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사 속의 위대한 여인들(4. 리브가)

훈독왕 | 20170814124510

 ---섭리사 속의 위대한 여인들---


4. 리브가

 

리브가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이자 이삭의 아내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자연 굴복시킨 것은 인류역사 이래 최초의 형제간 화목으로, 섭리역사에 있어서 빛나는 전과이며 길이길이 타락한 인간들에게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야곱이 가인 아벨의 복귀를 통해 상징적 메시아로서 사명을 훌륭히 수행할 있었던 것은 뿌리에 위대한 섭리적 여인 리브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리를 통해 공부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비둘기를 쪼개지 실패한 것을 이삭헌제를 통해 대신 탕감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섭리적으로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삭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충절과 신앙을 이어받아, 자신이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는 헌제에 기꺼이 순종하며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삭은 아브라함의 대신자 상속자가 어 아브라함 대신 섭리적 사명의 길을 걷게 됩니다.

 

 리브가의 성품과 뜻에 대한 자세

 

이삭이 아브라함의 사명을 인계 받은 것처럼,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는 사라가 걸었던 길을 반복하여 걷게 됩니다.

사라가 이루지 못한 모자협조를 통한 장자권 복귀섭리의 길을 개척하는 여인이 것입니다.

 

먼저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로 소명 받게 과정을 보면, 리브가는 대단히 자비하고 섭리적인 내용을 중시하는 여자였음을 바로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종을 파견하여 리브가를 찾아 아내로 맞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리브가는 자비했으며, 섭리적인 아브라함의 혈통을 맞게 것을 기뻐하였던 것을 있습니다(24)

우물가에서 마실 물을 달라고 낙타에게까지 배려하여 물을 길러주는 리브가였습니다.

또한 리브가는 얼굴도 모르는 이삭이지만 그가 아브라함의 혈통인 것을 알게 되자 바로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을 기뻐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리브가는 집안 식구들로부터 축복을 받고 고향을 떠나 이삭에게 갑니다(24:58-67).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섭리적으로 사라의 노정을 그대로 반복하여 걸어갑니다.

왜냐하면 이삭이 아브라함 대신 사명을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바로 왕에게 빼앗긴바 되었다가 돌아오듯이, 리브가도 그랄(블레셋) 아비멜렉에게 빼앗겼다 돌아오게 됩니다.(26)

 

또한 사라가 늦게 자식을 낳았듯이 리브가도 결혼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식을 낳게 됩니다.

쌍둥이를 낳게 되는데, 또한 복중에서부터 가인 아벨의 복귀섭리를 염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전개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가깝게는 사라가 만든 탕감조건을 탕감 복귀하는 것이었고, 멀리는 해와가 만든 탕감조건을 탕감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리브가를 통한 모자협조

 

노아의 아내에서 이미 말씀드린 대로 가인이 아벨을 타살한 것은 노아가정에서 탕감 복귀하여야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아내는 남편과 심정의 일치를 가져오지 못함으로 그러한 내용을 탕감복귀하지 못하고 사라에게로 넘어왔던 것입니다.

 

사라 역시 처음에는 뜻에 맞는 길을 갔지만 이삭을 축복받은 하갈과 이스마엘에 대한 질투로 인해, 형제간에 다시 대립을 만들어 탕감의 내용을 남기고 섭리를 연장시켜 갔던 사실은 앞에서 기술한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라의 대신 입장에 있는 리브가를 통해 해와가 만들어 놓은 가인 아벨의 탕감복귀(장자권 복귀)를 복중에서부터 전개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복중에서부터 전개되어 나왔는데, 이는 타락이 바로 혈통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혈통복귀섭리의 중심에 리브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모자협조를 통한 복중혈통복귀섭리의 시효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리브가는 자기 뱃속에서부터 전개된 하나님의 섭리적 계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세운 야곱을 양육하여 섭리적 중심인물로 성공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녀의 지혜로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을 상속받음으로 장자권 복귀에 성공한 입장에 세워 것입니다.

 

결국 야곱은 이러한 훌륭한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나 양육된 덕분에 끈기 있는 노력과 지혜로운 삶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훌륭히 수행해 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리브가는 모자협조의 효시로 성공한 어머니가 되었던 것입니다.

