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주님의 메시아 섭리 노정
재림주님이 메시아로 섭리하시려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로 세례 요한적 사명을 하는 분들이 재림주님의 길을 곧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메시아로 출발하는 기대가 없을 때는 진정한 메시아로 사명을 하실 수 없는 것이 섭리의 원칙입니다.
초림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실 때에 그 메시아의 길을 곧게 하는 세례 요한(엘리야의 사명자)을 먼저 보내 섭리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만 하고 모시고 따르지 않음으로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원리강론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 요한, 167-180쪽 참조)
마찬가지로 재림주님이 강림하실 때 역시 하나님은 먼저 세례 요한적 사명을 하는 자들을 보내시어 섭리를 하셨습니다.
이에 본인은 재림주님의 메시아 섭리가 왜 지연 되고 어떻게 연기 되었는지에 대해 재림주님의 말씀을 위주로 분석을 해 보도록 합니다.
제1차 재림주님의 메시아 출발 노정
재림주님 역시 탄생하실 때에 하나님은 세례요한 격 사명자를 먼저 보내시어 재림주님의 길을 곧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때에 한 사람 세례 요한의 불신으로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일이 그르쳐졌기 때문에 재림주님 앞에는 여러 세례 요한적 사명자를 세우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동(원산)에서 남자를 중심하고 김예근, 이호빈, 백남주, 황국주, 이용도 등의 여러 세례 요한적 사명을 하는 분들이 재림주님의 메시아 출발 기대를 위한 섭리가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백남주, 이용도, 김백문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평양 철산)에서는 여자를 중심하고 김성도 허호빈 등의 세례 요한적 사명을 하는 분들이 재림주님의 메시아 출발 기대를 위한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재림주님이 탄생하는 시기에 맞춰 동쪽에서 남자 중심의 원산 일대의 신령한 교단과, 서에서 여자 중심의 평양(철산) 일대의 신령한 교단에 세례 요한적 사명을 하는 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동과 서, 남자 여자 중심한 신령한 교단들이 기성 기독교단과 하나되어 재림주님을 영접하여 모셨더라면 재림주님은 고난이 아닌 영광의 주님으로 메시아의 사명을 수행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당시 뜻이 이루어졌더라면 재림주님은 기독교단의 기대 위에서 영국과 미국 기독교단과 연결되어 영국 왕실의 여인과 성혼(어린양잔치)을 이뤄 세계적 기독교 기반을 터로 하여 일사천리로 뜻을 이루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 참조)
그렇게 해서 재림주님은 세계적 기독교 기반 위에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참부모가 되시어 전 인류의 구원섭리를 하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후일 재림주님은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서양 여인과 결혼을 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동서양을 하나로 화합하여야 하는 것임을 표징 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
하지만 기성 기독교단들이 이러한 신령한 교단들을 이단으로 내몰아 핍박함으로 인해 재림주님을 위한 세례 요한적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쓰러져 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1차 출발 노정이 실패로 돌아감으로 인해 인류는 세계적으로 메시아를 위한 재 탕감의 길을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던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적 사탄 분립을 통해 이 땅에 재림주님이 강림하실 수 있었지만 기독교단이 재림주님을 영접하지 않음으로 인해 인류는 또다시 세계적 재 탕감의 길을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재림주님은 세례 요한적 사명을 하는 자들의 증거나 모심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영적으로만 예수님의 지지를 통해 고난의 메시아 노정으로 출발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바로 재림주님이 16세 때 부활절 날 묘두산(평북 정주)에서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영적 메시아의 사명을 출발하실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1935. 4.17. 부활절 새벽)
그렇게 영적으로는 메시아 노정이 출발되었지만 실체적으로는 기대가 없으셨기 때문에 수많은 핍박과 고난 그리고 영어살이를 면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재림주님은 잃어버리신 실체적 메시아 기대를 스스로 찾아 세우기 위해 1941년 4월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으로 유학(와세다(早稻田)대학 부속 와세다 고등공학교 전기공학과)을 가십니다. 3년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최선길 여사와 결혼(어린양잔치)을 하여 실체적 메시아 출발 섭리를 하시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기독교단들의 결사적인 핍박과 모함 속에 실체적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세울 수 없어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내와 가정을 버리고 재림주님의 기대가 되어야 할 세례 요한적 교단을 찾으러 떠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말씀 참조) 일제 치하에서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신 이유도 바로 세례 요한적 사명을 하는 기독교단들의 모심을 받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대표적 수난이 일제 치하에서 1944년 10월-1945년 2월까지 경기도 경찰부에서 수난을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실체적 재림주님의 메시아 출발 노정은 대한민국의 해방 이후로 연기되었던 것입니다.
제2차 재림주님의 메시아 출발 섭리 노정
1945년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이했지만 재림주님은 만세를 부르실 수 없으셨다고 하셨습니다.
해방이 진정한 해방이 아니고 재림주님이 메시아로 대한민국을 하늘의 조국으로 찾아 세우고 전 세계 인류 해방을 위한 날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은 당신의 실체적 메시아 출발의 기반이 되어야 할 세례 요한 교단들을 다시 찾아가는 길을 나섭니다. 또다시 동의 원산과 서의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세례 요한 사명자들을 찾아갑니다.
동에서 남자를 중심한 이용도 목사 대신 세례 요한적 사명을 이어받은 자가 바로 김백문이었습니다.
서에서는 여자를 중심한 김성도 권사 대신 세례 요한적 사명을 이어받은 자가 바로 허호빈(복중교)을 거쳐 박 노파(박을룡=여호와의 부인)였습니다.
재림주님은 메시아 출발 노정 1차 섭리에 실패한 것을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으셔서 탕감하시고 그분들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김백문은 세례 요한처럼 재림주님을 증거하고도 재림주님을 모시고 따르지 않아서 그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허호빈씨(복중교)역시 감옥에서 교류를 시도했으나 재림주님을 받들어 모시는 사명을 외면하고 여호와의 부인(박을용)도 찾아가서 모셨지만 당신을 받아들이고 모시지 않음으로 인해 그 기대 또한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후일 박 노파는 미쳐버리게 되었다고 재림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말씀 참조)
이렇게 김백문과 박을용은 세례 요한처럼 재림주님을 증거하고도 받들어 모시지 않음으로 인해 재림주님은 다른 세례 요한격 사명자를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주님 앞에 세례 요한적 사명을 받은 신령한 교단들은 모두 찾아가서 당신을 모시고 섬기는 사명을 다하도록 애를 쓰셨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당신을 받아들이고 모시지 않음으로 인하여 2차 실체 메시아 출발 섭리도 실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2차 메시아 출발 섭리도 실패로 돌아가자 재림주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듯이 공산 치하의 감옥을 가게 되었습니다. (1948. 5. 20-1950. 10. 14)
그 대표적 감옥은 바로 흥남에 있었는데 비료 공장에서 혹독한 노동을 통해 사람을 죽이는 곳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곳이 바로 비료 공장과 연계된 흥남 감옥이었습니다.
재림주님은 그 감옥에서 실체 메시아로서 사명을 출발하시기 위해 12제자를 전도해서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말씀 참조)
재림주님이 이러한 위기에 몰리자 하나님은 하는 수 없이 재림주님 구출 작전으로 한국 전쟁(6.25 동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역사로 구출되어 나오신 재림주님은 남한으로 내려 오셔서 3차 실체 메시아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 전쟁은 재림주님을 죽음에서 구출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일어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제3차 재림주님의 메시아 출발 노정
1차, 2차를 통해 모든 기독교 교단을 잃어버리신 재림주님은 마지막으로 기독 성도들을 찾아가십니다.
그 대표적 기독 성도들이 바로 이화 여자대학과 연세 대학생 중심으로 섭리를 하신 것입니다.
3차 섭리 때도 기독교단들이 결사적으로 핍박하고 모함하여 재림주님은 또다시 기독 정권(이승만 대통령 시절) 하에서 감옥까지 가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서대문 형무소, 1955년 7월 4일에 연행되시어 3개월간 감옥 생활하시다 무죄로 석방되심)
하지만 무죄로 풀려나신 재림주님은 천신만고 끝에 어린양잔치에 성공한 입장에서 참부모로 출발하시는 쾌거를 이룩하게 됩니다.
그 기독 성도 중에 재림주님의 영적 신부 입장으로 찾아 세운 분이 바로 최원복 선생이었습니다.
그분의 기대 위에 1960년 3월 한학자 여성을 신부를 맞이하여 성혼(어린양잔치)을 하심으로써 재림주님은 인류의 참부모로 실체 메시아 사명을 출발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재림주님은 레아와 같은 부인이 최 선생님이시고 라헬과 같은 분이 한학자 어머님이라고 하셨습니다.말씀 참조)
이렇게 하여 재림주님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체 메시아로서 참부모가 되시어 모든 당신을 믿고 모시는 자들을 하나님 아들딸로 중생 부활시켜주시는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재림주님의 축도 아래 축복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로 중생 부활시키는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이때 재림주님을 믿고 받들었던 기독 성도들이 바로 재림주님께서 처음으로 축복을 베풀어 주신 축복을 받은 36 가정 분들(3시대 12제자를 대표하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단들의 끊임없는 핍박과 이단으로 몰아세움으로 재림주님의 메시아 섭리 노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고 이를 두고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사신 삶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지만 당신은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전 생애를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았던 삶이었던 것입니다.
기독 성도님들이 잘 아시다시피 그 재림주님에 대한 핍박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재림주님의 메시아 섭리 연장 시대
재림주님은 당신 당대에 이 땅에서 실질적인 하나님 왕국을 이루지 못하고 성화하셨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20세 이전에 영국 왕실의 여인과 성혼을 이루어 세계적인 기독교 기반을 중심으로 섭리를 하셨다면 이미 이 땅에는 전 세계적으로 실체적 하나님 왕국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재림주님은 1,2차에 걸쳐 메시아 출발 노정이 연기되었었고 3차에 가까스로 성공하였으나 뜻을 다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재림주님의 기반이 되어 드려야 할 기독교단은 재림주님 90여 성상을 줄기차게 핍박하고 이단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당신 재세시에 하나님 왕국을 창건하시지 못하고 성화하셨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탄의 침범으로 기독교단의 핍박뿐만이 아니라 급기야 재림주님이 손수 세우신 통일교(가정연합)마저 재림주님을 배신하고 심지어 재림주님의 세 번째 부인이었던 한학자 여사에게까지 사탄은 침범하여 재림주님은 결국 기원절을 맞이하지 못하고 성화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왕국은 절대적으로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당신이 제물 되어서라도 섭리를 이어가실 수 있는 기대를 세워 주셨습니다.
재림주님은 이 땅에 영원한 인류 구원의 중심인 메시아의 사명자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재림주님이 이 땅에 천년 동안 살아서 섭리하실 수 있는 천년 왕국의 중심 3대왕권입니다. (이전 기고한 3대왕권 참조)
이렇게 하여 재림주님의 육신은 비록 이 땅에 안 계시지만 당신은 3대왕권을 통하여 성령으로 역사하시며 인류 구원 사업인 실체 메시아 사명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대왕권은 바로 재림주님이 실제 하나님 왕국을 창건하시기 위한 섭리 연장시대의 실체 메시아인 것입니다.
작금의 시대에 절대적으로 3대왕권을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혼(어린 양 잔치)을 하시지 못해 당신의 혈통을 남기실 수 없어서 제자인 베드로에게 그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영적 구원 섭리밖에 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재림주님은 성혼을 이루시어 당신의 혈통을 통해 3대왕권을 세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3대왕권을 통해 천년 동안 사탄 주권과 싸워 승리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창건하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6000년 복귀섭리 역사 이래 최고의 섭리사적 승리가 바로 3대왕권 수립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천천만 영육계 성도 여러분!
재림주님을 영접하지 않고서는 완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제라도 재림주님을 영접하여 받들어 모시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돌아오십시오.
이 시대의 재림주님, 실체 메시아는 바로 3대왕권인 것입니다.
바로 3대왕권을 모시고 받드는 자들만이 어린양잔치에 참예하여 영생에 이를 수 있고 완전 구원의 축복을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 성도님들이 절대적으로 3대왕권을 받들어 모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연관된 글
재림주님은 왜 고난의 길을 가셨나? (재림주님의 메시아 출발 노정 ):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hRP/7
재림주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3대왕권이 광야에 내쫓기신 이유):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hRP/3
삼대왕권이란?: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hRP/2
재림주님은 성육신으로 강림하셨다: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hRP/1
<재림주님 말씀>
혼인잔치, 즉 어린양잔치를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가 누구냐 하면 해와입니다. 타락하기 전 아담 앞에 있었던 그 해와입니다. 예수님은 2차 아담이고,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님은 3차아담입니다. 그래서 3차 아담이 타락하기 전 아담처럼 와서 타락하기 전 해와를 찾아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해와를 찾아서 어린양잔치를 해야 됩니다. 결혼함으로써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선집 36권 264쪽, 70.12.06)
원리의 길을 닦아 나오시기까지의 과정
25세 전후에는 전국에 있는 신령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름 있는 목사, 스님, 역술가 등을 만났습니다. 만나서 그들이 알고 있는 신앙관과 선생님이 알고 있는 신앙관을 비교하면서 이론 토론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목사들을 대해 '타락이 뭐냐?'고 질문하면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타락했느냐 하는 타락의 근원을 몰랐습니다. 근본이 희미한 이런 기반에서 출발한 것은 아무리 과정이 놀랍고 결과가 세계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한 완성의 종착점에 기착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타락의 근원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타락이 어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부 아는 관점에서 수많은 신령한 사람을 만나 봐도 그들은 그것을 다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때가 되지 않았는데 발표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당시는 일제의 탄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가로서 열렬하게 되면 투옥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 교회를 중심삼고 답습하던 한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감옥으로 가고 만주로 도망가고 시베리아로 도망가는 등 각자 신앙의 길을 찾아 자기 고향을 떠나던 시대였습니다. 선생님이 국내에서 신령한 단체들을 찾아다니던 모든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0여년의 역사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에 해방되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25세였습니다. 해방되니까 세계로 퍼졌던 애국지사라는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이른바 일본 계열, 중국 계열, 미국 계열, 소련 계열이 들어온 것입니다. 남들은 모두 해방됐다고 좋아하는데, 선생님은 좋아하지 못했습니다. 손을 들어 만세를 부르고 싶어도 손이 안 올라갔습니다. 입에서 만세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갈 길이 굉장히 어려울 것을 알고 여기에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혼란된 과정을 거치면서 남북이 교차된 싸움판에서 한국의 자주 독립의 한 날을 바라면서 몸부림쳤습니다. 이 한반도가 새로운 총아로 태어나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겪어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에 남북이 교차하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대표한 하나의 선진기지가 되는 양분된 비참한 국가 운명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이것을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그것은 한국 백성이 책임져야 됩니다. 책임지는 데는 장래 한국이 갈 길을 모르는 사람이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역사를 통해 이루어 놓은 한국의 이런 비참상을 수습하는 길이 과거에 있었다면 책임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수습하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 혹은 애국자가 많았지만 수습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반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의(天意)에 의한 섭리사적인 한반도가 어떻다는 걸 아는 선생님으로서는 개척의 일로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집단들의 연합운동이 벌어집니다. 해방 전에 재건파가 나와 교회가 새로 설립되고, 그 다음에 한상동 목사를 중심삼은 고려파가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엔 신령한 집단으로 박동희라는 구약적 에덴복귀파와 김백문이라는 신약적 에덴복귀파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를 중심삼고도 신령한 집단이 나와야 됩니다. 남자가 그러한 입장에 서는 것과 동시에 여자들을 중심삼고 3대 여성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대비하고 그것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해와가 하나님 앞에 먼저 불려져서 여자로서 앞으로 주님이 어떻게 온다는 걸 알고, 이것을 3대에 거쳐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섭리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혼란기에서 여성을 대표한 김성도로부터 허호빈, 박을룡, 3대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 배후에 상대되는 백남주 목사로부터 이용도 목사, 김백문을 거쳐 나왔습니다. 이렇게 남성적 새로운 교파가 생겨난 동시에 여성적 새로운 교파가 생겨났습니다. 거기에 기성 기독교와 기성 국가가 배후가 돼 새로이 나타나는 신령한 모든 단체를 포괄해야 되는데 포괄하지 못했습니다.
