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아야 했었다.(재림주님의 신부는 영국 왕실의 여인이었다.)

훈독왕 | 20170828130654

2차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아야 했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재림주님의 신부는 영국 왕실의 여인이었다)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를 통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는 최종적으로 1차세계대전을 통해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주실 수 있는 모든 섭리적 기대를 세우셨습니다. 
즉 1914년부터 시작된 1차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끝이 나면서 아버님이 탄생하실 수 있는 기대가 조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제3이스라엘에서는 유관순 열사가 독립만세운동(1919년 3월 1일)을 하심으로 영적으로 독립된 국가를 터로 하여 아버님이 이 땅에 탄생하실 수 있는 기대가 조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 위에 드디어 1920년 1월 6일 아버님이 탄생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님을 탄생하게 한 것뿐만 아니라 아버님을 잘 받들어 모실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영국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전 세계기독교 기반을 구축하시고 영국 왕실에서 아버님의 신부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님은 영국 왕실 여인과 성혼을 하심으로 세계적인 기독교 기반을 터로 하여 일사천리로 하나님의 섭리를 펼쳐 나가실 수 있도록 준비하셨습니다. 

이러한 영국 왕실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한국의 동쪽에서 백남주 목사를 중심한 신령한 교단들이 주님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서쪽에는 김성도씨를 중심한 신령한 교단(새주파, 성주교)들이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단의 핍박으로 동쪽의 백남주 목사와 서쪽의 김성도씨가 하나 되지 못 함으로 그 기대는 무너지게 됩니다. 


백남주 목사 대신 세워진 분이 이용도 목사입니다. 김성도 권사 대신 세워진 분은 복중교의 허호빈씨였습니다. 

아버님은 12세 경 이용도 목사를 중심한 신령 집단(새예수교)에 가 계셨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바로 재림주님 앞에 예수님 형 세례요한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성 기독교단들이 이용도 목사와 허호빈씨를 핍박하여 망가뜨림으로 말미암아 아버님은 그 기반을 잃어버리시고 다시 고난의 노정을 가시게 된 것입니다. 

당시 이용도 목사가 기독교단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복중교의 허호빈씨와 하나되어 아버님을 재림주님으로 받들어 모셨으면 아버님이 16세에 메시아 사명을 받고 하늘이 준비한 영국 왕실의 여인과 20세 전에 성혼을 이루어 세계적 메시아의 사명을 시작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영국을 중심한 세계적인 기독교 기반을 터로 하여 일사천리로 뜻을 펼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동양의 아버님과 서양의 영국 왕실 여인이 성혼하여 참부모님이 되시어 전 세계 기독교 성도들을 축복하시며 섭리를 펼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단이 예수님 형인 이용도 목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핍박함으로 인해 이용도 목사는 33세에 죽고 맙니다.(1933년)
이렇게 되어 아버님은 기독교의 기반을 잃어버리시고 당신이 2차세계대전과 함께 고난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2차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2차대전 후에라도 기독교단이 아버님을 맞이했더라면 당연히 한국전쟁(6.25 동란)은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1939년-1945년)은 이렇게 백남주 목사와 김성도 권사가 책임을 하지 못하고 그 사명을 이어받은 새예수교의 이용도 목사와 복중교의 허호빈의 신령한 집단마져 기독교가 핍박하여 붕괴시켜 재림주님을 받아들이는 기반을 무너뜨림으로 사탄이 침범한 것을 외적으로 세계적인 총탕감을 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버님의 기대가 되어야 할 이용도 목사가 기독교단의 반대와 핍박으로 죽게 되자 아버님은 새예수교단을 떠나 고난의 길을 가시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일제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며 2차 메시아 섭리로정을 가신 것입니다.

<말씀> 

 

16세에 순국한 유관순 열사는 타락하지 않은 해와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아담국가에서의 해와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 해와 입장에 있던 유관순 열사의 몸을 사탄이 여섯 조각으로 나누어 버렸습니다. 6수는 사탄수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국가에 충성을 다하면서, 일신을 희생해 가면서도 해방운동을 한 것입니다.
독립운동이 한창이었던 1919년에 선생님은 어머니의 복중에 있었어요. 독립되지 않은 땅에서 그냥은 태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싸움이 선생님의 생명을 중심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10개월 후인 1920년에 선생님이 태어난 것입니다. 타락한 해와의 죄를 탕감하기 위해서 하늘편 심정권을 가지고 이 땅 위의 모든 여자들을 대표하여 한국 땅을 지키면서 죽어 간 사람이 유관순입니다. (229-34) 