 

상징적 메시아격인 야곱이 에서를 자연굴복 시켜 화목함(장자권 복귀)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실체적 기대까지 수립한 입장이 되어 가정적 메시아형인 요셉이 그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또한 요셉은 이후 우여곡절 끝에도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어 야곱가정의 실질적 메시아 역할(기근의 위기에 빠진 가정을 구함)을 하게 됩니다.

요셉은 아브라함가정의 실체 메시아 형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비둘기 쪼개지 않은 것을 이삭 헌제를 통해 아브라함이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서 섭리가 다시 전개되어 이삭으로부터 3대째인 요셉이 비로소 메시아형으로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섭리를 재조명해 보면아브라함이 비둘기 쪼개는 헌제에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해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해 볼 있습니다.

비둘기 쪼개는 헌제 실수는 바로 리브가가 이스마엘과 하갈을 미워하여 쫓아냈기 때문이라고 사라편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장자권 복귀섭리에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리브가가 남긴 오점

 

굳이 리브가에 대해 흠을 잡는다면 에서가 야곱에 대해 한을 품고 죽이려는 마음을 갖게 것입니다.(27:41)

이는 이미 가인이 아벨을 타살했듯이 에서가 심정적으로 야곱을 타살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바로 장자권을 팥죽 그릇으로 팔아넘기는 가벼운 에서였지만 에서 입장에서는 야곱이 어머니와 협조하여 자신과 아버지를 속이고 자신의 장자권을 가로채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로 하여금 배신감과 적의를 품게 하여 살생의 마음을 갖게 것입니다.

 

이에 리브가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야곱을 외삼촌 라반에게 피신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가인(에서) 아벨(야곱) 쳐죽이는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리브가가 야곱만을 사랑한 흔적(편애) 역력합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셨다고 하면 문제가 없지만, 우린 원리적인 입장에서 분석해 보면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었 것입니다.

 

리브가는 복중에서 이미 야곱이 하늘이 세운 중심인물로서 에서와 장자권을 두고 싸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지만 어머니인 리브가가 장자 에서를 어릴 때부터 하늘이 정한 섭리적 중심인 야곱이 장자권을 상속 받아야 함을 깨우치도록 교육하고 길렀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상상을 해봅니다.

그리하여 에서가 마음에 우러나서 야곱이 장자축복을 받도록 양보하게 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양보하게 교육했어야 더욱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이삭을 속이지 않고도 에서가 함께 자리에서 이삭으로부터 장자권 축복을 받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선 리브가가 야곱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에서도 사랑해주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쳤어야 했을 것입니다. 편애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만약 리브가가 에서를 설득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에서의 동의 하에 야곱이 장자권을 상속 받았더라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서 20 고생할 필요도 없었고,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지 않고도 이스라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이미 장자권을 승리했기 때문이지요.

 

싸워서 승리하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고 자연굴복 시키는 것이 위대한 승리가 됨은  말할 나위없는 복귀원리입니다.

천사가 사탄이 것은 사랑의 감소감이었음을 잊어서는 되는 좋은 교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탕감복귀의 길을 감에 있어서 사탄(가인 )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운 터전 위에서 가인권의 축복 아래 비로소 하늘의 축복을 받아 있음을 잊어서는 것입니다.

 

이렇듯 리브가는 섭리역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어머니로서 사명을 훌륭하게 완수했지만 옥에 티와 같은 오점을 남김으로 야곱의 길을 어렵게 했던 안타까움도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완전한 장자권 복귀(가인아벨 복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요셉이 아브라함 가정의 메시아형으로 태어나지만 실제 메시아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섭리는 다시 리브가로부터 3대로 연장된 것입니다.

