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에 대한 아버님의 해석
최근 인터넷을 통해 아리랑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본인은 아버님께서 아리랑에 대해 어떠한 해석과 섭리적 의의를 두고 말씀하셨는지에 대한 말씀 자료를 찾아 정리를 해봤습니다.
먼저 아리랑이란 12고개를 넘어야 하는 복귀 고개를 노래한 한국 민요로 계시적 민족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노래라고 하셨습니다.
아리랑 고개가 몇 고개입니까? 열두 고개라구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낭군을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갖고 ‘어떤 어려운 길이라도 참고 간다. 배고픔도 참고 눈물 길도 참으며 넘어가고 또 넘어가는 것이다. 나는 죽고 없어져도 당신의 소원의 터전 위에서,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칭찬할 수 있는 하나의 신랑 신부로 만납시다.’ 하며 아리랑 고개 열두 고개를 넘어가서 만나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리랑 고개를 열두 고개라고 하지요? 그 아리랑 고개는 복귀 고개입니다, 복귀 고개. 한국 민요를 보면, 한국 백성은 참으로 계시적인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열두 고개라는 말이 나왔느냐? 복귀노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집 43권 218쪽)
한국은 아리랑 아리랑 해서 열두
고개, 십리도 못 가서 10수도 못 넘어서 발병이 나서 죽는다는 거예요. 열두 고개를 가다, 10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서, 발이 설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참, 그거…. 유행가 뜻도 전부가 하나님의 섭리를 다
말했어요. (2009년 10월 15일(木), 천정궁.
* 이
말씀은 원구피스컵 시상식 및 천주축복식 경축 오찬 때 하신 것임)
기독교를 중심으로 탕감해야 할 탕감의 노정을 민족적인 기준에서 싸워 넘어야 하는 12고개를 노래한 것이 바로 아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가 이것을 인계받아 재차 개인적인 탕감과 가정적인 탕감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한 줄기 한 방향으로 탕감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책임을 못 한 연고로 기독교를 중심삼고 사방으로 탕감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적으로 유랑 하게 된 것입니다. 천대받고 있어요. 그래야 됩니다. 오늘날 유대민족 하면 모두 좋아하지 않지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승리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가정의 시조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적으로 승리한 후에는 또 종족적인 싸움터에 나가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 종족적인 승리자는 민족적인 터전에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민족적인 터전 위에 서면 국가적인 기준에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보면 그저 예수 믿고 복 받고 천당 가겠다고 합니다. 천당 가기가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들이 믿는 그대로라면 얼마나 간단하고 좋겠냐구요. 그러나 통일교회는 복잡합니다. 마지막 고개인 줄 알고 넘어가면, 또 넘어야 할 고개가 있고 또 있습니다. 이것이 몇 고개인고 하면 열두 고개입니다. 한국 민요의 아리랑 고개가 열두 고개지요? 그것은 주님이 오시는 고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시대에 이런 노래를 들으면 실감이 납니다. 춘하추동도 열두 달이지요? 예수님도 12제자를 거느렸습니다. 12사람을 거느리자니 12 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세계적인 복귀역사입니다. 하늘땅 전체를 최후로 복귀할 날을 바라보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을 달성 하기까지 수많은 민족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날은 찾아야 됩니다. (선집 14권 125-126쪽)
아리랑은 본래 애리령(愛里嶺)이라고 하셨습니다. 발음하기 쉽게 후에 아리랑으로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리람이에요, 아리랑이에요?「아리랑입니다.」그건 아리랑, 사랑 ‘애(愛)’ 자하고 떠날 ‘리(離)’ 자 하고 마을 ‘리(里)’, 고개 ‘령(嶺)’자예요. 아리령, 사랑하는 동네를 찾아가는 고개를 말해요. 발음을 하려니 ‘령’ 하는 것보다 ‘랑’ 하는 게 더 쉽기 때문에 애리령’이 ‘아리랑’ 된 거라구요. (선집 518권 255쪽)
애리령(愛里嶺)이 아리랑으로 된 시기는 바로 일제시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뭐냐면 아리랑이 아니야, 애리랑입니다. 사랑의 ‘마을 리(理)’자는 왕
앞에 ‘마을 리’ 한 겁니다. 왕. 애리야, 애리. ‘아’자 ‘사랑 애’자. ‘애’가 발음하기 힘드니까 일본 나라는 ‘애’가 힘들지. ‘애’
발음이 없거든. 아, 일본놈들이 이 땅에 와서 노래배울 것은 아리랑이 애리랑인데 아리랑을 만들어 놨어요. (2010년 7월
1일(木), 천정궁.
