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케 하는 자 (마5:9)
마태복음 5장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공동번역에서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화평은 화목이나 비슷한 말입니다.
화목은 나와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화평케 한다는 것은 그 차원을 넘어서서 나로 말미암아 타인들 간에 화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불화하고 있을 때 내가 가서 그 두 사람을 화목하게 했다면 나는 그 두 사람을 화평케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와 상대가 불화하고 있을 때 나 자신이 주동이 되어 화목하게 만들었다면 이 또한 화평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화평이란 나를 중심한 화평이 아니고 너를 중심한 화평도 아닐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중심한 화평입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 중심한 화평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는 바로 마태복음 5장 8절의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을 본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화평을 이루려면 주체격인 내가 먼저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 된 사람이라야 합니다
화평케 하려면 이미 나와 하나님은 화목한 상태임을 전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는 자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이 서로 화목하기를 갈망하시는 것을 훤히 압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과의 화목, 즉 창조본연의 부자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도 바로 하나님께 하나님의 자녀를 찾아드리는 효도입니다.
즉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이 화목하게 하는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 가장 큰 효도가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간끼리 불화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고통이요 한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화평케 하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을 위한 화목의 십자가를 진 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셨습니다.
참부모님 또한 위해서 살라고 가르치시고 사랑(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심으로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셨습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그토록 몸부림치신 것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등극하신 것은 화평케하는 왕이란 뜻이잖아요.
하나님 대신 평화를 위한 십자가를 졌으니 바로 하나님의 아들일 수밖에요.
우리는 무슨 십자가를 지고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참부모님처럼 화목의 십자가를 지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