이렇듯 리브가는 섭리역사 속에 위대한 승리를 가져 섭리적 여인이었지 완전한 장자권 복귀를 이룩하지 못하여 섭리를 연장시킨 안타까운 여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에는 라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이제는 하나님 편을 대표하는 해와가 나와야 됩니다. 그것이 리브가였습니다. 리브가는 해와의 입장에서 아담 가정을 탕감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장자는 에서고, 아버지는 이삭이에요.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아담 가정의 그대로였습니다. 해와의 입장 에서 장자와 아버지를 속인 것입니다. 리브가의 입장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장자의 입장에 있는 에서와 하나님의 입장에 있는 이삭을 속이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속여 가지고 장자권을 복귀한 것입니다.(선집 281 206-207)

 

노아 때도 모자협조의 기준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모자협조의 기준은 리브가와 야곱 때부터입니다. 인간 타락은 아담, 해와, 천사장의 존재에 의하여 저질러졌습니. 천사장이 해와를 유인하여 영적 타락을 했고, 다음 타락한 해와가 아담을 유인하여 육적 타락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장이 사탄이 되었습니다.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요, 복귀의 원칙은 180 반대의 길을 통하여 되는 것입니다.(선집 277 203)

 

아담 해와가 타락했던 것을 이삭과 리브가를 중심삼고 근본적으로 복귀하려고 것입니다. 타락할 , 아담과 해와는 남매와 마찬가지였어요. 남편과 아내로서 정혼하기 직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 있던 그들이 하나님을 속여서 타락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해와의 위치에 있는 여성이 아버지와 아들을 속이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탕감복귀 노정에서, 야곱과 에서를 중심삼고 장자권을 복귀하는 있어서 속이는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복귀하는 있어서 리브가가 차자와 하나되어 협조해서 아버지와 장자를 속이고, 비로소 장자권을 빼앗는 것입니다.(선집 233 120)


모자협조로 가인 아벨 복귀를 처음 이룬 야곱
에서와 야곱은 복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인 리브가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이 애들이 복중에서 싸웁니까?’ 라고 호소하니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네 복중에는 두 민족이 있음이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통고했습니다.
그러면 복중에서 두 형제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내용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느냐? 상충된 혈통적 인연을 바꿔야 할 섭리적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과 에서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간교하게 형님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여 가지고 팥죽으로 장자의 기업을 사서 빼앗았습니다. 이런 방자한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됐느냐 하는 이유는 이런 원칙을 몰라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됩니다. (선집 54권 142쪽)


여러분, 에서와 야곱의 역사를 알지요? 야곱이 장자권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했어요? 모자협조를 했지요? 어머니 리브가는 누구를 속였어요? 자기 남편과 장남을 속였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해와가 자기 남편과 하나님을 속인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모자협조란 하늘세계에 있어서 하늘편적 장자와 하나님이 대신 서게 되면 그것으로 모두 끝나는 것입니다. 사탄과 그 장자와의 인연을 끊고 모자협조를 통해 하나님편에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자녀로 형님 대신에, 누나 대신에, 악마 대신에 하나님편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선집 222권 348쪽)


동생이 형님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굴복시키는 데 누가 협조하느냐 하면, 어머니가 협조해요. 모자협조예요. 어머니가, 해와가 씨를 뿌린 그 열매가 가인인데, 가인을 거부하고 아벨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돌아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모자협조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 어느 때, 어느 역사시대에 그것이 바꾸어졌느냐? 야곱과 에서 시대예요. 에서는 외적이에요. 야곱은 내적입니다. 야곱의 어머니, 해와의 자리는 누구예요? 리브가입니다. 어머니가 씨를 뿌렸고 아들이 열매 맺었기 때문에, 여기서 뭐냐 하면 반대로 어머니가 거두고 아들이 거두어야 합니다. 그러려니 이 모자, 어머니하고 아들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해와가 타락할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아담을 속였습니다.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부자(父子)를 속였다는 거예요, 부자를. 부자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속이고 타락했어요. 해와가 타락할 때 아버지하고 아들을 속이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더라도 탕감법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인이 장자가 됐습니다.
이 야곱이 뭘 했느냐 하면, 아버지와 아들을, 이삭과 에서를 속이는 놀음을 했습니다. 세상에 속여 가지고 빼앗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러한 성경이 성경이에요? 개판이지. 그러니까 성경이라는 거예요. (선집 106권 181-182쪽)