평양에서 발행된 신앙생활이라는 잡지를 보면 김인서 장로를 중심삼고 이용도 목사를 핍박했고, 그 가운데 길선주 목사가 나타나 새로운 기독교 부흥을 일으키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를 거치는 와중에서 모든 것을 직시하며 앞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놓고 국가를 넘어 세계적 분야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정리(正理)를 갖추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어려운 환경에 대처하고 극복하면서 주장하는 원리의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지금 돌이켜볼 때 꿈같이 되살아납니다. (선집 211권 135쪽, 90.12.30)
먼저 지하교회를 편답해 신령한 사람들을 모은 이유
선생님의 생애를 중심삼고 볼 때, 해방 이후 스물 다섯 살부터 30대까지―예수님이 30세에 출발한 것과 마찬가지로―섭리의 과정을 갖추어 나아가기 위해 모두 답사했습니다. 지하교회로부터 새로 생겨난 교파까지 모두 답사했습니다.
선생님은 먼저 지하교회를 편답했습니다. 일본에 신사참배한 더럽혀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해방 3년 전부터 그러니까 스물 세 살 때부터 무엇을 시작했느냐 하면, 지하교회 편답을 시작했습니다. '신령한 사람들이 어떠한 길을 가느냐?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이렇게 가야 할 텐데, 이런 준비 단체가 반드시 있어야 될 텐데' 하면서 지하교회를 답사하며 유명하다는 신령한 사람들을 다 만나 보았지만 그들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의 방향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을 중심삼고 있는 정성을 다해 말씀을 전하고 관계를 맺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교회를 찾아가게 되면 신령한 사람들, 그 교회의 책임자는 모르지만 그 교회 신도 가운데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다 선생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거쳐가게 되면, 일주일만 지나면 거기에 있던 신령한 사람들이 선생님 뒤를 따라오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그런 과정을 통해 신령한 교회를 편성하려는 뜻 있는 사람을 모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가르쳐야 할 내용이 뭐냐? 주님은 구름 타고 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을 한 10년쯤 덮어뒀다가 발표했으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선생님을 따라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없고 정면에서 투쟁해야 됩니다. 사탄과 하나님과 서로 대치되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해 선생님이 보이는 기관이 되어 보이지 않는 사탄세계를 대치해서 극복해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집 211권 142쪽, 90.12.30)
새주파를 중심한 하늘의 섭리
지금부터 한 70여년 전에 특별한 은사를 받아 신령역사를 한 집단이 있었는데, 그것이 철산(평안북도 소재)의 새주파입니다. 새 주(主)란 새 주인을 말하는데, 이는 부인을 보고 주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부부, 즉 신랑 신부는 일체입니다. 창조이념으로 볼 때, 부부는 한 몸이 되게 지었기 때문에 일체이념을 중심삼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자리는 창조이념이 이루어진 자리이기 때문에 그 최고의 기준을 중심삼고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랑 신부라고 가르쳐 주고, 주의 아내라고 가르쳐 줍니다. 한 몸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너자 나요, 나자 너라고, 네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한 몸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은 종적이고 땅은 횡적입니다. 종적인 존재가 땅 위에 내려와 있으면 주님은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인 주님은 곧 하늘이요 땅은 부인인데, 부부는 한 몸이니 땅에서 주님이라 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인데도 주님이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그의 아들딸이 잘 받들어 주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런 천적인 책임을 지고 사명을 하는 부인을 그 직계의 아들딸이 받들지 않으면 며느리가 받들어야 됩니다. 그 어머니가 죽으라면 죽고 벌거벗고 춤추라면 춰야 됩니다. 그것은 어머니를 중심삼고 셋이 하나되어 하늘의 명령에 복종하고 순종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며느리든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가 하나되어 하늘 뜻을 받든다면 꺾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산의 새주파를 이끌던 이의 아들이 여기 있는 정석천(鄭錫天) 장로입니다. 그리고 그 딸은 정석온(鄭錫溫)씨입니다. 뜻은 직계로 흘러나오기 때문에 아들을 중심삼고 며느리에게 뜻이 있습니다. 그런 걸 어머니가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천적인 흐름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아들과 며느리가 지성을 다해서 어머니보다 더 충성했다면 절대 안 꺾이는데, 꺾인 것을 보면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그 며느리나 아들을 칩니다. 하나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면 며느리가 먼저 죽었습니다. 며느리가 먼저 죽고 그 다음엔 어머니까지 죽었습니다. 하늘은 그렇게 역사합니다. 그래도 정 장로가 살아 남은 것은 아담을 복귀해야 할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아 있습니다. 아담은 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책임하지 못하면 그들의 사명은 그들을 지성으로 모시던 신도에게로 넘어갑니다. 정씨 가문의 천적(天的)인 공적이 크기에 하늘은 그들을 사랑하고 은사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딸들이 그 뜻을 받들지 못하면 그를 따르던 신도가 인계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몽땅 넘어가게 됩니다. 정씨네 집은 문서장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대(一代)에서 안 되면 삼대(三代)까지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인계받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를 지성껏 모시던 한 부인이었습니다. 그가 허씨(허호빈) 부인입니다.
그 부인은 생활의 전부를 주님을 중심삼고 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맨 처음에 죄를 벗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 다음엔 생활하는 방식을 가르쳐 주고, 주님이 오신 뒤에 자녀를 기르는 방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순서가 그렇습니다. 그 허씨 부인은 주님을 모시고 생활할 수 있는 법도와 전체적인 규례를 세워 준비했습니다. 그것은 해방되기 7년 전부터 준비가 됐어야 합니다. 원래는 해방되기 7년 전부터 그러한 준비를 해서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해방을 중심삼고 재림이념이 출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년 전부터 준비하면서 역사해 내려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계받아 새로운 역사를 해 나가야 합니다. 그때는 한 단계 떨어집니다. 자기가 주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부라 하며 주님을 낳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복중을 통하여 주님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마리아적 사명입니다. 첫번(김성도)은 해와적 사명이요, 그 다음(허호빈)은 마리아적 사명입니다.
마리아적 사명이니 허씨 부인은 예수님을 낳아 기르는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서 지내던 모든 것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30여년을 지내시다가 이 땅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셨으니 그 모든 한을 풀기 위한 일체의 준비, 탕감적인 일체의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씨 부인은 주님이 입을 옷도 만들고 다 준비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한국에 오실 것이고, 어린 아기로 태어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전부 가르쳐 주었습니다. (선집 8권 221쪽, 60.01.06)
재림기의 세례 요한 사명자와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일 믿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자기가 주님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나는 주님의 일등 신부'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더 나아가서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런 신령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한국의 교계를 들춰봤으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선(救援船)이라고 하는 신앙단체에 김예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타락문제에 들어가 원칙적인 것은 모르지만 실과를 따먹은 것이 타락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인계받은 그 사람은 세례 요한적 사명을 띤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사탄을 막아주어야 할 자입니다. 세례 요한이란 존재는 타락한 아담이 되살아난 존재, 즉 사탄의 지배를 받아 떨어졌던 것이 다시 부활한 형태,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아담형입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아담형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탄을 이긴 것을 상속받은 예수님은 사탄의 침범, 사탄의 시험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뜻을 이루려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책임을 감당치 못하니, 세례 요한이 꺾어지니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예수님은 세례 요한 대신 옛날 아담을 꺾은 그 사탄과 역사적인 대결을 하기 위해 나섰는데, 그것이 40일 금식기간의 싸움입니다.
선생님은 스무 살을 넘으면서부터 그런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떠한 길을 통해서라도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장에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축복해 준 것처럼 그 사람들도 선생님에게 축복을 다 해주었습니다. 자기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말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아무 것도 모르는 식구 모양으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세례를 받으러 세례 요한을 찾아갔던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의 모든 기반을 그대로 인계받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봉사자로서 인정받는 수고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6개월 동안 했습니다. 6개월 있는 동안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수제자 전부를 선생님에게 인계해야 할 천적인 사명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내적으로 모모한 인사들 앞에 그런 말을 했고, 또 선생님이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하늘이 그들에게 문선생을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선생이 이러이러한 분인데 하늘이 우리의 선생을 버리고 아무 것도 아닌 저 문선생을 따라가라니 웬말이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번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간을 두고 역사하였으나 그래도 그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선집 8권 226쪽, 60.01.06)
선생님은 또 한 사람의 세례 요한 사명자인 김백문을 1945년 10월에 만났으며, 그 교회에서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봉사하는 동안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김백문보다 문선생을 따르라'는 계시를 받았으나 그들은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김백문은 선생님을 만난 후 6개월만에 계시를 받고 선생님을 '솔로몬 왕과 같은 사명을 받은 분'이라고 축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진정한 뜻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자진해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상봉 후 21개월만에 선생님은 김백문 집단을 나왔습니다.
당시 김백문은 이승만 박사와 가까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세례 요한 입장에 세우고 뜻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원산의 백남주 목사는 스웨덴보르그를 연구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는 계시를 받고 주님의 역사를 하였고, 그 고난을 탕감하기 위하여 철산의 김성도씨를 맨발로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김성도 집단을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에 등록해 주었습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세례 요한 사명자였습니다. 그 뒤로 그 뜻이 이용도, 김백문에게로 옮겨졌습니다.