여성을 중심한 섭리는 김성도, 허호빈,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박 노파로 이어졌고, 남성을 중심삼은 섭리는 백남주 , 이용도,  김백문으로 이어졌다. 김인서가 신앙잡지를 통하여 이용도 목사를 매장했다. 이용도 목사는 새 예수교를 창립하여 에덴 복귀역사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모란봉에서 기도 해 온 것에 이은 것이었다. 이용도 목사는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심령 검토를 거울같이 하고 치병을 많이 했었다. 그러던 중 그 근처에 3대 독자가 폐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부모가 이 노인을 찾아와 자기 자식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부탁했다. 그래서 노인은 기도를 시작했는데 하늘은 그것을 말렸다. 그래도 그 노인이 계속 고집하므로 하늘은 그 노인으로부터 어떠한 대가를 치러도 좋다는 대답을 받고서야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그 노인이 물을 떠 놓고 정성을 들여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백일기도가 끝난 3시간 후에는 컵의 물을 끓기 시작하며 하늘의 음성이 들 렸다. 컵의 물을 들고 가서 환자에게 먹이되, 가는 도중에 누구를 만나더 라도 인사도 하지 말고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노인은 컵의 물을 가지고 쏜살같이 달려가서 환자에게 마시게 하니, 그 3대 독자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런 후 곧 그 노인의 자식이 대신 죽었다. 이용도 목사는 죽은 후에 김백문에게 나타나 사명 인계식을 했다. 선생님은 1945년 10월 김백문을 찾아가 상봉하여 그의 축복을 받았다. 선생님은 그때 누워서 잠을 자지 못했으며, 선생님이 앉은 자리에는 눈물이 마른 적이 없었다. 그들 이상으로 정성들여야 그들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 었다. 그후 만 8개월 후에 평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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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문은 그때 선생님에게 솔로몬왕과 같은 사명을 받은 분이라고 증거 하고 축복을 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노인과 중년 부인, 혹은 20대 부인들 이 선생님을 증거했기 때문이다. 김백문은 선생님을 축복한 후에는 선생님에게 굴복해야 했었다. 당시 김성도 등 정치적 환경도 되어 있었으나 불신 하여 선생님은 평양으로 떠났다. 평양으로 가기 두 달 전에 성진이가 탄생하여 선생님은 김백문의 문산 집회에 참석하고 그 수도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쌀을 사 가지고 오려고 출 발했는데, 그 도중에 북한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곧바로 평양으로 갔다. 선생님은 1946년 8월 11일, 북한 공산당에 의해 종교를 지칭해 사기했다는 죄목으로 대동보안서에 투옥됐다. 옥중에서 허호빈과 같은 방에 있게 되었는데 3일 후에는 허호빈 집단의 협회장 입장에 있는 사람을 한 감방에서 만났다. 그는 벌써 계시를 받고 나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었으며, 다음날 아침에는 내게 경배를 했다. 그는 허호빈 집단의 내정을 실토했다. 그러니까 감옥에서 춘향과 이 도령이 만난 것과 같은 셈이 됐다. 그들은 경배를 7천 번이나 하며 이날을 고대하였다고 하였다. 그 남자는 황원신이라는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감옥 내에서 허호빈에게 생명을 걸고 연락하여 그에게 계시 받은 책임을 다하도록 당부했다. 후에 그 사실이 발각되어 공산당에게 악형을 당했다. 1946년 6월 4일, 선생님은 이북에서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자칭하는 박 노파를 찾아갔다. 그때 선생님은 박 노파의 집에서 종살이부터 시작하여 옷을 빠는 것은 물론 변소 갈 때 수건 시중까지 했다. 그러던 중에 박 노파는 선생님이 여호와라는 계시를 받았으나 자기 자신만을 높여 갔다. 만약 그때 박 노파가 선생님을 축복하고 증거한 후 선 생님을 섬기고 따르며 선생님에게 순응했었다면 뜻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때 선생님은 40일간을 싸웠다. 그 싸움에서 양보하면 복귀섭리는 실패하게 되는 것이었다. 선생님을 축복했으나 섬기지는 못한 박 노파는 후에 미쳐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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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십자가길
선생님은 여러 명의 남자와 여자의 축복을 받아 아담의 입장을 복귀한 입장에 섰다. 선생님은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선집 23권 248-250쪽)


정수원 할머니 김성도, 철산의 김성도가 있었어요. 용천 옆에 철산이 있어요. 한 부락과 마찬가지예요. 거기에 백남주라는 원산에서부터 도 닦고 그런 사람이 나왔는데 똑똑한 사람이라구요. 동대를 나오고 다 그런 사람이 종교를 알아 가지고 신령한 역사를 체험하니까 별천지가 있는 것을 알았거든요. 기도하는 가운데 정수원 할머니를 찾아가라고 했어요. 정수원 할머니가 첩 아니에요, 첩? 첩과 마찬가지예 요. 그런 역사를 다 몰라요. 그들을 만나서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을 몰라요. 그래, 거기서 새예수교가 나왔어요. 성주교를 허가를 낸 것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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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주가 동대 나오고 그런 실력자니 정부가 부정할 수 없으니 허가를 내준 거예요. 백남주를 중심삼고 새예수교가 되기 전에 정수원 할머니하고 복중교까지 하나되었다면 내가 고생 안 해요. 그들이 예언한 모든 말을 내가 다 알아요. 그 종교의 기원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요.(선집 543권 233-234쪽)

그래서 신령한 집단들의 연합운동이 벌어졌습니다. 해방 전에 재건파가 나와서 교회가 새롭게 설립되었고, 그 다음에 한상동 목사를 중심삼은 고려파가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에는 신령한 집단으로 박동희라는 구약적인 에덴의 복귀파와 김백문이라는 신약적인 에덴의 복귀파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를 중심삼고도 신령한 집단이 나와야 했습니다. 남자들이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됨과 동시에 3대 여성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서 준비해야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해와가 하나님 앞에 먼저 불리움을 받아서 주님이 어떻게 온다는 걸 알고 3대에 걸쳐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될 섭리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혼란기에 김성도로부터 허호빈과 박을룡의 3대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 배후에 상대가 되었던 백남주 목사로부터 이용도 목사와 김백문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남성적인 새로운 교파들이 생겨난 동시에 여성적인 새로운 교파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국가의 배후에 새롭게 나타나던 신령한 모든 단체들을 포괄할 수 있어야 했는데 포괄하지 못했습니다.
평양에서 발행된 신앙생활이라는 잡지를 보면 김인서 장로를 중심삼고 이용도 목사를 핍박했고, 그 가운데 길선주 목사가 나타나 새로운 기독교 부흥을 일으키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거치던 와중에서 모든 것들을 직시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삼고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갖출 수 있었던 모든 정리(正理)를 갖추었습니다. 즉,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주장하는 원리의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이 지금 돌이켜볼 때 꿈같이 되살아납니다. (211권-135쪽)

