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륜으로 천륜을 재단하면?
하나님은 말씀을 거역하고 죽어버린 아담해와를 더 이상 사랑하시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았습니다.
절대 사랑의 하나님이 왜 자식의 잘못을
덮어주시고 무한한 사랑을 베푸실 수 없었을까요?
세상의 부모도 자기를 죽여서라도 자식의 죄를 대신하고 용서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이 왜 범죄한 아담 해와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내어 쫓았을까요?
하나님은 절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도 절대 사랑이시고 원리도 절대 원리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사랑도 창조원리에 의해 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베푸시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를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섭리는 아담 해와 타락 직후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아담 가정에서부터 복귀섭리를 진행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살려내시기 위해 가인 아벨을 갈라 세워
섭리하셨습니다.
즉 1대에 이루지 못한 이상을 2대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1대에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뜻을
2대를 통해 갈라 세워 분립하는 것이 복귀섭리 역사의 공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리와 성경을 통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가인이 아벨을
쳐죽임으로 말미암아 섭리는 노아로 옮겨 가게 됩니다.
가인 아벨로 분립하여 아담을 용서하고 가인과 아벨 모두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해주려던 하나님의 섭리는, 10대라는 탕감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노아를 찾아 세울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120년간
불변의 심정으로 아담해와가 잘못한 것을 속죄하고 탕감하는 조건을 세웁니다.
방주를 통하여 죄악 세계를 심판하는 분립이 있었습니다. 오직
노아가정만 구원되고 방주에 들어갔던 동물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립 섭리는 이미 복귀섭리의 공식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의 2대를 갈라 세우는 섭리를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바로 셈과 함을 가인과 아벨로 분립하여 섭리를 할 예정이었지만 함의 실수로 그러한
섭리는 출발조차 하지 못 했던 사실을 우리는 이미 공부했습니다.
왜 노아는 벗은 섭리를 하여 차자인 함으로 하여금 실수하게
했을까요?
술 취해 벌거벗고 잠을 자는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준 것이 왜 10대 1600년을 사탄에게 내어주는 결과가
되었을까요?
이는 이미 말씀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함이 인륜, 인정으로 판단하고 행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 노아와
같이 방주를 짓지 않고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 불평했던 함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심정적으로 일체 시키는 조건을 넘어서지 않고는 함은 결코
아벨의 위치에 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인륜을 넘어선 천륜의 섭리에 의해, 함으로 하여금 아버지 노아의 기대를 상속받고
아벨의 자격을 갖추게 하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함은 인간적인 판단, 즉 인륜으로 아버지를 대함으로 10대 1600년과 노아가 120년간 믿음으로
쌓아놓은 모든 것을 사탄에게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함을 저주하였던 것입니다.
함의
실수로 잃어버린 10대를 노아로부터 10대 만에 아브라함을 통해 다시 찾아 세우셨습니다.
갈라 세우는 섭리는 이미 복귀섭리의 공식이기 때문에 아브라함 역시 어김없이 분립하는 섭리를 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비둘기, 양,
암소를 쪼개서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조그마한 비둘기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무시하고 쪼개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잘것없는 조그마한 비둘기를 쪼개지 않음으로 솔개(사탄)는 날아들었고 제물은 사탄이 다 취해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인간적인 안이한 생각으로 작은 비둘기 하나 쪼개지 않아 여태껏 정성 들여온 20대 2000년을 사탄에게 내어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3번째는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복귀원리 때문에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가중된 탕감조건을 세워서라도
아브라함 가정을 통한 섭리를 진행하셨던 것은 원리를 통해 주지하시는 바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고 그 제물을
뜻맞게 드렸을 때 하나님은 이제야라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 가정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는 조건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 위에 40대 만에 드디어 참메시아 예수님이 이 땅에 강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가인 아벨로 갈라
세워 섭리하는 복귀섭리의 공식을 밟아 가셨습니다.
세례요한이 가인으로서 예수님을 받들어 모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까지 해놓고 믿고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낳아주신 마리아 역시 인정적인 입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에 결국 예수님의
입을 통한 하나님의 저주를 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천륜을 받들지 못한 마리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가시게 하는 결정적 요인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가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어가실 수 없으셨던 예수님은 가정을 떠나 어부나 세리와 창기 등을 찾아가
섭리를 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기대를 찾아 세우지 못하시자 결국 당신의 육신을 내어주는 분립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실 수 있는 모든 노력은 다 하셨지만 기대가 되어주어야 할 제자들을 온전히 찾아 세우지 못하자 결국
당신의 몸과 마음을 분립의 제물로 쓰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은 부활하시고, 부활하신 후 따르는 제자들을 데리고 로마를 정복하고
재림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기대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분립 섭리를 하시기 위해 제물이 되시어 천륜을 붙들고 가셨던
것입니다.
아버님은 이러한 예수님의 분립 섭리 위에 오셨기 때문에 언제나 당신은 예수님과 일체 된 섭리노정을 가셨던
것입니다.