1월 18일은 선생님 생애에 있어서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날입니다. 그(김백문)가 받건 받지 아니하건 선생님으로서는 충고하여 청산하지 않고는 심정적인 재출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열 여덟 장의 편지를 썼는데, 그것을 다 찢어버린 날이었습니다. 이것을 찢은 후, 선생님은 책임 다한 입장에서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이 날이 없이는 평양에 갈 수 없었습니다. (선집19권 262쪽, 68.02.08)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는 분을 지성껏 모신 선생님
선생님은 '이젠 축복을 받았으니 그 기준을 가지고 신령한 역사를 하는 부인을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부인이다. 누구든지 나한테 굴복해야 구원받는다' 하는 부인을 찾았습니다. 그 부인은 부활한 해와이자 타락 직후의 해와를 대신한 역사를 하기 때문에 두 쪽의 역사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때는 하나님도 들어와 역사하고, 또 한때는 사탄도 들어와 역사하는 완충형(緩衝形)의 실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인을 만나 실체로 대결하여 꺾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인이 있는가 하고 각방(各方)으로 수소문하여 찾아 만날 수 있는 길을 터서 그런 부인을 만났습니다. 남이 믿지 않고 남이 알지 못하는 말을 하는 부인을 찾다가 만나니 참 기뻤습니다. 그 부인은 선생님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사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으로 가서 그분을 만나 정성을 다해 모셨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프로가 어떻게 돌아 어떻게 귀결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던 선생님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삼척동자처럼 그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속옷까지 다 빨아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가서 모신 그 할머니는 철딱서니가 없어서 이랬다 저랬다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것이 있으면 모두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건 그렇게 돼 있습니다. 탕감복귀시대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만물복귀를 흉내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같이 모셨습니다. 그곳에 모이는 식구들은 그 할머니가 상대해 주지 않으니까 선생님을 보고 모였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 할머니를 지성껏 모셨습니다. 왜 모셨느냐? 하늘 것은 하늘 것으로, 사탄 것은 사탄 것으로 갈라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갈라놓지 않으면 복귀의 기준을 세울 수 없었으므로 절대복종하고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잡기 위해 지금까지 어떻게 해 나왔느냐? 사탄에게 복종하면서 잡아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습니다. 선생님은 21개월 이상 기간을 정해 놓고 순종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러면 그만큼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두 가지가 역사하는데, 반드시 사탄이 먼저 와서 역사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갔을 때, 선생님을 원수시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벌써 그럴 줄 알고 있었기에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머리를 숙였습니다. 밟고 책망하더라도 세 번 이상 순종하면 사탄이 밟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실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때 빼앗는 것입니다. 천대를 받으면서도 순종하고 모시면 하늘의 끄트머리 천사장으로 축복해 줍니다. 그러면 '옳지 되는구나' 하고 올라갑니다. 탕감복귀 원칙대로 무엇 무엇해 가지고 단계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이 사람은 천상천하의 누구라고 증거하게 돼 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섬겨라!' 할 수 있습니다. (선집 8권 227쪽, 60.01.06)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하신 선생님
그 할머니는 앞으로 하나님이 축복할 자녀가 자기 아들딸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아들딸이 많았습니다. 아담부터 노아 때까지 10대형의 아들딸이 있었습니다. 원래 가정적인 출발을 하려면 그 10대형을 갖추어야 됩니다. 열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할머니는 하나님이 자기의 열 아들딸을 제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은 그 아들딸까지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가 축복해줄 때까지 그 할머니와 아들딸까지도 모셨습니다. 참고 어머니같이 모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말씀하시는 것이 옳고 말고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딸이고 말고요' 하며 모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할머니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나는 누구고, 그대는 누구니 복귀의 한을 풀려는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하시오'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부인인데' 하는 판국에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수 있던 젊은 청년이 그러고 나서니 어땠겠습니까? 거기에서 그 할머니가 순종했다면 선생님도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해야 되는데 그것이 제일 힘듭니다. 거기서 천명이면 천명 다 꺾여 나갑니다. 굴복하지 않고 반대한 그 시간부터 그 할머니는 정신이 돌아버렸습니다. 하늘의 복을 다 빼앗고 사탄은 사탄대로 갈라졌습니다. 그러고 나니 선생님에게는 하늘의 강도라는 명패가 붙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안팎의 축복기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 가서도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기준이 되기까지 안팎의 영적인 시험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시험까지 있었느냐 하면, 40일의 시험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영계의 모든 영인들이 전부 그 할머니편이 되어 선생님을 몰아쳤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선생님한테 와서 빌면서 '그 할머니는 여호와의 부인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이니 제발 모셔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천리의 원칙을 가지고 그들과 싸웠습니다. 선생님은 혼자 수많은 영계의 도인들, 예수님과 하나님까지 동원된 전 영계와 40일간 싸웠습니다. 싸움판의 천지로 만들 수 없기에 하나님은 40일의 기간이 차면 비로소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천리의 원칙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선생님이 찾아 나온 이 길은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이하 수많은 영인들이 역적으로 몰고 반대하던 문(文)이라는 사람의 주장이 복귀의 한을 푸는 원칙이요, 천륜의 비결 중의 비결이란 판결을 받아 승리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판결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과도 싸웠고 하나님과도 싸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기준하에서 역사적인 귀결을 지어 천지의 모든 기준을 종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었던 연고로 선생님은 이런 내용을 어느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한테도 이야기 못했고 식구들한테도 이야기 못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또 이것을 전개시키기 위한 복잡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스물 일곱 살에 평양에 가서 지금 말한 이런 역사를 거쳐 이 길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오는 데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내적인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보기엔 선생님이 편안한 것 같아 보일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자기들 사정을 다 하늘 앞에 고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이러고 저러고 할 수 없는 비밀의 내용을 갖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선집 8권 229쪽, 60.01.06)
메시아는 참부모로 와야 된다
우리의 소원이 뭐냐?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요 아담 해와는 횡적인 부모인데, 종횡의 부모가 하나되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된 것이 한입니다. 그런 사랑을 한번 받아 보았으면 하는 열망을 우리는 다 갖고 있습니다. 종교니 무엇이니 하는 것도 전부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종적인 하나님과 횡적인 면에서 하나되어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이 땅 위에 있었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거짓 부모가 되었습니다. 거짓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부모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역사적 사명을 대행하는 하나의 명사를 씌워 부르는 존재가 구주입니다. 메시아라는 존재입니다. 구해 주는 데는 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랑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려면 메시아는 틀림없이 참된 부모로 와야 됩니다. 참부모로 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된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로 나와야 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하나의 남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남자 중에서도 생활을 잘하는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유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고, 영계를 위주한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뭐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사랑하는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나는 독생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독생자가 나왔는데, 독생자 혼자서는 안 됩니다. 독생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독생녀를 찾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서로 좋아하는 자리에서 결혼해야 됩니다. 결혼해서 하나님이 종적인 부모로서 기뻐하고 독생자 독생녀는 횡적인 부모로서 기뻐할 수 있는 신랑 신부가 되어 지상에서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종자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할 수 없이 이스라엘 나라를 저버리더라도, 유대교를 저버리더라도 제일 필요로 했던, 다시 찾아야 하는 주체적 동기가 여자입니다. 남자 앞에 여자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 가면서도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2천년 동안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기독교 신자들이 신부되겠다고 허덕이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표준이 메시아입니다. 참된 부모의 자리를 갖다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6천년 전 인간이 횡적인 부모로서 하나님을 종적인 부모로 모심으로써 종횡의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기쁨의 출발을 볼 수 있었던 기원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침범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빼서 접붙여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돌감람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받아 접붙여야 됩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접붙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사상입니다. 그래서 신랑 신부의 혼인 잔치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집 58권 218쪽, 72.06.11)
선생님이 뜻을 위해서 배낭을 메고 처자를 떠나 눈물을 흘리며 북한으로 향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오냐, 6천년 섭리역사가 이렇듯 슬픔의 역사로 남아져 온 것을 알았으니, 그 해원을 위해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리하여 다 싫다는 북한 땅을 향하여 떠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방을 그리워하면서 통곡하며 절규하던 그 사나이가 해방된 이 땅 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녘 땅을 향하여 발걸음을 돌이키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남아 달라'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삼팔선을 넘어설 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했던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하나도 죽지 말고, 하나도 망하지 말고, 하나도 배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동지들과 신도들에게 부탁했지만 선생님이 가고 난 후에 모두 선생님을 원망했고, 떠나갔습니다. 남한 땅에 다시 돌아 왔을 때 선생님을 원망하고 배반한 그 무리들에게 아직도 하늘의 슬픈 역사의 사연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연을 나누고자 찾아갔습니다. 그때는 명주바지가 누더기가 되어 선생님이 보기에도 형편없는 거지 중의 상거지 모습이었습니다. (선집 22권 125쪽, 69.02.02)
배반당하고 몰림받은 지난날
북한 땅에 가기 전에 인연되었던 어떤 집을 찾아 들어가니 세 모녀가 선생님 면전에서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말려도 가더니 결국은 거지 모양이 되어 찾아 왔구만 하면서 서로 눈짓하면서 비웃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집을 찾아간 것은 밥이 그리워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같이 눈물을 흘렸고 같이 사연을 나누었던 하늘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인연을 거룩하게 심었으니 심은 것을 거룩하게 거두어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맞이했더라면 선생님이 북한에 가서 한 일들을 얘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그들과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그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선생님이 그 누구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동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해서 회사를 설립했는데, 장안에서 이름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 얼굴도 씻지 않고 이도 닦지 않은 상거지의 모습을 해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나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선생님을 배신했습니다. 선생님은 대개 어떤 사람을 찾아갈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갑니다. 그때도 틀림없이 넌 이렇게 대할 것이다 예상하고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아갈 때 아예 하룻밤을 지내고 오기 위해 오후 늦게 상거지 모습으로 찾아갔는데, 그가 없어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저녁 7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해가 진 다음에 저녁밥을 먹고 기다렸는데, 늦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에게 언짢은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나이는 동지 앞에서 몰리고 쫓겨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부모 앞에도 몰렸고 민족 앞에도 몰렸습니다. 선생님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몰다가는 걸려 넘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는 '그동안 염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그저 도의적인 입장에서 얘기했을 뿐입니다. 선생님은 그때 내복도 안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방에 이불 한 채를 내주면서 어쨌거나 왔으니 덮고 자라고 했지만, 이불을 덮지 않고 그냥 그대로 그 옷을 입고 잤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거기에서 그를 염려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을 박대하면 그가 7개월 이내에 어떻게 될 것인지 선생님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염려하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집을 기쁜 표정을 하고 들어갔다가 기쁜 표정을 하고 나왔지만 배후의 하나님은 슬펐던 모양입니다. 그 역시 산산조각으로 다 깨져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별의별 곡절의 노정을 거치면서 먼저 인연되었던 동지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남들 같으면 다시 남한 땅을 찾아 왔으면 처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선생님은 동지부터 찾아갔습니다. 가까운 동지부터 찾기 시작해서 먼 동지까지, 또 북한에서 선생님을 따르던 식구들을 비롯해 선생님과 인연된 동지들을 찾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지승도 할머니는 그것을 압니다. 내 처자가 어디에 있는 지도 알았지만 동지들을 모두 찾기 전에는 편지조차 할 수 없는 천적인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자취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다 찾은 후에야, 찾고 찾아 그들을 다 만난 후에야 집으로 연락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목석 같은 사나이가 아닙니다. 정적인 사람이요, 눈물 많은 사람이요, 동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짓궂은 친구와 싸우다가도 그 친구의 옷이 찢어지면 선생님의 옷을 벗어 입히고서야 돌아서던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악은 악대로 처리하면서도 그 처량한 신세는 동정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천정입니다. (선집 22권 127쪽, 69.02.02)
이화여대 사건 때 김활란과 박마리아가 주동이 되어 경무대에 가서 거짓 증거로 4개 부처장관을 움직여서 통일교회를 없애고 선생님을 완전히 매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안 죽었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어떠한 일이 부닥쳐 오더라도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1955년도에 7․4사건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원숭이띠라서 감옥살이를 많이 하는지 모르지만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서대문 형무소 소장이 기독교인이었는데, 대뜸 '네가 문 아무갠가? 한 달간 구류다, 이 자식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에게 농담삼아 한마디했습니다. '이 자식이 뭐야? 당신은 이런 것을 해 먹었지' 하면서 비리를 이야기하니까 가슴이 찔렸는지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식아, 가만히 있어'라고 했습니다.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이 선생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서는 그렇게 못되게 굴던 형무관들을 선생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듣게 만들었습니다. 물을 갖다 달라 하면 떠 올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때려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선집 22권 129쪽, 69.02.02)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던 동기
이 길을 닦아 나오는 데 있어서 아내와 친척들과 동지까지 반대했지만, 선생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님만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던, 사탄세계에 대한 하나의 기점과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는 '저 아들이 악한 자식이 아니다. 아무리 욕을 먹고 핍박을 받으며 살더라도 죄를 짓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남다른 사상과 심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러는 것이지, 절대 나쁜 마음에서 저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가 그러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형님이 그러했고, 철모르는 누이동생들도 우리 오빠는 훌륭한 오빠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전부 반대했지만 가정적 전통만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선생님을 원수와 같이 취급했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신세였지만 배후에 부모 형님 누이동생의 심정적 사위기대의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에 이 험악한 세상에서도 지금까지 남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예수님보다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부모가 그렇게 해 주지를 못했고, 동생이 그렇게 대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고도 가족들에게 통고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하는 일에 대해 오해하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저는 예수보다도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반대하는 민족에 대한 마음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모가 있고 선조가 있기에 이 배달민족과 삼천리 강토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마음을 갖고 소망의 민족, 소망의 나라를 꿈꾸면서 지금까지 참아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수십 성상의 복귀노정을 걸어오기 전부터 하나님이 먼저 그러한 역사노정을 걸어왔기 때문에 선생님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었고,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없었으며, 처자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아들인 성진이는 스물 세 살이 되도록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선생님이 누구만큼 못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적 인연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3년 전 그 어린 핏덩이와 어머니를 남겨 놓고 북한으로 가기 위해 문을 닫고 나설 때, 그 어머니에게 어디 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 하는 심정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라고 믿고 떠났던 것을 그는 몰랐을 것입니다.
만일 그때 기독교가 환영하였더라면 아버지 어머니는 슬픈 아버지 어머니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받들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국의 운명도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통일교회와 하나되었더라면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세계의 사조가 한국에 상륙하여 맞부딪치는 정세 하에서 피폐한 이 민족으로부터 비판받는 기독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계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놓는 데 있어서는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고 각국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기독교인들은 천륜의 사명과 천도가 어떻다고 제시할 수 있는 세계적 발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를 놓침으로써 원수의 세계에 가서 다시 찾아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는 데 21년 걸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민족과 나라를 배후에 두고 원수의 땅을 먼저 거쳐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반대함으로써 원수의 나라인 애급땅을 찾아갔던 것과 같이 그러한 비운의 발걸음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선집 22권 133쪽, 69.02.02)
흥남감옥에 가서 공산 치하의 모진 압제와 학대를 받게 된 것도 천 명을 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총칼 앞에서도 옥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사람을 찾게 해줬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영계의 영인들이 전도해 가지고 선생님을 따르게 했습니다. 공산당들이 감방에 첩보원을 배치해서 정보 수집을 하고 있던 판국이 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자기 선조들이 직접 나타나 가지고 전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12제자 이상의 제자들을 감옥에서 찾았습니다. (선집 23권 288~289쪽, 1969.6.8)
최 선생은 마리아와 예수의 부인격인 동시에 레아의 입장이다. 고로 선생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또한 장성기 완성급까지 복귀해야 할 타락한 어머니 형(型)이다. 완성기는 타락 인간의 심정으로는 안 되므로 완성기에 도달하려면 어머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 때문에 어머님도 고민했고 선생님 가정에서 혜진 아기가 탕감되어 진 것이다.(선집 24권 242쪽)
재림역사를 준비하는 한국의 신령역사
<말씀 요지>
한국을 지세로 보면, 해가 돋는 동쪽은 남성을 의미하고 해가 지는 서쪽은 여성을 의미한다. 재림역사는 부인의 역사로 시작되어야 한다. 더구나 한국은 여신을 숭배하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여성이 역사를 먼저 일으켜야 했다. 한국에서 부인으로서 역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 김성도인데, 이것을 소생으로 하여 허호빈을 거쳐 박 노파로 이어졌다. 특히 이 부인들 중 김성도는 처음으로 복귀라는 말을 썼고 타락의 근본과 예수님의 억울한 죽음, 그리고 예수님의 육신 재림을 제일 먼저 말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명과 신부의 사명을 다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동쪽 지방에서는 이용도, 황국주, 백남주 등 3인의 역사가 있었다. 백남주는 김성도에게 맨발로 찾아와 절하고 종의 입장에서 섬겨 올라와야 했다. 복귀시대이기 때문에 남자가 먼저 여자를 찾아와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1920년 이후 내적 역사에 따라 신사참배에 대항하는 남녀의 외적인 신령역사가 일어났다. 이때 만약 그들이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선생님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신앙의 조국으로서 사탄세계에 대한 승리의 기대를 세워야 한다. 해방되던 해가 선생님이 26세 되는 해이다. (선집 13권 128쪽)
지하 종단들, 그 다음에 박동기 패, 김백문 패예요. 박동기 패는 구약 에덴복귀파요, 김백 문 패는 신약 에덴복귀파요, 해와복귀 패가 정석천의 어머니 패예요. 천사장 대신 해와를 찾아간 것이 백남주예요. 백남주가 원산에서부터…. 정수원 왔나?「아직 미국에 있습니다.」 백남주가 맨 발로 태백산맥을 넘어서 용천 철산 가운데 있는 김성도를 찾아간 거예요. 김성도 할머니가 본처가 아니에요. 재취 자리예요. 아마 결혼하기 전에는 이혼한 것같이 갈라져서 쫓겨나 가지고 같이 안 살면서 결혼해 가지고 산 거예요. 첩과 마찬가지라구요. 전부 다 원리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요. (선집 420권 92쪽)
기독교를 통해 2천 년 동안 재림주가 올 수 있게 했기 때문에,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고 2차 대전 직후에 기독교와 미국을 중심삼은 승리적 기반 위에 선생님이 섰더라면, 선생님이 고생하겠어요? 그때 선생님을 받들었으면 어머니는 누가 되었겠어요? 성진이 어머니가 안 된다면 누가 되겠어요? 영국 여자입니다.
