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를 낳은 여인보다 더 위대한 여인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그렇게 되기 까지는 섭리역사상 여러 여인들이 수고하고 고생하고 모험을 한 희생의 섭리적 터전을 상속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메시아를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메시아를 하늘 뜻맞게 양육하고 메시아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협조하는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때는 이미 유대 왕이 태어난다는 소문을 로마 황제까지 알고 있어서 태어나는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칙령이 내려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예수님을 낳아서 기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어느 섭리적 여인들보다도 힘든 탕감의 길을 가야했습니다.
마리아는 용케도 남편 요셉의 협조 아래 천신만고 끝에 예수님을 낳고 기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하여 예수님을 낳았지만 남편 요셉의 인간적 사랑을 극복하지 못해 예수님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한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 요셉과 사랑을 해서 그의 자녀를 낳으면 안되는 섭리적 탕감의 길을 가야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낳고 잘 양육해서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도록
에수님을 모시고 받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마리아가 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순결을 지켜야 했다는 것입니다.
해와는 타락하여 영적으로 천사장의 자식(가인)을 먼저 낳았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반성하여 보다 하늘 편 자식(아벨)을 낳았던 것입니다.(1. 해와 참조)
그러므로 해와가
잘못 낳아 기른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마리아가 예수님만 낳고 요셉의 자식(천사장 편 자식)은 낳지 않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인간적인 요셉의 사랑을 극복하지 못하고 요셉의 자식을 낳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을 뜻맞게 양육하는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양육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님을 잘 양육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섭리를 완수할 수 있는 기대를 세워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육적으로는 자기 아들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였기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자식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만왕의 왕으로 모시고 받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인간적인 사랑의 요구에 주관받아 요셉의 자녀를 낳음으로 자연히 예수님을 제대로 받들어 모시지 못하는 길을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섭리적으로 마리아는 요셉의 자식을 낳지 않고 오직 예수님 양육에만 혼신의 정성을 다해 예수님을 양육하고 받들어 모시어 20세 전에 성혼을 할 수 있게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기록을 보면 마리아는 친척집 잔치집에 가서 혼사를 도와주면서도 정작 자기 아들은 30이 되었는데도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마리아는 요셉의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받들어 모시지 못함으로 예수님의 길을 아주 어렵게 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러한 어머니와 결별을 하고 당신 스스로 기대를 세워 신부를 찾아 세우는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노정은 바로 가정에서 마리아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시게 된 노정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부터 질책받은 마리아
섭리역사상 메시아를 낳아 섭리적으로 가장 위대한 여인이 된 마리아였지만 마리아는 처음 하나님의 성령을 받고 모험을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에 휘둘려
초심은 사라지고 예수님을 제대로 받들어 모시지 못함으로 인해 아들 예수님으로부터 질타를 받게 됩니다.
섭리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메시아를 낳음)을 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가장 어렵고 힘들게 함으로써 섭리역사상 가장 큰 오점을 남기는 여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질책하시고 어머니와 결별을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질책을 받는 것은 제일 비참한 것입니다.
그것도 메시아이신 아들로부터 질책을 받은 것입니다.
이로써 마리아는 섭리역사상 최고의 여인으로 메시아를 낳았지만 그 아들 메시아로부터 질책을 받음으로 섭리역사상 가장 큰 오점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하여 자기 아들이 자기 아들을 쳐 죽이는 것을 보며 죽어갔듯이 마리아는 아들로부터 질책을 받아서 영적으로 어머니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섭리역사상 가장 큰 과오를 범하는 여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축복을 이루려면 2세를 하나님의 아들딸로 양육하여 하늘 앞에 세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자식들로부터 원망받는 모습이 되면 가장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다말의 태중에서 장자와 차자가 싸워 분립되는 태중복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 위에 선민의 혈족을 보아 2천 년 후에 로마 제국의 국가기준을 대치할 이스라엘 국가적 터 위에 메시아가 잉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씨가 준비된 어머니의 태중에, 사탄의 참소 없이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 국가적 승리의 터전이 조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성모 마리아가 섭리의 주류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선집 277권 205-206쪽, 1966.04.16)
하나님은 해와 대신 마리아를 빼앗아 오셔야 되었습니다. 복귀원칙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 때는 둘이 아니고 혼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복중에서 바꿔친 그 기준을 이어받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참소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중에서부터 사랑하실
수 있었던 아들, 역사이래 처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이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이런 것을 지금까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몇 천년 전에 그렇게 해 놓은 것을 선생님이 지금에 와서야 밝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세밀히 알았다면 기독교는 망하지 않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이 있다고 하겠어요, 없다고 하겠어요?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 왕이 자기의 충신인 우리아를 전쟁에 내몰아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와 그 뱃속을 통해서 솔로몬 왕이 나왔는데, 왜 그랬는지는 이 원칙을 몰라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됩니다.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다윗 왕은 하나님을 상징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아는 천사장을 상징했습니다.
