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생유전자를 여는 구체적 실천 방안(二. 사람과 수수작용을 통해 후생유전자를 열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
하나님의
형상(심정과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유전적으로 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창조원리에 의하면 그 가능성을 인간은 스스로의 책임분담에 의해 성장 발전시켜 완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인간은 어떤 책임을 다해서 자신이 타고난 천품(개성진리체)을 잘 가꾸어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창조원리에 의하면 모든 성장과 발전은 수수작용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후생유전자를 여는 것도 당연히 수수작용의 원리를 통해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자연, 본연의 인간, 본연의 신에 대한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므로 이 세 가지 관계를 통해 복귀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모든 관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관계, 본연의 인간에 대한 관계, 본연의 신에 대한 관계를 전부 절단해 버린 것입니다. 절단된 관계의 세계를 우리가 다시 접속시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내 자체가 이걸 접속시킬 수 있는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작용을 해야만이 관계가 개척되지, 접속시키고자 하는 태도를 갖지 않는 한 이 환경은 개척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가장 이론적이라구요. (선집 76권 129쪽)
오늘은 타락성을 극복하는 그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사람과 수수작용을 통해 후생유전자를 여는 것을 고민해보겠습니다.
二. 사람과 수수작용을 통해 후생유전자를 열 수 있다
자연은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세계이기 때문에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수수작용을 하면 창조본연의 유전자를
열기가 너무 쉽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 세계는 사탄주의 자들이 온갖 거짓과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창조본성의 유전자를 열어 심령을 부활시키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잘못된 유전자를 열어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를 위한 후생유전자 역시 인간 관계 속에서 열어갈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습니다.
◆ 실체가 서로 부딪히면서
왕님께서는 서로 실제 육체가 부딪히는 훈련을 통해서 후생유전자를 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군 평화경찰 훈련을 통해서 후생유전자를 열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동물들도 새끼 형제들끼리 서로 장난하며 자신들의 생존
능력이나 사냥 능력을 길러갑니다.
자연은 거짓된 타락성이 없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인간 세계는 타락으로 인해 사탄주의 놈들이 온간 거짓과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하나님이 주신
본성을 잃어버리고 사탄의 타락성을 성장 발전시켜 자신들의 종이 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된 가상세계의 게임이나 드라마 영화 등의 판타지 세계와 상대성을 띠고 수수작용을 하면 거짓된 성품, 즉 타락성의 후생유전자가 열려 심령은 더욱 악해지고 거짓이 심화됩니다.
그래서 왕님께서 거짓과 환상이 아닌 실제 육체와 육체가 부딪히는 주짓수나 검술, 총기 등 실제 훈련을 통해 창조본연의 후생유전자를 열 수 있음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 대화와 토론(질의응답)을 하면서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의 심령은 수수작용을 통한 정분합작용에 의해 성장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목적을 중심하고 두 분립된 존재가 서로 주고받는 수수작용을 통해 발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조원리)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서로 상대적 관계의 두사람 이상이 서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수수작용함으로써 후생유전자를 열어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자랄 때 수많은 질문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부모는 적절한 대답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후생유전자를 열어주는 답변을 잘 하지 못해
자녀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후생유전자를 잘 열도록 인도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장 흔한 질문에 가장 궁색한 답변을 하여 거꾸로 타락성 곧 종의 유전자를 열곤 합니다.
예를 들자면 바로 "엄마! 나 어디서 왔어? 어디로
낳았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저의 경우 가장 난감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너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기르라고 우리에게 축복해주신 최고의 선물이야, 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라는 그런 답변을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더 빨리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있는 후생유전자가 열렸을 것입니다.
저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답변에 너무 심각하게 고민했고 몰래 그 다리 밑에까지 가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15살이나 되어서야 원리수련을 받으면서 비로소 제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장하면서 수많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지식을 쌓아갑니다.
그 질의응답을 통해 참진리를 깨우칠 수 있는 후생유전자를 열어가야
합니다.
