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마 21:12-17, 막 11:15-19, 눅19:45-48, 요 2:12-22)
위의 성경 구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시고 상을 둘러엎는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포장마차 단속반처럼 행동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성경에 묘사된 대로 이런 과격한 행위를 했을까요?
그러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건을 내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사건을 문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요즘 현대 주석에서 이 사건은 성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전 바깥 뜰에서 이루어진 행위라고 한 발 물러섰고, 급기야 공동번역에서는 성전 뜰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전 안에서까지 장사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데 공감했을 것입니다.
그럼 우린 원리적으로, 내적인 심령적인 차원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장사꾼을 쫓아 냈다고 했는데 이 장사꾼은 바로 율법사, 제사장과 예배드리러 온 유대교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럼 왜 장사꾼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장사꾼이란 이익을 내기 위해 상행위를 하는 자입니다.
장차 천국을 보장받으려니 싫든 좋든 의식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던 외식하는 유대교인들. 즉 예수님이 보시기엔 천국을 사는 자들이죠.
그리고 천국을 담보로 신자들을 이용하여 헌금을 받아내는 율법사나 제사장은 파는 장사꾼들입니다.
이렇듯 헌금이나 제물을 통해 천국, 구원, 죄 사함을 거래하는 자들이 바로 장사꾼입니다.
이러한 심령상태를 잘 아시는 예수님, 당신의 말씀으로 그들의 속셈을 질타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율법의 제도와 형식을 이용하는 자나 형식에 얽매여 신앙하는 유대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참생명의 말씀은 그들의 심령에 마치 상을 둘러엎는 것과 같은 파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다음은 강도의 굴혈(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단순히 장사하는 자들만 있었다면 장사꾼을 쫓아내고 장터로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다른 뜻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강도는 바로 율법의 의식과 제도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제물. 헌금)을 채우는 율법사와 제사장을 지칭하신 말씀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장사꾼들보다 악랄하여 헌금을 강탈하는 수준에까지 이른 자들입니다.
율법과 의식, 제도를 엄하게 만들어 율법과 의식 제도를 지키지 않거나 헌금을 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몰아붙여 재물을 강탈하는 율법사 제사장들 말입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예배 참석자들이 타락성을 벗고 본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할 율법사 제사장, 요즘 말하면 목사나 교회 책임자들이 의식과 제도를 이용해 신자들의 재물을 은연히 강탈하는 것에 대한 경고라고 봅니다.
즉 구원받기 위해서는 의식과 제도 절차를 잘 지키고 많은 헌금 등을 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여 그에 따르게 심령적으로 압박하는 교회 책임자들이 바로 강도로 비유되었다고 봅니다.
이어 예수님은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장 1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 성전이 곧 당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앞의 말씀과 뒤의 말씀을 종합하면 성전이신 예수님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는 뜻인데, 과연 그럴까요?
원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전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바로 예수님이요, 본성을 회복한 인간이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 성전이 되어야 할 신자들이 장차 영계에서 천국을 보장받기 위해 의식과 제도에 의해 억지로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행위 등이 것이 곧 장사행위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만든 의식 제도를 지키게 강요하고 제물이나 헌금을 착복하는 율법사와 제사장들은 강도에 비유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되어 은혜를 받은 자들은 비교적 순수한 심령의 소유자인 어린 아기와 젖먹이로 표현된 자들이었습니다. (마 21:16)
그들은 예수님을 찬양하고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듯 본성에 의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곧 성전입니다
만민이 성전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성전(내적)이 되기 위해 성전(외적)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목자는 젖먹이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의 심정으로 말씀을 먹이고 심령의 성장을 위해 사랑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자는 엄마 젖을 빨듯 생명의 말씀을 먹고 심령을 성장시켜 성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린 우리의 거룩한 성전을 장터로,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않았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