* 이 말씀은 천정궁 훈독회 때 하신
것임)
아버님은 애리령(愛里嶺)이 아닌 애리랑(愛離郞)으로 해석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아리랑이 왜 아리랑이냐?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랑 애(愛) 자(字)하고 떠날 리(離) 자(字)하고, 그다음에 밝을(맑을) 랑(郞) 자(字) 해서 애리랑인데 아리랑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맑고 밝은 날 다시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흘리는 눈물이 변하여 무엇이 되느냐?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천년의 서러운 사연을 품고 만년을 고대하면서 이 애리랑 고개를 넘어와서 한자리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앞으로 선생님이 아리랑 노래를 하나 지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삼천리반도가 되게 하자 이제 우리는 한국이 살 수 있는 깃발을 꽂아야 합니다. 그 깃발이 드높이 들리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승리를 찬양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모여진 것입니다. (선집 22권 104-105쪽)
아리랑의 뜻대로 역사 차원의 세계에서 세계 차원의 시대에 와 있다고 하셨습니다.
(판서하심) 아리랑, 아리랑이 뭐냐 하면, 아리랑이라는 것은 ‘령(嶺)’ 자예요. ‘사랑의 마을을 찾아가는 고개’다 이거예요. 열두 고개, 열두 고개예요. 사랑의 마을을 찾아가는 고개, 이렇게 세계 차원 시대가 왔어요. 역사에서 세계 차원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왔다는 거예요. 세계 가정 시대가 열리는 거예요. * 알겠어요?「예.」여러분은 그러한 지구 가정에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바깥 세상에서는 상반되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선집 287권 80쪽)
한국 민족은 멋진 민족인 것이 아리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사람, 한국 국민의 가슴 한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뭣이냐? 동서남북을 봐도 다 도적놈들이예요. 도적놈들이 살고 있으니 참된 분을, 참된 임을 찾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 임을 생각함에 있어서 여러분이 아는 아리랑 아리랑 고개도 그거예요. 아리랑 아리랑 무슨 아리랑 고개예요? 나 다 잊어버렸구만. 날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고 합니다. 발병이 난다는 것보다 더 지독하게 해야지, 발병이 뭐예요? 발이 몽땅 잘려 떨어져…. (웃음) 그래도 여유가 있는 민족입니다. 나 같으면 그저 다리가 몽땅 부러져라고 할 텐데 말이예요. (웃으심) 그걸 보면 그렇게 못 살면서도 여유가 있거든요. 그래서 한국 민족은 멋진 민족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춤을 춰도 궁둥이만 아장아장…. (몸짓으로 표현하심. 웃음)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춤을 춰도, 원없이 무대가 좁도록 추니 박자가 큽니다. 그거 멋있는 거예요. 멋이라는 것은 말이예요, 요렇게 하는 건 멋이 없어요. 훌―훌 날고, 요러다가도 훌―훌 날고 그래야 멋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웃음) 이렇게 좋아 하는 걸 보니까, 우리가 오늘 3․1절 기념행사 축하 잘하오, 못 하오? 「잘 해요」 기분 좋지요, 모두들 지금? (웃음) (선집 174권 219쪽)
위 말씀들을 정리해보면서 한민족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섭리에 부응하는 길을 걸어왔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리랑이란 민요를 지어 불렀듯이 아버님 말씀대로 12고개의 복귀 고개를 잘 넘어 승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홀로 아리랑을 성가에까지 편입시키면서 복귀의 고개를 잘 넘어 승리하기를 바라시는 아버님의 뜻에 부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리: 무지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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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기독교가 이것을 인계받아 재차 개인적인 탕감과 가정적인 탕감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한 줄기 한 방향으로 탕감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책임을 못 한 연고로 기독교를 중심삼고 사방으로 탕감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적으로 유랑 하게 된 것입니다. 천대받고 있어요. 그래야 됩니다. 오늘날 유대민족 하면 모두 좋아하지 않지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승리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가정의 시조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적으로 승리한 후에는 또 종족적인 싸움터에 나가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 종족적인 승리자는 민족적인 터전에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민족적인 터전 위에 서면 국가적인 기준에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보면 그저 예수 믿고 복 받고 천당 가겠다고 합니다. 