뜻적으로는 영국 여자입니다. 영국 왕궁이 선생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겁니다. 그거 기독교문화권 아니예요? 미국은 영국이 낳아 준 겁니다. 그래서 이박사가 왜 서양 여자를 얻었느냐 하면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반대함으로써 우리 어머니가 복 받았습니다. (천성경 1155쪽, 선집 181권 217쪽)
그러기에 천의(天意)에 의한 섭리사적인 한반도가 어떻다는 걸 아는 선생님으로서는 개척의 일로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집단들의 연합운동이 벌어집니다. 해방 전에 재건파가 나와 교회가 새로 설립되고, 그 다음에 한상동 목사를 중심삼은 고려파가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엔 신령한 집단으로 박동희라는 구약적 에덴복귀파와 김백문이라는 신약적 에덴복귀파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를 중심삼고도 신령한 집단이 나와야 됩니다. 남자가 그러한 입장에 서는 것과 동시에 여자들을 중심삼고 3대 여성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대비하고 그것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해와가 하나님 앞에 먼저 불려져서 여자로서 앞으로 주님이 어떻게 온다는 걸 알고, 이것을 3대에 거쳐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섭리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혼란기에서 여성을 대표한 김성도로부터 허호빈, 박을룡, 3대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 배후에 상대되는 백남주 목사로부터 이용도 목사, 김백문을 거쳐 나왔습니다. 이렇게 남성적 새로운 교파가 생겨난 동시에 여성적 새로운 교파가 생겨났습니다. 거기에 기성 기독교와 기성 국가가 배후가 돼 새로이 나타나는 신령한 모든 단체를 포괄해야 되는데 포괄하지 못했습니다.
평양에서 발행된 신앙생활이라는 잡지를 보면 김인서 장로를 중심삼고 이용도 목사를 핍박했고, 그 가운데 길선주 목사가 나타나 새로운 기독교 부흥을 일으키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를 거치는 와중에서 모든 것을 직시하며 앞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놓고 국가를 넘어 세계적 분야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정리(正理)를 갖추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어려운 환경에 대처하고 극복하면서 주장하는 원리의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지금 돌이켜볼 때 꿈같이 되살아납니다. (선집 211권 135쪽, 90.12.30)
재림기에 있어서 세례 요한적 사명의 생활과 우리의 각오
<말 씀> (앞부분은 녹음이 안 되어 수록 못 함) 부인들이 하늘의 발판이 돼 나왔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예수를 신봉하는 부인들이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는 과정에서 많이 희생돼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가까이 접근해 들어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부인들이 개척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인의 종교입니다. 남자들은 천사장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은 부인들을 몽둥이질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따라 나왔던 것입니다. 기독교를 통한 복귀섭리의 양상 전세계 기독교인들을 비율로 따져 보더라도 5분의 3 이상이 부인들입니다. 그 부인들이 지금까지 천적인 사명을 수행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늘도 부인들을 상대로 많은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역사하는 데도 똑똑하고 잘난 부인을 세워서 한 것이 아니라 제일 밑창에서부터, 거지판에서부터 복귀역사를 시작해 나왔습니다. 불쌍한 여성들로부터 시작하여 다리를 놓고, 그 사람들이 사명을 다하면 또 시기 시기마다 다른 사람을 세워 점점 다리를 놓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최후에는 여성을 대표해서 세계적으로 내세워도 손색없는 최고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그런 자리까 지, 끝에서부터 끝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이런 노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적인 섭리의 원칙으로 돼 있습니다. (선집 12권 121-220쪽,1960년 1월 6일(水), 전 본부교회)
여성을 중심한 섭리는 김성도, 허호빈,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박 노파로 이어졌고, 남성을 중심삼은 섭리는 이용도, 백남주, 김백문으로 이어졌다. 김인서가 신앙잡지를 통하여 이용도 목사를 매장했다. 이용도 목사는 새 예수교를 창립하여 에덴 복귀역사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모란봉에서 기도 해 온 것에 이은 것이었다. 이용도 목사는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선집 23권 248쪽)
선생님은 수많은 교파의 신령한 사람들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길선주 목사나 이용도 목사의 역사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시대의 어떤 사명자로 왔느냐 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 사람들의 사명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이것을 인계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인계하는 데는 남자가 남자에게 인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를 통해서 인계해야 합니다. 또 여자도 여자에게 인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를 통해서 인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교체되면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다 나은 심정의 인연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자면 여자 혼자서 남자를 주관하고, 남자면 남자 혼자서 여자를 주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공통적으로 보다 심정적인 일치점을 찾아야 완전한 효자와 완전한 효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선집 33권 137쪽)
섭리는 한국이 제3이스라엘로 책정되었던 구체적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내용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30년대를 전후하여 신령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때에 대표적으로 하늘의 불을 갖고 왔던 사람이 이용도 목사 같은 양반들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그를 이단으로 규탄하여 추방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교단적 세례 요한이 나오는 동시에 해와적 교단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때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주님파라고 해 가지고 부인교단이 나오는 것입니다. 철산의 김성도를 중심삼고 복중교 허호빈이 연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천사장 패와 해와 패가 하나가 되고, 기성교회―기성교회는 민주세계와 연락되는 거예요.―와 민주세계가 하나되어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맞았으면 공산권은 벌써 다 없어졌을 것입니다. 세계는 벌써 하나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선집 50권 206-207)
1933년, 34년 때에 돌아갔어요. 선생님이 열 네 살, 열 다섯 살 때 예요. 원산에서 돌아갔다구요. 그 역사를 전부 다 탕감하고 말이에요. 이용도 목사가 돌아갈 때에 선생님을 찾아온 신령한 할머니가 있었어 요. 원산에서 돌아갔는데, 평양에서 자기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 가지고 빈소를 만들어서 축수했다는 간증을 내가 들었어요. 이 땅 위에 와 가 지고 예수 대신 희생해 간 사람이라구요. (선집 360권 282쪽)
지하 종단들, 그 다음에 박동기 패, 김백문 패예요. 박동기 패는 구약 에덴복귀파요, 김백문 패는 신약 에덴복귀파요, 해와복귀 패가 정석천의 어머니 패예요. 천사장 대신 해와를 찾아간 것이 백남주예요. 백남주가 원산에서부터…. 정수원 왔나?「아직 미국에 있습니다.」 백남주가 맨 발로 태백산맥을 넘어서 용천 철산 가운데 있는 김성도를 찾아간 거예요. 김성도 할머니가 본처가 아니에요. 재취 자리예요. 아마 결혼하기 전에는 이혼한 것같이 갈라져서 쫓겨나 가지고 같이 안 살면서 결혼해 가지고 산 거예요. 첩과 마찬가지라구요. 전부 다 원리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요. (선집 420권 92쪽)
재림기의 세례 요한 사명자와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일 믿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자기가 주님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나는 주님의 일등 신부'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더 나아가서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런 신령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한국의 교계를 들춰봤으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선(救援船)이라고 하는 신앙단체에 김예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타락문제에 들어가 원칙적인 것은 모르지만 실과를 따먹은 것이 타락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인계받은 그 사람은 세례 요한적 사명을 띤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선집 19권 262쪽 68.02.08)
여성을 중심한 섭리는 김성도, 허호빈,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박 노파로 이어졌고, 남성을 중심삼은 섭리는 이용도, 백남주, 김백문으로 이어졌다. 김인서가 신앙잡지를 통하여 이용도 목사를 매장했다. 이용도 목사는 새 예수교를 창립하여 에덴 복귀역사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모란봉에서 기도 해 온 것에 이은 것이었다. 이용도 목사는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선집 23권 248쪽)
원산의 백남주 씨는 스웨덴보르그를 연구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서,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는 계시를 받고 주님의 역사를 하였고, 그 고난을 탕감하기 위하여 철산의 김성도 씨(정 장로 모친)를 맨발로 걸어가서 만났고, 김성도 집단을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에 등록을 해 주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세례 요한 사명자였다. 그 뒤로 그 뜻이 이용도, 김 백문에게로 옮겨졌다. 1월 18일은 선생님 생애에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날이다. 그(김백문)가 받건 받지 아니하건 선생님으로서는 충고하여 청산하지 않고는 심정적인 재출발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열 여덟 장의 편지를 썼는데, 이것을 다 찢어 버린 날이었다. 이것을 찢은 후 선생님은 책임 다한 입장에서 평양으로 떠났다. 이날이 없이는 평양에 갈 수 없었다. (선집 19권 261-262쪽)
새예수교에 대한 역사를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평양에서는 김인서라는 교회 장로가 <신앙생활>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가지고 이용도 목사를 반대한 거예요. 이용도 목사가 새롭게 출발한 1930년 대 선생님의 나이 12살 때 새로 부흥하는데, 부흥 줄기를 타 가지고 예수 부활체와 같이 태어난 사람이 이용도 목사예요. 이용도 목사는 나를 몰랐지만, 나는 이용도 목사의 역사를 전부 다 알고 그것을 도와 줬어요. 모란봉 을밀대에서 기도하던, 평양에 숨어서 기도하던 패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과 다 연결되어 있었다고요. 박계주가『순애보』라는 소설을 써 가지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일등을 한 거예요. 박계주의『순애보』소설을 알아요? 박계주의『순애 보』라고요. 박계주 외에 이용도 목사를 모시던 변종호라는 사람이 있 었는데, 변종호의『서간집』이 나와 있어요. 이용도 목사는 선생님이 12살 되던 그때에 역사와 더불어 부흥해 가지고 선생님의 갈 길을 준 비하는 거예요. 그 후 이용도 목사는 서른 세 살, 딱 예수의 연령 때와 같이 원산 약수터에 가서 죽었어요. 그는 나를 몰랐지만, 나는 그가 돌아가던 때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 이 선생님 주위에 있어서 기도하고 모금운동을 해 가지고 도와준 거예 요. 그래, 새예수교의 새로운 교회들을 만들었는데 청년들을 지도할 수 있는 청년 지도자가 없었어요. 자기들이 그 사상적 근거를 다 몰랐어 요. 우리 같은 사람은 이미 사상적 근거를 다 만들어 준비해 놓았어요. 타락이 어떻게 됐다는 것을 알고, 신교가 새로운 교리를 통해서 나눠 질 것을 알았어요.(선집 599권 325쪽)
새예수교의 이용도 목사를 중심삼고 기독교를 혁명해야 할 것을 내 가 알았기 때문에 10대 소년서부터 거기의 지도층에 있던 왕초들하고 친구가 돼서 물어본 거예요. 그런데 몰라요.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지를 몰랐다는 거라구요. 나이 어린 소년, 20대 전에 사람이 이러고저러고 하면 그 집안은 망한다고 했어요. 여자 소리가 담 넘어가도 집안이 망한다고 했는데, 그보다도 아들이 그러면 3대도 못 가서 망한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침묵, 삼십 될 때까지 침묵이에요.(538권 311쪽)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고 주기철 목사 같은 이는 죽는다고 했지만 말이에요. 길선주 목사니 이용도 목사니 하는 목사는 선생님시대에 해당하는 부흥사들이었어요. 그때 그들이 말을 들었더라면 한국이 이 꼬락서니가 안 됐다는 거예요.(선집 366권 55쪽)
신교 역사를 천주교 역사를 시시콜콜이 이름까지 엮어내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이용도 목사도 나를 알고 죽었어. 나를 모시지 못했어. 너무 어리기 때문에. 내 여덟 살 때가 18년 때에요. 내가 모시는 열한 살, 열두 살, 열세 살 지내면 내가 모실 것인데 열세 살 되기 전에 죽었어. 원주 생수터 알아요? 서른세 살 때 생일나기 60일전부터 거기 가서 갈 준비하는 그 비용과 식사 거리의 돈을 내가 대줬어. 2011년 10월 30일(日), 천정궁 딕테이션
「다음은 기독교 지도자 중에 열두 번째로 이용도 목사입니다. 1901년도에 태어나서 1933년도 33살 나이로 떠난 사람이고⋯.」김대건, 이용도를 움직인 사람.「감리교 목사였고 대 부흥사였습니다 .(김효율)」이 사람이 원산 약수터에서 33세에 홀로 죽었어. 선생님의 제자들이 영계에 몇 명 가 가지고 장례식을 치러준 사람입니다. 꿈같은 이야기지. 그거 읽어봐요. 이용도. 그 위는 김대건, 천주교 제1 순교 역사 김대건이 나오는구만.(2009년 11월 2일(月), 천정궁. 딕테이션 말씀)
기독교만 환영하는 날에는 기독교와 미국이 하나되어 가지고…. 또 한국에서는 지하 기독교, 신사참배 기독교, 미국 기독교 등 세 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사탄편에 갔고, 하나는 천사장편에 갔고, 하나는 지하에서 하늘편이 되어 있었다구요. 그래, 지하 기독교가 선생님과 연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재건교회로부터 교단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시켜서 가인 아벨을 가려온 것입니다. 개인적 가인 아벨로부터 가정적 가인 아벨, 교파가 인 아벨 형태를 거쳐 가지고 이 신령파들, 박동기 같은 에덴복귀파, 시온파인 김백문 에덴복귀파, 백남주 에덴복귀파, 이용도 에덴복귀파 등 많았어요. 이것이 기독교 역사의 전부 다 요사스러운 이단패로 흘러갔지만 그들이 이단 패가 아니예요. 천리에 있어서는 다리 놓기 위한 거예요. 다리를 분공장에서 모아 놓은 거 예요. 갖다가 맞춰야 되는 거예요. 분공장에서 만든 것을 다리를 다 한데 모아 묶는데 이걸 누가 묶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주님이 와서 묶는 거예요. 그런데 이놈의 책임자들이 전부 다 구름 타고 온다고 했다구요. 구름 타고 오면 되나요? 지상에 천국을 이루어 가지고 사랑이상을 이루어 출발해서 영계와 연결돼 야 할 텐데 오늘날 원리에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이런 망상적인 허무 맹랑 한 입장에서…. 그 구름 타고 온다는 말이 무슨 말이예요? 요즘은 비행기 타고 날아 다니잖아요? 이때에 이박사 ! 파주에는 우리 할아버지가 계셨었는데, 그분이 목사예요. 하늘은 참 가정적으로 잘 준비해 놓았던 거예요. 우리 종조부가 나하고 같이 했으면 손자한테 전부 다 교육받아 가지고 목사고 뭐고 보따리 다 둘러멨을 거예요. 둘레메게 돼 있어요. 성경 토론하게 되면 나한테 배워야지, 할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켜 줄 것 아무것도 없어요. 거 신학이란 간단한 거예요. 책을 읽으면 아는 것 같지만 이런 원리 체계는 몰라요. 물어 보면 열이면 열 꼼짝 못하고 나한테 굴복하게 돼 있어요. 그래 유명한 분이거든, 그 양반이. 한학자로서 최남선의 친구고 독립선언서 작성한 다섯 사람중의 한 사람이예요. 이런 한학자고, 신학자고, 영어 잘하고, 허우대가 좋아요. 나보다 잘생겼어요. 우리도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내가 볼 때에 '야, 할아버지는 멋지게 생겼네. 한자리 해먹겠는데 왜 도망다니나, 저렇게 밤낮없이…' 내가 그랬다구요. (웃음) 할아버지는 잘났는데 좀 못난 것처럼 야간 도망 다니는 거예요. 왜? 독립군들 전부 다 우두머리가 되어 가지고 이북 5도의 노회장 했거든 요. 노회장을 하고 이래 가지고 3․1운동 때는 이북 5도의 노회장이니까 그걸 코치하려고 정주로 내려갔는데, 이렇게 되니 3․1운동 때 그 대신 누가 참석했 느냐 하면 거기 장로 중의 이명용씨가 33인 중에 들어간 거예요. 원래는 우리 할아버지가 들어가는 거지요. 그런 애국자의 가정에서 자랐다구요. 그래 가지고 우리 할아버지는 그때 이박사하고 친하고 다 그랬어요. 그 할 아버지에겐 우리 어머니가 조카며느리거든요. 그때에 우리 어머니가 시삼촌 감옥간다고 전부 닭 잡아 가고 뭐하고 그런 것 다 생각이 나요. 2년 반씩 옥중생활했거든요, 만세사건에 주모자가 돼 가지고. 이래 가지고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그때, 그분의 형님이 우리 할아버지지 요. 종조부의 형님이 나에게 할아버지 아니예요? 우리 아버지는 종손이고. 그 래 애국자 집안이 패망국이 돼 가지고 살면 뭘하냐 이거예요. 망하면 집이고 뭐고 필요 없고 거지떼들처럼 가가 어디 흩어지고 다 그래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모든 재산, 자기 모든 것을 투입해 가지고 나라 살리는 운동을 한 거예요. (선집 191권1 111-13쪽)
해방 전까지 하나님은 선지자적 사명을 지닌 많은 인물들을 보내셔서 준비해 오셨습니다. 여기에는 부인들을 중심삼고 섭리하신 일면이 있는 동시에 남자들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신 일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섭리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 민족이 알지 못하고, 신앙자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특별히 택한 자들을 세우시어서 내적․외적으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은 해방 후에 새로운 발전적인 내용으로 출발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뜻을 전하기 위해 통일교회가 출발한 것입니다. 본래 고난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탕감복귀의 기준을 세워 나가기 위해서 고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중략)
나는 제1차 노정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지 못하고 제2차 노정을 가야 했기 때문에 고난의 길로 갔던 것입니다.(선집 16권 55-59쪽)
2천년 전의 탄생을 계승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상을 재현하고 사랑의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서다. 법적 에덴복귀 파는 박동기 파이며, 진리 에덴복귀 파는 이용도 파이다. 철산 새주님 파는 상대복귀 파이다. 독신 부인은 안 된다. 남편을 자체 굴복시켜야 한다.
