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경계선에 서 있는 자기를 언제나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다구요? 「자기 입니다.」 자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거예요. 한 걸음 이렇게 가면 천국으로, 한 걸음 이렇게 되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부 환경이 악하더라도 자기 몸 마음이 하나되어 있으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되면 자기 일생에 있어서 영원히 선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우주 주관(宇宙主管)─인간은 우주 주관주(宇宙主管主)이기 때 문에─바라기 전에 자기를 주관하라.'는 생애의 목표를 세운 것도 자기를 어 떻게 제압하느냐,
어떻게 제패해서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거예요. 자기가 정말 배가 고플 때 밥이 있다고 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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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습관성마저도 잊어야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마주보고 앉아 있어도 잠에 주관당해 버리면 거기서 자는 것입니다. 그런 부끄러운 일이 얼마든지 있다구요. 이 잠을 제패해야 됩 니다. 세번째는 남녀 문제, 정욕 문제를 제패해야 돼요.
알몸의 미인들이 100 명이나 되는 한가운데에 있어도, 그 여자들이 자기를 끌어당기고, 둘러싸더라 도 아무런 동요도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마지막에는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을 적의 품에 안겨 주어도 축복해 줄 수 있는 그런 입장을 확실히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권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가지 않으 면 안 된다구요.
사탄의 사랑에 의해 사탄의 생명체가 된 인간 사탄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간부(姦夫)입니다. 해와는 간부(姦婦)고, 사탄은 간부(姦夫)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부인과 그 딸을 순결한 여자로서, 순결한 딸로서 생각하지 않으면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구요. 그
러한 심정권에 처해 있는 하나님의 비참한 심경은 아무도 몰라요. 선생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구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정권을 어떻게 하면 체휼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까지도 적에게 안겨 주면서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는 그런 애정을 갖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직계 왕녀, 왕자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건 무서운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야 됩니다. 그렇게 포용할 수 있는 심정 체휼권을 확대하지 않으면 우주가 그 품에 안겨 들어가지 않아요. 사랑으로 포용되지 않는다구요. 하나님의 품에 전부 들어가면,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서서 심정권을 체휼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해서 전부를 포용하는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탄에게 안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에 게 안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두익사상 문제로 돌아가자구요.
훈독 소감
심정 체휼의 길
위 아버님 말씀을 훈독한 후 심정 체휼의 길을 정리해 봅니다.
먼저 심정 체휼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란 구체적으로 자기 양심 따라 살 수 있는 "나"이냐입니다.
내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자는 자아완성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면 자아완성은 요원한 것입니다.
아버님이 다른 말씀에서 양심이 하나님보다 먼저란 말씀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으로 잠을 주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비단 잠에만 국한된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영이 육에 주관당하게 해서는 하늘 앞에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顚倒) 된 것이 타락입니다.
대상이 주체가 되면 타락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몸에 의해 내가 주관을 당하게 되면 타락입니다.
주체인 내 마음이 대상인 내 몸을 주관할 수 있어야 창조원리적인 내가 됩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이나 잠자는 모든 육적인 생활을 내 마음이 주관할 수 있어야 창조본연의 자아를 정립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정욕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정욕은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정욕이 없다면 사랑을 중심한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의 정욕을 가장 강하고 자극적으로 만드셨습니다.
생명을 넘어서는 정욕의 욕구는 최고의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강하고 크게 만드셨을 것입니다.
인간의 궁극적 책임은 바로 이 정욕을 자기 의지로 다스리고 주관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온전히 다스리고 주관할 수 있을 때 가장 성스럽고 고귀한 정욕, 즉 참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잘못 사용해서 타락의 길을 가고 사탄의 혈통을 상속받아 타락한 인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욕을 극복하는 것은 금욕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을 이루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을 통해 실체적 사랑을 이루고자 하셨던 그 이상을 이루어 드리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사랑의 행위는 하나님 대신 실체를 쓰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밤의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아버님의 눈에 저희들은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님은 비록 타락한 인간이지만 우리들을 순결한 인간으로 대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사탄의 혈통인 우리들을 하나님의 사랑, 참사랑으로만 품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인간 타락 후 원수같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딸로 절대 믿고 사랑하셨습니다.
6000년간 타락한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해 섭리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아버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본체로 오셔서 부모의 심정을 지니시고 종의 몸을 쓰시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셨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강조하십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원수의 손에 내어주면서도 하나님의 심정을 품을 수 있는 내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아버님은 가장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를 제물로 사탄에게 내어주시면서도 하나님의 심정을 품으셨기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하시기 위해 몸부림치셨습니다.
그런 아버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절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님의 그런 심정, 사랑을 닮아나야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사랑이시니, 나 역시 아버님처럼 절대사랑을 품고 살아야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겠지요.
원수도 사랑하고 죄인도 사랑하고 악인도 사랑해야 합니다.
아버님은 원수도 송두리째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영광의 왕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니까요.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고 품으시기 위해 6000년을 기다려 오셨고 또 영원히 기다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고 반성하고 돌아오면 뛸 듯이 기뻐하며 반겨 맞을 것입니다.
다만 죄를 사랑하고 악을 사랑하는 맹목적인 사랑의 길만 가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으로 오해받은 것도 바로 이러한 분립섭리를 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수를 끝까지 사랑해서 죄악을 분립하게 해줘야 합니다.
죄인을 끝까지 사랑해서 죄를 분립하게 해줘야 합니다.
악인을 사랑해서 악을 분립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죄악을 분립하고 돌아오면 같이 끌어안고 기뻐해야 합니다.
절대 복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복수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분립하기 위해 심판하시지만 결코 그 누구도 미워하거나 복수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죄악을 분립해서 회개하고 반성하고 돌아와서 용서의 품에 안기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실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기다림에 지치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효자요, 충신이요, 성인 성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