천당 가기가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어 요. 그들이 믿는 그대로라면 얼마나 간단하고 좋겠냐구요. 그러나 통일교 회는 복잡합니다. 마지막 고개인 줄 알고 넘어가면, 또 넘어야 할 고개가 있고 또 있습니다. 이것이 몇 고개인고 하면 열두 고개입니다. 한국 민요의 아리랑 고개가 열두 고개지요? 그것은 주님이 오시는 고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시대에 이런 노래를 들으면 실감이 납니다. 춘하추동도 열두 달이지요? 예수님도 12제자를 거느렸습니다. 12사람을 거느리자니 12 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세계적인 복귀역사입니다. 하늘땅 전체를 최후로 복귀할 날을 바라보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을 달성 하기까지 수많은 민족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날은 찾아야 됩니다.(선집 14권 125-126쪽)
아리랑이 왜 아리랑이냐?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랑 애(愛) 자(字)하고 떠날 리(離) 자(字)하고, 그다음에 밝을(맑을) 랑(郞) 자(字) 해서 애리랑인데 아리랑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맑고 밝은 날 다시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흘리는 눈물이 변하여 무엇이 되느냐?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천년의 서러운 사연을 품고 만년을 고대하면서 이 애리랑 고개를 넘어와서 한자리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앞으로 선생님 이 아리랑 노래를 하나 지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삼천리반도가 되게 하자 이제 우리는 한국이 살 수 있는 깃발을 꽂아야 합니다. 그 깃발이 드높이 들리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승리를 찬양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모여진 것입니다. (선집 22권 104-105쪽)
아리랑 고개가 몇 고개입니까? 열두 고개라구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낭군을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갖고 ‘어떤 어려운 길이라도 참고 간다. 배고픔도 참고 눈물 길도 참으며 넘어가고 또 넘어가는 것이다. 나는 죽고 없어져도 당신의 소원의 터전 위에서,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칭찬할 수 있는 하나의 신랑 신부로 만납시다.’ 하며 아리랑 고개 열두 고개를 넘어가서 만나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리랑 고개를 열두 고개라고 하지요? 그 아리랑 고개는 복귀 고개입니다, 복귀 고개. 한국 민요를 보면, 한국 백성은 참으로 계시적인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열두 고개라는 말이 나왔느냐? 복귀노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집 43권 218쪽)
열두 고개를 넘어가야 됩니다. ‘아리랑, 아리랑’ 이것이 ‘사랑 애(愛)’ 자, ‘마을 리(里)’ 자, ‘고개 령(嶺)’ 자입니다. 사랑하는 마을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버리고 갔다가는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말 알지요? 한국 민요 가운데 그 아리랑 열두 고개란 말…. 지금 내가 열두 고개를 넘느라고 고생하는 겁니다. 열두 고개를 넘으니까 순식간에 전부 다 평준화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디나 갈 수 있는 겁니다. (289-263, 1998.1.21)
한국 사람, 한국 국민의 가슴 한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뭣이냐? 동서남북을 봐도 다 도적놈들이예요. 도적놈들이 살고 있으니 참된 분을, 참된 임을 찾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 임을 생각함에 있어서 여러분이 아는 아리랑 아리랑 고개도 그거예요. 아리랑 아리랑 무슨 아리랑 고개예요? 나 다 잊어버렸구만. 날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합니다. 발병이 난다는 것보다 더 지독하게 해야지, 발병이 뭐예요? 발이 몽땅 잘려 떨어져…. (웃음) 그래도 여유가 있는 민족입니다. 나 같으면 그저 다리가 몽땅 부러져라고 할 텐데 말이예요. (웃으심) 그걸 보면 그렇게 못 살면서도 여유가 있거든요. 그래서 한국 민족은 멋진 민족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춤을 춰도 궁둥이만 아장아장…. (몸짓으로 표현하심. 웃음)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춤을 춰도, 원없이 무대가 좁도록 추니 박자가 큽니다. 그거 멋있는 거예요. 멋이라는 것은 말이예요, 요렇게 하는 건 멋이 없어요. 훌―훌 날고, 요러다가도 훌―훌 날고 그래야 멋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웃음) 이렇게 좋아 하는 걸 보니까, 우리가 오늘 3․1절 기념행사 축하 잘하오, 못 하오? 「잘 해요」 기분 좋지요, 모두들 지금? (웃음) (선집 174권 219쪽)
한국은 아리랑
아리랑 해서 열두 고개, 십리도 못 가서 10수도 못 넘어서 발병이 나서 죽는다는 거예요. 열두 고개를 가다, 10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서,
발이 설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참, 그거…. 유행가 뜻도 전부가
하나님의 섭리를 다 말했어요. (2009년 10월 15일(木), 천정궁.