예수의 참다운 탄생과 참다운 축하
그 부인의 탕감조건이 찬 후에는 남편이 꺾인다. 그 부인의 맏아들이 충성하고 받들어야 했다. 허호빈은 일본의 탄압을 밟고 나서야 했다. 석천 씨가 잘못하여 복중교 로 뺏겼다. 재림주님은 셋과 같은 입장이다. 셋은 생각지 않은 데서 나왔다(가인 아 벨이 사명을 못 함으로). 고로 재림주님을 모시는 단체는 허호빈 파가 아 니고 다른 파에서 나와야 한다. 선생님은 옥중에서 허호빈에게 연락했었다. 그 일이 나중에 발각되어 선 생님은 이가 부러졌었다. 선생님의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그는 죽었다. 이제는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영계의 문을 열어 놓으려 한다. 다음으로는 사랑 에덴복귀 파가 나와야 한다. 선생님은 여호와의 부인이라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런 부인을 중심하 고 종적으로 3대를 거쳐 나가야 했다. 선생님이 27세 되던 때에 평양에서 만났다. 그러나 그 부인은 반은 사탄 역사를 했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은 그의 아들에게까지 시중 들었고, 결국 증거를 받고 승리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부터 증거받기 시작하여 수개월 이내에 여호와라 는 증거까지 받았다. 법적 에덴복귀 파와 선생님과는 상관이 없다. 진리 에덴복귀 파에 가야 했다. 이용도 백남주 김백문 3대가 선생님을 축복해야 했다. 다윗에서부터 솔로몬왕에게 했던 것과 같은 축복을 해야 한다. 그런 축복을 받은 후에 평양에 갔다. 최후의 증거를 받은 후에는 주관권 을 복귀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상속권을 복귀했다. 그 복을 받은 후에 개 인적인 시련과 핍박이 있었다. 수천년 기간을 일시에 탕감하는 것이 3년 기간이다. 선생님은 신년 원단에 식구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다. 이와 같이 통일 신도들도 앞으로 외국 식구들에게 다소라도 돌려주어야 앞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선집 12권 121-122쪽)
이렇게 볼 때, 지금 통일교회는 아담 족속인데, 지상에 섭리해 세웠던 모든 아벨권을 전부 다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사탄권이 됐으니, 통일교회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최대의 광야시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선집 125권 111쪽)
지금 때는 광야시대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40년은 광야노정에 해당되는 때입니다. 1차, 2차, 3차 40년노정 동안에는 세계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은 따로 시간을 내서 이야기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도탄 중에 처해 있는 세계 인류입니다. 여기에서 어떠한 종파나 지파가 문제가 아닙니다. 모세를 따르던 70장로와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니 종말시대에 있어 제2이스라엘도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 새로운 천국, 새로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넘어가는 데는 3년 고역노정이 있습니다. 3일의 성별기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부활하여 천국동산에 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3일 고난기간이 있었고, 야곱에게도 3일 기간이 있었고, 모세에게도 3일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세계적인 유업을 계승하여 이루실 실체로 오시는 메시아에게도 그런 기간이 있고, 이스라엘 후손과 전세계 기독교인에게도 반드시 그런 노정이 있습니다. 이 노정을 거쳐야 가나안의 이념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끝날의 나팔소리가들려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집 10권 345-346쪽)
하늘의 새예수교가 나오는데 이용도 목사부터 시작한거야. 복중교가 아니야. 허호빈이 아닙니다. 이용도 서른 세 살에 예수님이 죽은 그 생활전선에 그 원산 온천에 가서 죽을 때에 서른 세 살 때에 죽을 때에 그 성묘하는 사람을 내가 보내줬어. 그것 참 일화가 많습니다. 그런 얘기를. 영계가 어떻게 된 조직을. 하나님도 가르치지도 못하고 나라도 가르치기 위해서 내가 지금 발견해 나온 겁니다.
(2010년 10월 15일(金), 청해가든.
* 이 말씀은 아침 훈독회 때 하신 것임)
1. 가나안 복귀와 섭리적 의의
이것은 여러분들이 종족적 메시아라는…. 만약 1차대전 후에 기독교하고 미국이 받들었으면 지금 이게 필요 없다구요. 그때에 다, 한꺼번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7년 동안에 전부 다, 지금 여러분들이 이루는 것을 한꺼번에 다 이루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걸 다시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종족적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선집 219권 244쪽)
하늘은 경륜하기 전에 반드시 환경을 준비해 하늘이 어느 한 시대를 맞이할 때는 다 준비를 합니다. 역사적인 새로운 일을 하늘이 경륜할 때는 반드시 사람을 세워서 하는데, 그 사람이 나타나서 일을 하게 될 때는 환경적 여건을 전부 다 세계적으로 준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나타나 가지고 이제까지 준비한 것을 전부 다 이어 가지고 묶어서 하나의 연결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다는 거예요. 영계가 그런 기반을 닦은 것을 누구도 몰라요. 또 책임진 그 사람, 어떤 특정한 한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나타난 그 사람이 이렇게 준비한 걸 모른다구요. 준비한 걸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면서 노력하고, 노력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됩니다. 그 승리적 기준, 하늘이 세우기에 수고한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시대적 책임자 인 중심 존재가 나타나서 일을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준비한 기반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여기서 그만한 수고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만한 탕감을 치르게 될 때 그것이 하나돼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이 없다는 거예요. 영계가 그 특정한 인물을 위해 준 비해 놓은 그것이 자기의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인물을 준비한 것에 대등한 그러한 수고의 기반이 있지 않고는 이것을 연결시킬 수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책임자들이 핍박을 받고 환경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을 당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연결된다는 거예요. 지상에서 연결 안 되면 영계에서 연결된다는 거지요. 예수님 같은 양반도 세상에 왔을 때 원래는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 전부가…. 아담에서부터 4천 년 아니예요? 그 환경적 여건을 다 준비했지만, 예수 님이 왔더라도 예수님이 누군지 몰랐다는 거예요. 또 예수님 자신도 뜻을 이 어받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등한 수고, 준비를 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거지요. 그게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만 하더라도 선생님을 놓고 전부 준비한 거라구요, 이게. 그 역사가 길어요. 선생님이 16세 때인 1936년도는 한국의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대부흥 기간이었습니다. 새로운 교파, 새로운 출발이 벌어진 거지요. 선생님이 새로운 수난길에서 개척의 길을 가게 되는 거예요. 1936년이면 이용도 목사라든가 길선주 목사보다 한 10년 앞서지요. 이러면서 쭉 신령한 역사를 하는데, 새로운 분야의 길을 역사하는 거예요.
그런 일들을 한 사람 가운데 정수원이의 할머니 김성도씨 같은 분이 있지요. 그것이 서쪽으로는 여자를 상징하고 동쪽으로는 남자를 상징한다는 거예 요. 그때 함흥에는 무슨 패가 있었느냐 하면 말이에요, 백남주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백남주라는 사람은 신령한 사람이라구요. 성주교라는 교단을 만들어서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낸 것도 백남주예요. 거 영계에서 전부 다 가르쳐 줘 가지고 한 것입니다. 그때는 철산 패지요? 성주교라는 이름은 그 이후에 썼어요. 영계에서 백남주를 시켜 가지고 맨발벗고 철산으로 가라고 해서 간 거예요. 함흥에서 평양까지 한 6, 7백 리 될 거라구요. 맨발벗고 가라고 해 가지고 맨발벗고 가서 만난 거라구요. 전부가 그렇게 동과 서가 만나는 거예요. 만나 가지고, 오시는 주님이 이 땅에 왔을 때 수난받지 않게끔 이 성주교단에 의해서…. 그게 `거룩한 성(聖)' 자에 `주인 주(主)' 자거든요. 그래서 만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게 연결돼 나와야 할 텐데, 철산리 김성도 할머니가 주장 하는 것하고 그 다음에 외부 사람이 주장하는 것이 상치되어 나타난다구요. 서로가 자기가 맞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하늘이 해와의 사명을 나를 중심삼 고 이렇게 가르쳐 줬으니 남자, 예수님이 오게 되면 내가 모셔야 한다. 남자 는 전부 다 종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맞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해와가 완성의 자리에 나아가려면 3대 천사장을 이겨야 됩니다.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이걸 끊지 않고 소화해 가지고 나가야 된다구요. 그래서 백남주, 황국주, 이용도 3대가 거쳐 나온 거예요. 이용도는 새 예수교를 만들었지요, 새로운 예수교. 그렇기 때문에 김문서가 `성서'라는 잡지를 하면서 얼마나 반대했는지 모릅니다. 평양에서 `성서'라는 잡지를 만들어 가지고는 `지금 이단이 나와 가지고 기성교회를 망치고 있으니 전장로교, 감리교는 합해 가지고….' 이 새 예수교 이용도 목사를 중심삼고 허호빈이라든가, 그 다음에 한준명이라든가…. 이런 새로운 교파를 출발한 사람들이 그때 상당히 반대받은 거예요. 그때에 정수원이의 할머니 김성도 씨를 중심삼고 많은 사람들이 신령한 역사를 하는 거예요. 예수를 배 가지고 낳는 역사를 전부 다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배 가지고 감사한 생활을 못 했다는 거 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탕감해야 된다는 거지요. 이 복중에서부터 전부 다…. 허호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 가지고 복중에서 움직이면서 가르쳐 주면 안다는 거예요. 반드시 배가 움직이면서 가르쳐 준다고 해서 복중교예요, 복 중교. 그렇게 볼 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의붓아버지 밑에서 고생했다는 그게 맞는 말들이지요.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지요? 사생아로 태어난 예수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열두 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성전에 예수만 혼자 남겨두었는데, 사흘 동안 오지 않았던 것이 부처끼리 싸움하느라 그런 거예요. 그래 가지고 3일 후에 온 거예요. 성서에는 사흘 만에 요셉이 돌아가 가지고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할 때 예수가 하는 말이 `아버지는 내가 여기에 있는 줄 몰랐습니까?' 했다는데, 거 참 반항적인 말입니다. 어미 아비가 사흘 동안 자식을 혼자 놔두고 어 디에 갔다 돌아온다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것이 전부 다 예수를 중심삼은 문제입니다. 배후에 그런 곡절이 많았다는 거예요. 성경에는 다 기록 되지 않았지요. 그런 모든 생애에 남겨진 한을 품고 죽었던 것을 나면서부터 전부 탕감하는 거예요. 탕감할 때는 반드시 가르쳐 주고 고개를 넘고, 넘으면서…. 애기 때부터 명절이 되고 새해가 되면 동생들, 마리아와 요셉 가운데서 난 동생들은 좋은 옷을 입혀 주면서도 예수는 때때 저고리 한 번 안 입혀 주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그 한을 전부 풀어 달라는 거예요. 어렸을 적부터 죽을 때까지 일생 동안 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흘에 한 번씩 갈아입을 수 있 게끔 한 살 때부터 옷을 해 주는 것입니다. 오집사! 그때 오집사가 숫처녀였지요? 「예」 그 복중교와 관계돼 가지고 거기에 집 팔아 대고, 그 다음에는 논 팔아 대 가지고 옷을 만든 거예요. 복중교의 일이 그거예요.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완전한 준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때의 모든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최고의 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부럽지 않은, 영국 왕실도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사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주님이 입을 옷의 치수니 무엇이니 전부 다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하늘이 예비한 신령 집단 이렇게 준비했지만, 주님이 온 줄 결국은 모르는 거예요. 모르지요. 내가 여기 이남에서 평양에 들어갈 때 영계에서 하늘이 지시한 첫번째로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 어머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구요. 여호와의 부인입니다. 하나님 어머니를 만나야 된다는 거예요. 복귀 역사가 그래요. 복귀된 해와를 만나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평양에 가 가지고 전부 다 그때에…. 이것이 복중교보다도 먼저입니다. 특별히 에덴 복귀파로 구약 에덴 복귀파, 신약 에덴 복귀파, 성약 에덴 복귀파가 있었다구요. 또, 박동기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대구에. 대구 어딘지는 모르지만, 박동기라는 교단이 있었는데 꽤 컸었다구요. 그러니까 구약 성경을 중심삼은 에덴 복귀파, 그 다음에는 신약 성경을 중심삼은 에덴 복귀파가 있었습니다. 신약 성경을 중심삼은 에덴 복귀파가 김성도 할머니, 백남주 패다 이거예요. 그 다음에는 재림시대의 에덴 복귀파, 성약시대의 에덴 복귀파가 있었는데 그들은 타락이 어떻게 해서 됐다는 걸 전부 다 아는 거예요. 그런 준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간이 지은 죄를 씻기 위한 모든 프로그램을 전부 다 가르쳐 줘서 알게 해 가지고 그 고개를 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부 가정파탄이 벌어지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그 대표적 단 체지요. 이러한 예수시대의 에덴 복귀파를 중심삼고 실체적으로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이루지 못한 것을 탕감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계에서 사람의 몸을 통해서, 어머니의 몸을 통해서 다시 난것 처럼 해 가지고 애기 때부터 33세까지의 모든 한을 풀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오시는 주님을 가르쳐 줘서 안내해 줘야 합니다. 그것을 허호빈 씨한테 전부 가르쳐 줬어요. 안 가르쳐 주면 모르는 거지요. 한국이 어떻게 돼 가지고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주님이 나타나서 이걸 전부 다 수습한다는 것을 전부 다 가르쳐 주는 거예요. 옥중에서 만난다고 그래도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 3년 동안 혼란시대가 옵니다. 기독교 혼란, 국가 혼란, 정치계 등의 혼란시대가 와서 모든 것이 자리를 못 잡는 거예요. 그때로 말하면 중국파, 소련파, 일본파, 미국파가 생겨 가지고 그들이 서로가 헤게모니 쟁탈, 서로 자기들이 주권을 쥐겠다고 싸울 때거든요. 그러면서 그때의 기독교 자체도 무슨 뭐 주님이 오는지 뜻이 어떤지 생각이 없었다구요. 그 파동으로 기독교 자체도 전부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는데, 이들은 신사참배를 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본은 아마데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일본 신화의]해의 여신)를 중심삼고 섬기고 있었는데, 그것을 섬겨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숭배한다는 것은 하늘을 저 버림과 같은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대처할 수 있는 준 비가 뭐냐 하면, 지하에서의 신령한 운동입니다. 영계의 직접적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훈련돼 나온 사람들로 어려운 시대를 거쳐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재림교회가 박 누구인가? 재건교회 책임자가? 그때 재건교회 등 여러 교파가 나오는 거예요. 재건교회니, 고려파니 해 가지고 여러 교파가 나왔습니다. 고려파의 대표가 한상도였어요. 한상동과 형제지요. 이들이 감옥에서 나 와 가지고 새로이 출발해서 북에서는 재건파, 남한에서는 고려파로 나온 거예 요. 서울에는 또 새로운 교파가 나와 가지고 서로가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경쟁하는 때라구요. 