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사 속의 위대한 여인들 (6.다말)

훈독왕 | 20170818114730

---섭리사 속의 위대한 여인들---


6. 다말

 

섭리 역사 속에 복중 혈통 복귀섭리를 완성하신 분이 바로 다말입니다.

리브가가 사라가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서 혈통 복귀섭리를 통해 장자권 복귀섭리를 시작한 이래 3대째 여인으로 등장한 여인이 바로 다말입니다.

즉 리브가, 라헬, 다말 이렇게 3대를 통해 메시아를 낳을 수 있는 여인을 세울 수 있는 기대를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말이 어떻게 복중 복귀섭리를 통해 승리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혈통을 중시한 다말


다말은 그 무엇보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중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의 인생 여정을 보면 오직 아브라함의 혈통을 낳기 위해 혼신의 힘을 투입한 여인이었던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다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그 가정을 축복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그 혈통의 계대를 잇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혈통을 낳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말은 남편이 죽었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첫 남편(엘)이 죽고 둘째 남편(오난)도 죽었지만 그래도 셋째 아들(셀라)이 장성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보통 여인 같으면 포기하고도 남았을 상황이었지만 다말이 하늘의 축복받은 혈통을 낳고 싶은 갈망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은 분명 아셨을 것입니다.

 

 모험하는 다말

 

하늘이 축복한 혈통을 낳고 싶은 간절한 심정으로 기다리던 다말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시아버지의 권유로 친정으로 돌아와 막내아들(셀라)이 장성하기를 기다렸지만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셀라가 이미 장성하였지만 자신을 시댁으로 부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입장에서 보면 다말은 이미 두 아들을 잡아먹은 여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유다는 하나 남은 아들은 다말에게 장가들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셀라마저 엘이나 오난처럼 죽게 되면 대가 끊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다말은 기상천외한 모험을 합니다.

하나님도 그 누구도 가히 상상을 못할 모험을 감행합니다.

기생의 옷을 입고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씨를 받아낸 것입니다.
하나님도 놀라시고 시아버지 유다 역시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사탄도 탄복을 했을 겁니다.

당시 유대 법은 과부가 아기를 배면 돌에 맞아 죽는데 목숨을 걸고 혈통을 남기는 데만 모든 것을 걸고 모험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말은 아브라함의 혈통, 즉 하나님이 축복한 혈통을 잇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모험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다말의 복중에서 하늘 편 장자가 먼저 태어나는 완전 복중 복귀섭리를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하여 사탄의 혈통을 먼저 낳았던 것을 하늘 편 아들이 먼저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말씀 참조)

 

 다말을 통해 복중 혈통 복귀섭리를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지금까지 여러 섭리적 여인들을 살펴봤는데 하나님은 세운 중심인물의 하늘 편 아내들은 일정한 심령 기준에 도달해야 자녀를 축복했습니다.

사라도 사랑을 양보했을 때, 리브가도 일정한 심령 기준에 도달했을 때, 라헬도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회개하고 반성했을 때 비로소 자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제거하신 후에 자녀를 축복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다말은 사라나 리브가, 라헬 등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절대적인 심령으로 모험의 길을 간 것입니다.

시아버지를 통해 씨를 받아 자녀를 낳게 되면 당시 유대 법으로 돌에 맞아 죽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로서 남편의 사랑을 받는 길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라헬처럼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는 인간적인 사랑은 다말의 마음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말은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찾을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혈통만을 목표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전력투구했기 때문에 사탄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해와가 하나님을 속이고 남편 아담을 속이고 선악과를 따먹은 길을 갔던 것을 다말이 이렇게 하나님을 속이고 유다를 속이면서까지 하나님이 축복한 혈통을 중시하여 완전 복귀를 하는 조건을 세웠던 것입니다.

 

여인으로서는 가히 상상을 불가하는 혈통을 위한 모험을 감행한 다말에게 사탄도 탄복할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모든 것을 희생하며 오직 하늘의 혈통만을 얻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다말을 하나님도 사탄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놀라고 존경의 심정으로 다말의 태중에 역사하셨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복중 복귀섭리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말의 복중에서는 쌍태(세라와 베레스)가 싸우다가 형인 세라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동생 베레스가 형을 밀치고 먼저 태어났던 것입니다.

복중 복귀섭리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하여 사탄의 자식을 먼저 낳았던 것을 이렇게 탕감복귀하여 복중에서부터 장자권 복귀섭리를 완성한 것이었습니다.