* 이 말씀은 원구피스컵 시상식 및 천주축복식 경축 오찬 때 하신 것임)
‘울산 아리랑’ 할 때 울지 말고, 기쁨의 환희의 동산, 에덴동산에서 기쁨의 얼굴,
기쁨의 마음 가지고 찾아가지고 가야 되는 거야. 자!
(허 양 교구장의
‘울산아리랑’ 노래 시작; 산딸기 머루 다래 따다주던 그 손길…) 에덴동산을 말하는 거예요. (노래 계속; 앵두같은 내 입술에 그 이름 새겨놓고
꿈을 찾아 떠난 사람아…) 그렇게 살더랬는데 없어졌다는 얘기야. (2009년 10월 20일(火), 천정궁.
* 이 말씀은 아침 훈독회 때 하신 것임)
민요 노래 가운데 아리랑, 아리랑 그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것이 십리가 이 십리
고개야. 열 고개입니다. 열 고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고개를 못 넘어 가지고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거야.
돌아오지 않고는 되돌아 설 길이 없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나 그 노래
듣고 이노무 노래는 누가 지었냐고. 조상이 누구야? 조상 찾아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생각이 나요. 아리랑 고개. 아리랑 고개 알아요?
아리랑, 아리랑 뭐예요? 해봐요.
575:00~(아리랑 노래
제창)~575:19
그 말이 뭐냐면 아리랑이 아니야, 애리랑입니다.
사랑의 ‘마을 리(理)’자는 왕 앞에 ‘마을 리’ 한 겁니다. 왕. 애리야, 애리. ‘아’자 ‘사랑 애’자. ‘애’가 발음하기 힘드니까 일본
나라는 ‘애’가 힘들지. ‘애’ 발음이 없거든. 아, 일본놈들이 이 땅에 와서 노래배울 것은 아리랑이 애리랑인데 아리랑을 만들어 놨어요.
(2010년 7월 1일(木), 천정궁.
* 이 말씀은 천정궁 훈독회 때
하신 것임)
피아노 소리를 피아노 건을 만들 때 ‘도레미파솔라시도’ 할 때는 거기에 부음 붙은
것을 뭐라고 그러나? 반음 높여주는 이런 기호가 있습니다. 반음 낮춰주는 기호. 그래 ‘도레미파솔라시도’ 화음이 안 되고 없습니다.
한국나라는 아리랑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십리도 못 가서 ‘아리~~~’ 반음을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그거 한국사람 같이 반음을 많이 집어넣는 것은 베토벤도 못 해요. 베토벤
9번이라는 것이 직선이지 하늘이 이렇게 갈 수 있지, 이렇게 돌아가 가지고 이리 가 가지고 그 직선 아홉이 새끼쳐 가지고 둥글게 돼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자르면 얼룩덜룩한 무늬가 많이 생긴다는 겁니다. (2010년 7월 6일(火), 청해가든.
* 이 말씀은 아침 훈독회 때 하신 것임)
노래 아리랑에 ‘아리랑’이라는 것은 ‘사랑 애(愛)’ 자에 아리, 님 그만 뵈면
아련한 것이 사랑하는 동네에 고개 고개를 넘어 아리랑. 애리령인데 일본 애들이 ‘애’란 발음 못 하게 돼 아, 아리랑이라 부르게 됐다고.
대관령이 아리랑이 돼 있다고 전부 다. 저 고개를 넘은 거라고.