새예수교에 대한 역사를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평양에서는 김인서라는 교회 장로가 <신앙생활>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가지고 이용도 목사를 반대한 거예요. 이용도 목사가 새롭게 출발한 1930년 대 선생님의 나이 12살 때 새로 부흥하는데, 부흥 줄기를 타 가지고 예수 부활체와 같이 태어난 사람이 이용도 목사예요. 이용도 목사는 나를 몰랐지만, 나는 이용도 목사의 역사를 전부 다 알고 그것을 도와 줬어요. 모란봉 을밀대에서 기도하던, 평양에 숨어서 기도하던 패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과 다 연결되어 있었다고요. 박계주가『순애보』라는 소설을 써 가지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일등을 한 거예요. 박계주의『순애보』소설을 알아요? 박계주의『순애 보』라고요. 박계주 외에 이용도 목사를 모시던 변종호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변종호의『서간집』이 나와 있어요. 이용도 목사는 선생님이 12살 되던 그때에 역사와 더불어 부흥해 가지고 선생님의 갈 길을 준비하는 거예요. 그 후 이용도 목사는 서른 세 살, 딱 예수의 연령 때와 같이 원산 약수터에 가서 죽었어요. 그는 나를 몰랐지만, 나는 그가 돌아가던 때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 이 선생님 주위에 있어서 기도하고 모금운동을 해 가지고 도와준 거예요. 그래, 새예수교의 새로운 교회들을 만들었는데 청년들을 지도할 수 있는 청년 지도자가 없었어요. 자기들이 그 사상적 근거를 다 몰랐어요. 우리 같은 사람은 이미 사상적 근거를 다 만들어 준비해 놓았어요. 타락이 어떻게 됐다는 것을 알고, 신교가 새로운 교리를 통해서 나눠 질 것을 알았어요.(선집 599권 325쪽)

새예수교의 이용도 목사를 중심삼고 기독교를 혁명해야 할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10대 소년서부터 거기의 지도층에 있던 왕초들하고 친구가 돼서 물어본 거예요. 그런데 몰라요.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지를 몰랐다는 거라구요. 나이 어린 소년, 20대 전에 사람이 이러고저러고 하면 그 집안은 망한다고 했어요. 여자 소리가 담 넘어가도 집안이 망한다고 했는데, 그보다도 아들이 그러면 3대도 못 가서 망한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침묵, 삼십 될 때까지 침묵이에요.(538권 311쪽)

 

한국의 동쪽 지방에서는 이용도, 황국주, 백남주 등 3인의 역사가 있었다. 백남주는 김성도에게 맨발로 찾아와 절하고 종의 입장에서 섬겨 올라와야 했다. 복귀시대이기 때문에 남자가 먼저 여자를 찾아와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1920년 이후 내적 역사에 따라 신사참배에 대항하는 남녀의 외적인 신령역사가 일어났다. 이때 만약 그들이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선생님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신앙의 조국으로서 사탄세계에 대한 승리의 기대를 세워야 한다. 해방되던 해가 선생님이 26세 되는 해이다.(선집 13권 128쪽)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고 주기철 목사 같은 이는 죽는다고 했지만 말이에요. 길선주 목사니 이용도 목사니 하는 목사는 선생님시대에 해당하는 부흥사들이었어요. 그때 그들이 말을 들었더라면 한국이 이 꼬락서니가 안 됐다는 거예요.(선집 366권 55쪽)

신교 역사를 천주교 역사를 시시콜콜이 이름까지 엮어내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이용도 목사도 나를 알고 죽었어. 나를 모시지 못했어. 너무 어리기 때문에. 내 여덟 살 때가 18년 때에요. 내가 모시는 열한 살, 열두 살, 열세 살 지내면 내가 모실 것인데 열세 살 되기 전에 죽었어. 원주 생수터 알아요? 서른세 살 때 생일나기 60일전부터 거기 가서 갈 준비하는 그 비용과 식사 거리의 돈을 내가 대줬어. 2011년 10월 30일(日), 천정궁 딕테이션

「다음은 기독교 지도자 중에 열두 번째로 이용도 목사입니다. 1901년도에 태어나서 1933년도 33살 나이로 떠난 사람이고⋯.」김대건, 이용도를 움직인 사람.「감리교 목사였고 대부흥사였습니다 .(김효율)」이 사람이 원산 약수터에서 33세에 홀로 죽었어. 선생님의 제자들이 영계에 몇 명 가 가지고 장례식을 치러준 사람입니다. 꿈같은 이야기지. 그거 읽어봐요. 이용도. 그 위는 김대건, 천주교 제1 순교 역사 김대건이 나오는구만.2009년 11월 2일(月), 천정궁. 딕

