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심판과 무지개 언약 (창 6:6-9:17 )
창세기 6장 6절에 하나님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절)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의인 노아를 세우시어 홍수심판을 결심하셨습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방주를 지어 하나님은 홍수심판을 단행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홍수심판 후에 후회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홍수심판하시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표로 우리 인간들에게 무지개를 남기셨습니다.(창 9:13)
홍수심판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셨다는 뜻도 되겠네요.
그럼 왜 하나님은 당신이 후회하실 이 홍수심판을 단행하실 수밖에 없으셨을까요?
이는 타락한 아담.해와를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하여 사탄 주관하에 떨어져 죄악을 일삼는 인간은 절대 용납할 수 없음을 홍수심판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죄악이 창궐하는 사망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죄악이 번성하는 것을 두고 보실 수 없는 하나님
노아를 세워 다 쓸어버리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죽었습니다.
같이 죽었습니다.
아담이 죽을 때 하나님은 더 죽었습니다.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빠져들었습니다.
병든 자식을 붙안고 아파하는 부모의 심정은 병든 자식보다 더 애통합니다.
자식에게 매를 때리는 부모는 맞는 자식보다 더 아픕니다.
하물며 죽은 자식을 붙안고 통곡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인류를 심판하신 것도 당신 스스로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하늘을 휘저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인간 지으심을 후회하시며 자책의 심정을 가눌길 없어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싶으셨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참으실 길이 없어 당신의 실체(인류)를 치시며 스스로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몸이 없으신 하나님 당신의 몸인 인류를 징벌하시며 스스로 징계하신 것이 홍수심판이었습니다.
그리곤 자신의 부족함으로 자식을 쳐야 했던 무능을 놓고 후회하셨습니다.
자식을 너무 사랑한 아버지였기에...
이렇듯 하나님은 죽은 아담을 살려보려고 홍수심판을 하셨지만 오히려 아담의 시체마저 더욱 훼손하는 것 같은 처참한 상황을 놓고 목놓아 통곡하셨던 것입니다.
다시는 당신의 몸과 같은 인류를 쳐서 구원 섭리를 하시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무지개로...
무지개는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이 홍수가 되어 혈육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셨지만 그것은 정도가 아니다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교훈하신 것입니다.
그 눈물을 그치시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눈물이 말라 만들어진 무지개입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언약이며 그 언약은 메시아를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이후의 섭리는 심판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그 메시아를 몰라보고 십자가에 달고 광야로 내 몹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무지개가 된 것을 모르고 아름답다고 하듯 메시아를 광야로 몰아내고 조롱하고 구경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무지개가 아름답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