당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을 떠나 섭리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감옥에 면회 오신 충모님도 만나지 않고 외면하는 천륜의 길을 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준비된 기독교로부터 외면당하고 거역당하셨습니다. 마치 유대교가 예수님을 배척하고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거역했듯이...
그래서 하나님은 전쟁을 통하여 메시아 아버님을 사망에서 구해 내시고 다시 남한 범내골에서 제자들을 찾아 세워 섭리를
이어가셨던 것입니다. 만약 기독교가 아버님을 영접해서 모셨더라면 한국전쟁은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2차대전을 통해 분립섭리는
이루어졌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 천신만고 끝에 죄악을 갈라 놓고 구원의 방주를 띄우셨습니다. 당신이 찾아 세우신 3제자의 기대 위에
성혼을 하시고 축복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축복은 결국 아벨권을 확대하여 전 세계, 나아가 천주까지 해방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몸부림이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찾아세워놓은 축복가정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사탄이 참소하는 조건이 만들어졌고, 아버님은 그것을 대신
탕감하시고자 당신의 자녀들까지 탕감의 제물로 내어주시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몸부림치셨던 사실을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 왔습니다.
인륜으로 본다면 당연히 자식을 위해 부모가 희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천륜을 위해 인륜을 저버리시고 당신의 자식을 희생의
제물로 바쳐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사탄을 분리하지 않고서는 하늘의 섭리는 이어갈 수 없기에 당신의 제자들 속에 사탄이 침범했을 때는
당신 자체를 분립의 제물, 조건물로 내어놓으시며 하늘의 뜻을 받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모르는 무지한 우리들은 메시아는
당연히 저렇게 사시는 것이구나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영광만 받으셔야 할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 어찌하여 영어살이를 하셔야 하고 당신이
품고 사랑해야 할 자식마저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까? 천륜을 품고 가시는 아버님은 인륜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인륜을 초월하신
것이었습니다.
비록 불신의 불신을 거듭하는 패역무도한 무리들이지만 그들을 구원하셔야만 하나님을 해방 석방하실 수 있는 그 천륜과 심정세계를
아셨기에 당신은 그러한 길을 가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작금은 어떻습니까?
기원절 날을 수년 전에 미리 정해놓으시고
손을 꼽아 기다리셨지만 결국 아버님은 기원절을 맞이하지 못하시고 성화하셨습니다. 이는 통일가 내부에 침범한 사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님은 고육지책으로 당신을 제물로 내어주시고 이를 통해 분립을 통한 섭리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천륜을 품고 사신 아버님,
그래서 당신이 성화하실 때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셨던 것과 똑같이 다 이루었다고 기도하시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육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영적으로나마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분립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아버님 역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분립의 제물로 당신의 실체를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아버님의 차이점이 있다면 예수님은 영적 부활로써 당신의 제자들을 다시 찾아 섭리하셨지만, 아버님은
당신의 실체 자녀 (대신자 상속자)를 통하여 당신의 제자들을 찾아세워 섭리를 진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버님의 피눈물 나는
섭리노정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은 아버님이 세우신 대신자 상속자마저 천정궁에서 내어쫓아 광야로 내몰았습니다.
이에 대신자 상속자이신 왕님은
천륜에 의해 제3이스라엘을 버리실 수밖에 없었고, 아버님을 배신하지 않은 축복가정들을 이끄시고 21세기 로마인 미국에서 천일국 창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섭리에 무지한 자들은 이제 대신자 상속자에게 사탄이 들어갔다, 불효의 극치를 달리는 자라는 등
별의별 비난을 거침없이 쏟아놓고 있습니다. 바로 인륜으로 천륜을 재단하는 무지함을 여지없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셨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탄 마귀의 자식이므로 그 아비 마귀의 행위를 한다고
질타하셨습니다. 하지만 천륜을 모르는 유대교도들은 인륜의 눈으로 참람하다고 되받아쳤습니다.
지금 아버님께서 당신의 대신자 상속자를
통해 제3이스라엘은 심판을 면치 못한다고 하십니다. 사탄 마귀의 침범을 당해 당신을 배신하고 거역한 천륜을 거스른 패역한 무리들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역시 인륜으로 참람하다고 불효자라고 되받아 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깨닫고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더 이상 아버님을 십자가에 달지 말고 아버님을 내 가정에서 모시어 갈기갈기 찢어진 그 옥체를 치료하고 뼈저린 심정을
어루만져드리며 속죄의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우리의 회개의 눈물이 강을 이뤄 홍수가 되게 하여 우리 자신을 심판하지 않으면 결코 그 죄를 씻을
수 없고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천륜을 저버리고서는 아무리 인륜을 강조해도 하나님 앞에는 심판의 대상밖에 될 수 없음을 우리는 복귀섭리 역사를
통해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인륜으로 천륜을 재단하면 하늘은 탄식할 수밖에 없고 그런 자는
심판을 받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속에 던져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