울산아리랑도 그렇잖아. 그 아리랑. 열두고개를 넘어가지. 우리 결혼이 열두고개입니다. 열두고개.
12수, 십간십이지를 넘지 않으면 사랑하다, 사랑하다 죽어. 벼락 맞아. 그런 거 다 모르지. 한국사상만 하면 충효지도를 다 알게 돼 있어.
배우지 않아도. 공자도 중국에 없고 일본에 없어. 동양 한국만 있다고. (2010년 7월 12일(月), 이스트
가든.
* 이 말씀은 아침 훈독회 때 하신 것임)
아리랑 고개도 얼마나 뼈가 울어, 운다구요. 한국말은 그렇게 심도가 깊고 폭이 높고
넓고 깊고 또 얇다면 지극히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먼저 나와요. 슬픈 역사를 매일 같이 느끼고 싶은 말 아니면 움직일 줄 모릅니다. 제일 슬픔의
왕자권을 찾으면 한국사람 말고 없어요. 그래 한국 아니야? 승한 여기 뭐라고 썼어?「성취.」성취. 한들을 성취 못하면 여기 들라고 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식당에 가면 뭐예요?「일심정착.」일심?「정착.」한
마음으로 정착하지 않으면 못 삽니다. 그래서 내가 잉어를 길러요. (2010년 7월 13일(화), 이스트가든.
* 이 말씀은 아침 훈독회 때 하신 것임)
그 다음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누가 넘어가요?
애리령입니다. 사랑하는 고개를 엄마를 그리워하고 누나를 그리워하고 아내를 그리워하고 아들딸을 그리워하는 애리랑. 고향 마루터가 애리랑. 그게
아리랑이야. 아리랑. 애리량. (2011년 8월 7일(日), 천화궁.
*
이 말씀은 아침훈독회 때 하신 것임)
울산아리랑은 에덴동산이야. 동산아리랑이야. 울산이 아니라. 울상! 울상이 웃을 상.
그 왜 울상이야? 울산아리랑은 웃을 상 아리랑이야. 아리랑 ‘사랑 애(愛)’자에 울만 ‘마을 리(里)’자야 ‘마을 리’야. 사랑의 마을을 찾은
애리령의 고개야. 그거 넘어가. 12고개 넘어가 12고개. ‘리(里)’ 자에 ‘마을 리’ 자, ‘떠날 리(離)’자야. 그거 1단계, 2단계 전부
다 못 가는 길이야. 갔다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복귀라는 건
탕감복귀라는 거 회귀라는 말 가지고는 옛날의 그 자리에도 갈 수 있고. 복귀는 복귀라는 걸 했으면 그보다 높은 자리에도 갈 수 있고 문전에도
갈 수 있는 거야. 그럼 참부모가 안 나와. 참부모가 없으면 참아들딸이 없어. 참가정이 없어. 회귀얘기를 하니 이게 회귀할 수 있는 전부 다
지름길 가르치는 비법이야. 비결이라고. 전부 다 있다는 거야. (2011년 9월 3일(土), 천정궁.