그런 와중에서 선생님이 지하에서부터 나와 가지고 이걸 전부 다 수습해야 되는 거예요. 수습해야 할 텐데, 오시는 주님이 전부 구름 타고 온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야단이지요. 사람으로 온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허호빈파하고 김성도파하고 백남주파들은 벌써 다 알고 있는 거예요. 그건 성약시대의 준비파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사람으로 오는 걸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주님이 사람으로 온다는 걸 알지만 만나지는 못해요. 주님을 암만 만나도, 요 사람이 주님인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게 힘든 거예요. 직접 가르쳐 줄 수 없다구요. 반드시 이 삼각지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가 찾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사람이나 신령하지 않은 사람이나 똑 같다는 거예요. 신령한 사람은 영계에서 가르쳐 줘야 움직이는데, 가르쳐 주지 않으면 꼼 짝도 안 하는 것입니다. 또 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가야 할 텐데, 말씀이라는 그 말씀이…. 기독교인들은 전부가 구름 타고 온다고 그러는데, 한 쪽에서는 사람으로 온다고 그러니 그 말 또한 믿을 수 없는 거예요. 이런 와중에서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가서 기성교회 40여 교회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을 전 부 다 끌어낸 거예요. 그때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가르쳐 줘야 돼요. 딴 얘기는 안 된다구요. 성경 말씀 중에서 제일 어려운 요한복음 해석이라든가, 로마서 해석이라든가, 묵시록 해석을 전부 다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해석 방법을 통해 가지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때는 영계가 역사해 주는 거라구요. 영계가 연결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양 주변의 40개 큰 교회 핵심요원들이 경창리에 이단 괴수가 왔으니 거기 가지 말라고, 젊은 미남 선생님이 그 사람이라고 소문 냈다구요. 그런 판국에서 이 신령한 사람들이 미리 준비해 가지고 사람을 보낸 거예요. 책임자는 어떤 사지에서도 책임을 져야 돼 그러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공산당이 나와 가지고 종교를 전부 다 아편과 같이 취급하는 거예요. 아편과 같이 취급해 가지고 종교 집단이니, 종교니 하는 것을 전부 다 탄압할 명목을 찾는 거지요. 군소 신령한 집단들 은…. 민간인들을 전부 다 현혹한다고 할 수 있게끔 이렇게 신령역사를 하고, 옷을 만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크거든요. 일반 교회는 그렇지 않지만, 새로 나온 이 복중교에서는 옷을 몇 트럭씩 만들었으니 전부 다 물품을 탈취한다고 하게 돼 있다구요. 그런 소문이 나 가지고 손대기 시작해서…. 그때가 몇 년인가? 1948년 8월 10일날, 내가 감옥에 들어갔다구요. 허호빈 집단이 감옥에 들어간 죄목은 사회를 혼란시키고 금품을 사취해서 가정 파탄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일당이 전부 다 잡혀 들어갔다구요. 허호빈 씨를 중심삼고 그때 아마 18명인가 들어가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경창리 교회에서 교육하고 있었는데, `경창리에도 있다더라 ' 해 가지고…. 선생님이 8월 10일날 들어갔다구요. 같은 감옥에 들어갔던 거예요. 그때 허호빈 씨의 남편이 누구냐 하면 황 무엇이지? 「이일덕입니다」 남편이 이일덕이고, 황원신이라고 허호빈 씨의 수제자가 있어요, 수제자. 그 날 저녁 쓱 들어갔는데, 영계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가만히 보니까 이게 심상치 않거든요. `허호빈 씨, 간밤에 큰일났다' 그래서 내가 척 들어갔어요. 황원신이와 그 방안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당신들, 이런 복중교 문제 때문에 내가 들어왔다'고 그러니까 `아, 그러냐?'고 하면서…. 그때가 열한 시가 넘었어요. 보통 자는 시간이 열 시라구요. 내가 가니까, 참 궁금했던 모양이지요?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여기 어 떻게 들어왔느냐고 물어 보길래, 이러이러해서 들어왔다고 하니까 자기가 자던 자리를 내주더라구요. 거 영계에서 가르쳐 줬던 모양이요. `이러이러한 분이 올 테니까….' 그래서 전부 다 준비하고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입니다. 그 이튿날 내가 허호빈 씨의 집단에 대한 보고를 하라니까 세밀이 보고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내가 요것은 당신의 책임이니 요렇게 처리하고, 요렇게 해 가지고 허호빈한테 빨리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안 나가면 전부 다 이 감옥에서 쓰러진다 이거예요. 그 공산당들의 말이 뭐냐 하면, `복중에서 예수님이 다시 태어나야 된다고 가르친 것을 전부 다 거짓말이라고 해라, 아니라고 해라. 그러면 놔 주겠다'는 거예요. 죽어도 그건 못 하는 거거든요. 어떻게 하겠나, 사실인데? 이것이 사 된 일이었다고 써 놓으면 전부 내보내겠다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할 수 있나? 죽으면 죽었지, 그건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황원신이한테 내가 책임질 테니까, 내 말 듣고 했다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라고 한 거예요. 영계에 가서도 `아무개가 책임질 테니까 전부가 이랬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러면 좋다고 한 거예요.
그런 얘기를 영계에서 황원신이에게 전부 가르쳐 줬어요. 선생님의 말씀이 옳은 말이니 어떻게든지 거부하고 나가라 이거예요. 그래서 황원신이 혼자 나왔다구요. 나와 가지고는, 내가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찾아왔더라구요. 와서 하는 말이, 자기들 일당에게 암만 권고해도 듣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러다가 고문을 받아 가지고 나와서 한 반 년 있다가 돌아갔어요. 그래서 허호빈 씨 이하 모든 감옥에 있던 사람들을 순천인가에서 공산당들이 후퇴할 때 데려다가 전부 다 학살해 버렸다구요. 선생님이 그런 책임이 있기 때문에 감옥에서도…. 책임자는 어떤 사지에 서도 책임을 해야 됩니다. 이걸 내가 구해 줘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내가 감옥에서 편지를 썼다구요. `당신이 지금 이런 입장에 있다. 모든 일들이 하늘로부터 시작해서 되어지는 것이다. 나도 하늘의 뜻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슨 문제든 보통으로 여기지 말고, 생사를 결단하는 사건으로 알고 내 편지에 적혀 있는 말을 듣고 모든 것을 거부하고 나가라.' 고 그랬다구요. 그때 편지를 쓰다 들켜 가지고 이 어금니에 금이 간 거예요. 책상다리에 거꾸로 쳐박혔다구요. 무슨 스파이냐 이거예요. 그래서 평양에서 스파이로 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거꾸로 넘어져 가지고 이 이가 빠개진 거예요. 결국은 그 말도 듣지 않았어요. 그 편지를 다 봤다구요. 다 보고도 못 했 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단체는 그 단체대로 흘러간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 운 거예요. 감옥에서 춘향이가 이도령을 만난다고 하게 되면…. 그렇게 딱 춘 향전과 같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만날 수 있는 환경인데 인간들이 모른다는 거예요.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진 사람이나, 준비한 사람이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인천 상륙작전에 의해 공산당이 후퇴하면서 감옥에 있던 사람들을 전부 다 학살했지요. 내가 북한에서 나오면서 그 어머니를 만났어요. 「허호빈 어머니 말씀이지요? (어머님)」 그 할머니가 전부 다 교단을 이끌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한번 찾아가서 처음 만났었다구요.
벌써 그 계시를 받고, 내가 가니까 경창리에 있는 선생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계시를 받고 그 따르던 사람들이 전부 흰 옷을 입고 맞아 주더라구요. 그때라도 내가 말한 대로 완전히 했으면 선생님이 고생을 안 해요. 그 단체가 컸었거든요, 거 신령한 단체가. 아,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청맹과니 같은 사람들이 아니예요? 그 사람들은 벌써 다년간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주님이 와서 뭘 할까 를 알아 가지고 일사천리로 차고 나갈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또 새 예수교하고 백남주 패,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지성인이거든 요. 외국에 나가 가지고 신학을 공부하고, 다 이런 사람들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새 예수교를 연결시킬 수 있는 거예요. 예수교의 이호빈 목사, 한준명, 박재봉 목사 등 그 간부들을 내가 잘 알아요. 이런 사람들이 선생님과 참 가 깝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호빈 목사를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할 때 새 예수교에 가 가지고 내가 잡아온 거예요. 끌어온 거라구요. 그만큼 가깝다구요. 왜 가까우냐 하면 평양 새 예수교 주일학교 학생이 천 명 가까이 나오곤 했는데, 언제고 들리게 되면 주일학교 교육을 했거든요. 유명하다고 소문났다구, 주일 학생들한테. 그렇기 때문에 잘 알지요. 그렇게 목사들과 친하고 그랬기 때문에 이호빈 목사와도 잘 알게 되었다구요. 그래서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할 때 이호빈 목사가 주례한 거예요. 그러니까 성주교로부터, 복중교로부터 새 예수교가 한 계통인데 이것이 나만 환영했다면 문제없이 하나되는 거예요. 어떻게? 원리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편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해요. 무슨 의미인지 해석할 수가 없다구요. 그러나 원리가 있게 되면 완전히 하나 만들 수 있는 거예요. 그 당시에 신령한 집단은 구약시대의 에덴 복귀파, 그 다음에는 감옥에서 나온 재건파, 고려파 등이 있었는데 전부 다 이들은 이미 신령한 기반이 돼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내적인 면에…. 하늘에 가까운 내적인 신령한 집단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외적으로도 포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거예요. 그것이 안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남북이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두 파로 갈라지게 된 거예요. 교회가 전부 다 선생님하고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결국은 이 한국 땅을 점령하기 시작한 거예요. 미국이 하늘 편 천사장 국가라면 이북은 사탄 편 천사장 국가거든요. 천사장 국가들이 전부 다 와 가지고…. 기성교회가 반대하고 다 이러니까 기성교회까지도 사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성당 본부라든가 기독교 본부 등 중심 교파가 공산당의 기지가 된 거예요. 완전히 2세들은 공산당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선집 223권 210-219쪽)
뜻으로 본 해방 직후의 시대
예수님은 종족적 메시아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일시에 유대교와 이스라 엘 민족에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적인 기반만을 이루어 놓았던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이남에 와 있던 때인 해방 직후는 예수님이 완성권 을 넘어서고자 했던 때와 같은 시대였습니다. 그때의 기성교회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는 나라도 없었습니다. 교회가 나라를 대신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내적으로 이기붕 씨가 이승만 박사를 업고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나도 거기에 중요한 멤버 중의 한 사람이었습 니다. 지금 와서 알았지만 작은 할아버지가 이 박사하고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 줄 그땐 몰랐습니다. 평안도 지방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문 아무개’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우리 작은할아버지이셨습니다. 이 박사라든가 독립운동을 하던 지도자들과 함께 역사적 시련을 지고 나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니까 우리 작은할아버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셨더라구요. 내가 여덟 살 땐가에 6․10만세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작은할아버지는 일본 경찰로부터 갑종 요주의 인물로 주목받고 피신해 다녔습니다. 강원도 경상도 등의 산악지대로 피신해 다녔습니다. 항상 피신 해 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디 가서 오래 못 살았던 것입니다. 보따리 싸 가 지고 해방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전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셨습니다. 작은할아버지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할 때부터 반기를 들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외지(外地)를 떠돌아다니며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집이 큰집이었는데 증조할아버지 때에는 참 잘살았다고 합니다. 하늘로부터 많은 재산을 축복받았기 때문에 그 인근 지역에서는 이름난 집안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재산이 할아버지한테 상속되었는데 할아버지 동생 되시는 목사였던 작은할아버지께서 그 재산을 저당 잡혀 가지고 어디에 써 버리는 바람에 전부 다 파산돼 버렸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 집은 일시 에 파탄되어 버린 꼴이 됐습니다. 그런 일로 말미암아 우리 집안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작은할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고, 조카들 앞에도 면목이 없게 되어 어느 날 온데간데없이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 뒤에 어떤 소문이 났느냐 하면 남의 광산까지 팔아먹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때 교인들 가운데 광산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 교인의 광산까지 팔아먹고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게 남의 광산까지 팔아먹고 도망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목사가 패가망신해 가지고 고향에 도저히 있을 수 없으니까 도망가 버렸다고 소문이 난 거예요. 그러니 할아버지도 그렇게 알고 계셨고, 조카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문중 전체, 동네 전체, 인근 동네에서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모두 그런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목사 노릇을 한다고 하면서 교인들 못 살게 하고 식구들 못 살게 해놓고 어디로 도망을 갔으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작은할아버지에 대해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겁니 다. 그럴 거 아니에요? 집안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전부 다 작은할아버 지를 원망하던 처지였으니까. 그런데 작은할아버지가 가져간 돈이 어디로 갔느냐 하면 상해 임시정부 로 갔던 것입니다. 그때 돈으로 7만원이면 상당히 큰돈이었는데 그 돈을 전부 상해 임시정부에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고 다니시다 결국 외지(外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일을 했기에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기의 전체를 희생시키고, 교인들을 희생시키고, 문중을 희생시키는 입장에 서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일생을 방랑객으로 지냈던 것입 니다. 선생님이 남한에 내려왔을 때 친척이라곤 그분밖에 없었습니다. 꿈에 그 분이 혈족(文龍基장로)에게 나타나 가지고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자초 지종을 설명해 주고 주소를 알려주어서 그 주소를 가지고 사촌동생 용기가 그곳을 찾아갔었습니다. 