기독교만 환영하는 날에는 기독교와 미국이 하나되어 가지고…. 또 한국 에서는 지하 기독교, 신사참배 기독교, 미국 기독교 등 세 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사탄편에 갔고, 하나는 천사장편에 갔고, 하나는 지하에서 하늘편이 되어 있었다구요. 그래, 지하 기독교가 선생님과 연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재건교회로부터 교단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시켜서 가인 아벨을 가려온 것입니다. 개인적 가인 아벨로부터 가정적 가인 아벨, 교파 가인 아벨 형태를 거쳐 가지고 이 신령파들, 박동기 같은 에덴복귀파, 시온파인 김백문 에덴복귀파, 백남주 에덴복귀파, 이용도 에덴복귀파 등 많았어요. 이것이 기독교 역사의 전부 다 요사스러운 이단패로 흘러갔지만 그들이 이단 패가 아니예요. 천리에 있어서는 다리 놓기 위한 거예요. 다리를 분공장에서 모아 놓은 거예요. 갖다가 맞춰야 되는 거예요. 분공장에서 만든 것을 다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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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데 모아 묶는데 이걸 누가 묶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주님이 와서 묶는 거예요. 그런데 이놈의 책임자들이 전부 다 구름 타고 온다고 했다구요. 구름 타고 오면 되나요? 지상에 천국을 이루어 가지고 사랑이상을 이루어 출발해서 영계와 연결돼 야 할 텐데 오늘날 원리에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이런 망상적인 허무 맹랑한 입장에서…. 그 구름 타고 온다는 말이 무슨 말이예요? 요즘은 비행기 타고 날아 다니잖아요? 이때에 이박사 ! 파주에는 우리 할아버지가 계셨었는데, 그분이 목사예요. 하늘은 참 가정적으로 잘 준비해 놓았던 거예요. 우리 종조부가 나하고 같이 했으면 손자한테 전부 다 교육받아 가지고 목사고 뭐고 보따리 다 둘러멨을 거예요. 둘레메게 돼 있어요. 성경 토론하게 되면 나한테 배워야지, 할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켜 줄 것 아무것도 없어요. 거 신학이란 간단한 거예요. 책을 읽으면 아는 것 같지만 이런 원리 체계는 몰라요. 물어 보면 열이면 열 꼼짝 못하고 나한테 굴복하게 돼 있어요. 그래 유명한 분이거든, 그 양반이. 한학자로서 최남선의 친구고 독립선언서 작성한 다섯 사람중의 한 사람이예요. 이런 한학자고, 신학자고, 영어 잘하고, 허우대가 좋아요. 나보다 잘생겼어요. 우리도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내가 볼 때에 '야, 할아버지는 멋지게 생겼네. 한자리 해먹겠는데 왜 도망다니나, 저렇게 밤낮없이…' 내가 그랬다구요. (웃음) 할아버지는 잘났는데 좀 못난 것처럼 야간 도망 다니는 거예요. 왜? 독립군들 전부 다 우두머리가 되어 가지고 이북 5도의 노회장 했거든요. 노회장을 하고 이래 가지고 3․1운동 때는 이북 5도의 노회장이니까 그걸 코치하려고 정주로 내려갔는데, 이렇게 되니 3․1운동 때 그 대신 누가 참석했 느냐 하면 거기 장로 중의 이명용씨가 33인 중에 들어간 거예요. 원래는 우리 할아버지가 들어가는 거지요. 그런 애국자의 가정에서 자랐다구요. 그래 가지고 우리 할아버지는 그때 이박사하고 친하고 다 그랬어요. 그 할아버지에겐 우리 어머니가 조카며느리거든요. 그때에 우리 어머니가 시삼촌 감옥간다고 전부 닭 잡아 가고 뭐하고 그런 것 다 생각이 나요. 2년 반씩 옥 중생활했거든요, 만세사건에 주모자가 돼 가지고.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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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그때, 그분의 형님이 우리 할아버지지요. 종조부의 형님이 나에게 할아버지 아니예요? 우리 아버지는 종손이고. 그래 애국자 집안이 패망국이 돼 가지고 살면 뭘하냐 이거예요. 망하면 집이고 뭐고 필요 없고 거지떼들처럼 일가가 어디 흩어지고 다 그래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모든 재산, 자기 모든 것을 투입해 가지고 나라 살리는 운동 한 거예요. (선집 191권1 111-13쪽)