아담이 자기 앞에 있어서 종과 같은 천사한테 아내를 빼앗겼으니 다윗이 다시 빼앗아 와야 하는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탄을 대신한 입장인 우리아는 죽여 버려도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밧세바를 통해 솔로몬이 태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그렇게 올 수 있다는 것을 상징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선집 54권268쪽)
복중에서부터 승리한 터전 위에 선의 혈통을 중심삼고 선조들의 그러한 전통을 이어 충성을 다한 이스라엘 민족의 여인들의 정성어린 계대를 이어, 2천년 후에 마리아에 이르렀습니다. 마리아가 다말을 중심삼고 복중복귀에 승리한 혈통적인 전통을 이어받아 비로소 예수님을 잉태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복중에 아기가 잉태되면 벌써 사탄이 참소합니다. 그러면서 ‘이 자리는 나의 자리요, 여기에 잉태되는 사람은 모두 그릇된 사랑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전부 나의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 다말의 복중에서 하늘편인 베레스가 승리한 혈통적인 기반 위에서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복중에 잉태되었을 적부터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일반 종교지도자들과 다른 점이 그것입니다. 태어난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사탄과 싸워 승리한 기반 위에서 사탄을 굴복시켜 장자의 기준을 세우고 예수님이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도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2천년 만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왜 예수님이 2천년 만에 태어났는가? 복귀는 가인 아벨의 복귀, 즉 형제 복귀인데, 사탄세계의 국가들이 먼저 태어난 가인형의 나라입니다. 이 가인형의 나라들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벨 나라가 새로 생겨나야 합니다. 이 아벨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2천년 동안 길러서 하나의 아벨적인 나라를 이루어 사탄세계의 수많은 가인적 국가들을 굴복시키려 하였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죽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십자가에 죽게 되었느냐?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었다고들 말하지만, 그런 시시한 얘기는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지 않고는 구원을 못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놓고 볼 때, 그는 마리아의 복중에서 잉태되어 태어났지만,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 위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용을 전부 걷어치운 입장에서 잉태되어 탄생했기 때문에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다는 것은 원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죄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것이 죄라고 하는데,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게 죄입니다. 원수가 물고늘어질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 원리원칙에, 법도에 어긋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탄에게 걸려듭니다. 예수님은 태어나기를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자리를 벗어난 입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분입니다. 사탄의 주관권내에서 사탄과 접하는 것이 원죄인데,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조건뿐만 아니라 모든 조건을 넘어 태어난 분이기 때문에 원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바꿔치는 역사를 해왔습니다. 에서와 야곱 때 바꿔치고, 또 야곱의 아들 베레스 때 바꿔치고, 이렇게 안팎으로 바꿔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생겨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했다는 뜻인데, 단순히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해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천지에 엉클어진 모든 사연을 풀기 위한 열쇠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태어나되 원죄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선집 22권 256쪽, 69.5.4)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가 잉태한 예수님을 통해 실체복귀(實體復歸)를 이루기에 앞서 이삭과 리브가가 낳은 에서와 야곱을 통해 외적복귀(外的復歸)를 이루고, 유다와 다말이 낳은 복중의 베레스와 세라를 통해 내적복귀(內的復歸)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장자권을 야곱을 통해 외적으로 찾아왔고, 베레스를 통해 내적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사탄은 외적·내적으로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없어졌습니다. 그 같은 기대 위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통해 실체 복귀를 이룬 것입니다.
리브가는 죽기를 각오하고 남편 이삭과 장자 에서를 속이며 외적 복귀를 이루었습니다. 또 다말은 창녀로 가장해서 시아버지인 유다와 자기 일족을 속이며 내적 복귀를 이루었습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는 이미 정혼한 남자(요셉)를 두고 사가랴의 집에 가서 아기를 잉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못 하는 일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해와가 잘못한 것을 하나님은 그렇게 여성을 통해 탕감복귀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따라 리브가와 다말과 마리아를 거쳐 예수님이 오시게 됩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은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고 원죄가 없는 상태에서 태어났습니다. 원죄를 갖지 않은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의 원죄를 청산해 줄 수 있는 메시아요,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인 중의 성인입니다.(본체론 677쪽)
에덴동산의 창조이상을 이루어야 할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아서 예수님이 성혼할 때까지 절대로 요셉과 관계를 맺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요셉에게 정조를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유혹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직 마리아는 예수님 한 분을 잘 성장하도록 키워야 하고, 요셉은 그 일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사가랴가정이 불신하고, 요셉가정이 불심함으로써 마리아는 어쩔 수 없이 요셉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부부관계를 맺다보니 예수님의 동생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은 요셉가정에서 의붓자식 취급을 받았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편에 서지 못하자 결국 예수님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관계를 맺지 않고 예수님 한 분만을 키워야 합니다. 요셉도 그런 마리아를 도와 예수님이 다 성장하면 먼저 마리아와 요셉과 가족이 하나 되어 예수님을 결혼시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마리아와 요셉 두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축복을 받으면 참부모가 됩니다. 예수가 참부모가 되었을 때 비로소 마리아와 요셉은 해와와 천사장의 자리에서 복귀하여 예수님에게 축복을 받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두 사람이 절대로 관계를 맺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육 중심한 실체기대를 상실했습니다. 엘리사벳이 배신하고, 사가랴가 배신하고, 세례 요한이 배신하고, 요셉이 배신했습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까지도 예수님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본체론 6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