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성육신 되어야

무지... | 20171207101614

  말씀이 성육신 되어야
 
성육신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육체를 쓰신 것을 말합니다. (요 1: 14-18)
그래서 성육신이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나 아버님에 한정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도 성육신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마 5: 48))
아버님 역시 축복가정들이 작은 참부모, 종족메시아(종족왕)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두를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요 1: 1-3)
말씀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실체, 즉 성육신이 되게 하심입니다. 

성육신은 바로 말씀이 실체가 된 것으로 실체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빚어진 육체는 바로 성육신이며 실체하나님입니다.


타락은 말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말씀을 잃고 죽어버렸기 때문에 말씀을 찾아 세우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잃어버린 말씀을 다시 찾아 세워주는 것이 바로 복귀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중심인물들을 통해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찾아 세우기를 바라십니다.
  
말씀은 먼저 눈이나 귀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어 집니다. 
그리고 머리에 담겨져 지식으로 쌓입니다. 
그 말씀이 깨달아져 가슴으로까지 와 닿으면 나의 생각이 달라지고 의식과 사상이 달라집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활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그 깨달아진 말씀, 가슴에까지 와 닿은 말씀을 손발까지, 즉 행동으로 실천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말씀의 실체, 성육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귀에 스치고 지나가는 말씀은 피리를 불어도 춤 출줄 모르는 자와 같은 것이고, 
머리에 담겨져 지식으로 쌓으면 교만하거나 외식하기 쉽고, 심하면 말씀을 무기화하여 그 지식으로 남을 찌르기 쉽습니다. 
더 심하면 말씀을 주시는 주체(선지자나 중심인물, 메시아 등)마저 그 말씀으로 참소하고 비난하고 헐뜯어 심판하기까지 합니다. (행 7: 51-53) 
이런 자는 마음이 완악하여 마치 진주목걸이(말씀)를 돼지에게 걸어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마 7: 6)


말씀을 지식으로만 받지 않고 자기 것으로 깨달아 가슴에 뜨겁게 느끼면 심령의 부활이 일어나 은혜 가운데 감사함으로 살아가고, 그 말씀을 온 몸으로 언행으로 실천할 수 있으면 말씀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태복음 5장 48절의 말씀대로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이를 우리는 말씀이 수육 된 자, 곧 성육신이라고도 합니다. 
원리적으로는 개성진리체(생령체)라고 하면 무방할 것이고 더 발전된 개념으로는 신인애 일체이상을 이룬 자로서 실체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빚으셨으니 다시 우리를 말씀으로 성육신(생령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누구나 성육신이 되어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 실체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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