기나긴 여정의 하나님의 혈통이 사탄의 혈통을 이긴 섭리사적 쾌거였던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도 그토록 다말을 칭찬하고 놀라운 여걸로 평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아버님 말씀 중에 섭리적 여인 중에 다말을 칭찬하는 말씀이 가장 많았음)

 

 다말이 비로소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 주실 수 있는 영적 기대를 완성

 

다말은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기상천외한 모험으로 하나님도 감동시키고 사탄도 완전히 굴복하게 해서 하나님이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주실 수 있는 기대를 완성했던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자궁을 통해 하나님의 정자 씨가 착지할 수 있는 기대를 세웠던 것입니다.

리브가는 비록 쌍태를 낳았지만 형제간 싸우다가 야곱의 노력으로 40 대에 가서야 가인 아벨 화목을 이루어 장자권 복귀섭리를 이룩해 냈습니다.

하지만 다말은 뱃속에서부터 장자권 복귀섭리를 완수해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혈통이 여인의 자궁에서부터 사탄의 참소 없이, 원죄 없이 착지 탄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다말은 리브가의 아들들, 야곱과 에서를 통한 외적 탕감복귀를 승리를 계승하여 자신의 복중에서 내적 탕감복귀에 승리하여 내,외적 장자권 복귀섭리를 완성하여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실 수 있는 기대를 세웠던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하여 천사장의 혈통을 먼저 낳아 타락한 후손을 번식했던 것을 완전히 탕감복귀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탄생할 수 있는 기대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원래 요셉의 혈통을 통해서 메시아가 탄생하게 되어 있었지만 다말로 인하여 유다의 후손을 통해 예수님이 탄생하시게 됩니다.(요셉은 참아벨의 길을 갔어야 했다. 참조) 훈독왕국 | 요셉은 참아벨의 길을 갔어야 했다 - Daum 카페

 

하지만 그 당시 바로 메시아는 보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복귀원리를 통해 잘 아시다시피 사탄 편은 이미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귀원리에서 공부하신 대로 국가적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바로 2000년 전 마리아 때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다말이 승리한 기대를 상속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별 어려운 탕감로정을 가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말은 이렇게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험으로 하나님이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실 수 있는 기대를 세우는 섭리적으로 가장 위대한 공로를 세웠던 것입니다. 물론 세상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비윤리적인 음녀입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오직 하나님의 혈통만을 바라보고 모험을 감행했던 다말은 이렇게 혈통 복귀섭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인이 되어 섭리사에 길이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말은 이렇게  참혈통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교훈

하늘의 혈통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가야 함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하늘의 혈통은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다말을 통해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씀처럼 죽음을 개의치 않는 각오로 나서야 하늘의 혈통을 축복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네요.

사생결단의 각오로 하나님의 혈통만을 바라보고 그 무엇도 개의치 않고 모험하는 다말을 하늘도 사탄도 막을 수 없었고 축복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혈통복귀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함을 깨우쳐 주는 좋은 교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다말은 비록 불가항력적인 환경 속에 던져졌지만 기상천외한 경천동지할 모험으로 결국 혈통의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불가항력적인 역경에 처하게 될 때 쉬이 자포자기하고 하늘을 원망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다말은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것 같지만 하늘의 혈통을 얻기 위해서는 무모하리만큼 모험을 해서라도 돌파구를 찾아 나갔습니다.

우리들 역시 불가항력적인 역경과 시련에 부딪치더라도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스스로의 의지와 모험으로 하늘길을 개척하게 될 때 하나님이 축복하고 사탄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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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야곱과 에서는 태어나서 자란 뒤에 싸웠고 야곱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원래는 태어나기 이전에 복중에서부터 싸워 이겨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다말의 역사가 나옵니다. 다말이 유다를 통해서 베레스와 세라를 잉태했습니다. 여기서 다말이란 여인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가 지나가는 길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창부의 행세를 하여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잉태를 했습니다. 다말이라는 여인은 왜 그렇게 해야만 되었는가? 그것은 혈통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음란의 씨가 뿌려졌기 때문에 거기서 다시 하나님의 손길을 거쳐서 새로운 씨를 찾아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복귀를 못 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그러한 유다지파를 통해서 태어나야 했느냐? 유다지파의 조상이 누구냐 하면 바로 유다입니다. 이 유다의 장손은 다말을 통해서 태어난 베레스인데, 왜 예수님이 다말을 통해서 낳은 그 장손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나야 했느냐? ‘왜 그러긴 왜 그래? 하나님이 그렇게 태어나게 했으니 그렇게 태어났지’ 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대답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비법적(非法的)인 입장에서 다말을 통하여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난 것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할 때 그렇게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선집 22권 253쪽)

 

