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사 속의 위대한 여인들---
2. 노아의 아내
성경에는 노아의 아내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노아는 훌륭했지만 그의 아내는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훌륭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훌륭한 노아, 그런데 그 아내는 어찌하여 성경에 이름조차 오를 수 없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섭리적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노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 노아의 섭리적 일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제2의 인류 조상으로 아담가정이 이룩하지 못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방주 짓는 일에 모든 정열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아내는 그러한 노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인간적인 관점에서 남편 노아를 타박하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 증거는 바로 그녀의 자식의 행위를 보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아내의 비판과 온 주변 사람들의 조롱과 비소 속에서 지은 방주였지만 결국 하나님은 노아와 함께 했고 홍수는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비판하던 노아의 아내도 아들들도 노아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셈과 함은 아버지 노아가 자신들에게 두 번이나 생명을 부여해준 입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홍수심판 후에 자신들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벗은 섭리에 대해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또다시 자신들의 섭리적 관점을 떠난 경거망동으로 인해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 잘못은 물론 함의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런 잘못을 할 수 있는 피(혈통)를 전수한 것은 바로 노아의 아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남편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 노아의 아내, 당연히 남편에 대한 사랑도 존경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섭리적으로 중대한 사명을 수행해 가는 노아라 하더라도 그 아내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노아의 아내는 늘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아버지처럼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훈시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닮으라고 하기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비판의식을 주입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피를 이어받고 또 그런 교육을 받아온 함의 눈앞에 다시 이해할 수 없는 노아의 행위는 당연히 불신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노아의 아내는 모자협조를 거꾸로 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비록 노아는 불변의 심정으로 120년간 방주를 짓고 그러한 정성의 터전 위에서 홍수 심판을 통해 죄악 세계를 심판하고 신천지를 건설할 수 있는 섭리적 기대를 세웠지만 그것을 상속받지 못하고 아버지를 불신한 함의 잘못으로 인해 섭리는 연장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원리강론 273-284쪽, 노아 가정 참조)
이는 아내의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남편에 대한 불신으로 자식들에 대한 반섭리적 교육이 낳은 결과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아의 아내는 섭리적으로 가장 훌륭한 남편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경하지 못한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그 이름조차 기록할 필요성이 없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노아 가정은 장차 예수님 가정과 섭리적으로 직결되는 가정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내가 여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예수님(제2 아담) 당시 모자협조(마리아와 예수님)도 어려운 탕감의 길을 가게 했던 것입니다.(말씀 참조)
이렇듯 섭리적 중심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는 후에 엄청난 탕감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혈통은 결국 여자의 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결정짓는 것은 여자(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해와)입니다.
그래서 혈통복귀섭리역사 속에서는 여자들이 그토록 시련과 고통과 모험의 길을 가게 섭리하신 것 아닐까요?.
또한 개인 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부부가 협조하지 못하면 섭리를 계승 발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좋은 교훈이 된 것 같습니다.
불변의 믿음과 충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훌륭히 받든 노아였지만 노아는 아내의 섭리적 비협조로 인해 자식에게 불신 당하는 불쌍한 중심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다시 해와가 아담을 죽인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해와가 자신만 죽은 것이 아니라 아담을 죽이고 나아가 아담을 닮지 않는 아들(가인)을 낳고 길러 섭리를 망쳤듯이 이렇게 노아의 아내 역시 해와가 갔던 길을 밟아갔던 것입니다.
다르다면 노아의 아내는 해와처럼 남편 노아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라 자식을 타락시킨 것과 같은 입장에 선 것입니다.
섭리를 품고 가는 남편을 반대한 아내는 이렇게 타락행위로 귀결되는 엄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노아의 아내는 섭리적으로 최고의 남편을 맞이하여 제2의 조상으로 인류의 참어머니가 될 위치에 있었지만 섭리사(성경)에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는 여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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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와: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wgD/21
< 말씀>
그 다음에 노아 가정은 예수 가정이에요. 노아가 착지해 가지고 가정의 할 일을 못 했는데, 이것을 탕감하려다가 예수가 실패했어요. (선집 548, 302)
노아의 식구들도 노아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습니다. 언제까지 복종해야 했느냐? 3대 이상, 즉 손자 때까지는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선집 13, 152)
아벨보다 못한 노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노아보다 못한 아브라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무엇이 노아보다 낫느냐? 아브라함의 아내는 아브라함이 남매처럼 행동하자고 했을 때도 ‘예!’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마누라, 당신하고 나하고 형제처럼 행동 합시다’ 할 때 그의 아내는 반대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그렇게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제멋대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하나 된 어머니 사라의 품에서 자란 이삭은 목이 잘리게 되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았던 것입니다.
(선집 46. 322, 1971.08.17)
<천성경>
노아 할아버지가 방주를 지을 때, 그의 부인이 잘 협조한 줄 알고 있지요? 아들딸이 얼마나 비판했는지 알아요?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하루도 아니고 120년 동안 도시락을 싸 가지고 아라랏산에 올라가서 배를 만드는데, 노아의 여편네가 잘 협조를 했겠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여편네가 협조를 안 하니 아들딸이야 물론입니다. (137-111 : 198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