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 9- )

H.I.S | 20161222115224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9- )

 

성경 창세기에 타락한 아담을 부르시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고 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어디 있느냐고 물었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럼 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했겠습니까?

이는 타락한 아담에 대한 한탄하신 심정의 토로 아니겠습니까?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로 있어야 할 아담이 타락하여 하나님이 사랑하려야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을 놓고 절규하시는 통곡의 소리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짓기 전에 아담의 환경을 위해 우주를 짓고 지구를 짓고 에덴동산을 지었습니다.

수백억 년 전부터 당신의 모든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어 아담이 기뻐 뛰놀 수 있는 아담의 놀이터, 아담의 세계, 아담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을 통해 실체를 쓰시고 온 천하를 다스리며 기쁨을 누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모든 것을 투입하시어 오직 아담을 위해 창조의 창조를 하시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했습니다.

죽어버렸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마귀를 만들고 그의 자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실체가 되고 하나님이 임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할 아담이 사탄이 우거하는 집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아담을 바라보신 하나님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찌하여 내 말을 듣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고 뱀의 자식이 되어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가느냐?

선악과가 그토록 맛이 있더냐?

내가 그토록 따먹으면 안 된다고 했건만 따먹으니 그렇게 달콤하더냐?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나무 뒤에 숨었느냐?

하나님 저는 선악과를 따먹으려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가 먹으라 해서 먹었습니다.

이렇게 아담은 자기가 잘못한 행위를 책임 전가하여 자신의 주체의 자리를 상실하고 여자가 자기의 주체임을 공표했습니다.

자기 잘못을 여자의 주관에 의한 것이라 책임 전가를 하니 아담의 주체는 당연히 여자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에 하나님이 여자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니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여자도 자기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뱀에게 책임 전가를 했습니다.

결국 여자의 주관주는 뱀임을 자증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주관주가 여자이고 여자는 자신의 주관주가 뱀임을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저는 당신의 자녀가 아니고 뱀의 자식, 뱀의 종입니다는 선언이 되었습니다.

뱀이 저희 주인입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뱀의 지시에 따라 살아갑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맛이 있으니까요...

우리도 하나님 당신처럼 눈이 밝아지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의 실체가 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할 아담과 해와였지만 이렇게 아담과 해와는 사탄의 주관하에 사탄의 사주를 받아 그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시고 싶어 당신의 모든 것을 투입하여 아담,해와를 창조하셨지만 사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갈기갈기 짓밟고 내팽개쳤습니다.

 

구천으로 떠도는 영혼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심령을 찾아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목놓아 부르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너는 어디서 무얼 하느냐?

아담아 너는 내 말씀을 지키느냐?

아담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아담아 너는 내 자식이냐?

아담아 너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느냐?

아담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아담아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아느냐?

아담아 내가 너를 얼마나 내 품에 품고 싶은지 아느냐? 

아담아 이젠 내 품에 돌아오면 안 되겠니?


아담아 난 네가 그립다.

아담아 이젠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