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급

무지... | 20161222122629

양심의 급

 

아버님은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고, 스승보다 앞서 있고,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본심이 타락성에 의해 가려져 하나님의 심정을 알지 못하여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성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타락성으로 가려진 상태에서도 부단히 본심은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무정한 인간 속에서 작용하는 본심은 양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소리를 듣고 양심에 따라 살아가면 점점 양심의 급이 높아져 궁극에는 하나님의 심정에 도달하게 되어 본심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모르게 된 무지하고 무정한 인간은 양심이 하나님보다 더 가까이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생명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양심이 하나님보다 먼저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계는 다양한 심령의 급이 있습니다.

아주 선한 사람에서 아주 악한 사람까지 그 급이 각각 다릅니다.

그 다양한 각각의 심령 기준에 따라 본심이 작용하여 양심으로 나타나므로 양심의 급이 천차만별입니다.

아주 선한 사람의 양심은 더 큰 선행을 하지 못하여 자책과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영화 타워링의 주인공은 화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내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심령의 고통을 받습니다.

내가 좀 더 노력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유태인 어린이를 수백 명 구해낸 오스카 신들러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지냈답니다.

자기가 좀 더 잘했다면 더 많은 어린이를 구했을 텐데 하고...


아버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루라도 빨리 구해주지 못한 애달픔을 안고 밤잠 못 주무시며 몸부림치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에 달리셨어도 당신의 아픔보다 인류를 구해주지 못한 것을 더 아파했습니다.

당신을 찌르는 자가 벌받을까 염려되어 몰라서 그러니 용서를 해달라고 대신 간구했습니다.

이렇듯 양심의 급이 높을수록 더 큰 자책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며 더욱 큰 선을 행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하지만 악한 사람의 양심은 어떻습니까?

큰 악을 행하고 그 속에서 조그마한 선행을 하고도  마치 자기가 큰 인심을 쓴 마냥 의기양양합니다.

한 못된 놈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못돼 먹어서 여자를 보면 강간하고 살해하고 그 시체를 훼손하여 암매장하며 인생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악을 행하고 돌아와 친구에게 하는 소리가  '나는 오늘 착한 일했다'고 자랑했습니다.

'내가 말이야 오늘도 한 이쁜 여자를 강간하고 재미를 봤는데 그 여자가 너무 이쁘고 불쌍해서 죽이질 않고 돈만 뺏고 그냥 보내줬어.

그리고 차비도 좀 챙겨주고...'

극단적인 이야기이지만 아주 악한 사람의 양심은 이렇습니다.

 

양심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급은 이렇게 천차만별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 악인을 살리셔야 하므로 이 악인의 본심을 통하여 양심의 소리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강간을 했지만 죽이진 않았고 돈을 빼앗았지만 선(?)을 베풀어 차비는 손에 쥐여준 그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인 것을 조건 삼아 그 악한 사람을 보다 선에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안고 그의 양심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급을 높여 가십니다.

복귀섭리 역사가 길고 길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양심의 소리를 묵살하고 거역하게 되면 악이 습관화되고 악이 습관이 되면 더 이상 양심은 작용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곤 양심의 급이 더욱 낮아져버립니다.

그래서 양심의 급이 떨어질수록 점점 악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양심을 거역하면 구원은 요원한 것입니다.

 

그럼 왜 양심의 소리를 묵살하고 거역할까요?

주요하게 이기심 때문입니다.

처음 타락한 해와는 자기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인간은 이기심이 발단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했습니다.(이상 통일사상 원상론 참조)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인간이 이기심으로 심정을 가리고 본심을 가려 타락성을 유발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떠나시고 사탄이 이기심을 통하여 우리를 주관하고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이기심을 따르면 양심의 소리를 묵살하고 거역해버리는 것입니다.

양심이 이기심에게 져버린 것입니다. 즉 이기심의 작용이 더 강하여 양심의 소리를 묵살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양심과 이기심은 늘 우리 마음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리 양심과 사탄의 무기인 이기심이 우리 마음속에서 투쟁하여 양심이 이기면 보다 선화되고 지면 보다 악화되는 것입니다.

 

 비록 타락한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심은 살아있어서 부단히 이기심(타락성)을 뚫고 비집고 올라오는 싹이 바로 양심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진리)으로 이 양심을 잘 가꾸고 성장시켜 급을 높이는 것이 신앙이며 복귀의 길입니다.

본심이 가려진 타락인간은 양심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양심은 내 마음속의 하나님이시니 그 양심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면 조금씩 조금씩 보다 선에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은 양심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곧 성령(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심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그 지시와 인도하심에 따르라고 하신 아버님의 말씀을 생명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양심의 급을 높여 가는 것이 하나님께 최고의 효를 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씀으로 양심을 자극하고 사랑의 생활로 양심의 급을 높이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조그마한 선을 행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의기양양한 자인지,


아님 더 큰 선행을 하지 못해 스스로 자책하며 양심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