철산의 새주파(김성도)와 허호빈의 복중교는 예수님의 뜻을 알았다. 그래서 복중교에서는 예수께서 33세 때까지 고난받은 것을 탕감하기 위하여,
1968년 2월 8일(木), 전 본부교회. * 이 말씀은 유효원 전 협회장이 필기첩에 기록해 놓은 것을 정리하여 실은 것으로, 제목은 편집자가 붙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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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노정
재림주님이 오시면 매일 새 옷을 세 번 갈아입을 수 있는 많은 양의 옷을 준비했다. 그때가 일제 말기였다. 그들은 일본이 망할 그 시일, 시간까지 알았다. 이용도 목사가 여자(유명화)를 주(主)라고 한 후 이단으로 몰렸다. 이용도의 뜻을 김백문이 이었다. 선생님은 1945년 10월 김백문을 만났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서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백문 씨보다 문 선생을 따르라고 말했으나 그들은 원리를 몰라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다. 김백문은 선생님을 만난 후 6개월 만에 계시를 받고 선생님은 솔로몬 왕과 같은 사명을 받은 분이라고 축복을 했는데, 그는 그 진정한 뜻을 몰랐다. 그리고 선생님께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선생님이 자진해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봉 후 21개월 만에…. 그뒤 선생님은 성진과 그의 어머니를 남겨 놓고 서울을 떠나 1946년 6 월 6일 이북의 평양에 도착했다. 당시 김백문은 이승만 박사와 가까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세례 요한 입장에 세우고 뜻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북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하는 인물을 찾았다. 이번에는 김백문이 축복한 터전 위에 하나님의 부인이라 하는 여인에게 도 축복을 받아야 했다. 그 부인이 박○○ 할머니였다. 그 남편은 한 씨 성을 가진 지방의 유력자였다. 선생님은 당시 박 씨 할머니를 어머니 이상으로 모시는 입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10남매가 있었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동생의 입장에 섰다. 이때 박 씨 할머니는 선생님을 처음에는 종으로 증거하다가 그다음에는 양자, 예수님의 동생으로 증거했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아버지, 즉 하나 님의 실체이니 자기 남편이라고 증거했다. 이때부터 선생님은 주관성을 바로잡고 박 씨 할머니에게 섬기라고 명령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할머니에게 경배할 것을 명령했다. 이때 갑자기 위치가 바꿔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그 할머니 는 40일간을 영육 아우른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는 선생님을 하나님의 역적이라고까지 말하였다. 박 씨 할머니가 선생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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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므로 대신 다른 사람을 세우게 되었다. 해와는 재창조할 수 있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지 못함으로 인해 평양에서 1948년 2월 22일에 입감되어 옥중에서 2년 8개월간 있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사명을 못 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과 같은 것이었다. 옥중에는 라헬의 입장인 김OO씨가 같이 입옥(入獄)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옥중에서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만났다. 김○○는 라헬의 입장, 박 씨 할머니는 레아의 입장이며, 또한 나○○ 이라는 부인이 있었다. 이 세 부인이 선생님을 협조해야 했다. 선생님이 옥중에서 출감한 후는 실체로 부활한 입장과 같으므로 원리를 그대로 발표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국가로부터 핍박을 당한 것같이 선생님도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했다. 김OO는 선생님과 같이 옥에 들어갔었으나, 재림주가 옥에 갇힐 수 있는가 하는 시험에 걸려 떨어졌다. 선생님이 영안으로 볼 때, 그녀의 영인체 가 육신이 가니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하면서 눈물 흘리던 일이 잊혀지 지 않는다. 잃어버린 딸, 누이, 어머니 이 3대의 심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할머니로부터 20대 연령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다 복귀해야 한다. 옥세현 할머니는 이북에서 연결 짓는 사명을 했다. 원래는 옥세현 할머니 가정이 중심이 되어야 했으나, 남편의 반대로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득삼씨가 그 사명을 이어받았다. 선생님은 3시대의 여성을 복귀하는 기준을 세워야 되므로, 심정의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야 했다. 외적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다. 박 씨 할머니는 영계의 역사를 실체로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전부 재림하여 역사했다. 천사장의 실체 역사와 같은 역사도 하였다. 원산의 백남주 씨는 스웨덴보르그를 연구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서,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는 계시를 받고 주님의 역사를 하였고, 그 고난을 탕감하기 위하여 철산의 김성도 씨(정 장로 모친)를 맨발로 걸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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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노정
 만났고, 김성도 집단을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에 등록을 해 주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세례 요한 사명자였다. 그 뒤로 그 뜻이 이용도, 김 백문에게로 옮겨졌다. 1월 18일은 선생님 생애에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날이다. 그(김백문)가 받건 받지 아니하건 선생님으로서는 충고하여 청산하지 않고는 심정적인 재출발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열 여덟 장의 편지를 썼는데, 이것을 다 찢어 버린 날이었다. 이것을 찢은 후 선생님은 책임 다한 입장에서 평양으로 떠났다. 이날이 없이는 평양에 갈 수 없었다. *(선집 19권 259-262쪽)

