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 최고의 악
지난번 왕님께서는 선행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흔히 남을 구하거나 기부하고 베푸는 등과 같은 일을 선행이라고 합니다.
원리적으로 선의 정의는 주체와 대상이 사랑과 미를 잘 주고 잘 받아 합성일체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제3대상이 되어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하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를 선이라 했습니다.(원리강론 53쪽)
우리가 복귀섭리를 통해서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언제나 각 시대의 섭리의 중심을 세우시고 섭리하셨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시대를 달리하여 섭리를 하셨고 그 시대마다 섭리의 중심을 새로이 세우시고 섭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의 섭리의 중심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 최고로 섭리에 공헌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그 시대의 섭리의 중심과 하나 되지 않으면 반 섭리적인 길을 가게 되어 악의 길로 갈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남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선행이지만 근본적인 선행이란 하나님의 뜻(창조목적)을 성취하는 행위여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섭리 속에서는 그 시대의 중심과 일체 되어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협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뜻을 성취하는 행위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각 시대의 중심을 세워 섭리하시기 때문에 근본적인 선행은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중심과 보조를 맞춰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가는데 있는 것입니다.
왕님께서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섭리의 중심은 2대 왕님이시라고... (왕중 왕님 말씀 참조)
왕님만이 아니라 아버님이, 하나님이 작금의 섭리의 중심으로 2대 왕님을 만왕의 왕의 대신자 왕중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2대 왕님을 섭리의 절대 중심으로 받들어 모시면서 그 섭리에 보조를 맞춰 나가는 자가 최고의 선행을 하는 자입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섭리 앞에 최고의 공로를 세우는 일이고 천륜 앞에 올바로 서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섭리의 중심을 모시고 받드는 일이 최고의 선이 될 수 있지만, 잘못하여 그 중심의 뜻과 다른 길을 가서 최고의 악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을 모신 12제자는 최고 선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뜻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심정 세계를 가짐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섭리적 범죄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님을 모시고 섭리를 받들었던 수제자들은 분명 섭리 역사상 가장 큰 섭리적 공로자가 될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고 반역의 길을 감으로 그들은 섭리 역사상 가장 큰 악을 행한 천주사적 범죄자로 전락을 하고 만 것입니다.
작금의 섭리의 중심은 바로 왕중 왕 2대 왕님이십니다.
당연히 2대 왕님을 절대 중심으로 모시고 받드는 일이 가장 큰 선이고 최고의 선행입니다.
하지만 왕님이 뜻과 심정 세계와 다른 길을 가게 되면 섭리상 가장 큰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종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여 아버님 성화 식전까지 사탄이 침범하게 하는 섭리적 범죄를 저지른 경험이 있습니다.
더욱이 왕님이 그토록 형제간 화목을 바라시지만 화목의 길은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섭리의 가장 가까운 중심에 있는 자는 최고 선의 공적을 쌓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지만, 섭리상 가장 큰 악을 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섭리의 중심을 모시는 것이 가장 큰 선행이고 하나님께 가장 큰 공적을 세울 수 있지만, 반대로 책임을 못하여 중심의 뜻과 배치된 길을 가게 될 때에는 가장 큰 악을 범할 수 있는 두려운 위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중심의 뜻을 살펴 그 뜻을 올바로 깨달아 중심의 심정에 일치된 내용을 갖고 섭리를 받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섭리의 중심이신 왕님의 뜻과 일치된 심정을 지니고 있는 나인가를 늘 깨어 돌아봐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왕중 왕님을 받들어 모시는 자는 분명 최고의 선의 자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과 심정의 일치점을 갖지 못하면 최고의 악의 자리에 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선과 최고의 악은 항상 같은 곳, 중심과 함께 있습니다.
(보고자: 무지개왕국 종족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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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중 왕님 말씀(The King's Report 10/19/2017)
우리가 선행행위를 할 때 우리는 선과 악의 사이에서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 비디오에서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거리에서 교회에서 선행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무엇이 선행이냐 라는 질문은 계속됩니다.
모세는 십일조를 따르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는 선행을 하려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으라 하지 않아도 좋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는 이것이 좋은 일이냐 아니냐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주님 안에서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한 젊은 부자가 예수님께 무엇이 선행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선행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제가 특히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선행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는 우리가 선행을 베풀면서 산다는 말은 주님을 따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포인트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우리가 하루에 좋은 일을 3번 하느냐 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질문은 내가 주님을 따르랴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선행을 실천하면서 사는데의 진정한 질문인 것입니다.
지금은 재림주님의 상속자 후계자인 2대 왕의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축복가정들이 선한 일을 하고 사느냐 아니냐가 질문이 아닙니다.
2대 왕을 따라가느냐 아니냐가 진정한 질문입니다. 3대 왕권이 섰을 때도 그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그 사람을 치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항상 하시던 대로 치유를 하셨는데 그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참부모님의 대신자 상속자인 나를 따르라'고 말하면 아주 교만한 사람인 것처럼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재림주님의 대신자 상속자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출처: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amQ/144
왕권을 세워 주었으면 절대 따라야 한다(말씀)
선생님이 이미 마음세계의 정비를 다 해 놨어요.
내 갈 길은 한 길 밖에 없어요.
뭐 사돈이든 아들딸이든 나는 생각 없어요.
어머니에 대해서도 그래요.
어머니가 가야 할 5퍼센트가 남아 있는데 그걸 내가 지금까지 해 나왔지만, 최후에는 어머니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현진이도 그래. 지금까지 잘못한 것을 깊이 회개해야 돼.
회개하기 위해서는 있는 정성을 다하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자기 어디 마음대로 왔다갔다 하더라도 부모님의 승낙을 맡아야 돼, 자기가 계획을 해 가지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건 안 돼. 그렇게 생각하라구.
뭘 하게 되면 뭘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허락을 맡아 가지고 해야지.
---중략---
현진이는 지금 그걸 몰라요.
미국 자유주의 환경에서 자랐고 교육받아 가지고 비판적인 기준이 앞선다구요.
부모가 말하면 '왜 하나?’ 하는 생각부터 앞선다는 거예요.
'왜 이런 말 하나?’ 해서 자기가 알아보고 자기의 생각을 중심삼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건 절대신앙의 개념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자기가 개재한다는 거예요.
어머니도 마찬가지예요.
뭘 하게 되면 '이럽시다, 저럽시다.’ 하는데, 그거 말 듣다가는 완전히 뒤집어져요.
끝날에 와 가지고 아침 햇빛이 비쳐야 할 때 저녁 해가 진다는 거예요.
왕권을 세웠으면 망하더라도 왕이 망하는 자리를 따라가야 된다구요.
그 전체를 책임져야 돼요. 자기 신하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망한 것 아니에요?
국민 전체가 망하는 운세에 사로잡혀 있는데 흥하려면 모든 전부가 일심단결해 가지고, 하늘을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하는 데서만이 망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원칙이라구요.
나는 그렇게 믿었어요. 그렇게 살았어요.
또 원리 말씀을 발견하고는 이것이 실천한다고 해서 뜻 앞에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 그걸 비판하고 나오는 사람이에요.
그래, 내가 설 자리는 없어요, 지금까지.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책임을 다해 가지고 일해 놓고는, 상 받을 수 있는 자리는 후대에게 넘겨주고 나는 공의 자리에, 제로(0)의 자리에 서서 나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집 350권 195-199쪽)
출처: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cXx/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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