* 이 말씀은 아침 훈독회 때 하신 것)
아리랑 고개 12고개라고 하지요? 아리랑 하는 것이 사랑 ‘애(愛)’ 자 하고 마을 ‘리(里)’ 자하고 고개 ‘령(嶺)’ 이라구요. 사랑하는 마을을 찾아가는 고개라 그거예요. 그래서 아리랑입니다. 그런 뜻이 있는 거예요. 12고개를 넘어가는 것이 그렇다 이겁니다. 12고개를 만나 세계를 넘어가서 천하는 그 세계 품에 품기게 되어 있어요. 축복가정에 품겨야 할 때가 오는 거예요. (선집 283권 302쪽)
아리랑 고개는 열두 고개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리랑이라는 것은 ‘사랑 애(愛)’ 자, ‘마을 리(里)’ 자, ‘고개 령(嶺)’ 자라구요. 그러므로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하는 마을을 찾아가는 고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가야 된다구요. 사랑하는 마을을 찾아가려면 열두 고개를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세계의 열두 고개를 넘어가야 정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정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족적 메시아의 책임을 해야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것을 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7년 동안 가정교회를 만들었다구요. 가정교회를 한 것이 그 준비라구요. 가정교회를 전부 다 했으면 그것을 중심삼고 종족이 그냥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홈 처치(Home Church;가정교회)를 했으면 가인을 중심삼고 가정교회에 연결시켜 가지고 일족을 한꺼번에 몰아넣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가 완전히 우리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선집 285권 232쪽)
아리랑이라는 말은 사랑 ‘애(愛)’ 자 하고 마을 ‘리(里)’ 자 하고 고개 ‘령(嶺)’ 자예요. 애리령(愛里嶺)! 사랑의 동산, 가정을 찾기 위해서는 열 두 고개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집 286권 44쪽)
(판서하심) 아리랑, 아리랑이 뭐냐 하면, 아리랑이라는 것은 ‘령(嶺)’ 자예요. ‘사랑의 마을을 찾아가는 고개’ 다 이거예요. 열두 고개, 열두 고개예요. 사랑의 마을을 찾아가는 고개, 이렇게 되면 세계 차원 시대가 왔어요. 역사에서 세계 차원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왔다는 거예요. 세계 가정 시대가 열리는 거예요. * 알겠어요?「예.」여러분은 그러한 지구 가정에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바깥 세상에서는 상반되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선집 287권 80쪽)
‘아리랑, 아리랑’ 이것이 사랑 ‘애(愛)’ 자, 마을 ‘리(里)’ 자, 고개 ‘령(嶺)’자예요. 사랑하는 마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버리고 갔다가는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거 있지요? 그거 다 한국민요 가운데 그 아리랑 열두 고개란 말 참…. 지금 내가 열두 고개 넘느라고 고생하는 거예요, 이게. 열두 고개 넘으니까 전부 다 평준화되는 거예요, 이게, 순식간에. 그러니까 어디나 갈 수 있는 거예요. (선집 264쪽)
한국의 민요 가운데 계시적인 내용의 민요인 ‘아리랑’에 고개가 몇 고개라구요? 열두 고개예요. 아리랑이란 ‘사랑 애(愛)’ 자에 ‘마을 리 (里)’자, ‘고개 령(嶺)’자 해서 '사랑의 마을을 찾아가는 고개' 라는 거예요. 열두 고개를 넘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그것은 축복가정이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 거라구요. 그런데 뭣도 모르고 아리랑 아리랑 하지요? (선집 308권 228쪽)
‘아리랑’ 이란 것은 ‘사랑 애(愛)’자, ‘ 마을 리(里)’자, ‘ 고개 령 (嶺)’ 자예요. 사랑하는 마을 열두 고개를 넘어야 돼요. 왜? 12상이에요. 천운이 그렇게 돌아요. 춘하추동 열두 달이라는 거예요. (선집 349권 42-43쪽)
그래서 열두 고개 애리령(愛里嶺)이에요. ‘애리령’ 하려면 힘들기 때문에 ‘ 아리랑’ 된 거예요. 애리령이라고 하면 말이 잘 안 들린다구요. 이 아리랑이라고 하면 울려 나가는 화음이 크기 때문에 '애'를 '아' 로 하는 거예요.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뭐라구요?「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통일교회 믿던 사람들은 십리도 못 가서, 자기가 일년 신수도 넘기 전에, 십년을 못 넘어서 나온 것을 후회하는 거예요. 잊을 수 없어요. 원리 말씀을 중심삼고 보면 세상 이치가 전부 통하기 때문에 여기에 가도 원리에 맞고, 저기에 가도 원리에 맞아요. (선집 411권 51-52쪽)
‘ 아리랑’ 하게 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사랑 애(愛)’ 자하고 ‘ 마을 리(里)’ 자하고 ‘고개 령(嶺)’ 자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마을을 찾아가는 열두 고개라는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잘 부르는 아리랑 노래는 열두 고개를 넘어야 돼요. 열두 고개를 넘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의 안착지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걸 깊이 생각하면서, 여기(‘홀로 아리랑’)에는 애국사상과 넘어가서는 천하 평화를 바라는 소망의 마음, 천국의 사랑의 동산을 찾아가는 내용이 충분히 내포돼 있기 때문에 성가에 집어넣어 부르기 시작했다구요. (선집 413권 55쪽)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통일교회와 똑같은 사정이라구요.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외로운 도는 통일교회를 말하는 거예요.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 보자 같이 가 보자』 아리랑은 ‘애리령(愛里嶺)’ 이에요. 사랑의 동네를 찾아가는 거예요.