베레스와 세라가 다말의 복중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성경 창세기 38장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산모가 만삭이 되어 산파가 와서 기다리는데 복중에서 형제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형이 먼저 나오는 것을 밀치고 동생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처럼 밀치고 나왔다고 해서 베레스란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이렇게 복중에서 형 세라를 밀치고 동생 베레스가 먼저 나왔기 때문에 거기서 하늘의 역사는 실체 복귀의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베레스가 세라를 복중에서 굴복시켜 가지고 태어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딸이 태어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복중에까지 닦아 놓았습니다.
성경이 참 재미있게 되어 있는데, 선생님이 말하기 좋으라고 그렇게 되어 있겠습니까? 사람이 태어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이 땅 위에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이 거기에서 닦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혈통은 타락 인간들과는 다릅니다.
아담은 타락한 후 패자의 조상이 되었지만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승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복중에서 승리한 기반을 못 가진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이 아니라, 복중에서부터 형을 굴복시킨 역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야곱의 아들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가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야곱과 그 아들들 2대를 중심삼고 복중복귀역사를 해서 하늘편 아들이 먼저 장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다음에 태어난 동생은 그 형에게 절대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복종하고 자동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터전이 닦였으므로, 거기서 하나님의 섭리는 비로소 이 땅에 발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핏줄, 즉 혈통을 바꾸는 역사입니다. (선집 22권 253쪽)


예수가 왜 유다지파에서 태어났느냐? 왜 예수가 유다지파로 와야 되느냐? 야곱의 아들 유다가 몇 째 아들이에요? 넷째 아들, 4수라구요. 그리고 3대 걸려야 돼요. 3대를 걸고 혈통을 바꿔치는 놀음을 해야 하는 거예요.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맏며느리로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그 가정을 축복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 뼈를 갈아 제물로 바치더라도 자기는 이 일족의 후예자가 되고 싶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는 거예요. 그것을 하나님이 알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알고 ‘그래, 네 남편은 죽었는데 너는 과부가 돼 가지고 처량하게 돼도 그 대를 이을래?’ 할 때 다말은 대를 잇겠다고 한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이스라엘 나라에는 형수를 데리고 사는 놀음이 벌어진다구요.
그래서 다말은 유다의 첫째 아들이 죽은 다음에 둘째 아들한테 시집간 거지요. 둘째 아들이 또 죽었다구요. 계대를 하려면 셋째 아들밖에 없는데 그 셋째 아들이 어리니 어디 희망을 둘 수 있어요? ‘에라, 모르겠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언제 저 애가 나이 많아져 가지고 결혼하나? 산기라는 것은 연령 제한이 있는데 저 애가 커서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으니 안 되겠다. 저 애를 중심삼고 대를 잇기는 다 틀렸구나. 나는 망하더라도 계대를 해야 되겠다’ 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 기생의 옷을 입고 시아버지 유다가 농사지으러 가는 길목에 서 가지고 유인해서 관계를 하지요?
예수의 조상이 거기서부터 생겨났습니다. 이게 놀라운 사건이라구요. 이걸 볼 때, 타락론을 부정할 수 없다구요. 어찌하여 하나님이 이런 섭리를 해야 되느냐? 인류는 뱃속에서부터 더럽혀졌기에 뱃속에서부터 바꿔치는 전환점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다말이 그와 같은 비운의 운명 가운데 선 거예요. (선집110권 35쪽)


옛날에 천사장이 해와를 꼬여서 강제로 그렇게 했던 것을 반대로 여자가 시아버지를 꼬여 가지고 천명을 걸고 아브라함 이상의 상속을 받기 위해서, 자기 일신은 거름이 돼야 되고 당장 돌로 맞아 죽더라도…. 그때 유대의 법은 과부가 아기를 배게 되면 돌을 맞아 죽는데, 그것을 각오한 거예요. ‘유다의 혈통을 남기는 것이 내 소원인데 이것밖에 길이 없소. 죽이려면 죽이소‘ 하며 뜻 앞에 서 가지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거예요. 제물적 죽음을 각오하고 이미 결단 짓고 나선 다말의 이 역사는 놀라운 여성의 역사가 됐다는 거예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라고 했으니 모든 것, 자기의 생명까지도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대를 잇기 위해서 죽음이 교차되는 것을 넘어서서 그 모험을 행동적으로 개시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다말은 여성세계에 있어서 놀라운 여걸이라는 것입니다. (선집 110권 35쪽)

 

