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용서
인간은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로는 내 죄를 예수님이 대속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죄를 탕감하지 않고서는 완전 구원이 되지 않기 때문에 탕감복귀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는 반드시 자기가 탕감을 치러 그
댓가를 지불해야만 구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혈통적으로
원죄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류 중에 이 원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시려고 그토록
피어린 투쟁을 하신 것도 바로 인류를 원죄로부터 구원해주시고 싶은 간절한 심정에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심정과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문제는 자신의 죄를 모르는데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 모르는데 과연 죄 의식이 있고 용서를
구할까요?
죄없는 자가 어떻게 용서를 간구할
것입니까?
자기 죄를 알고 탕감을 통해 그 죄값을 치러야만 완전 구원에
이를 수 있는데,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또 짓고 있는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면 당연히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사랑의 하나님이시더라도 용서를 간구하지 않는
죄인까지 용서하고 사랑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무지에는 완성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죄에서 해방 받으려면 내가 지은 죄를
알아야 하는데 죄에서 무지하니 죄를 청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사탄의 자식이 되어서 사탄의 욕망 권세를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6000년이나 타락한 세계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론적으로 원죄를 지닌 나이다 하고 말씀을
통해 배우지만 그것이 피부에 와 닿지도 않고 심정적으로 느끼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 원죄를 내 마음 속에 인정하고 피부로 느끼는 사람은 지극히
적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부자지 관계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서
사탄주권하에 타락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지옥가운데 몰아넣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핍박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무저갱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타락권에서 타락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자체가 부모이신 하나님을 사망가운데 몰아넣는 엄중한 죄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하나님을 해방 석방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자기의 원죄를 깨닫고 느끼고 심정적으로 체휼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 원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축복이란 의식을 통해서 원죄를 청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죄를 깨닫고 실감하여 심정적으로 청산의 길을 가지 못한다면
이 또한 완전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아담으로부터 전해온 유전죄를 청산받으려면 먼저 내가 그러한 원죄를 조상으로부터 전수받아 6000년간 하나님의 심정을 짓밟고 죽음의 길로 몰아넣은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용서를 간구해야 합니다.
인류가 사탄주권하에
빠져 하나님을 부정하고 한 맺히게 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용서를 간구하게 될 때 비로소 6000년간 인류가 하나님께 지은 연대죄를 청산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6000년간 우리 인류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습니까?
죽어버린 우리를 살려주기 위해 보내주신 당신의 아들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또다시 살려주시기 위해 재림 메시아,
아버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지만 더욱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7번이나 옥고를
치르며 죽음의 길에 내몰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한 번 십자가에
달아서 죽였지만 제 3 이스라엘 민족은 수없이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시면서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몸부림치셨습니다,
끝까지 당신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아들까지
제물로 내어주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몸부림치셨습니다.
희진님이 제물되실
때 당신의 심정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효진님이 제물되실 때 당신의
심정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흥진님이 제물되실 때 당신의 심정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영진님이 제물되실 때 당신의 심정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신길님이 제물되실 때 당신의 심정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죄없는 당신이 죄 많은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당신은 당신을 십자가에 달고 또 달았습니다.
그래도
회개할 줄 모르고 반성하고 죄를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 때문에 당신이 직접 죽음의 길을 가시어 부활 하시었습니다.
왜 실체부활을
하셨습니까?
당신 스스로 더 이상 제물의 길을 가실 수 없으시니 당신의
혈통을 세워서라도 구원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실체부활하신 후 당신의 대신자 상속자를 세우시어 천년을 두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해주시기 위한 구원의 방주를 띄우신 것입니다. 당신의 혈통을
통하여 삼대왕권을 세워주시어 구원의 줄을 놓지 않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혈통마저 거역하고 핍박하고 광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한 파렴치하고
패역무도한 패들이 내가 메시아다 하며 하나님과 아버님의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그 아버님의 간절한 심정을 거역하고 반역하여 또 다시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광야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고는 사탄이 들어갔다고 까지 합니다. 불효자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심판을 면할 수
있으면 하나님은 죽은 것입니다. 아버님은 메시아가 아닙니다.
이렇게
패역무도한 우리를 하나님은 그래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고 하십니다.
이제는 삼대왕권이 가는 길에 하나님과 아버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을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죄를 짓고도 죄를 모르면 어찌 용서를 구할 마음을 품을까요?
죄를 짓고도 죄인줄 모르면 어떻게 회개하고 반성하여 용서를 간구합니까?
용서를 간구하지 않는데도 용서를 해줄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용서하고 싶으십니다. 우리의 죄를 다 씻어주고
싶어하십니다.
하지만 지은 죄를 깨달아 그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간구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사랑의 하나님도 용서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 무지한 인간은 죄 가운데 빠져서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서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용서를 간구하지 않은 자에게는 영원히 용서의 은혜는 없습니다.
죄를 깨달으면 용서의 시작이고, 다시 그런 죄를 반복하지 않으면 용서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