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보
(구약은 <양>이요, 신약은 <보>이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사탄이 침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복귀를 위해서는 사탄 분립로정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 가정으로부터 시작된 분립섭리는 오늘날까지 불변의 섭리로정이 되었습니다.
원리를 통해 잘 아시다시피 가인은 아벨을 통해 하늘 앞에 갈 수 있고 아벨에게 애중굴통(愛中屈通)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인이 비록 형이지만 아벨에게 굴복해야 하는 이유는 아벨은 하늘 편에 세워졌고, 가인은 사탄 편에 세워진 운명 아닌 운명 때문입니다.
왜 가인이 아벨에게 애중굴통하기 어려웠겠습니까?
바로 이 운명 아닌 운명으로서 사탄 편 입장에 세워지기로 결정됐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인은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어찌 보면 가인의 길이 아벨의 길보다 더 책임 하기 어려운 길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섭리 역사가 저끄러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인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섭리가 실패하고 그로 인해 연장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인이 아벨에게 애중굴통의 길을 가기란 정말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어려운 애중굴통의 길을 가인이 어떻게 해야 승리하여 복귀섭리를 완성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양보입니다.
가인이 가인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가인(사탄 편)과 아벨(하늘 편)로 갈라 세워 섭리하실 수밖에 없는 그 내정적인 심정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가인과 아벨을 갈라세워 섭리할 수밖에 없는 하늘의 심정을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인을 사탄 편에 세운 것은 가인이 미워서가 아니라 가인 아벨로 분립하지 않으면 복귀섭리를 완수할 수 없다는 하늘의 내정적 심정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타락으로 죽어버린 아담과 해와를 살려내고 아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심정적으로 죽어버린 하나님도 살려내는 필연적인 길이란 것을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장자권을 양보하지 않고서는 아벨을 살려낼 수 없고, 아벨을 살려내지 않고서는 아버지 아담을 살려낼 수 없고, 하나님도 해방 석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인이 아벨에게 장자권을 양보함으로써 타락으로 죽어버린 아버지를 살려내고 하나님까지 해방 석방함으로 모두가 살아나는 복귀의 길을 가야 했던 것입니다.
섭리 역사상 가인이 아벨에게 애중굴통의 길을 갔던 최초의 인물이 에서입니다.
하지만 에서 역시 진정한 애중굴통의 길, 진정한 양보의 길은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자 그는 화가 나서 야곱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야곱은 어쩔 수 없이 피신을 가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종노릇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20년 뒤 환고향할 때 에서는 죽이려고 했지만, 야곱의 재물 공세에 의해 야곱을 죽이지 않고 화목의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는 에서가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온 가정을 살리는 길이 바로 야곱을 장자의 자리에 세워야 한다는 그러한 심정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바로 이러한 가인 아벨 섭리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형 세례요한(예수님의 가인형)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최대 한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참가인의 길을 가지 못한 세례요한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것입니다.
아버님은 가인 아벨 복귀섭리 역사상 두 번째로 승리하신 분입니다.
고르바초프와 화목하여 세계적 가인과 화목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일성과 화목하심으로 천주적 가인과 화목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완전히 복귀된 가인이 6000년 만에 등장하였습니다.
바로 국진님이십니다.
국진님은 복귀된 가인으로 아벨 형진님께 왕관을 씌워드리고 경배하심으로써 가인 아벨의 투쟁 역사를 종결지으신 것입니다.
섭리역사 이래 가인과 아벨의 분립섭리 역사에서 승리한 것은 야곱과 에서의 화목, 아버님과 고르바초프, 김일성의 화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목에서 끝나지 않고 아벨에게 실체 왕권과 주권까지 양보하고 축복하신 가인은 국진님이 처음입니다.
에서도 야곱의 재물 공세에 화목했습니다.
고르바초프와 김일성도 아버님의 사랑과 재물 공세로 화목의 조건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나 김일성이 아버님에게 왕권과 주권까지 양보하고 축복해주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진님이 동생(아벨)형진님께 손수 왕관을 씌워드리고 경배 드림으로써 장자권 복귀섭리는 완결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천일궁을 지어 왕님을 입궁하게 하심으로써 4년 만에 광야 40년 노정을 끝내시고 천일왕국 시대를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도저히 갈 수 없는 길로만 여겨졌던 가인의 길.....