질문에 대한 응답을 할 때 하나님을 중심한 절대가치 절대사랑을 중심하고 본연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급이
높은 창조본성의 후생유전자를 열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무의미한 질문 같을지라도 알려고 하는 지적 유전자를 열려고 하는 것이니 만큼 우문현답의 지혜를 짜내어 후생유전자를 잘 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관계 속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거꾸로 유전자를 열어 타락성을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나 중심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토론에 임하면 이는 논쟁으로 비화하고 결국 타락성을 유발하여 거꾸로 후생유전자가 열려 심령은 더욱 악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정반합으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정분합의 창조원리에 의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진리의
후생유전자를 열어 성장 발전해야 하지만 정반합의 변증법적 논리로 가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선과 악은 동형이질로 너무나 닮아 있어서 선한 후생유전자와 악한 후생유전자를 여는 그 모양, 형식은 비슷해서 분별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순간 이미 사탄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사탄이 역사(수수작용)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원리강론 98쪽)
그렇게 되면 상대를 비판하고 논리적으로 이기기 위한 지식 위주로 발전하여 자신도 모르게 타락성(종의 근성)의
유전자만 열어 심령은 더욱 악화됩니다.
예수님이 절대 비판을 하지 말라고 하시고 아버님 역시 절대
남이 말한 것을 비판하지 말고 상대의 결점을 들추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과 말씀 참조)
◆ 참사랑을 하면서
타락은 참사랑의 유전자를 망가뜨리고 비원리적인 사랑으로 거짓된 사랑의 유전자를 연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사랑의 유전자를 열기 위해서는 거짓된 사랑을 극복하고
참사랑을 훈련하면서 사랑의 후생유전자를 열어야 한다.
비록 타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참사랑의 기능은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참사랑의 유전자를 여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사랑의 유전자는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부부도 서로 사랑을 하면서 점점 후생유전자가 열려 부부의 사랑이 성장 발전해 갑니다.
아버님께서 매일 부부끼리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도 바로 부단히 쉬지 않고 사랑의 훈련(사랑의 주짓수?)을 통해 사랑의 후생유전자를 열어야 사랑의 급을 높일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면서 부모 사랑의 후생유전자가 열려 점점 부모의 사랑이 커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부모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부모사랑의 후생유전자가 열려 사랑의 급이 점점 높아져 하나님의 절대사랑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형제간에도 서로 사랑을 하면서 형제애의 사랑의 유전자를 열어 인류애에로 사랑의 급을 높여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거꾸로 사랑의 유전자를 열면 시기 질투의 유전자만 열려 타락성이 발전되어 심령이 더욱 악화되어버립니다.
이렇게 인간과의 관계에서 창조본성의
후생유전자를 여는 것은 타락한 사회에서는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중심에 세우고 죽고자 하는 자세로 사생결단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타락성을 극복하고 창조본연의 참사랑의 후생유전자를 열기 어려운 것입니다.
(다음에는 사람을 실체하나님으로 관계하여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후생유전자를 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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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형(型)이 달라요. 하나는 내형적이요,
하나는 외형적인 이 두 사람이 ‘ 그래?’‘ 내가 , 내가 그래?’ 이렇게 서로 의논하고 서로 협조해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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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세계에 있어서 서로서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가 필요한 거예요. 통일교회 믿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경험 많이 했지요. 뭐 어떻고 어떻고 그런 말을 듣고 심령에 타격을 받아 가지고는 새까매지는 거예요. 그건 자기 혼자 암만 기도로
해결하려 해도 지극히 어려운 거예요. 그렇지만 자기와 상대적인, 진리적인 외적인 사람을 중심삼고 친구가 되어 있으면 ‘야, 이 녀석아, 이렇게
해!’ 하고, 또 진리적인 면의 사람은 영적인 면의 친구가 그러면 ‘내가 기도해 보니까 이래.’ 야! 이렇게 되면 쉽게 해결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합니다. 신앙자에게는 반드시 친구가 필요하다 하는 걸 알아야 돼요. 자기와 상대적인 소성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삼고
나가야 여러분이 원만한 인격을 지니려면, 춘하추동 사시계절 형태의 마음의 밭, 심전(心田)이 있으면 그 마음의 밭을 계발하려면, 그런 소성의
사람을 내가 친구로서 환영할 수 있는 자격자가 돼야 됩니다. ‘아이구! 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싫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싫은 사람이 나에게
제일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싫은 사람을 좋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악한 사람이 선하게 될 수 있는 첩경을 간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반드시 제일 싫은 사람이 있다구요. 반드시 있어야 돼요.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싫은 사람이 내게 있어서 원수가 아니에요. 나와 제일 가까울 수 있는 것입니다. 참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까울 수 있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로마 병정을 대해