해방 전까지 하나님은 선지자적 사명을 지닌 많은 인물들을 보내셔서 준비해 오셨습니다. 여기에는 부인들을 중심삼고 섭리하신 일면이 있는 동시에 남자들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신 일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섭리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 민족이 알지 못하고, 신앙자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특별히 택한 자들을 세우시어서 내적․외적으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 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은 해방 후에 새로운 발전적인 내용으로 출발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뜻을 전하기 위해 통일교회가 출발한 것입니다. 본래 고난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탕감복귀의 기준을 세워 나가기 위해서 고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가 인과 아벨의 입장을 다시 재현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는 아벨의 입장이고 한국 민족은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와 한국 민족은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 있어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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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다
집어 놓았으니,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벨에게 가인이 굴복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천륜을 세울 수 있는 참다운 부모의 인연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교단적으로 세워 나가야 되고, 한국 전체에 안팎으로 이런 기준을 세워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 다. 6천년 역사를 탕감복귀해야 할 통일교회 이러한 일을 위해 하나님이 신령적인 분야와 진리적인 분야에서 준비해 나오셨기 때문에 해방 전후에 한국에는 신령역사가 굉장히 많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구약시대적인 진리와 법과 이념을 갖고 나온 단체가 있었는가 하면, 신약시대적인 단체, 즉 예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온 신 령한 단체들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야 할 새로운 이 념을 갖고 나와 신령한 역사를 하는 단체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체 역사노정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구약섭리, 신약섭리, 성약 섭리를 해 나오시기 때문에 구약시대의 에덴복지 이념과 신약시대의 에덴 복지 이념, 그리고 앞으로 올 성약시대의 에덴복지 이념을 중심삼고, 이 한국 땅에서 각 시대의 섭리의 뜻을 대할 수 있는 특별한 인물들을 세워 이러한 신령역사를 전개시켜 나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분야 에서 신령한 역사를 하던 무리들은, 해방을 기점으로 하여 이 땅에 새로운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을 전부 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계시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했고, 기독교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 내에도 가인과 아벨이 있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있어야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의 동쪽 원산을 중심삼고는 백남주, 이용도 목사와 그 외의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연결시키셨고, 서쪽으로는 성주교단과 허호빈 집단을 중심삼고 섭리를 해 나오셨습니다 이렇게 3대 를 거쳐 나오게 하셨습니다. 1대와 2대까지는 준비의 시대입니다. 이때는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에서 지탄을 받고 교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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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복귀역사에서는 2수를 중심삼고 선과 악을 분별하기 때문에 두 번째 것은 언제나 맞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회적인 비판과 교단적인 반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범교단적으로 환영을 받고 사회적으로도 환영을 받았더라면 섭리의 뜻은 급진전하여 전국적인 섭리의 터전을 마련하고 새로운 역사의 터전을 공고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랐기 때문에, 즉 하나님께서 전국을 양분해서 체계적으로 섭리하시는 역사를 몰랐기 때문에, 눈앞에 나타난 사실만 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이 책임을 못 하면 반드시 후계자를 세워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집단과 단체가 나와서 이런 사명을 하지만 시일이 지남에 따라 하나의 귀결점을 향해서 신령한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해방 직후에 목사, 장로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부흥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성봉 목사, 박재봉 목사가 특별한 역사를 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일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파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목사시대가 지나고 장로시대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 장로, 나 장로 등 장로들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도 하나님이 섭리하시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집사시대, 성도시대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뜻을 받들고 특별한 섭리를 대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참석할 수 없는 입장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시대적인 환경을 대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내적인 역사를 거듭해 나왔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분야에 있어서 일단의 책임을 지고 지금까지 반대를 받으며 발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하면서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인 것은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있는 단체들을 기반으로 하여 국가적인 새로운 주권을 확립해 가지고 세계의 지도자들과 합의하며 이 길을 출발해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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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은 정상에서 만나야 앞으로 내적인 기준에서 대표적인 사명을 짊어진 사람과 외적인 기준에 서 대표적인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 상봉할 수 있는 한 때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의 정상에서 반드시 가인과 아벨이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이 만나는 정상의 자 리에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이 천도를 받들어 아벨 앞에 순응하는 기준을 갖추게 되면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 탕감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이 이 고개를 정상적으로 넘어간다면 서로 상대방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넘어가야 하는데 가인 아벨이 이 기준을 이루지 못하여 아벨만이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본래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 이 박사하고 손잡고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섭리적으로 보면 그렇게 될 수 있었는데 그때의 기성교회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틀어져 나갔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므로 이 길을 그냥 그대로 올라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높은 기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낮은 기준으로 떨어져 내려갔던 것입니다. 내려갈 때는 반드시 최하의 자리까지 내려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즉시 선생님은 이북으로 갔습니다. 이북으로 가서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헤롯왕에게 쫓길 때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합하여 예수님을 모시고 헤롯왕의 뜻을 반대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할 천적인 사명을 세우지 못했으므로 예수님이 애급으로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 역시 그러한 노정을 걷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북으로 갔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원수, 공산당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접하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최하의 옥중 생활까지 각오하고 이북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로 보게 되면 그때 이 민족에게는 외적으로 희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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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트는 것 같았지만 내적으로는 절망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때부터 최하의 고비고비를 거치고 시련과 고통을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나는 제1차 노정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지 못하고 제2차 노정을 가야 했기 때문에 고난의 길로 갔던 것입니다.(선집 16권 55-59쪽)

2천년 전의 탄생을 계승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상을 재현하고 사랑의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서다. 법적 에덴복귀 파는 박동기 파이며, 진리 에덴복귀 파는 이용도 파이다. 철산 새주님 파는 상대복귀 파이다. 독신 부인은 안 된다. 남편을 자체 굴복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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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참다운 탄생과 참다운 축하


그 부인의 탕감조건이 찬 후에는 남편이 꺾인다. 그 부인의 맏아들이 충성하고 받들어야 했다. 허호빈은 일본의 탄압을 밟고 나서야 했다. 석천 씨가 잘못하여 복중교로 뺏겼다. 재림주님은 셋과 같은 입장이다. 셋은 생각지 않은 데서 나왔다(가인 아벨이 사명을 못 함으로). 고로 재림주님을 모시는 단체는 허호빈 파가 아니고 다른 파에서 나와야 한다. 선생님은 옥중에서 허호빈에게 연락했었다. 그 일이 나중에 발각되어 선생님은 이가 부러졌었다. 선생님의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그는 죽었다. 이제는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영계의 문을 열어 놓으려 한다. 다음으로는 사랑 에덴복귀 파가 나와야 한다. 선생님은 여호와의 부인이라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런 부인을 중심하고 종적으로 3대를 거쳐 나가야 했다. 선생님이 27세 되던 때에 평양에서 만났다. 그러나 그 부인은 반은 사탄 역사를 했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은 그의 아들에게까지 시중 들었고, 결국 증거를 받고 승리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부터 증거받기 시작하여 수개월 이내에 여호와라는 증거까지 받았다. 법적 에덴복귀 파와 선생님과는 상관이 없다. 진리 에덴복귀 파에 가야 했다. 이용도 백남주 김백문 3대가 선생님을 축복해야 했다. 다윗에서부터 솔로몬왕에게 했던 것과 같은 축복을 해야 한다. 그런 축복을 받은 후에 평양에 갔다. 최후의 증거를 받은 후에는 주관권을 복귀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상속권을 복귀했다. 그 복을 받은 후에 개인적인 시련과 핍박이 있었다. 수천년 기간을 일시에 탕감하는 것이 3년 기간이다. 선생님은 신년 원단에 식구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다. 이와 같이 통일 신도들도 앞으로 외국 식구들에게 다소라도 돌려주어야 앞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선집 12권 121-122쪽)