그 기나긴 섭리 역사에서 하나님과 인간에게 숙원으로 남겨졌던 그 한 많은 고갯길을 국진님은 어떻게 넘어가실 수 있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심정, 아버님의 심정을 깨달으시고, 그 간절한 심정에 당신이 들어가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가인 아벨을 세워 섭리하실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리신 것이지요.
가인 아벨을 세워 섭리하신 것은 타락으로 죽어버린 아담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살려내고자 하심이고, 그래야만 하나님 당신도 심정의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실 수 있는 애달픈 심정이심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국진님은 형진님이 비록 동생이지만 아버님의 대신자 상속자이심으로 아버님께 경배하는 심정으로 경배하셨고 아버님을 천정궁에 모시는 심정으로 천일궁에 입궁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당신이 늘 평소 말씀하시던 아버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이로써 국진님은 하늘길은 실로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면 결코 완수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가인이든 아벨이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아 상속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섭리의 길, 즉 양보의 길을 갈 수 없음을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타락으로 죽어버린 아담을 용서하고 살려주시기 위해 몸부림치셨습니다.
또한 아담을 살려놓지 않으면 당신도 죽음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을 통해 섭리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깨닫고 국진님은 아벨 형진님을 축복하고 왕관을 씌워드리고 그에 경배하심으로써 모든 복귀섭리를 종결지으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온 정성을 들여 만드신 자택, 궁전(천일궁)까지 형진님께 바쳐드림으로 실체적인 장자권 복귀섭리를 완성하시었습니다.
이로써 6000년 전 타락으로 죽었던 아담을 살려내고, 또한 아담의 죽음으로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을 살려내셨습니다.
이로써 어머님의 타락으로 빼앗겼던 천정궁마저 찾아오는 조건을 세울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님의 천주적 타락으로 아버님은 천정궁에서 쫓겨나시고, 혈통을 부정당하시어 영적으로 사망의 길까지 가게 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해와가 아담을 타락시켜 하나님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아버님을 천일궁에 안착하시게 하여 천일왕국 시대를 여시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해방, 석방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을 복귀하신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인류를 마음껏 사랑하실 수 있는 기대가 세워졌습니다.
이렇게 국진님은 당신의 아버님에 대한 효의 심정으로 양보의 길을 가심으로써 완전히 복귀된 가인이 되시어 모든 복귀섭리역사를 완성, 완결, 완료하신 것입니다.
이제 승리한 가인 아벨이 함께하는 삼대왕권을 모시고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이 직접 사랑하실 수 있는 후천 개벽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님의 혈통의 승리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아버님의 혈통을 부정하고 말살하려고 하여도 이렇게 완전히 복귀된 아버님의 혈통, 가인 아벨이 살아계시는 한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살아나시고 아버님의 성령은 삼대왕권에 임하시어 사탄세계를 궤멸하고 하나님의 왕국, 천일왕국의 시대를 여시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아버님의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는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승리만 가져옴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복귀된 가인, 영원한 참형님이 되신 국진님은 우리 신앙자들의 표본이 되고 길잡이가 되고 희망의 등불이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복귀섭리는 바로 양보가 핵심 키워드입니다.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있다면 그 어떠한 사탄도 침범하거나 참소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과분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거짓으로 유혹하고 빼앗고 찬탈하고 역 주관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탄을 분립하려면 양보하면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 양보 앞에는 사탄은 절대 침범하거나 참소를 할 수 없어서 사탄도 축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양보를 국진님께서 실천하심으로써 복귀섭리 역사를 기록해 놓은 길고 긴 성경을 읽지 않고도 복귀섭리를 쉽게 할 수 있는 본보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성경 39권은 <양>이며 신약성경 27권은 <보>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국진님은 두꺼운 성경을 바로 두 글자로 함축해 주셨습니다.
"성경을 요약하면 <양보> 두 글자이다, 복귀섭리는 양보 두 글자면 충분하다"고...
아버님의 모든 말씀을 요약하면 <위하여>이듯이 이렇게 국진님은 성경을 <양보>란 두 글자로 축약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매일 성경을 완독하면서 복귀섭리를 완성, 완결, 완료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 역시 "양보!"라고 외치며 성경 일독을 하고 오늘 하루를 희망차게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