아담 해와가 타락했던 것을 이삭과 리브가를 중심삼고 근본적으로 복귀하려고 한 것입니다. 타락할 때, 아담과 해와는 남매와 마찬가지였어요. 남편과 아내로서 정혼하기 직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 있던 그들이 하나님을 속여서 타락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해와의 위치에 있는 여성이 아버지와 아들을 속이 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탕감복귀 노정에서, 야곱과 에서를 중심삼고 장자권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속이는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복귀하는 데 있어서 리브가가 차자와 하나되어 협조해서 아버지와 장자를 속이고, 비로소 장자권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때 그 장자권을 빼앗았다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는 안 됩니다. 그 빼앗은 장자권은 사탄이 취할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21년 동안 분립을 위한 고생을 해야 돼요. 자식 대에서 이런 놀음이 다시 한번 벌어지는데, 그게 뭐냐 하면 다말을 중심삼은 역사입니다. 다말 대에 와서 쌍태인 베레스와 세라를 중심삼고 복중 에서 형이 나오려고 할 때, 이것을 뒤집어 박는 것입니다. 세라가 나오려고 하는 것을 베레스가 밀치고 나오는데, 여기서 장자권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 때에도 다말이 속인 입장에 섰습니다. 누구를 속였느냐? 자기 남편을 속이고, 자기 시아버지를 속여서 애기를 밴 것입니다. 이렇게 밴 것이 복중에 서 싸우는 거예요. 이것은 인류가 두 패거리로 나뉘어 싸우던 것을 복중에서 바로잡아서 나온 것입니다.(선집 233권 120-121쪽)


그래, 장자권 복귀를 하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가인 아벨은 태어나서 싸웠어요. 알겠어요? 태어나 가지고 제사 드리고 나서 싸우다가 아벨이 가인을 죽었지요? 그 계대를 이어 가지고 나온 것이 무엇이냐면 이스라엘의 에서와 야곱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직분을, 에서의 장자의 직분을 샀지요? 「예.」 장자와 차자인 가인 아벨은 태어나서 자기들 멋대로 싸웠지만 에서와 야곱은 쌍태로 있으면서 싸운 것입니다. 알겠어요? 쌍태로 있으면서 싸운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가 차자와 합해 가지고 장자권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재림주는 타락한 세계의 어머니를 통해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지요? 그 상징도 돼요. 어머니와 역사적 아들과 하나 되어 가지고 악마가 반대해서 타락시킨 길과 다른 반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반대의 길을 가야 떼워지는 것입니다. 구멍이 요렇게 십자로 뚫어졌으면 십자를 갖다 막아야지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탕감복귀가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리브가는 하늘 편 해와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삭은 천사장 자리입니다. 본래의 천사장 세계는 상대가 없습니다. 안 그래요? 상대가 없습니다. 여자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만 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천사장이 속였습니다. 속여 가지고 아담을 쫓아냈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니까 해와는 천사장을 속여 가지고 아담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 될 수 있는 야곱이 축복을 빼앗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브가는 하나님을 속였고, 자기 남편을 속였고, 그 다음엔 자기 아들을 속인 것입니다. 3대 남자를 속인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했느냐 하면 해와가 그렇게 한 거예요. 3대 남자를 속였어요. 하나님 속였지, 그 다음에 오빠 속였지, 남편을 속인 것입니다. 속여 가지고 전부 다 타락시켰기 때문에 탕감원칙에 의해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때만 그러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러는 거 아닙니다. 그 전환시기에, 부정하여야 할 때에 그렇게 부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이 갈라져 싸우던 것이 본래는 수평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위가 되고 사람이 아래 되어 가지고 수수작용해서 영원히 움직이면서 사랑을 중심삼고 역사의 방향을 쭉 개인으로부터…. (녹음이 잠시 중단됨)

자, 이렇게 되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래에 있을 것이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을 것이 아래로 내려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래로 내려오고 악마가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라도 끌어 내려야 됩니다. 전환할 수 있는 교차점을 만들어야 된다 이겁니다. 이 교차점이 처음에 만들어진 동기는 악마의 사랑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타락한 반대의 행로를 통해서 리브가가 하나님을 속였고, 자기 남편을 속였고, 자기 부모도 속인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속인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장자의 직권을 축복받은 것입니다.

팔았습니다. 에서가 판 것입니다. 그렇지요? 죽하고 뭣 갖고? 떡 갖고. 배가 고파서, 한 끼의 배고픔을 참지 못할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리브가는 생명을 걸고, 하나님 앞에 벌 받고 자기 영감과 아들 대해 그런 모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축복의 계대를 잇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계대를 잇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아야되겠습니다. 알겠어요? (214권 92-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