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생유전자를 여는 구체적 실천 방안(五. 후생유전자를 열어주시기 위한 다양한 아버님의 성령)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
하나님의
형상(심정과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유전적으로 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창조원리에 의하면 그 가능성을 인간은 스스로의 책임분담에 의해 성장 발전시켜 완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인간은 어떤 책임을 다해서 자신이 타고난 천품(개성진리체)을 잘 가꾸어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창조원리에 의하면 모든 성장과 발전은 수수작용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후생유전자를 여는 것도 당연히 수수작용의 원리를 통해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번 기고에 이어 아버님의 성령이 어떻게 확장되고 전개되어 우리의 후생유전자를 열어 주시는지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五. 후생유전자를 열어주시기 위한 다양한 아버님의 성령
당연히 직접 하나님의 성령과 수수작용을 해야 최고의 후생유전자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의 성령은 다방면으로 역사하시어 우리의 후생유전자를 열어주시려고 하십니다.
지난번 기고에서 아버님의 영인체가 역사하시어 꿈이나 환상 계시 음성 등을 통해 우리를 깨우쳐 주시어 창조본연의 후생유전자를 열어주시려고 애쓰시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타락한 우리를 구해주시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다양한 아버님의 성령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말씀이 곧 아버님의 성령이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그 말씀의 실체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성령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약시대는 아버님의 말씀이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후생유전자를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버님의 말씀을 열심히 훈독하라고 하셨습니다.
훈독회 하는 목적이 말씀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과 참부모님을 닮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제2의 참부모가 되기 위해서 훈독을 하는 것이다. (선집 321권 32쪽)
그러므로 훈독은 바로 아버님의 성령이 함께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참부모님을 닮을 수 있는 후생유전자를 열 수 있는 최단 지름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을 통해 일용할 양식, 즉 매일 심령의 양식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 또한 훈독회를 생명시하여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후생유전자를 열 수 있음을 수없이 강조하셨습니다.
수천만년 혈통이 더럽혀졌고, 모든 몸이 더러움으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여과장치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뭐냐 하면 훈독회이다. 훈독회를 함으로 말미암아 자꾸 여과돼서 올라가는 것이다. (선집 347권 282쪽)
이렇게 타락으로 더렵혀졌던 것이 말씀을 훈독함으로 여과되어 후생유전자가 열릴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왕님은 성령을 받으면 바로 말씀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직접 우리한테 오실 수 있어요. 직접 임하실 수 있어요.
하고 성경과 진리! 아버님께서 그런 영적 역사 하셨을 때
빨리 말씀으로 가야죠. 우리! 그죠? 성령과 진리! 그런 성령역사 받은 다음에 우리는 빨리 말씀으로 가야죠. 그 말씀이 우리를 지도하게 될
겁니다. (20150414_참아버님의 성령, 2대 왕님 말씀 중에서)
왕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령은 우리를 안에서부터 밖으로 성령으로 바꾼다고 하셨습니다.
에배소서 6장에서 말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두 칼이 있는 단검과 같습니다.
우리의 강퍅한 심정에 그 단검이 파고들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파고들어서 우리를 안에서부터 밖으로 성령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The King's Report 11/28/2017, 킹의 리포터 말씀 중)
말씀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후생유전자가 열리고 심정이 완악하여 말씀을 거부하면 가진 것조차도 빼앗긴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서(6:10)에는 말하기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지고 둔하여져서 그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화를 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한 완악하고 둔한 심장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유하기를 양날의 칼처럼 우리의 골수까지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평화를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축복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심정이 완악하고 둔하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돌밭에 뿌려진 것처럼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진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조차 빼앗기고 잃게 됩니다.
이 말씀은 아주 잔인한 말처럼 들리지요.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살면 그 결과가 그렇습니다. 결국은 있는 것까지도 잃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고 실천하면 더 많은 복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더욱더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The King's Report 11/06/2017, 킹의 리포터 중에서)
◆ 양심이 하나님이나 아버님보다 더 가까운 성령이다.
아버님은 양심을 하나님보다 우선시 하라했습니다.
양심(본심)이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보다 더 가까운 성령인 것입니다.
