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립과 비판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선악을 갈라 세우는 섭리는 필연적입니다.
누구나 죄악의 피를 뽑아내지 않고는 하늘 앞에 갈 수 없는 사탄의 혈통을 갖고 태어난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아담가정부터 분립섭리로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노아 가정에서는 홍수로 분립섭리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작은 비둘기를 쪼개지 않아 섭리를 그르치는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할례 또한 분립섭리였습니다.
모세 역시 애급인을 쳐 죽임으로써 출애급을 위한 분립로정을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는 그 분립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예수님 이전까지는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타락한 인간이 메시아를 맞기 위한 분립섭리의 길을 갔다면, 예수님 이후는 바로 메시아가 오셔서 말씀으로 분립하는 시대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는 불심판으로 비유된 것처럼 말씀 심판의 시대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향하여 말씀으로 분립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독설은 비판이 아니라, 바로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죄악을 갈라 세우는 분립섭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오 검을 주러 왔다.(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눅 12:51)고 하셨던 것입니다.
아버님 역시 예수님과 별다를 바 없이 많은 독설적인 말씀을 하시면서 죄악 세계를 분립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탄 세계를 분립하시기 위해 세상이 뭐라고 욕하든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는 아버님의 그 독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따랐을 때 축복의 은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과 아버님은 말씀으로 타락한 우리 인간을 분립하시는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형진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버님의 대신자 상속자로서 말씀을 통한 분립섭리를 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보고 듣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메시아의 분립섭리를 놓고 비판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유대민족과 율법사, 제사장들이 인륜과 그들의 신앙의 잣대로 예수님을 참람하다고 하며 바알세불이 함께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아버님을 향해 이단이며 비윤리적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바로 인륜의 잣대로 비판하고 심판하는 타락한 인간의 무지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작금은 아버님의 대신자 상속자가 욕설을 퍼붓는다고 그들의 윤리의식과 인륜의 잣대로 불효자, 패륜아라느니 책임을 못했느니 하며 비판합니다.
(형진님의 언행에 관하여 참조 바람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wu8/23)
믿을 수 있는 상황에서 믿고 책임 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의 길을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주어 거기서 믿고 순종하는 조건을 세워야, 하늘이 손잡아 주실 수 있는 탕감복귀원리때문에 이러한 분립의 노정은 필연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길은 절대 자기를 부정하고 믿을 수 없는 것도 믿고 가야 하는 이해 못 할 노정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버님도 형진님도 이러한 분립섭리의 원칙에 의해 우리가 쉽게 믿을 수 없는 분립섭리를 하십니다.
하늘이 보내주신 메시아를 절대 믿는 믿음, 절대신앙이 없으면 결코 사탄을 분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늘이 세워주신 분이 비록 믿을 수 없더라도 절대 믿고 절대사랑하고 절대복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보내주신 메시아는 인류를 구원해주기 위해 이렇게 분립섭리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자기 중심한 사고와 잣대로 하늘이 세워주신 분들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며 멸망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자기도 메시아가 되는 것 마냥 남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자들을 보게 됩니다.
이는 바로 자기 파멸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타락인간의 원죄까지 사해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립을 위한 섭리를 하실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이 남을 비판하고 비난하게 되면 이는 바로 사탄의 혈통임을 증거하는 행위가 되고,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점점 사탄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을 하지 말라고 하셨고, 아버님 역시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길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상대방의 원죄를 사해줄 수 없으면 그를 비판하거나 책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탄의 덫에 걸리지 않게 죄악을 갈라 세우는 일만 하면 됩니다.
죄악을 분립하지 못하고서는 내가 하늘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바로 죄악을 분립해주는 말씀을 주어, 스스로 사탄의 덫과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깨우쳐주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은 죄악을 분립하게 하여 사탄의 덫에서 빠져나와 하늘길을 잘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비판은 상대를 죽일뿐 아니라 나까지 죽이는 사약입니다.
분립은 살려주기 위한 것이요, 비판은 죽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