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g1800님 댓글에 대한 답글
chung1800님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포용도 용서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섭리적 반역자는 가인의 자격을 가진 자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이삭이 이스마엘을 품어야 한다' 고 하시지만 이삭은 이스마엘을 품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이스마엘과 아벨 가인의 복귀섭리를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사라가 이삭이 13살즈음 이미 이스마엘과 하갈을 쫓아내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비둘기 쪼개지 않은 제물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가 사라가 이스마엘(가인)을 쫓아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집 490권 81-82쪽 말씀 참조)
때문에 '이삭이 이스마엘을 품어야 한다' 고 이해하신 것은 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초교파 운동은 기독교 목사들을 중심으로 아버님이 메시아이시고 그 메시아를 모시게 하기 위한 중심을 두고 전개한 운동입니다.
결코 기독교인들과 서로 타협점을 찾는 일치 운동이 아니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금의 가정연합과 곽그룹은 이미 참아버님의 자산이 아닙니다.
그 두 집단은 아버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반섭리적 집단이기 때문에 가인 아벨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적 진실과 섭리의 중심은 아버님의 말씀(하나님과 아버님의 뜻)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벨이 가인을 찾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섭리입니다.
하지만 과거 가인의 자리에 있었지만 책임을 못하여 사탄의 수중에 떨어진 가인은 이미 섭리적으로 가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가인을 대해 섭리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제가 글에서 분명 밝혔습니다.
2000년전 하나님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아벨과 가인의 입장에 세워 섭리하셨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고도 믿고 따르지 않았을 때는 예수님은 당신이 세례 요한의 입장에 내려 가셔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신 통탄의 섭리역사를 익히 배워온 우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신하는 세례 요한과 어떠한 화해의 노력, 즉 님이 주장하시는 아벨(예수님)이 가인(세례 요한)을 찾아가는 섭리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잘못했으니 스스로 책임지고 벌 받아야 할것"이라는 태도는 섭리를 연장시킨 원인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얼핏 듣기에는 좋은 말씀 같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신 탕감복귀섭리를 잘 되새겨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섭리는 세워주신 중심을 받들고 모시지 않은 자들에 의해 연장된 것으로 압니다.
즉 하늘이 세워주신 아벨적 중심인물을 가인적 인물이 애중굴통하지 않아서 연장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세운 중심인물 자체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에도 연장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비둘기 쪼개지 않은 제물 실수와 모세의 반석 2타 같은 경우지요.
중심인물 자체가 잘못하여 섭리가 연장된 경우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중심인물이 책임을 못한 것이지 결코 가인과의 관계에서 잘못해서 섭리가 연장된 섭리적 사례는 보지 못했습니다.
2대왕님은 섭리의 중심이라고 자처하시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세워주셨기 때문에 그 섭리를 최선을 다해 받드는 것 뿐으로 알고 있습니다.(2대왕님 말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섭리의 중심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섭리의 중심을 모시고 따르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섭리적 길이므로 그렇게 하기를 애쓰고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도 권유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결론적으로
섭리적 아벨은 섭리적 가인과 화해운동을 하시지 섭리의 반역자, 거역자로 사탄의 하수인이 된 자들과는 결코 화해와 일치 운동을 하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대신자 상속자이신 2대왕님은 기독교를 가인으로 세워 섭리를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섭리에 반역과 거역으로 사탄의 하수인이 된 자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본래의 위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상 저의 견해로 답변을 대신합니다.
<말씀>
그렇기 때문에 제일 비참한
저변에서부터 하늘은 복귀의 기반을 닦아 왔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랬는데, 하갈이 낳은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이삭이 태어날 때 몇 살이었느냐 하면 열 세 살 때였어요, 열 세 살 때. 그러니 이것을 미워해 가지고, 사라가 미워해 가지고 쫓아내
버린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돼요.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형님과 형님의 아들딸로서 인정하고 하나됐더라면 어떻게 됐겠어요? 하나됐더라면
아브라함이 제물 드리는 데 실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거예요. 역사가 탕감복귀의 길을, 신앙 길을 개척하려면 그것을 그 현재의 입장에 서 가지고
타락하던 현상과 일치될 수 있는 기준에서부터 분별해 나오던 복귀역사라는 거예요, 탕감복귀. 알겠어요? (선집 490권
81-82쪽)
<아래 chung1800님 댓글>
매우 섭리적이고 신앙이 깊으신 주장이십니다.
그런데 원리와 말씀은 가인보다 아벨이 너그럽고 포용적으로 가인을 용서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삭이 이스마엘을 품어야 했다고
강조하십니다.
초교파운동을 통해 기독교의 각성과 깨달음에 심혈을
기우리신바 있습니다.
가정연합과 이른바 곽그룹도 참아버님의 큰 자산이요
심혈을 기울여 성취하신 유업이 아닐까요?
그런 유업을 아무런 노력과
대책없이 송두리째 천사장한테 빼앗겨 버림이야말로 하늘의 큰 실패요 아쉬움이라고 이해합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대화는 각자의 자기주장만 반복되리라 짐작합니다.
그러함에도 저들에게
실체적 진실과 섭리의 중심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대화와 설득의 기회는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진행을
볼때 절대적 다수를 찾이하는 가정연합이 대표적인 인사와 논리가 부족해 보임도 뜻있는 통일가의 식구들은 눈치 채리라
봅니다.
주인된 입장. 아벨의 입장에서 화해와 통일을 향한 대화는
적극적이어야 할 겁니다.
"네가 잘못했으니 스스로 책임지고 벌 받아야
할것"이라는 태도는 섭리를 연장시킨 원인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섭리의 중심이라고 자처한다면 참아버님의 섭리적 기반을 회복하는 일이 매우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