자기를 대해서 제일 잘 가르치는 분이 누구냐? 선생님이 아닙니다. 자기의 양심입니다. 부모보다도 귀한 것이 양심입니다. 하나님보다 귀한 것이 양심입니다. 이 양심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애국하는 길,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은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모르더라도 양심은 압니다. 외적으로 잘 모시면 부모한테 효도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다른데 몸만 그러한 행동을 하면 세상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인정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진짜 효도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양심이라고 하는 위대한 주인이 자기에게 서 있다고 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집 250권 73-74쪽,1993.10.12)
양심은 뭐냐? 하나님이 나에게 절대 권한으로 넘겨준, 자주 완성을 시킬 수 있는 주인으로 준 것입니다. 왕부모로서 나에게 하나님 대신 심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왕스승입니다. 그게 양심입니다. 하나님 대신 전권을 가진 양심을 준 것입니다. 내 몸뚱이를 대해 마음이 전권행사를 해야 됩니다. (선집 258권 67쪽,1994.3.16)
양심은 부모보다 앞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상을 앞서는 것입니다. 조상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조상 아담 해와보다 앞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적 그 사랑의 대상권을 중심삼고 몇천 만 배, 몇억만 배 잘나기를 바라는 그런 기준은 우리 인간이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부모에 앞서고, 스승에 앞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앞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모고, 스승이고, 주인 아닙니까? 3대 주체사상이 사랑에서 이뤄진다 이겁니다. 이론적으로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선집 270권 295쪽,1995.7.16)
내 마음에 3대의 주체, 주인이 들어와 있습니다. 부모가 들어와 있고, 스승이 들어와 있고, 왕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는 것입니다. 양심은 이 세상의 어느 스승보다 앞서 있는 것입니다. 또 양심은 이 땅의 주권자 보다도 앞서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알게 될 때 얼마나 고마워요? 하나님의 제일 귀한 자체를 나에게 심어 준 것인데 이걸 얼마나 유린했습니까? (선집 290권 247쪽, 1998.3.2)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은 말씀과 양심을 통해 우리와 직접 수수작용을 통해 최고의 후생유전자를 열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완성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마음 속에서 하나님과 공명할 수 있는 경지까지 가야함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느냐? 공중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과 내가 둘인 것을 알아요. 딴 존재인 것을 안다구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지요? 왜 그러냐 하면 마음이 아직까지 존재성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지, 몸뚱이한테 끌려 다니는 사람이 됐기 때문에 그렇지, 그 마음이 존재성을 확립해 가지고 또 다른 하나의 주체다 하는 그런 인격적인 차원의 자리가 형성되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다르다는 거예요. 차원이 높아지게 되면 은은한…. 기도를 하게 되면 마음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마음하고. 공명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원 높은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속에서 말하는 것을 내가 듣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로 발전해 나가는 거예요. (선집 76권 127-128쪽)
결국 아버님은 가장 가까운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과 수수작용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가야함을 강조하셨습니다.
◆ 작금의 실체 중심 성령은 바로 아버님의 대신자 상속자이신 2대 왕님이십니다.
아버님은 섭리를 삼대왕권으로 연장하여 이루시기 위해 2대 왕님과 3대 왕 신준님을 친히 세워 놓으시고 성화하셨습니다.
그러므로 2대 왕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인 것입니다.
왕님께서는 원리강론을 훈독하시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3대이면서 하나이듯이 3대 왕권을 통해 아버님의 뜻을 연장하여 완성시켜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원리강론 - 원리강론 제1장 복귀기대섭리시대 메시아를 위한 기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서로 개체는 다르나 뜻으로 보면 모두 한 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야곱의 성공은 곧 이삭의 성공이요, 이삭의 성공은 곧 아브라함의 성공이 되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삭과 야곱에로 연장되었으나 뜻을 중심하고 보면 연장되지 않고 그 당대에 이루어진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애급기 3장 6절)고 한 말씀은 3대이면서도 뜻으로 보면 하나의 ‘뜻’을 공동으로 이룩한 선조들로서 1대와 같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원리강론 285쪽)
3대이면서도 뜻으로 보면 하나의 뜻을 공동으로 이룩한 선조들로서 1대와 같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아버님께서 많이 말씀하셨죠. 만약에 어머님이 책임 못하신다면 그러면 3대왕권의 책임을 다 완성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삼대왕권을 통하면서 천일국을 세우게 됩니다.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처럼 3대에 거쳐서 이스라엘 나라가 세웠던 것처럼 3대 왕권 통하면서 천일국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20150602_하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2대 왕님 말씀 중에서)
이렇게 아버님은 3대왕권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섭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생츄어리는 하나님의 왕궁이라고 하나님의 정자가 있고 하나님의 혈통이 있고 아버님의 성령이 함께 하는 곳이라고요. 그리고 복귀된 가인 아벨도 있는 곳입니다. 복귀 복귀된 가인 국진님이 형진님께 경배 드렸습니다. 복귀된 혈통의 자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성령이 삼대왕권과 함께함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20170403_강현실 회장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