 함으로써, 아담이나 노아로서 이루지 못하였던 선악 분립의 상징역사(象徵役事)를 이루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물을 쪼개는 것은, 첫째로 아담가정에 있어서 선악(善惡)의 모체(母體)인 아담을 선 과 악의 두 표시체로 분립하기 위하여 아벨과 가인으로 갈라 세운 것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둘째로는 노아가 홍수 40일로써 선과 악을 갈라 세웠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으며, 셋째로는 사탄 주관하(主管下)에 있는 피조세계(被 造世界)에서 선주권(善主權)의 세계를 갈라 세우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넷째로는 사탄과의 혈연관계(血緣關係)를 통하여 들어온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聖別)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쪼개지 않은 것이 어찌하여 죄가 되는가? 쪼개지 않은 것은 첫째로 가인과 아벨을 분립하지 않은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아벨적인 대상이 없었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에게 합당한 헌제가 되지 못하였으므로 결국 가인 아벨의 헌제 실패는 탕감복귀(蕩減復歸)되지 않았다. 둘째로 그것은 노아를 중심 한 복귀섭리에 있어서의 홍수심판(洪水審判)에서 선악을 분립하지 못하였던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 상대하여 섭리하실 수 있는 선의 대상이 없게 되어 홍수심판에서 실패한 입장으로 되돌아간 결과가 되었다. 셋째로 그것은 사탄 주관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이 상대하실 수 있는 선주권의 세계를 분립하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넷째로 그것은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聖別)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상대하여 섭리하실 수 있는 성물 (聖物)이 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고 바침으로 인하여 그것은 사탄 것 그대로를 바친 것이 되어, 결국 그것은 사탄의 소유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준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소생 (蘇生)을 상징하는 제물인 비둘기가 사탄의 소유물로 남아지게 되었으므로, 소생의 기대 위에 세워져야 할 장성(長成)과 완성( 完成)을 상징하는 양과 암소에게도 역시 사탄이 침범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상징제물(象徵祭物)은 모두 사탄에게 바친 결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범죄가 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상징제물에 솔개가 내렸다는 것은(창 15 : 11)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보기로 하겠다.
인간 시조(始祖)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뜻 앞에는 반드시 사탄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즉 창세기 4장 7절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헌제를 할 때에도 사탄이 그들을 엿보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노아 때 에도 심판 직후에 사탄이 노아가정에 침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까마귀로써 보여 주셨다(창 8 : 7).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할 때에도, 그 제물에 침범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던 사탄은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을 보고 곧 그 제물에 침범하였었다.그리하여 성경은 이 사실을 솔개가 제물 위에 내린 것으로 표상(表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헌제’의 실수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그 ‘상징헌제’로써 탕감복귀하려던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결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 異邦)인 애급에서 400년 간 고역(苦役)을 하게 되었던 것이니,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노아 때에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내주셨던 10대와 심 판 40수를 동시에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기 위하여 400년이란 사탄 분립기간을 세우시고, 그 분립기대(分立基臺) 위에 아브라 함을 부르시어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그 제물을 또 사탄에게 바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상징 헌제’로써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한 탕감기간(蕩減期間)이었던 노아 이후의 400년 기간도 역시 사탄에게 내주 시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기 전의 입장이며, 따라서 노아가 방주(方舟)를 짓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서는 이 400년이란 사탄 분립기간을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고역하는 400년 기간은, 노아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출발하려 했었던 그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여 모세를 그 터전 위에 세우시기 위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이 고역기간( 苦役期間)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한 벌을 받는 기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를 위하여 사탄 분립의 터를 닦는 기간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한 제단에 3제물을 동시에 드리는 ‘상징헌제’에 성공케 하심으로써 소생(蘇生)·장성(長成)·완성(完成)으로 표시된 모든 섭리를 동시에 이루려 하셨다는 것은 이 미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에 실패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를 중심한 섭리는 다시 이삭을 거쳐 야곱까지 3대에 걸친 연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패는 노아의 방주(方舟)를 중심한 ‘상징헌제’와 가인 아벨을 중심한 ‘상징헌제’ 등의 실패를 반복한 것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