찾아갔더니, 그때는 이미 작은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모든 것이 현몽한 그대로 틀림없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할아버지 를 해방 직후 이북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만났는데 그 할아버지가 워낙 바빠서 얘기도 제대로 다 못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때 그 내용을 전부 다 얘기했었다면 뜻은 급속도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뜻이 그렇게 출발하게끔 되어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에게 이 박사가 헬리콥터를 세 번씩이나 보내 가지고 데리고 가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남한에서 소리없이 죽은 듯이 조용히 살려는 생각에서였던지 나타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 할아버지가 뜻을 알아서 앞장섰더라면 우리 길은 활짝 트였을 것입니다. 이렇듯 안팎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게끔 하나님이 준비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잘못해 가지고 인연을 맺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기반이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작은할아버지는 한학자(漢學者) 로서도 이름이 나 있었고, 목사이기도 했으니까 그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 서기만 했었다면, 틀림없이 한자리 했을 것입니다. 그랬을 게 아니에요? 그런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 기회를 놓쳐 버렸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결국은 이 나라와 선생님과 통일교회가 수난의 길을 거쳐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해방 직후는 나라도 없는 때였습니다. 그러니 나라를 세워야 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여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것 입니다. 선생님은 때가 가까워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때가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선생님과 인연을 맺고 앞에 나서서 일하던 사람이 기성교회의 유명한 목사였는데, 그는 자기가 앞으로 권력을 쥐겠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선생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문제가 벌어지고 우리 통일교회가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해 나온 통일교회 그때에 나는 김백문 씨와 같이 출발하게 되었던 거예요. 김백문 씨와 나는 가인과 아벨,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김 백문이란 이름이 그래서 나온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뭐 선생님이 김백문의 제자니 뭐니 하는데, 선생님이 그의 제자가 될 게 뭐예요? 그 사람은 기독교의 신앙을 하고 있었는데 기독론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위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근본을 잘 모르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신령한 면에서는 당시 기성교회의 최고 신앙 기준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출발하려던 것이 다 틀어져 나가 버렸습 니다.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김백문 씨의 수제자들이 전부 다 영계를 통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도하는 제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영계에서 가르쳐 주기는 전부 다 문 선생을 따라가라고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김백문씨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수도원이 생기게 되었는데, 거기에 모여든 교인들 이 신령한 은혜만 받으면 전부 다 문 선생을 따라가라고 계시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랬지만 선생님은 거기에 들어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기반에 들어가 공작을 해서 그 기반을 무너뜨리면 안 되기 때문입 니다. 그들을 자연적으로 굴복시켜야 되는 겁니다. 공작을 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굴복시켜야 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눈물도 많이 흘리면서 모범 적인 식구의 한 사람으로서 말없이 지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식구들이 선생님을 따라가려고 결심을 하게 되니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평양에 가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그곳을 떠난 후 선생님은 기성교회로부터 그 사람들이 반대받던 것을 몽땅 인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쓰고 있던 누명을 몽땅 인계 받은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맺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 그러한 누명을 쓰지 않고 나왔을 것입니다.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지 않고 정부의 반대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관계를 맺은 연고로 반대를 받게 되어 할 수 없이 이북에 가서 재차 복귀노정을 걷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 처지에서 개인복귀의 기준을 찾아 세우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남한에서는 사탄이 앞장서서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남한에서 교인 몇 명을 모아 가지고 부산에서부터 전도활동을 시 작하여 대구와 김천을 거쳐 서울에 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와서 자리를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 협회장을 만나 새로운 집에서 협회 창립을 했습니다. 통일교회 역사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정부와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으니까 할 수 없이 민족 의 낙오자들을 규합해 가지고 터를 닦아 나온 것입니다. 어찌 보면 공산당 식이에요. 횡적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 이 나라로부터 버림받고 기성교회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을 규합하고 인생의 낙오자들을 수습해 가지고 나온 겁니다. 여러분들도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선집 38권 57-61쪽)
성진이 어머니가 열 아홉 살 때 결혼한 거예요. 스무 살이 넘으면 안 되는 거예요. 열 여덟, 열 아홉 살 때 결혼해 서 그다음에 서울에 데리고 와 가지고 회사 다니면서 거기 있어 가지 고 해방된 거예요. 내가 김백문 집단을 중심삼고 새로운 교회를, 상도동 교회를 시작한 거예요. 김백문 집단은 신약성서를 중심삼은 에덴 복귀파예요. 박동기라는 사람은 구약성경을 중심삼은 에덴 복귀파예요. 신․구약 에덴 복귀파, 그다음에 새예수교회는 신․구약 새로운 에덴 복귀파예요. 그건 실체 적인 체험을 중심삼고 하는데, 허호빈 같은 양반은 주님이 와 가지고 열두 제자를 택해 가지고 갈 길을 준비했던 파예요. 거기에서 갈라져 나와 가지고 허호빈의 복중교까지 나와 있는 거예요. 전부 다 역사를 내가 다 알지.
결혼 후 평양노정의 출발 그래, 만주에 가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못 가게 해요. 발이 붙어서, 가려고 했는데 못 가게 해서 결혼해 가지고 그런 일을 거쳐 가지고 성진이를 낳은 거예요. 성진이를 낳은 때가 4월 2일인가 그래요. 아기를 낳고 며칠 만인가? 7일 만인가, 사흘 만인가? 하늘의 명령에 따라서 북한에 가는 거예요. 그 어려운 길을 가는데 하늘이 직접 지도해야지. 무지개가 나타나서 인도하는 거예요. 북한에 가서 박 씨 할머니를 찾아간 거예요. 박 씨, 손 들어 보라구요. 평양에 있는 흥사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의 골수들이 모였거든, 안창호. 대보산이 있는데 평양에서 한 80리 거리에 있는 산이에요. 대동강을 끼고 돌고 경치가 좋은데, 거기에 흥사단 본부가 있어요. 안창호 선생님이 살던 곳인데 돌아가고 그 다음에 아들인가 있는데 아들은 어디 가 있는지 못 만났어요. 그 며느리가 있는데, 거기에 귀중한 손님들은 와서 쉴 수 있는 방들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있으면서 박 씨 할머니하고 만나 가지고 기도하던 것이 새 출발이에요. 거기에서부터 탕감시대를 엮어 나오는 놀음을 했다는 거예요.(선집 441권 272-273쪽)
선생님 가정이 축복받는 것도 그래요. 원래는 기성교회가 한국에 있어서 반대 안 했으면 이렇게 안 되는 거예요. 이화여자대학 사건은 큰 역사적인 사건이에요. 이화여대와 연세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청년 남녀들이 6개월 동안에 뜻적인 입장에서 완전히 자발적으로 왔어요. 박 마리아를 중심삼고, 김활란이 중심삼 고, 연세대의 백낙준이를 중심삼고…. 여기 김명희도 왔구만. 그때 선교사의 양딸과 같은 입장에 있었던 양윤영이하고 친구고 다 이래 가지고, 동료들과 관계되어 가지고 뜻 가운데서 만난 김명희라구요. 그때 탕감복귀의 길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어요. 그래서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맨 처음에 기독교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남한에 있는 기독교들이 신사참배함으로 말미암아 미국에 가 있던 애국지사니 무엇이니, 또 중국에 갔던 패들, 소련에 갔던 패, 일본에 갔던 패, 이 4개 패들이 국가를 구하자고 싸웠는데, 이들이 전부 기독교 신자들이 에요. 기독교 신자들이 선두에 섰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기독교 신자들이 세계를 위해 간다는 것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애국적 운동을 하느라고 고생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가지고 투쟁한 자기 역사를 중심삼고 자기 계열적인 입장에서 나라를 대하려고 했다구요. 그러니 문제가 벌어지는 거 아니에요?
4개국에서 들어온 모든 애국지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로 갈 수 있기 위해서는, 앞으로 세계로 갈 수 있는 새로운 결합을 할 수 있 는 진리운동이라든가 이런 놀음을 해야 할 텐데 분파적인 면에 섰다구 요. 분파적인 면의 초교파운동이니 하는 이런 운동을 한 패들이 분파 적인 면에서 자기들이 거기서 신앙하던 기준을 중심삼고는 전부 다 부 딪치게 마련이에요.
여호와의 부인을 찾아 평양으로
그렇게 4파전으로 나누어 싸우는 이런 혼란 가운데서 하늘이 준비한 구약 에덴 복귀파…. 현실이는 박동기 패도 찾아갔지?「예.」그리고 섭절리(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있는 김백문이 하는 곳에는 안 갔지? 그래서 모를 거야. 그건 직접 선생님이 대해 가지고…. 에덴 복귀파들이 구약 에덴 복귀파, 그 다음에는 신약 에덴 복귀파, 앞으로에 있어서의 성약 에덴 복귀파를 전부 영적으로 준비하는 거예요. 그 준비한 모든 것을 선생님은 탐지해 가지고 뿌리를 중심삼고 규합 해서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데 이 패들이 절대 말을 안 들어요. 맨 나 중에는 주님이 사람으로 온다고 준비했었는데…. 이름을 다 잊어버렸 다구요. 뭐인가? 이름을 다 잊어버렸어요. 새로운 성약 에덴 복귀파가 나와서 주님이 와 가지고 가정을 이뤄야 된다는 그 준비, 복중교 같은 곳에서는 주님이 와 가지고는 신부를 맞아 결혼해 가지고 열두 아들을 세워 축복해 줘 가지고 예수님이 실패한 것을 전체 재현해서 120문도 까지 다 짜놓고 있었다는 거예요. 참 놀랍다구요.
그 모든 에덴 복귀파와 같은 신령파들이 끝날에 기독교인들로 각국 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혼란상을 일으키는 여기에 있어서 이들을 규합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돼야 할 텐데, 그것도 하나 안 되었다구요. 주님이 온다 하면서도 주님이 누구인지 아나요? 복중교만 해도 주님이 누구인지 아나요? 모르는 거예요. 거지같이 나타날지,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구요. 허호빈 패도 그래요. 주님이 어떻게 온다는 것, 이도령과 성춘향이와 같은 식으로 감옥에서 만난다는 것을 다 가르쳐 주었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세례 요한과 같이 5퍼센트의 책임을 못 하게 마련이에요. 그것 때문에 확실히 하늘이 가르쳐 줄 수 없는 거예요. 하늘이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에덴에서 타락도 안 시켰게? 그런 혼란의 와중에 선생님이 모든 원리를 중심삼고 기독교를 통합 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과 만나서 말하면 들을 텐데 말이에요, 전부 말하게 된다면 자기는 듣지 않고 자기 제자를 내 세워 듣게 해 가지고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남한에서 신령파들을 전부 규합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섭절리의 김백문 집단에 들어간 거라구요. 김백문이 어머니가 문씨예요. 문씨라구요. 문씨와 관계되어 있어요. 옥세현 할머니가 은혜받은 문씨 할머니라구요. 문씨 할머니의 아들이 군대 정보처에 있 어 가지고 미군이 들어올 때 평양에 들어와서 옥세현 할머니를 중심삼고 생활이 어려운 그 가정을 보호하면서 나왔어요. 그런데 옥세현 할머니가 통일교회의 나를 찾아 모신다고 해서 소개받아 가지고 왔는데, 옥세현 할머니의 아버지하고 유 장로라는 사람하고 그 할머니가 반대 했다구요. 진남포를 중심삼고 반대운동을 한 게 이 문씨 할머니예요. 이런 환경에서 평양에 갔어요. 평양 가게 된 것은 뭐냐? 김백문 집단이 뜻에 대한 준비를 다 한거라구요. 어머니 대신 후보자들이 어떠 어떠한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전부 준비했는데, 김백문이 선생님을 절대 믿고 나가면서 문선생을 따라가라고 가르쳐 줘도 안 따라가는 거예요. 영적으로 대역사가 벌어졌지요. 전 식구가 영계 역사로 춤추고 야단이 벌어진 거예요. 옛날에 김성도 할머니가 벌거벗고 춤추었다는 것은 뭐냐 하면, 여자들의 치마끈이 풀어졌는데도 그걸 모른 채 춤춘 것인데,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그런 혼란의 역사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역사 가운데서 ‘ 김 선생을 따라가지 말고 문 선생을 따라가라!’ 한 거예요. 한 40일 동안 그런 역사가 있었다구요. 그걸 갈라내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두 할머니, 내외가 나왔던 할머니가 있었어요. 그 딸들 둘이, 두 딸과 두 딸이 있었는데 이 네 딸이 중심이 돼 있었어요. 이렇게 평양에서 새예수교회, 복중교의 신령한 역사를 전부 엮어 나오는 거예요. 이 집단에 와서 그러고 있는데, 그 전체를 끌고 나와서 새로운 기독교의 탕감 내용을 완비해 가지고 자리잡아야 되는 거예요. 그랬으면 말이에요, 선생님이 이북에 갈 필요가 없는 거예요. 환경적 여건이 틀어지니까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거예요. 그때 평양의 새예수교회 패로서 이남에 내려온 패들이 이북이 그 근거지니 만큼 연락하면서 전해 준 소식이 뭐냐 하면, ‘ 평양에 여호와의 부인이 라는 할머니가 나타났다.’ 이런 소식이었어요. 그 여호와의 부인이 영적 기준에 있어서 자기가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면서도 사람의 부인이 되어 있어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하게 돼 있다구요. 두 면의 내용을 가져야 되기 때문에.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그래서 그 할머니를 찾아갔는데 그가 박씨예요, 박씨. 박을룡씨라구요. 박씨 할머니를 찾아가서 만난 거예요. 가만 보니까 그 할머니가 전 해와 역사를 대표한 거예요. 전후좌우 안팎의 역사, 타락한 것을 물어 봐도 그렇고, 하늘의 내용을 물어 봐도 알고 그랬다구요. 그러면서 그 모든 하늘의 역사를 자기 아들딸, 자기 가정에 전부 연결시켜요. 앞으로 주님을 중심삼고 만나 가지고 준비해야 된다는 것은 생각지 못하는 거예요. (선집 313권 74-78쪽)
내가 여기 있다가 이북에 가서 김백문 수도원에서 하늘에 필 요한 모든 내적 조직을 하려고 했다구요. 김백문이는 자기도 모르지요. 나에게 솔로몬 왕의 축복을 해준 거예요. 선생님이 그때 뭐냐 하면, 하늘 앞에 특주부…. 이건 비밀 이야기인데 선생님이 특주부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구요, 특주부. 예수님 앞에 신부의 책임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결하라는 말이에요. 특주부의 이름을 가졌어요. 선생님은 뭐냐 하면, 남자나 여자나 여자같이 사랑을 가지고 꿰찬다 는 뜻이 있다구요. 통일교회도 안 그래요? 남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 서 울고, 여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우는 거예요. 그런 역사가 있다 구요. 그러니까 그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하늘을 대표한, 하나님이 내세운 여자가 있어야 돼요. 그 여자가 누구냐? ‘ 내가 여호와의 부인이다.’ 여자가 있었어요. 선생님은 이 여호와의 부인서부터 찾 한 아간 거예요. 참하나님의 부인을 선택하는 것이 선생님의 책임이거든 요.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받아 가지고 유명해진 그 할머니가 박월례 (박을룡)라는 할머니인데 박 씨입니다.