예수는 역대 섭리사에 왔다 갔던 중심인 물들의 재림체요, 국가는 이스라엘의 재림체다. 공산주의는 가인, 민주주의는 아벨, 이상세계는 셋을 상징한다. 율법적으로 에덴을 복귀하고자 하는 파는 신․구약을 지킨다. 진리로 에덴을 복귀하고자 하는 파는 이용도 파로서 모든 것을 진리로 풀어 나가는 파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으로 에덴을 복귀하고자 하는 파가 나와야 한다. 지금은 성경에 있는 최고의 말씀을 거두어 이룰 때다. 여러분은 지금 하늘과 종적으로 연결되어 나아가지만, 중심이 생긴 다음부터는 평면적으로 연결되어 나아간다. 심정적인 인연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참된 통일의 아들딸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을 것이다. 자신을 주고 싶을 것이다. 과거나 현재에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어떠한 고통과 슬픔이 있어도 사탄 앞에 굴복하면 해원할 도리가 없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내 나가는 길을 어떠한 고통이나 슬픔과 어려움도 막을 수 없다는 심정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 제 어깨에, 제 몸에 지우고 싶으신 것을 지워 주시옵소서. 하고 자신 있게 아뢸 수 있어야 한다.(선집 11권 290쪽)

남자는 동쪽이고 부인은 서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쪽인 철산에서는 부인들이 신령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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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했고, 동쪽인 원산을 중심삼고 남자들의 신령의 역사가 벌어졌어요. 거기서 황국주, 이용도, 백남주 등이 신령역사를 했어요. 그때 이러한 외적인 형태를 기반으로 한 신령역사를 책임을 지고 나온 분이 이용도 목사입니 다. 그는 한국 교계에서 신령한 역사를 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서른 세 살 때에 죽었습니다. 그분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니 그분의 대(代)를 이은 한 분이 있어야 됩니다. 그 3대를 거쳐 반드시 그런 한 분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을 진 한 분이 있는데, 그건 여러분에게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재림기에 있어서 선생님을 중심한 역사와 그 과정 그러면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분들을 만나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해방 직후에 신령한 사람을 만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제일 믿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겁니다. 어떠한 사람을 만나야 하느냐? 자기가 주님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나는 주님의 일등 신부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런 신령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한국의 교계를 들춰봤으나 없었어요. 그런데 구원선(救援船)이라고 하는 신앙단체에 김예근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이는 타락문제에 들어가 가지고 원칙적인 것은 모르지만 실과를 따 먹은 것이 타락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아요. 그 외에는 몰라요. 그래서 그 분을 만났어요. 천적인 사명을 인계 받은 그 남자는 세례 요한적 사명을 띤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앞에서 사탄을 막아주어야 할 자입니다. 세례 요한이란 존재는 타락한 아담이 되살아난 존재, 즉 사탄의 지배를 받아 떨어졌던 것이 다시 부활한 형태,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아담형이란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런 아담, 살아난 아담이란 말입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아담 형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탄에게 이긴 것을 상속 받은 예수는 사탄의 침범, 사탄의 시험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는 그런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뜻을 이루려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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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감당치 못하니, 세례 요한이 꺾어지니, 사탄이 예수 앞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예수는 세례 요한 대신 옛날 아담을 꺾은 그 사탄과 역사적인 대결을 하기 위해 나선 것이 40일 금식기간의 싸움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스무 살을 넘으면서부터 그런 분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 습니다. 어떠한 길을 통해서라도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 지만 당장에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축복해 준 것처럼 그분도 선생님에게 축복을 다 해주었어요. 자기가 상상할 수 없는 말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식구 모양으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세례를 받으러 세례 요한을 찾아갔던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리하여 그의 모 든 기반을 그대로 인계 받아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봉사자로서 인정 받는 수고의 과정을 거쳐야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6개월 동안 있었습니다. 6개월 있는 동안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식구 가운데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요. 그를 따르던 수제자 전부를 선생님에게 인계해야 할 천적인 사명이 그에게 있었던 연고로 선생님은 내적으로 모모한 인사들 앞에 그런 말을 했고, 또 나 자신이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하늘이 그들에게 문 선생을 따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선생이 이러이러한 분인데 하늘이 우리의 선생을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저 문선생을 따라가라니 웬 말이냐.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번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간을 두고 역사를 하였으나 그래도 그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젠 축복을 받았으니 그 기준을 가지고 신령한 역사를 하는 부인을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부인이다. 누구든지 나한테 굴복해야 구원받는다. 하는 부인을 찾았습니다. 그 부인은 부활한 해와이자 타락 직후의 해와를 대신 한 역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두 쪽의 역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때는 하나님도 들어와 역사하시고 또 한때는 사탄도 들어와 역사하는 완충형(緩 衝形)의 실체입니다. 그런 부인을 만나서 실체로 대결하여 꺾어 놓아야 된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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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 부인이 있는가 하고 각방(各方)으로 수소문하여 만날 수 있는 길을 터 가지고 그 부인을 만났습니다. 남이 믿지 않고 남이 알지 못 하는 말을 하는 부인을 찾다가 만나니 참 기뻤습니다. 그 부인은 선생님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사명을 해야 했던 분이었어요. 복귀역사가 그래요. 선생님은 평양으로 가서 그분을 만나 정성을 다해 모셨지요. 그런 선생님인데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안 모시면 천법에 걸립니다.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하늘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서 어떻게 귀결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던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삼척동자 모양으로 그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속옷까지 다 빨아 주었어요. 선생님이 평양에 가 있을 때 모신 그 할머니는 철딱서니가 없어서 이랬다저랬다 했습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전부 다 가져오라는 거예요. 그건 그렇게 돼 있어요. 탕감복귀시대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만물복귀를 흉내 낸단 말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같이 모셨습니다. 그곳에 모이는 식구들은 그 할머니가 상대해 주지 않으니까 선생님을 보고 모였습니 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 할머니를 지성껏 모셨습니다. 왜 모시느냐? 하늘 것은 하늘 것으로, 사탄 것은 사탄 것으로 갈라놓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갈라놓지 않으면 복귀의 기준을 세울 수 없기에 절대 복종하고 모신 것입니다.(선집 8권 225-228쪽)

