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사 속의 위대한 여인들(1.해와)

훈독왕 | 20170806091033

---섭리사 속의 위대한 여인들---

섭리역사 속에 나타난 위대한 여인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섭리적 성공과 실패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들 자신도 그들처럼 섭리적인 성공을 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한 목적을 두고 살펴보기로 합니다. 모자협조의 대표적 여인들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기로 합니다.
(어디까지나 독자적인 필자의 사상, 생각, 견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된 것임을 밝혀둡니다.)

1.해와

섭리역사 속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여인으로 지나칠 수 없는 여인이므로 우선 살펴보기로 합니다.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최초의 여인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고 사망한 최초의 범죄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의미에서 위대한 여인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그르친 오명의 여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원리강론에서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지만 나름대로 다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단 해와는 하나님의 섭리사에 최초의 여인으로서 지음을 받았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위대합니다.
하지만 해와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는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해와가 가장 위대한 여인에서 가장 비참한 여인이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행위에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이 천사의 유혹에 의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져보려는 과분한 욕망으로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행위는 결국 자신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완전히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할 자신을 종(천사장)의 소굴로 전락시켜 버린 비극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이러한 잘못된 내용을 알고서도 아담을 통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길을 걷지 않고 자신을 유혹해서 타락하게 한 천사장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여 아담까지 자신의 위치(타락의 위치)에로 끌어내려 위안을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죄악된 자신의 혈통을 번식(가인, 아벨)하여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가인이 아벨을 타살함)이 일어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는 결국 인류 역사가 피의 전쟁 역사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 직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입장에 서서 행동을 했더라면 섭리사는 달라졌을 것이고 해와도 위대한 여인의 반열에 설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타락 직후 해와가 타락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 아담을 찾아가 고백하고 그 어떠한 응분의 처분을 받는 길을 택했더라면 섭리사의 기록과 같은 그런 못난 여인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설사 아담을 통해 하나님께 용서받는 길이 아담의 비협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해와는 자신이 타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인 아벨을 낳는 그런 어리석음은 취하지 않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떠나 사라져 버리던가, 에덴동산을 떠나버렸더라면 하나님은 아담의 배필을 다시 만드시어 당신의 이상을 이루실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해와가 이렇듯 아담까지 타락시켜 자신의 후손을 번식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해와가 낳은 자식들을 통해 복귀섭리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 천사장과 타락한 것보다 하나님께 더욱 큰 잘못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고로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죽은 것은 과연 언제일까요?

성경에 의하면 따 먹는 날 정녕 죽으리라고 했는데 사실 해와는 900여 살을 살면서 여러 자식을 낳고 난 뒤 죽었습니다.

하지만 영적 입장에서 보면 해와는 선악과를 따 먹은 그날 죽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종(천사장)의 품 안에 품겨 버린 행위는 가치적 입장에서 죽어버린 것입니다. 즉 영적 사망은 천사와 선악과를 따 먹는 날 이루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이때 해와는 자신이 죽었다는 실감은 하지 못하고 타락으로 인한 공포심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죽은 것을 모르는 죽은 자가 된 것, 바로 이것이 타락으로 인한 영적인 죽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와는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죽은 자이지만 죽은 것을 모르는 죽은 자로 살아가는 근원이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해와는 가인을 낳았을 때 그 가인의 성품이 천사장을 닮은 것을 보고 놀랐고 더욱 깊이 죽어 갔습니다. 즉, 자신의 타락 행위가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해와는 진정 마음속으로부터 후회하고 반성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반성과 회개 뒤에 낳은 자식이 바로 아벨입니다. 그래서 비록 가인.아벨 둘 다 타락한 아담해와의 후손이지만 가인은 천사장을 가깝게 닮고 아벨은 가인보다 더 아담을 닮아난 것입니다.


즉 가인을 낳기 전까지 해와는 마음속에 천사장을 아담보다 더 사랑하고 존경했던 것입니다. 해와는 천사장이 첫사랑이었고 그를 마음속에 품고 아담과의 사이에서 가인을 낳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가인은 영적으로 완전한 천사장의 자식으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가인의 성품이 천사장을 닮아난 것을 본 해와는 그제야 타락을 인식하고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즉 이성적으로 죽음을 인식하고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해와는 심정적으로 사망을 맞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가인이 아벨을 타살한 사건입니다.
자기 자식이 자기 자식을 쳐 죽이는 것을 보아야 했던 해와는 심정적으로 완전한 사망에 이른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한 말씀이 심정 속에 뼈저리게 저미어온 사건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해와는 영적인 사망, 이성적인 사망, 심정적 사망의 과정을 거치며 타락으로 인한 죽음의 의미를 깨달아 갔던 것입니다.


해와의 과분한 욕망이 불러온 이러한 사망들을 통해 우리는 살아있는 나 자신인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죽은 것을 모르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은 자인지 살아있는 자인지 분간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과분한 욕심을 가진 자는 상대적 빈곤을 느껴 쉬이 불평.불만하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실망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실망이 깊어지면 원망하거나 절망에 이르고, 나아가 사망에 이르러 결국에는 부모나 하늘까지 원망하고 저주하는 단계에까지 갈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축복과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깨닫고 사는 자는 오직 감사함만이 충만하여 영생할 것이며, 과분한 욕망은 결국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무서운 사실을 해와를 관찰해 봄으로써 되돌아볼 수 있게 되는군요.


이렇게 해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의 길을 가게 되면 자녀를 잃어버리고 하나님도 잃어버려 영멸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인으로 태어난 해와는 이렇게 인류에게 가장 큰 오점을 남긴 섭리적 여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말 씀>

6천년 역사는 어떤 역사이냐? 모자협조의 기준을 찾아 나온 역사입니다.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는 모자협조의 길을 터 나온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아벨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해와가 아벨에 대하여 어떻게 모자협조를 해야 하는지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해와는 타락하였지만 어머니로서의 자격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대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런 보이지 않는 내적인 마음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노아 때에 와 가지고 모자협조의 기준이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체적인 모자협조의 기준은 어디에서부터 벌어졌느냐 하면 야곱 때부터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조상 복귀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 역사를 보면, 모자협조의 기반이 없어 가지고는 뜻을 못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야곱 때부터 모세 때, 예수님 때까지도 모자협조를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때에도 해야지요?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선집 36권 241-2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