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수선화

H.I.S | 20170108120615






난쟁이 수선화가 꽃을 품었네요.




지난번 제가 수선화 키를 작게 키우는 방법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20일 정도 지난 그 수선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사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수선화 키를 작게 키우려고 구근을 막 자르시는데 그 구근이 얼마나 아플까요?

선생님은 죄짓는 것 아니에요?

그런 행위가 창조원리와 원형이정에 부합되나요?

자연에 있는 모습 그대로 꽃을 피워내는 것이 원형이정이란 것에 보다 가깝지 않을까요?

 

 정말 마음이 여린 분이십니다.

저런 질문을 하실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마음이 너무 여리고 선하고 착하신 분이심을 직감할 수 있네요.

 

제 답변입니다.

제가 수선화 키를 작게 키우기 위해 구근을 자르면 당연히 구근은 아플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수선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새로운 창작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이 서로 교류가 된다면 그 구근도 기꺼이 자기 아픔을 견디며 자신을 내어 놓을 것입니다.

복귀원리 입장에서 보면 제물과 마찬가지겠네요.

구근은 자르는 인간은 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한 심정으로 나아간다면 구근은 아픔을 극복하고 기쁨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을 주관할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만물을 주관할 자격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만물을 통하여 보다 큰 기쁨으로 나아갈 때 거기에 희생되는 만물도 고통을 감수하며 극복할 수 있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먹이사슬이 창조원리이듯이 인간이 만물을 주관하는 행위의 하나인 구근을 자르는 것도 창조원리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만물은 타락한 인간이 자기들을 마구 주관하는 것에 대해 탄식한다고 했기 때문에 만물이 인간을 위해 희생과 고통

을 감내하고 창조목적에 부합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헤아려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아름다움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구근의 고통을 헤아려 준다면 저렇게 꽃을 피워 기뻐하는 인간과 같이 아픔을 승화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맨 아래 사진의 왼쪽은 원형 그대로 재배한 것이고, 오른쪽이 구근을 잘라서 키가 작게 자라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형 그대로 키운 것은 2달 가까이 지나 꽃은 이미 시들어버린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