 성진 어머니와 결혼해 14년이 지나가길 바랬어(말씀, 딕 2010년 5월 4일, 천정궁) 
응 선생님이 이거 38세 가을에 한 말이야  어머니도 없을 때야, 성진이 어머니 하고, 결혼해 14년 지나길 바랬어  14년 지나고 이번에 3차 14년 섭리 사상 예수 중심삼고 재림시대 1952년부터 8년 12년간에  다 끝나야 할 것을 40년 3차  어머니 중심삼아 가지고 성진이 어머니 보다 나야되는데 어머니 기르기가  얼마나 힘들어, 선생님 고개가 없어 너무 안들어 가지고 재두루미가  가서 새끼치고 돌아올땐 돌아오땐 어디로 돌아와요 
2010년 5월 4일(火), 천정궁(말씀 딕테이션)

이용도 목사를 때려잡은 기성교회의 장로가 있어요. 김인서예요. 박계주를 알아요? 「예. 소설가입니다.」그럼! ≪순애보≫를 쓴 소설가예요. 이용도 목사님이 부흥회를 하면서, 신자들이 쓴 편지를 묶은 서간집이 있어요. 딱 통일교회 분위기라구요. 33세에 죽었어요. 그가 돌아갈 때, 원산 약수터에서 죽을 때 평양에 있는 할머니가 그를 위해서 기도 하라고 한 거예요. 왔다가 지상에 큰 뜻을 이룰 수 있는데, 주님의 길을 펴러 왔던 것인데 죽어간다 이거예요. 평양에 있는 할머니가 이용도 목사님과 같이 은혜의 생활을 하던 할머니인데, 모란봉 꼭대기에서 20년 이상 기도한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 계시를 받던 할머니예요. 오시는 재림주 가 갈 길을 전부 다 준비해야 할 텐데 기성교회가 못 한다고 한 거예 요. (이용도 목사가) 폐병으로 돌아갔어요. 혼자 죽는데 기도해 주라고 한 거예요.

 

창조 이후의 모든 것을 정비해야 할 것이 선생님의 책임

 

이용도가 한하잖아요? 선생님이 살아 생전에…. 1930년대니까 길선 주니 부흥사들이 나타나던 때라구요. 선생님이 열두 살 때예요. 그래서 부흥회를 이어 가지고 선생님 16세, 17세에 환영했다면 얼마나 한국 이 왕토가 됐겠나? 전부 다 쫓아낸 거예요. 2차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쫓아내 가지고 선생님이 홀로 홀로 나온 거예요. 그래서 창조 이후의 모든 것을 정비해야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거짓 부모가 저끄러 놓은 것을! 그런 수욕의 길을 간 것을 누가 알아요? 선생님에 대해서 사탄세계에서 화살 안 던진 사람이 없어요. 세계 개인이 합해 가지고 반대하고, 세계 가정이 합해 가지고, 세계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주의 사상 전부가 문 총재를 없애려고 한 거예요.(선집 401권 46쪽)


이렇게 볼 때, 지금 통일교회는 아담 족속인데, 지상에 섭리해 세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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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벨권을 전부 다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사탄권이 됐으니, 통일교회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최대의 광야시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기 전에 뭘해야 되느냐? 될 수 있으면 택한 사람을 빼내는 거예요. 광야에 나오기 전에 택한 사람을 빼 가지고 이제 새로운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야 할 그 과정에 들어선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가나안이 어디냐? 가나안이 이 지구성이예요, 지구성. 옛날의 이스라엘 민족 시대는 민족적 시대요, 국가적 시대예요. 민족적 시대에 있어서 국가를 향해서 나아가는 때이고, 지금 때는 국가 시대를 지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때이기 때문에 어디가 가나안이냐 하면 이 지구성이예요, 지구성. 그러면 왜 2차 대전이 특별하냐? 2차 대전 이후는 종교를 대표한 기독교가 전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찬스였다는 거예요. 2차 대전 이후가 말이예요. (선집 125권 111-112쪽)

 

기독교를 통해 2천 년 동안 재림주가 올 수 있게 했기 때문에,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고 2차 대전 직후에 기독교와 미국을 중심삼은 승리적 기반 위에 선생님이 섰더라면, 선생님이 고생하겠어요? 그때 선생님을 받들었으면 어머니는 누가 되었겠어요? 성진이 어머니가 안 된다면 누가 되겠어요? 영국 여자입니다.
뜻적으로는 영국 여자입니다. 영국 왕궁이 선생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겁니다. 그거 기독교문화권 아니예요? 미국은 영국이 낳아 준 겁니다. 그래서 이박사가 왜 서양 여자를 얻었으냐 하면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반대함으로써 우리 어머니가 복 받았습니다. (천성경 1155쪽, 선집 181권 2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