야곱의 아들 가운데 유다지파가 있습니다. 유다는 넷째 아들입니다. 유다의 첫째 아들이 결혼했는데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이어받아 대를 이어주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아들이 어떻게 했느냐 하면, 형수를 이어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벌을 주어서 죽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셋째 아들은 꼬마입니다. 셋째 아들은 어리기 때문에 이 형수가 유다지파의 대를 이을 가망성이 없으니 큰일 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말이 대를 이르려면 어느 계통을 이어야 되겠습니까? 유다지파의 계통을 이으려면 갓난 애기밖에는 없으니 자기는 다 늙어 죽겠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혁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무었을 하느냐? 하나님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내 집 망신이든, 내 무엇이든 생각지 않는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창녀의 옷으로 갈아입고, 자기 시아버지가 농사지으러 왔다 갔다 하는 길가에 나가서 자기 시아버지 유다를 꼬여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맺고는 기념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지팡이를 주고, 도장과 도장 끈도 주고, 염소를 주니 그 예물을 받고 아기를 베어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한 5, 6개월이 되어 다말의 배가 점점 불러 오니까, 동네 사람들이 유다에게 당신의 며느리 되는 사람이 과부인데 이렇게 아기를 배었으니 돌로 쳐 죽여야 된다고 공론을 했습니다. 그때 ‘이 애기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니, 이 지팡이의 주인이요, 도장과 도장 끈 주인이요, 이 예물을 준 사람이라고 해서 유다에게 갖다 주어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았습니다.
비정상적인 길을 가는 여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새로운 혈통이 뻗어 나온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는 것입니다. 몸을 먼저 바치면, 그것은 순수하게 백 퍼센트 사탄 것입니다. 백 퍼센트 사탄 편에 있는 것입니다. 그걸 부정하는 입장에 서면 그것이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여자, 사탄편의 여자가 아니고 하늘편의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것을 전부 부정해 버리고 하늘 편으로 돌아올 수 있는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에 일치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말을 통해 가지고…. 다말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이러한 곁갈래에 서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해와가 자기 아버지를 속이고, 자기 남편을 속인 것과 마찬가지로 다말은 자기 아버지 유다와 자기 미래의 남편, 셋째 아들을 다 부정하고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딱 마찬가지의 길을 간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선집 92권 286-288쪽)

 

‘하나님이여, 당신의 축복권을 흠모하고 또 당신의 축복의 대를 잇기 위해서 제가 이러는 것이오니, 하나님이여! 용서하십시오, 제가 비록 천만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만 이 불륜의 소행을 터로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는 기반이 유다 가문에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저는 아무런 요한이 없습니다’라고 다말은 틀림없이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 절실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다말은 생사를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한 맺힌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그 죽음의 상황까지도 극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다말의 뜻 대한 충절은 실로 놀라운 것이지만, 바로 이러한 자리에서만이 섭리역사를 펴 나오실 수가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사정이었습니다.
(선집110권 222-223쪽)


다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남편이 죽은 다음에 둘째 아들(시동생)이 계대를 잇게 해주어야 했는데 싫다고 하니까 영계에 데려갔거든. 상대가 어린애밖에 없어요. 다말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가 찬 것입니다. 여자들에게는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산기(産期)가 있는데 큰일났거든. 하나님의 축복이 귀한 줄은 알았습니다. 형제들이 축복의 계대를 놓고 싸운 걸 볼 때 귀한 줄은 알았다구요. 그러니 무슨 모험을 해서라도 자기가 야곱 가정의 축복의 계대를 잇겠다는 혁명적인 기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 다말도 자기 남편을 거부하고 시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것밖에 없어요.

또, 자기 시삼촌들과 관계를 맺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삼촌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한 도둑놈의 새끼들입니다. 그러니까 안전지대가 유다밖에 없다 이겁니다. 그것이 혁명적입니다. 이렇게 했는데, 그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정신이 아닙니다. 무엇이 씌어서 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씌었다구요? 악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안 할 수 없게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베레스와 세라가 나왔다구요. 에서와 야곱 때는 40대에 뒤집어 박았습니다. 40대에 복귀했지만 40대에서 복중까지는 사탄 활동무대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걸 해결해야 된다구요. 그러니까 3대 이내에 안 하면 안 된다 이겁니다. 이러니까 다말이 그런 페이스에 택함을 받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252권 129쪽)


 본체론
다말은 욕정이 넘쳐서 창녀로까지 가장하여 시아버지를 유혹하고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다말은 그런 음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다말은 야곱가정에서 승리해서 선민이 됐고, 그 혈통에서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다말은 어떻게 하든지 야곱가정에서 유다를 통해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 유다가 셋째아들을 안 주니까 혈통을 이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략)
 그러니까 복중에서 형님과 동생이 뒤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태 밖에서는 쌍둥이 형제 중에서 동생인 야곱이 형 에서를 굴복시켜 외적인 탕감복귀를 이루었고, 복중에서는 유다와 다말이 낳은 베레스와 세라를 통해 내적인 탕감복귀를 이루었습니다. 이로써 사탄이 참소할 외적·내적 조건이 모두 사라졌습니다.(본체론 6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