복귀의 열두 고개를 넘어간다는 얘기예요.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이 열 두 고개를 넘어 가지고 정착해 왔다는 거예요.「아리랑을 애리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 애(愛)’자하고 ‘ 마을 리(里)’자하고 ‘ 고개 령 (嶺)’ 해서 애리령이라고 하셨습니다.」그럼, 그것이 아리랑이에요. 자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 가는데』 같은 길을 배 타고 가자는 거예요. 동쪽도 같은 데고, 태양이 올라 오는 곳을 상징한다는 거예요. 우리 가는 길이 그래요. 자!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 보자 같이 가보자』 여수 순천에서부터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가고, 여기 제주도 한라산에서 동해로 가는 모든 전부가 험한 길, 낮과 밤을 상징하는 거예요. 물을 찾아가는 바다를 찾아가는, 태양이 떠오르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이상 하는 것인데, 그 이상 하는 조국이 이 땅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이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닻을 내리는 거예요. 온 세상이 그 날을 소원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를 바라요.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 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 섬에 닻을 내리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해 보자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 보자 같이 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 보자 같이 가 보자』 여수 순천이 참 이름이 좋아요. 이곳이 목포하고 부산의 가운데 있다는 거예요. 목포는 중국을 통하고 부산은 일본을 통하는 거예요. 강과 바다를 중심삼고 보면 용암포에 직결되는 거예요. 용암포을 따라 올라가면 백두산 천지(天池)가 있는데, 천지는 아시아에 있어서…. 백두산(白頭山), 거룩한 성산(聖山)으로 중국도 모시는 거예요. 공자 같은 양반도 백두산을 중심삼고 동쪽 나라를 그리워한 거예요. (선집 430권 288-299쪽)
아리랑 아리랑 같이 못 간다! 홀로, ‘홀로아리랑’ 이에요. 아리랑 고개를 찾아가는 탕감 길은 홀로 가야 할 길이라는 거지요. 어머니 아버지, 나라를 찾아가는 길은 홀로 가야 돼요. 가다가 힘들게 되면 떨어질 사정이 많으니 전부 다 손잡고 같이 가야 되는, 형제지간을 가져야 같이 넘어가게 돼 있는 거예요. 협력 받고 협력해 줘야, 자기도 모르게 위해서 살아야만 그 길을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거예요. 홀로 가더라도 망해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집 432권 27쪽)
통일교회에서 독도라고 하는 것은 고독한 섬(獨島)이 아니라 고독한 길(獨道)이라구요. 독도가 말이에요, 조그만 얼굴은 문 선생의 얼굴이에요. 거센 바람이 동서남북으로 불어오더라도 말이에요,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해서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이라고 하는데, 아리랑 고개는 혼자서 넘어갈 필요가 없어요. 손 잡고 같이 가야 돼요. (선집 434권 90쪽)
아리랑이라는 것, 우리가 찾아가는 곳이 애리랑이에요. ‘사랑 애 (愛)’사랑의 마을, 동네! 사랑의 넘을 수 있는 곳, 애리랑, 애리령이라는 거예요. 사랑의 동네를 찾아서 애리령, 애리랑! ‘랑'이 '령'보다 쉽거든.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고개! 힘들면 서로 손잡고 같이 가자는 거예요. 혼자 가자는 것이 아니에요. (선집 493권 300쪽)
아리랑이에요, 아리랑이에요?「아리랑입니다.」그건 아리랑, ‘사랑 애(愛)’ 자하고 ‘떠날 리(離)’ 자하고 ‘마을 리(里)’, ‘고개 령(嶺)’ 자예요. 아리령, 사랑하는 동네를 찾아가는 고개를 말해요. 발음을 ‘령’ 하는 것보다 ‘랑’ 하는 게 더 쉽기 때문에 ‘아리령’이 ‘아리랑’이 된 거라구요. (선집 518권 255쪽)
독도가 외로운 도에 ‘조그만 섬과 같은 얼굴’ 그게 선생님의 상징이에요. (선집
531권 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