그 집에 가 가지고 선생님이 뭘 했느냐? 그것은 두 가지 성격의 일이 있었다구요. 하늘의 일과 사탄의 일. 한 번 하늘이 역사하면 반드시 사탄의 역사가 있다구요. 그러니까 전도를 못 하지요.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는 앉아 가지고 영계를 다 통해 가지고 영계 에서 이 지상에 관계 맺은 모든 것을 말과 더불어 행동으로 다 나타내 주는 거예요. 직접 하나돼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하늘의 역사가 일곱 번이면 세 번은 사탄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그걸 몰랐어 요. 그러니까 전부 다 미쳤다고 하고,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이 랬다저랬다 하니까. 선생님도 사실 여러분을 믿지 못해요. 이랬다저랬다 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정말이라구요. 하나도 없이 다 도망가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 러나 원리는 있기 때문에 이랬다저랬다 하더라도 원리를 붙들고 나가 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속여 가지고 타락했으니 내가 여러분을 한 번 두 번 세 번 속여도 죄가 아니라구요. 거짓말을 해도 죽을 자리에서 천국 찾아간다는 거예요. 이런 것도 다 되었으니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제는 다 털고 나서야 돼요. 그 할머니가 누구냐 하면 박흥식이 장모입니다. 남한에 내려와서 그 집만 되었으면 고생 안 해요. 선생님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그때가 이 북에서 내려올 때라구요. 그 집에 딸이 여섯이고 아들이 넷 있었는데 그걸 복귀해야 돼요. 선생님 시대에 있어서 여기서 하나님 앞에 네 아 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집 311권 276-277쪽)
해방된 그 해에 선생님이 이남에 있으면서 시온파, 신약적 에덴복귀파인 김백문 집단에 들어가 6개월 동안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신령한 사람들과 전국으로 다 통하는 곳이예요. 거기에서 어떤 할머니가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한다 하면서 김백문 일파가 조롱을 하는 거예요. 뭐가 어떻고 어떻고…. 내가 그 말을 듣자마자 이북으로 간 것입니다. 그때가 해방 뒤였기 때문에 쌀 사기가 참 힘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아서 연안에 쌀을 한 트럭 사 놓고 그걸 가지러 간다 고 해 놓고 나온 길이었습니다. 그때 성진 어머니가 성진이를 데리고 있을 때 인데, 집에 쌀이 한톨도 없었어요. 집안에 쌀 한톨도 없이 해 놓고 내일 모레 돌아오겠다고 한 사람이, 가던 도중에 하늘의 명령을 받고 이북으로 간 것입 니다. 트럭 가지고 쌀 가지러 간다고 한 사람이 없어졌으니 동네 사람들에게 얼 마나 많은 단련을 받았겠어요? 무슨 사내가 쌀 가지러 가서는 나타나지도 않 고 소식도 없는 거예요. 얼마 뒤에 가만 들어 보니까 평양에 가 있다는 소문 이 들려오는 거예요. 그러니 성진이 어머니가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화보다 도 여자로서 별의별 앙심도 다 가질 수 있지요. 그렇다고 내가 편지를 하나 요? 편지 하면 안 된다구요. 6년 동안 갈라져 있어야 됩니다. 내가 약혼할 때 도 약속을 했어요. 나라는 사람과 6년 동안 갈라져 있어야 된다고.
해방되기 전에 처음에는 어디로 가려고 했느냐 하면, 몽고로 가려고 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조상이 몽고족이라구요. 하얼빈을 더 지나 가지고 몽고 와 중국과 소련의 삼각지대 부근인 하이라얼이라는 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왜 거기로 가려고 했느냐 하면, 거기에 가면 몽고 말, 중국 말, 소련 말, 일본 말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아시아 지역을 통할해 가지고 선 교할 수 있고 치리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워야 되겠다 하는 생각에서 그곳에 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동경에서 `만주전업'에 취직해서 부임날을 받아 가지고 그곳으로 가려고 떠억 나왔는데…. 그때가 성진이 어머니하고 결혼식 하기 바로 전이지요. 그런 말 다 하자면 역사가 참 길다구요. (웃으심) 그때 그곳으로 가려고 한국에 나와서 척 보니까 정세가 틀렸어요. 가려니 까 영계에서 그 길을 막아요. 그게 왜정 말기였지요. 그래 가지고 결국은 나 와서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해 가지고 서울에 와서 시온파를 중심삼고 6개월 동안 쭈욱 지내다가, 평양에 자기가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는 말을 듣고 평양에 가서 그 할머니를 만난 것입니다. 가 가지고 그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증거를 해야 됩니다. 누군가가 증거를 해야 된다구요. 예수님도 세례 요한이 증거했지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증거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부인'을 통해 증거받기까지의 역사 그 할머니는 신령한 역사와 사탄 역사의 딱 경계선에 있는 것입니다. 그 러니까 하늘 편의 선한 역사도 하고 사탄 편의 악한 역사도 하는 것입니다. 이걸 가려 줘야 된다구요. 자기도 그냥 있으면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런데 이걸 알아야 가려 주지요. 그러니까 내가 가서 그 할머니의 선한 하늘 편 역사를 거두어 가지고 이것을 완전히 인수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수받기 위해서는 쳐서라도 굴복시켜 가지고 악마를 전부 떼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딱 그 자리에 선 것입니다. 탕감복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 가지고 뭘해야 되느냐? 남자로서 여자를 대하는 데 있어서의 역사성을 대표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떤 남자도 못한 일을 해줄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그때는 할머니라고 해도 한 50대밖에 안 돼요. 그래서 그 할머니의 달거리 한 팬티까지 전부 빨아 주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종 중의 종이 되고, 효자 중의 효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아들보다도 내가 더 가깝지요. 그러니까 그집 할아버지가 얼마나…. 이 할머니가 자기 아들 같은 남한에서 온 젊은 사람을 중심삼고는 말이예요, 자기 할아버지는 상관도 없다는 거예요. 밥만 먹으면 나한테 오는 거예요. 그건 그렇게 돼 있다구요. 와 가지고 식구들과 역사하면서 하늘의 탕감복귀역사를 전부 이어 엮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종에서부터 올라가면서 `아! 여기 하나님이 사랑하는 종이 왔다', 그다음엔 `양자가 왔다' 이러면서 자꾸 올라가 가지고 그 축복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관권을 전도시킴으로 말미암아 여자 앞에 아담이 깔려 가지고 타락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 주관권을 다시 전도해서 그 할머니를 통해 종에서부터 양자, 서자, 아들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면 `하늘나라의 총리대신이다' 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 다음에는 `하늘나라의 전권을 대신한 예수님의 위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대상 실체다' 하고 딱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걸 바라고 가는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반대가 되는 거예요. 여인으로서 지금까지 내가 모시던 그 이상 나를 모셔야 됩니다. 그렇게 못 모시면 악마가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 고 이걸 탕감복귀한 것입니다. 내가 세계 남자를 대신해서 효자라면 효자고 충신이라면 충신과 같은 입장에서 모든 걸 다 바쳐서 모셨던 것입니다. 그렇 게 함으로써 하늘의 축복의 계대를 전부 다 상속받고 `하늘나라의 왕권을 가 진 대표자다!' 할 때 여자는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됩니다. 그래서 다시 여권복귀의 기준을, 승리한 아담 왕권기준 앞에 상대적 충효의 인연을 묶어서 심정의 터전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그렇잖아요? 어젯날까지 종새끼 같은 입장에서 무슨 짓이든 다 하던 그 남자가, 아들 같았던 그 남자가 오늘은 호령을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다구요. 복귀역사는 그런 것입니다. 뒤넘이치는 거예요. 이것이 엑스(X), 와이(Y)가 교차되는 것입니다. 높아지기를 원하면 먼저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중심삼고 지금까지와는 반대되는 입장에 서게 되니 그 할머니가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렇더라도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집에 들어가 가지고 `야야, 저 문 아무개가 나를 이렇게 종년 취급하고 못살게 하는데 아들딸 된 너희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니? 영감, 가만 있겠소?'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 완전히 사탄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별의별 놀음이 다 벌어졌습니다. 영감을 데리고 다니고, 아들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몽둥이로 나를 때려죽이려고 하고 말이예요. 엄마도 이런 얘기 는 다 모르지. 이거 내가 처음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이러다가 나중에 가서는 그 할아버지가 급살을 맞아 죽었습니다. 하늘이 친 거지요. 하늘을 대해 가지고 자기 책임을 못 할 때는 거기에 사탄이 침범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거 참 무섭게 죽었어요. 나를 때려서 쫓으려고 지팡 이 들고 나오다가 쓰러져 죽었어요. 그런데 온몸이 퍼릇퍼릇하게 돼 가지고는 널에다 넣지 못할 정도로 부어 가지고 배가 터져 죽은 것입니다. 유다가 배 터져 죽었다는 말이 있잖아요? 딱 그와 같이 죽었어요. 이런 놀음을 하면서…. 거기서 그게 안 되니까 그런 아줌마와 같이 통하는 사람을 다시 계대로 이어 가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인에서부터 본연의 어머니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80세부터 다시 하는 것입니다. 80세 로부터 70세, 60세, 50세, 40세, 30세….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이것을 다시 물려서 어머니 시대까지, 어머니 연령까지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하는 할머니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더라도 찾아오는 거예 요. 옥세현 할머니, 지승도 할머니 외에도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찾아와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걸 다 거두어야 됩니다. 자기에게 무슨 사명 무슨 사명이 있다고 하는, 영계를 통해 가지고 연결된 열두 사도에 해당했던 그 상대적 사명들을 다 거두어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의 영적 기준의 승리 기반을 지상세계의 육적 승리 기반과 연결시킴으로써 영육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통한 사람들이 나는 세례 요한, 나는 누구누구 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과거에 모든 선조들을 중심삼고 실패했던 것을 거두기 위해서 선생님이 상대적으로 통하는 사람들을 보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열 두 제자를 대신 거둬 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통해서 숨쉬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열두 제자의 영을 거두어 가지고 실체 앞에 부식 시킴으로 말미암아 영육의 통일권이 비로소 선생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기 위해서 그 할머니와 싸울 때는 40일 간 영계에 들어가서 싸우는 것입니다. 온 영계가 선생님과는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 할머니 편에 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저 문 아무개는 하늘나라의 역적이다!' 해 가지고…. 사 실 역적이야 역적이지요. 도적같이 온다는 그 말이 맞는 말입니다. 전부 다 자기들이 모르는 세계를 중심삼고 뒤집어 놓으니, 하나님까지도 그 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하고 한 패가 돼서 공격해 버리는 거예요. 여기서 완전히 40여 일 동안 싸워 가지고…. 영계에 혼란이 벌어지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걸 재판할 수 있는 재판장은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공판을 해야 됩니다. 그 래서 문 아무개가 주장하고 나온 길이 옳다고 딱 공판해 버리면 하나님이 내 편에 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래 가지고 영계에서 승리하고 나서 지상에 와 가지고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재림주 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구요. (웃음) (선집 208권 318-322쪽)
핍박의 길을 걸어온 이유
참부모를 이 땅 위에 모셔서 만국의 해방을 갖추는 것이 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가 그 사명을 하지 못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함으로써 남북이 갈라졌고 동서가 분립됐습니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요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40년 전에 이런 얘기를 할 때 누가 선생님 말을 들었습니까? '쫓겨나고 할 수 없어서 저런 말하지, 거짓말을 해도 저렇게 뻔뻔스럽게 뼈다귀도 없는 갈비처럼 하누만'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아래서부터 올라갔습니다. 기독교가 선생님을 받들었으면 아래서부터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횡적인 기준에서 만국의 기독교가 협조하고 국가가 협조하는 가운데 선생님이 어머니를 만나 축복결혼식을 했더라면 만국이 통일되었습니다. 그랬으면 선생님에게 핍박이 없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모가 땅 위에 임할 수 있게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제물과 아들을 통해 준비했던 터전 위에 부모가 왔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가정을 이루어 만국에 왕권을 세우지 못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쫓겨나는 입장에서 다시 찾아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는 길을 하나님이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협조해서는 안 되게 돼 있었습니다. 협조하는 날에는 기독교를 손대지 못합니다. 기독교를 다시 구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자신을 치면서 기독교를 보호해 나왔고, 한국의 기독교를 키워 왔습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만일 선생님이 자신을 보호하고 기독교를 치는 날에는 기독교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핍박받으면서 극복해서 본래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개인적 핍박, 가정적 핍박, 종족․민족․국가․세계적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사탄이 총동원해 들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생활은 감옥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감옥이 개인기반을 닦는 종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종적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지상지옥 위에 하나님의 종적 심정권을 남기기 위해서는 감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볼 때, 제일 가까운 직단거리입니다. 이 자리에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승리해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몸 마음을 중심삼고 고통을 부정하는 몸과 마음의 싸움입니다.
몸과 마음이 여기에서 90도,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적 판도권인 횡적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종적 기준에 맞추고, 몸을 횡적 기준 90도에 맞춘 생활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 환경의 모든 것을 자기 형제와 같이 사랑하고, 자기 가정에서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 일원과 같이 옥중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옥중에 있는 모든 죄수들을 형님이요, 누나요, 동생이요, 아버지요, 언니요, 아내요, 어머니요, 할아버지같이 모실 수 있는 심정이 우러나야 됩니다. 이것이 안 돼 가지고는 개인해방이 안 됩니다. (선집 184권 271쪽, 89.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