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것을 개나 돼지에게 주지 말라 (마 7: 6)
예수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하셨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말씀에 의아해합니다.
선별적인 복음 전파를 말씀하셨기 때문에 별로 중시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시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과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린 원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중시해야 할 말씀이라고 봅니다.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셨고, 공자님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온 천하를 얻고도 내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고 했습니다.
재림주님께서는 천주 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 완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늘 앞에 온전히 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 일을 한다고 설치다가 오히려 심령의 타격을 받고 실족할 수 있음을 염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 뜻에 대한 의욕에 불타서 욕심부리다 뜻 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 심령에 시험이 들어 실족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나 돼지에게 주지 말라 하셨습니다.
거룩한 하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 말씀의 가치를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개나 돼지 같은 자에게는 말씀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발로 밟아버리고 오히려 나를 찢어 상하게 할 수 있으니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귀한 진주를 돼지 앞에 던져 봐야 그 가치를 모르고 밟아치우고 오히려 나의 심령을 상하게 할 수 있음으로 경계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 전파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실적에 있습니다.
나 자신이 하늘 대신 말씀을 갖고 타락한 인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말씀을 갖고 긍휼히 여기고 화목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심령을 상하게 하는 개나 돼지 같은 자는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전 말씀드렸던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 5: 3)
심령의 양식(진리)에 갈급한 자에게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쁨으로 받고 감사하고 더불어 나 자신도 은혜받고 부활합니다.
물론 말씀 대로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기대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해서 무턱대고 사랑하다가는 공멸합니다.
먼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기대를 쌓아야 합니다.
상대기준을 조성하여야 수수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창조원리)
상대기준도 조성하지 않고 무리하게 수수작용하다가는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하려면 내가 수영을 잘해도 구해내기가 어렵습니다.
하물며 수영도 하지 못하는 자가 구하겠다고 뛰어들면 물에 빠진 자를 구하지도 못 하고 자기 자신도 같이 엉켜 물에 빠져 죽기가 일쑤입니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물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밧줄을 던져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도 뱀같이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마 10:16)
하나님께서 왜 6000년이나 기나긴 세월을 통해 복귀섭리를 하셨습니까?
우리도 지혜롭게 차근차근 사랑을 하여야 내 심령이 상하지 않고 사랑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인내해야 한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타락한 인간에게 최고의 사랑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지로 인하여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이신 것을 모르고 사탄의 자식이 되어 죄악을 탐하며 살아갑니다.
구해주려고 구원의 밧줄로 메시아를 보내주셨는데 무지에 빠져 그 메시아를 무시하고 핍박합니다.
이를 깨우쳐 아버지를 찾아주고 메시아와 연결해주는 것이 영원한 사랑이요 최고의 사랑 아닐까요?
심령의 급에 따라 단계적으로 구원섭리를 해오신 복귀섭리역사를 잘 공부해서 말씀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때 아닌 때에 말씀 전파와 사랑으로 자신의 심령이 상하지 않도록 염려하라신 예수님 말씀을 새겨야할 것입니다.
때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란 것이 타락 아닙니까?
아무리 급해도 바늘에 실을 묶어 옷을 꿰맬 수 없습니다.
상대의 심령급에 따라 단계적으로 사랑하여 나 자신도 승리하고 상대도 구원하는 지혜로운 신앙생활을 해야 함을 깨우쳐주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