기도한 것도 그거라구요. 로마 병정이 본래는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제일 먼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먼 원수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가까울 수 있는 입장에 세웠던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그 원수를 포괄해 가지고 제일의 친구를 만들기를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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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도
거기에 들어 있는 거예요. 오늘날의 이 사망의 세계는 원수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니 이 세상은 부정당해야 할 세상이라구요. 부정당해야 할 세상에
있어서 긍정적인 내 입장을 세우면 그것은 영원히 이 악한 세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돼 요. 그렇지만 이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나옴으로 말미암아 자체를 부정하고 넘어설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어렵구만, 무슨 말인지….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지적인 사람은 기도가 필요함과 동시에 뭐가 필요해요? 신령적인 사람은 지적인 면의
보강이 필요함과 동시에 뭐가 필요해요? 친구가 필요합니다. 혼자 하려면 상당히 어려워요. 그래서 여러분이 남의 간증을 듣고 경험을 듣는 것은
신앙생활에 지극히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 그렇구나.’그렇기 때문에 아!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거들랑 통일교회 간부들의 간증을 듣고
싶어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협회장은 어떻고, 누군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전부 다르다구요. 이런 것을 내가 상대로서 소화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도수가 넓어진다는 거예요, 도수가.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 심) 이 중앙선 아니면 이것은 길고 요것은 짧고, 전부
다르다는 거예요. 내 성격이 이러면, 짧은 이 면을 메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나오는 간증을 들으라는 거예요. 이것을 들어서 자기 것으로 흡수하라는
거예요. 보강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체험담을 들어라! 들어 가지고 남이 말한 그것을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비판하는
것은 사탄 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하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비판했다 할 때는 사탄 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갈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은 내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의 암이라는 거예요, 암.
사탄 편이 됐던 녀석 이 하나님 편에 갈 수 없고 하나님 편이 됐던 녀석이 사탄 편에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생활 있어서 가는 데에는
직행을 절대 못 합니다. 지그재그로 간다는 거예요. 선조도 선한 선조만 있는 게 아니라 악한 선조들도 전부 다 연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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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
때문에, 내 자체가 소성적으로 볼 때 선한 선조의 소성을 많이 갖고 있을 때는 이렇게 가지만, 악한 선조의 소성을 받은 분도 있다구요. 그런
때가 온다구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럴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하게 돼요. 비판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다
그런 이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선집 76권 134-137쪽)
죄는 들추지 말고 구해주어라
만일 하나님이 받기 위해서 섭리해 나오셨다면 이 땅은 망하는 것입니다.
주기 위해서 나오신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아들을 고대해 오신 아버지의 심정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죄지은 자를 어떻게 동정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가 지은 죄를 나무라기보다 그를 동정하는 마음이 앞서서 그 죄를 잊어버리는 자리까지 어떻게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 여자는 무엇을 잘못했다고 말하거나 저 남자는 어떻지 하고 결점을 들추기 전에 먼저 불쌍한 마음이 앞서는 심정적 자세가 갖추어지면 하늘의 역사는 발전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인류를 대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런 마음으로 불쌍한 자를 구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책임자의 사명입니다.
구해 줄 때에는 구원받는 사람의 힘보다도 내 힘을 더 소모시키고, 그 사람의 소원보다도 내 소원을 더 가중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구해 준 후에 내가 보람을 느낀 것을 상속해 주어야만 구원받은 사람도 산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어떠한 자리에 가든지 부디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타락하여 효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과 천사장이 타락하여 종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을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수습해서 이것을 다시 복귀 시키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여러분 자신들의 사랑의 마음과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랑할 수 없었던 그 사랑의 마음을 가중시켜서 하늘 것으로 바쳐 드리겠다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렇게 가는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은 앞으로 정상적인 발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선집 29권178-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